071226 조선제일갑싼책이다

조선제일갑싼책이다

나의 이야기

2007-12-26 10:13:17


전에 이승만대통령전기나 오래된국어사전(최현배?) 또 첫침례교 번역신약 ‘만민됴흔기별’등 오래된 책을 어렸을때 성애원에서 박기양목사님께 드려버리고 나중 목사님이 가시면서 두섭이형 큰형(일지?)에게 주었는지 그가 갖고 있는것을 본것 같다.

찾아두었으면 좋았었을것을…

형이 잘 갖고 있는지…

하여간 인천을 떠나면서 성애원에 있던 축음기도 엿장사에게 부모님이 주어버려서 너무 안타까웠다.

부산에 대학입시때문에 갔다온 사이에 일이벌어졌었나?

어찌꺼나…

크리스마스 만찬을 나누다.

오래된 옥편을 펴보았다.

모친이 60년 3월에 ‘고서’에서 사신것으로 기록하신 옥편은

‘戊申년 拾貳일 서대문에서 李飛峯’이라는 글이 남아 있다.

어머니는 어디 헌책방에서나 길거리에서 책을 사셨을 것이다.

그책은 단기 4293(1960년)발행하고 원가가 1,000원으로 붙어있다. 80년대 갈비탕이 천원이었으니 아마도 ‘원가절하’가 한번더 있기전이었나 보다.

또 한책은 아무 크루?가 없는데,

끝 부분에 ‘모범鮮和사전’선전광고가 나오고

‘경성 박문서관’발행으로

이원오십전짜리를 일원20전에 드리겠다는 것과

부록만 보아도 몇십원가버치는 있다는 글귀가 나온다.

‘漢日鮮신옥편’으로 되어있어서 해�전에 만들어 진건 확실한데…

언제 만들어진것일까?

또하나는 포트랜드 시내 파월책방에서 구입한 조그마한 김소월의 ‘못잊어’인데…

한문 달필로 쓴 ‘이혜숙’싸인이 있다.

그 주인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한일선 옥편, 모범선화 사전 – 박문서관

2011년 선화사전 경매가 14만원??

#김소월 #못잊어 #경성 #이혜숙 #옥편 #이비봉 #한일선 #박문서관 #모범선화

071226 2007년 크리스마스

2007년 크리스마스
나의 이야기

2007-12-26 07:27:05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부천에서 수업을 시작할때 수업전에 칠판에 이글을 먼저 쓰곤했다.

박장군이 만든? 교육헌장!

왜 지금은 없어졌는지 모르지만 그시절에는 습관적으로 외우곤 했다.

대선을 통해서 얻은것은 ‘절망’이 더 많을까?

아름다운 글보다, 건설적인 말보다 미움과 증오의 글들이 더 많고 ‘자조’하는 글에 더 열광을 한다.

간혹 건설적인 글들이 올라오지만 대개는 ‘봉창두드리는’ 너무 innocence하게 느껴진다.

어쪄다 좋은글들은 그냥 맥이 없이 사라진다.

10여년전 ‘조독투’때는, 정말 쌍소리가 난부하는 속에서도 참 ‘학자’? 같은 사람들이 여럿있어서 …

볼만한 글들이 많았는데….

기독교는 악풀의 대상이고 증오의 대상일 뿐이다.

내가 기독교인이라는 것을 두려와 하거나 부끄러워 한적은 한번도 없는데 …

이제는 ‘미안한?’ 생각이든다.

대부문 좀 아는체하고 기독교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은 아니고 수준도 낮다.

그들은 더 낮은 사람들을 위해서 설명도 해주고 ‘말씀’도 들먹이지만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참 크리스찬들은 결국 끼어?들지 않고 있다.

아니면, 모르는 체!하고 대중속에 끼어서 같이 욕질들이나 하고 있거나…

‘까마귀 노는 골에?’ 오지 않고 있다.

증오를 갖고 비난하는 사람들을, 참 크리스찬은 비난하고 있을까?

참 크리스찬들은 ‘기독교를 증오를 갖고 욕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서로 만난다면 끝없는 비난과 비난으로 대화의 실마리를 풀지 못할것이다.

사이비?들은 더욱 심하다.

그들에게 ‘대화’는 없다. ‘주장’과 protect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거룩한?’사람들은 지저분?한 대화의 광장으로 나오질 않는다.

크리스찬과 비교도들 사이에 연결고리는 없는 것 처럼 보인다.

크리스찬에게 ‘참 진리의 능력?’이 적은 탓일까?

구원파를 우습게 알고 있었는데 그들이 ‘기독교한국남침례회’라는 명칭을 사용함으로 ‘침례교’라는 의미가 혼동됨을 알게 되었다.

좀 뭔가 해야만 할것 같다.

주님오신날 가족들과 만찬을 나누면선 자랑스런 한국침례교역사를 다시 흩어보았다.

다시 한번 감사한 일이다.

김용해 목사님이 64년도에 출판하신 ‘대한기독교침례회(기독교한국침례회)사’를 쓸까하다가 일단 홉하우스의 ‘자유주의’를 끝내야할것 같다.

언제나 끝낼수 있을런지 ㅎㅎ

071128 정동영후보 부인 아침마당에서

071128 정동영후보 부인 아침마당에서
나의 이야기

2007-11-28 06:48:30

아침마당에 정동영후보 부인이 나왔다.

정후보의 부친이 홀로 도시에 나가 공부를하는 고2의 정후보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서,

마지막으로 울먹이면서 남편에게 힘내라고 인사하는 부인을 보며,

기어이 울고말았다.

아! 하나님! 이나라를 구원하소서!

아 ! 신이여 이 민족을 구원하소서!

우리는 뭐가 잘못되었는지 모르는 것 같다.

조국을 위해 금메달을 따온 일당백 용사들이, 전사들이 잘못된 나라의 정책을 탓하며, 메달을 반납하고 조국을 버리겠다고 선언하고…

참담한 사고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불쌍한 국민들이, 이 따위 나라에서는 살수없다고 살기 좋은나라를 찾아 떠나고…

그들은 모르는것이다.

조국과 민족은 버릴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기득권을 가진 자들은 자신들의 조그마한 손실을 막기 위해 정책을 반대하고…

서민들은 못살겠다고 청와대와 대통령 성토하고,

대통령이 아직도 민족의 지도자여만 한다고 필요에 따라 오도하며, 망했다는 말이 얼마나 무책임한 말인가를 우리는 모르고 있다.

‘잃어버린 10년?’이란 말이, 이나라를 이만큼세운 민주전사들과 아직도 빈민의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수출의 역꾼’들이 한 ‘피눈물의 희생’을 얼마나 무시하는지를…

독재 4-50년의 결과로 우리는 아직도 정치의 혼란을 겪고 조국분단의 비극을 아직도 이어가고 있는데…

종교인들은 신의 이름을 빌려 독선을 계속하며 스스로 신의 명령을 거부하고 ‘분당’하여 신을 모욕하고 불의를 횡행하며….

정동영 후보의 부인의 인터뷰?를 보면서 나는 울면서 나의 하나님께 기도를 했다.

이 정동영후보를 뽑아달라고, 이 민족을 구원하여 달라고…

우리는 정상적이고 체계적으로 교육정책을 행하는 성숙한 사회를 이루지 못하는한 사회문제는 계속될 것이다.

오늘 아침에도 먼저 눈에 들어오는 기사는 ‘요즘 고등학생들 왜 이러나?’였다.

왜 이러긴? 우리가 잘 못 가르쳐서 그렇지!!

우리는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과도기에 있다.

이로 인하여 우리는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하고 이 시기를 ‘진실과 참’으로 이겨내지 않으면 않된다.

여기에 길이 있다 저기에 길이 있다 하겠지만 우리는 근본적인 자아를 찾아야만 한다.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민족과 조국을 버릴 수는 없다.

심심하면 정부와 대통령을 비난하는데 참 과연 나라를 위하여 우리는 무엇을 하는 가 다시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무작정 남을 비난하고 남의 잘못으로 돌리는 따위는 이제 사라져야한다.

극단적인 이기심으로 인한 과잉 자녀 보호와 교육은 즉시 중단해야한다.

우리는 이런 근본적인 인간관계를 회복해야한다.

비난과 비리가 난무하는 이 선거 와중에 정동영후보 부인의 인터뷰를 보면서 나는 눈물을 흘리며 나의 하나님께 정후보가 다시 한번 대한 민국이 옳은 방향으로 가는데 도움이 되도록 빌었다.

071127 이인철화백

이인철화백 071127
편지

2007-11-28 02:59:07

히히 그래도 니 글 보니 반갑고나!!
나이가 들면 더 여유가 있을것 같은데 맨날 정신없이 산다.

거의 교회를 중심으로 사니 원가 신이 원하는 일을 한다고 하지만 아무것도 하는 것이 없는것 같다.

다인 모의 어린이 집도 뭔가 같이 동역을 해야되는데…

교회라는 곳도 하도 의견이 분분하니 의견을 내 놀수 조차 없다.

이곳 사회관도 제대로 운영을 못하고 있으니…

다인이가 학교가 결정되지 않았구나?

우리 큰애 조이옥경은 가을에 씨애틀에 워싱톤 주립대학UW에 진학했다.

추수감사절이라 처음으로 집에 왔다 갔다.

컴퓨터 클래스에 들어서 자바로 인테넷 프로그램에 속 빠졌다.

며칠 간 왔다 가면서도 내내 프로그램만 짜다가 갔다.

자주 연락 하자

Merry Christmas and Happy New Year!!

———[ 받은 메일 내용 ]———-
제목 : 킹다비드야 반갑구나!
날짜 : 2007년 11월 27일 화요일, 오후 23시 04분 46초 +0900
보낸이 : “이화백”
받는이 : “kingdavid”

오랜만에 내 홈페이지에 가보니 너 글이 있구나.

늦어서 미안 하고나.

아버님께서 돌아가셨구나. 위로의 말 전한다.

우리집 딸내미(다인)도 올해 시험을 쳤다. 미대간다구 그러는데

결과가 어떨지 몰것다.

그라고 문근이 전화번호가

 핸드폰 : 000000000이다.  문근이에게 너가 보고 싶어 하드라고 전하마.

지금은 어디 있냐?

누님도 몸이 안좋으시다고 하더니만……

미국갔던게 아득하구먼. 언제 또 갈 기회가 있을지. ㅋㅋ

너하고 며칠 여행한게 참 좋았다. 한 열흘간 더 여행하다 올걸 그랬나 보다.

시애틀 어딘가에서 수대 식공과 동기가 주유소를 한다고 하더니만

대벽아 종종 소식 전하며 살자.

See u again…

071123 LT홉하우스의 자유주의-자유주의 이전2

I. 자유주의이전2
LT홉하우스의 자유주의

2007-11-23 08:28:11

이옛 사회기구는 내가 앞으로 지시하겠듯이 주로 자유주의 사상의 영감아래, 시민국가Civic State의 새조직에 천천히 나마 그러나 확실하게 굴복함으로써 그 자신은 물러가는 것이었다.

물론 구사회기구 자체가 근원적인 것일 수는 없다.

무엇이 참으로 근원적인가는 단언하기가 매우 어렵다.

허나 자못 명백한 한 事理사리가 있으니, 그것은 어느 시대임을 막론하고 인간은 사회 중에서 살아 왔으며, 혈연과 이웃이라는 끄나풀이 사회조직의 모든 형태 밑에 있다는 것이다.

가장 단순한 사회에 있어서는 아마 이 두 끄나풀이 참으로 중시되는 유일한 것이겠다.

이 두 끄나풀은 종교적 신앙이나 기타 신앙에 의해서 더욱 더 굳어지며 그 작용범위도 넓어진다.

자손의 날줄과 결혼의 씨줄로 확실히 일종의 천이 짜여지고, 이 천으로부터 작고 간단하기는 하되 밀접하고도 견고한 공동사회들이 형성된다.

허나 혈연과 이웃의 끄나풀들은 오직 좁다란 범위 안에서만 유효한 작용을 한다.

지방적인 집단, 동성의 씨족 혹은 부락 공동체는 왕왕 유력한 생활의 중심이 되지만, 또한편 종족Tribe이라는 보다 더 큰 집단에 이르러서는 군대적 조직에라도 의존하지 않는 한 진정으로 사회적 정치적 통일을 달성할 수가 거의 없다.

군대조직은 한 종옥을 단결시키는데 뿐 아니라, 다른 종족을 종속시키는데도 유용하며, 따라서 원시생활에서 가장 유가치하다고 할 많은 것을 희생하면서, 보다 더 큰 사회인 동시에 보다 더 질서가 서는 사회를 건설하는데 유용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한번 사회질서가 확립되고 보면 그 다음에는 도저히 徒手空拳도수공권으로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통치자에게는 드디어 불가침의 권력이 부여된다.

이에 그들 통치자는 제 마음대로 신이나 神孫신손이 되어서 절대적 권력을 부린다.

훅은 그들 통치자에게는 통치자에게는 특수한 승려계급의 신분이 주어져서 축복되고 높여진다.

어쨌든 잡아 쥐게 된 그들의 권력은 민중의 생명을 지배할 뿐더러 민중의 정신마저 지배하고 만다.

이들이 단지 현재 생명을 내리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명령권이 신으로부터 예정되있다고 한다.

이런 정치는 민중이 반드시 용인하지 않음이 아니요, 또 민중과 무관계하지도 않으나, 본질적으로는 위로부터 하는 정치GOVERNMENT FROM ABOVE다.

이런 정치가 민중PEOPLE의 생활을 전적으로 지배하는 동안 그것은 민중에게 이익되는 듯한 방법과 원칙에 기초해서 병역.納貢납공.의례등의 의무 및 신법에 복종하는 의무까지 부과한다.

일부 법학파가 주장하듯이, 법률은 강자가 약자에게 과는 명령이요, 그 배후에 형벌의 제재가 있는 명령이라고 함은 진리가 아니다.

일반법률에 관해서는 그 런 주장은 도저히 진리가 되지 않는 다.

그러나 권력주의 사회authoritarian society라고 우리가 말하는 특수한 단계의 사회에 있어서는 이런 주장은 진리인 것이다.

2.

대부분의 세계와 대부분의 역사를 통해서 두 형태의 사회조직만이 명백히 구별되어 발견된다.

물론 이 두형태는 그 자신 각각 세부에 있어서 변천할 수 있는 여지가 많으나, 그러한 변천의 밑바닥을 들여다볼 때에, 역시 그 두 타입이 되풀이해서 나타남을 우리는 안다.

즉 한쪽에 혈연관계의 작은 집단이 있어서 집단 자체만으로서는 가끔 매우 강력하되 통일적 행동을 하기에는 자못 미약한 타입이 있다.

다른 쪽에는 중국제국에서 작은 흑인왕국에 이르기까지, 크기와 문명정도가 서로 다른 큰 사회가 있고, 이런 사회는 군대의 힘과 종교적(혹은 준종교적) 신념의 어떤 결합에 의존하며 이런 결합을 우리는 권력주의principle of authority라는 공정한 명목으로 불렀다.

문명이 아직 낮은 단계에서는 서로 적대하는 씨족 사이의 분쟁을 진압하고, 공동의 적에 대해서 국경을 보전하며, 외면의 여러 질서를 확립하는 바, 권력주의의 한 방법만이 보통 나타났을 뿐이었다.

그래서 권력주의 지배를 택하지 않고 다른 것을 취함은, 도리어 야만생활의 비교적 무정부상태로 타락하는 것이었다.

3.

그러나 또하나의 방법이 고전적인 고대에 나타났었다.

고대 희랍과 고대 이탈리아와의 도시국가city state는 사회조직의 새로운 한 타입이었다.

그것은 혈연적 씨족과 다른 것이요, 어떤 점에서는 지방자치체commune와도 다른 것이다.

처음에 도시국가는 많은 씨족과 많은 촌락들을 내포하였다.

그리고 그것의 기원은 정복에서가 아니라 비교적 평등했던 동맹에 기초해서, 흩어져 있던 씨족들이 한 곳에 집결한데 있었다.

이런 도시국가를 고대의 제국이나 근대국가에 비교하면, 그것은 대단히 작은 규모이나, 원시적인 혈연적 친족보다는 훨씬 큰 규모였다.

도시국가의 생활은 변화가 있었고 복잡하였다.

그것은 개인에게 자유활동을 상당히 허락했으며, 그것이 발전함에 따라서 옛 씨족조직을 압박하였고 그 대신 지리적인 새로운 구분 및 기타의 새로운 구분을 두었다.

그 것은 사실 결코 혈연관계 위에 기초하지 않고, 공민적civic right에 기초해 있었다.

도시국가가 지방 자치체로부터 구별될 뿐더러 동양의 군주정치로부터 구별되는 것도 바로 이 점에 있어서다.

도시국가에서는 국가가 인정하였고 또 국가가 존립하도록 한 바, 법률은 복종하는 대중의 위에 우월자로 나선 정부가 과는 명령이 아니었다.

반대로 정부 자체가 법율에 복종해 있어서 법률은 국가의 생명이었고, 자유 시민의 전체에 의해서 자발적으로 법률은 지지 받았다.

이런 의미에서 도시국가는 자유인들의 공동사회community였다.

요약해 말하면 도시국가의 시민들은 아무런 상전도 가지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 자신들을 지배하였고, 자고로 전해져 온 생활의 원칙과 규칙에만 복종하였으며, 그들의 세력은 繼起계기한 세대들의 자발적인 순종에 유래한 것이었다.

이러한 사회공동체에서 사람을 괴롭게 한 문제등 중의 약간은 가장 단순한 형태를 띠고 나타났다.

더구나 개인가 사회공동체와의 관계는 밀접했고, 직접적이었으며, 자연스러웠다.

시민들의 이해관계는 명백히 일괄되어 있었다.

개개인이 그들의 의무를 수행하지 않으면 국가는 쉽사리 무너져서 인민은 노예화 하였다.

또 한층 더 중대한 일은 그 사회공동체에서는 교회와 국가와의 대립도 없었고, 정치생활과 종교생활 사이의 알력(軋轢)도, 현세의 요구와 내세의 요구 사이의 분열도 없었으며, 그래서 시민들의 공순(恭順)을 방해하는 일이나 양심의 권위가 애국작인 의무에 반대함이 도무지 없었다.

安(안)隱(은)한 생활을 위해서 그런 사회공동체를 사람들이 결성한 것이라고 진술하는 것은 철학적인 어떤 사색의 소치가 아니라 단지 사실의 솔처럼 절로 고대 희랍의 생활상태로부터 발단하였다.

071117 LT홉하우스의 자유주의1

I 자유주의 이전
071117 LT홉하우스의 자유주의1

2007-11-17 05:39:04

1.

근대국가(modern state)는 무쌍한 문명의 탁월한 산물이다.

그러나 이런한 산물은, 아주 완성돤 것이 아니라, 지금도 형성되는 도중에 있으며, 그 형성과정의 일부는 사회질서의 신구원리新舊原理 사이의 투쟁임에 틀림없다.

우리의 주요한 목적은 사회 질서의 새원리(자유주의)를 이해하는데 있으나, 이를 위해서 사회질서의 구원리(권력주의)를 우선 별견瞥見할 필요가 있다. 즉 우리는 자유주의 발생하기 이전의 사회기구Social Structure가 어떠했던가를 이해해야 한다.

주)15년전 부친이 돌아가실때 인가부터 홉하우스의 자유주의를 타입하려고 했었는데 이유는 지금은 누구도 읽지 않을것 같은 구닥다리 고전이지만 민주주의의 역사가 없는 조선인들에게는 근본적인 개념일수 있다고 생각 핬었기 때문일것이다.

하지만 현대 심리학이 고전심리학을 정의 할때 근본적인 무의식속의 자아를 찾아내는 것 보다 현실적인 임상치료가 더 효과적이라고 정의 하는 것이나 스마트폰이라는 무선전화를 쓰는 시대에 굳이 전화선이 필요한것이 아이여서..

누구도, 아니 이제는 민주주의의 근본적인 개념이라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잇다.
해서 몇자 끄적이다가 펜을 놓고 만다… ㅠㅠ?? or ㅋㅋㅋㅋㅋ

071117 일성록780129맑음-흐리고 우박미스므레한것

071117 일성록780129맑음-흐리고 우박미스므레한것
년도별/78.1~11(6)

2007-11-17 04:57:57

1978년 1월 29일, 21시20분 , The Weather is not thinked? – 뭔소리??

日成錄

주-왠지 이순신 충무공의 난중일기를 읽고 일기를 꼬박꼬박 쓰자고 결심했었는데 일기를 그때문에 일성록이라고 부르곤 했는데…

난중일기에 일성록이라고 했는지는 기억이 없다.

어젠 心과 여행?

아침 6:25 청량리착 경주行

아침 5時 기상

‘갸’는 말을 하지 않는다.

無識? 해서, 아니면 말을 불필요해서라면

차라리 낫지.

‘갸’는 그의 성장과정에서 컴플렉스가

‘갸’를 그렇게 만들었다.

‘몰라’라고 대답하는 (버릇)에 관한 카운셀링.

시기는 최종학교를 졸업한 후 사회에 나온 지금부터 약 1년사이

-거짓말 일꺼다

이유는 갚은 고민 中 친구들의 참여에 대한 답변으로 정확한 해답을 내릴수 없는데 기인했던 것 같다고 한다.

  1. 고민의 量은 같으나 친구의 참여(질문) 증가로 인한 싫증에서 오는(말하기 ?은, 말할수 없는) 무성의한 대답.
  2. 친구의 참여(上同)의 量은 같으나…

결국 對話회피.

이유는 60-70%밖에는 친구들(부모, 형제보다)에게 말할수 없느 깊이의 고민을 하는 까닭?

對話의 ‘길이’ 내지는 대화에 대한 적극적인 자세 要.

이따위 말을 꺼내게 하기 조차 힘든애다.

‘갸’ㄴ느 그녀의 자신을 숨기려한다.

그래서 그녀에 대해 알기 원치 않으면 그것으로 끝나고 만다. 그녀의 친구들은 어떨까? 정말 모든 얘기는 事實的 표현 이상인것은 아무것ㅇ도 없을 것이다.

-실수!! 사실 ‘갸’는 이보다 훌륭한 애일꺼다. ‘781106

오늘 11時 기상.

이짓 저짓, 창가에 앉아

定理를 좀 해야 겠다.

‘갸’한테 말한 ‘자신을 회복되야한다.’는

말이 나한테 해당한 말인 줄 잘안다.

너무나도, 만든 것인지 설혹 진심인지. 너무 계집생각을 한다는 것은 바보스럽고 自身을 피로하게 하는 일이다.

그동안 읽은 책.

  1. 내려오는 계단으로 올라가며.
  2. 금각사, 푸른산맥.
  3. 지하여자대학(장덕조)
  4. 인생대리점(李浩哲) – 읽는 中

地下 女子 大學은 心에게 빌려주고

돌아오는 수요일까지 독후감써서 받기로 함

-실수! 명청하고 무자비 한짓 781106

포항들러 경주 55고분(천마총 天馬塚)

그림그려진 모자 창(그림)

(토기그림) 토기에 뚫린 구멍은 위생적(벌레가 안생긴다.

(청동주전자그림) 청동주전자 등등

                   땜질(산소땜?)

                    정말 정교

(금그림) 금 內冠(조립식)

금허리띠 (ㅡ그림)

                        잘한일에 따라 달아줌

(옥돌그림) 구멍 옥돌 (해방후 10년동한 돌구멍 일본서 뚫어옴)

(금관그림) 山자 4개(보통 3개)

             금관(쌍무덤-00王-에서 나온 금관 보다 큼) 여지껏 제일큼.

           미는데 쓴 금철사(과연 어떻게 만들었을까)

정말 정말 훌륭한!!

(무덤 단면도) 돌층

                 방수층(진흙) 팔때 곡괭이가 안들어 갔다함.

                 흙=5m

                 괘짝 탄화-약 1만몇천점 나옴

                장식물(관), 시체 뼈다쉬 모두 흙으로 돌아가다.

                 과학적으로 , 흙을 태워서 깔고 그 위에 (관)시체를 누윈것 같음.

                밤나무 통나무 室

現 23시 15분전, 공장 (당시 공장밤? 수위인 부친 대신 주말과 방학에는 공장수위를 즐겼다?ㅋㅋ)

冊(人生代理店)읽다가 車나 좀 몰다 잤음 ?겠다.

071117 자유주의를쓰면서 071116 비가부슬부슬

071117 자유주의를쓰면서 071116 비가부슬부슬
나의 이야기

2007-11-17 03:37:09

부친이 돌아가시기 전 엘에이를 오가면서 옛책들을 꺼내 읽게되었다.

예전의 명작들도 이제는 모두 고전이 되었다.

30년전 모으던 삼성문화문고 몇권이 우연히 나에게 쥐어 졌고…

사실 그중에 읽을만한 것들은 별로 없었다. 여러개중 뒤져보았지만…

이제는 고전이되어서…

아이들에게도 가끔 그 옛날 명작들을 읽으며 느끼던 감흥을 이야기하지만 관심이 없다.

심지어는 작품명이나 직가를 알지도 못한다.

잡학(?)에 도가 깊은 나로써는 한심한 일이 아닐수 없다.

하지만 시대가 변한걸 어찌하랴?

아이들은 책을 눈에 달고 살지만 가벼운 추리, 미스터리소설 따위같다.

반지제왕이나 요술, 마술이야기 또 심지어는 ‘다빈치 코드’등 그 전개가 흥미진진하다는데 아이들은 쏙빠져있는것 같다.

자유주의는 100년전(1911년)에 쓰여졌는데 민주주의를 스스로 쟁취하지 못한 우리는 이런 정치,문화에 대한 사고와 검증이 없이 달려오지 아니하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래서 우리는 이 ‘100년전의 한 인간의 생각’을 다시한번 해 봐야하지 않나 사료된다.

후후,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서구에 비해 100년정도 뒤떨어 진것일까?

‘자유주의’를 시작하면서 인사말이 너무 길어져서 짤라서 이곳으로 옮겼다.

계속하면, 나이가들면서? 세대가 변하면서, ‘너무 깊은사고를 하면서 읽는 것’은 골치를 아프게 했다.

가벼우면서 흥미진진한 것이 바로 추리 소설이다.

한때 연애소설에 관심이 간적도 있지만 금방 시들해 지고 만다.

미국에서 는 사실 젼혀 다른세계과 접촉하게 되는데…

우리가 알던 세계문학전집이라는 것은 눈을 비비고 찾아봐야 찾을수가 없다.

이민 초기 25년전, 대학때 심취했던 불란서 작가’루이제린저?’의 책을 영어로 읽어보려고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못찾았다.

심지어는 매릴랜드주립대학 도서관에서 못찾았던것 같다.

헌데, 추리,살인 소설들은 그 수준이 높아서 읽으면 전률을 느낄 정도이다.

또 수준들이 높아서 움베르토 에코등 유명 소설가들은 참으로 세계적인 석학수준같이 느껴진다.

우리나라는 막 추리소설들이 시작되던시기 였던것 같고…

한국을 떠나기전 이병주씨등 몇 추리소설을 읽어던것 같기도 하다.

이번에 송일국이 나오는 드라마 ‘로비스트’를 보면서(여편네가 송일국이를 좋아해서…) 쓴사람이 전혀 경헙하지 못한것을 상상해서 쓴것이 아닌가하는 느낌이 있다.

하여간 미국에서 ‘세계문학전집’이라는 개념이 별로 없는것 같다.

세계문학전집을 내가 접할수 있었던 것은 중학교 동창이던 김장환이라는 친구덕분이다.

중학교 무슨 ‘전국고전교양대회’인가 뭔가하는게 있어서 자주 도서관에 모여서 한국고전책들을 읽곤 했는데, 기억에 도서관에 전집은 있질 않았던 갔다. 고등학교에서도 마찬가지 였던것 같은데 그냥 단권으로 된 문학소설을 읽을수 있었던것 같다.

재미있는것은 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마치 ‘춘희’?를 번역한듯한 옛날 소설을 너무나도 감명깊게 읽은적이 있다.

아마도 50년대 이전에 외국소설을 불법번역한 소설책이었던것 같다.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한국식이고 지명등은 영국이었던것 같다.

상인천이 이전전에 인고와 도서관이 같았으니 그책이 아직도 인고에 있을지 모르겠다.

하여간, 당시 세계문학전집은 구경하기도 힘들었던 시절인데 장환이네는 을지문화사인가 을유문화사 전집이 있었다.

그는 이층 한층를 모두 쓸수 있었는데 그곳에는 전축이 있었고 그 전집이 있는 책장이 있었다.

친구들이 거기서 공부는 별로 한적이 없고 레슬링도 하면서 놀곤했다.

나는 특히 그와 친해서 (어머니가 누이 정신여고 3-4년 선배) 가끔 어머니가 계란이 든 라면을 끓려주셨다.

놀고 돌아 올때는 꼭 전집하나를 빌려 오곤했는데, 나는 항상 그 전집을 신문지로 싸서 깨끗히 읽고 돌려주었다.

가끔 내가 깨끗히 읽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신문지를 벗기지 않고 돌려주곤했다.

뭔훗날 그가 물었다.

너 나한테 빌려간책 다 갖고 왔냐?

친구가 많은 그에게, 책은 몇권 남아 있지 않았다.

071117 ‘자유주의’를 쓰면서…

071117 ‘자유주의’를 쓰면서…
나의 이야기

2007-11-17 02:40:44

부친이 돌아가시기 전 엘에이를 오가면서 옛책들을 꺼내 읽게되었다.

예전의 명작들도 이제는 모두 고전이 되었다.

30년전 모으던 삼성문화문고 몇권이 우연히 나에게 쥐어 졌고…

사실 그중에 읽을만한 것들은 별로 없었다. 여러개중 뒤져보았지만…

이제는 고전이되어서…

아이들에게도 가끔 그 옛날 명작들을 읽으며 느끼던 감흥을 이야기하지만 관심이 없다.

심지어는 작품명이나 직가를 알지도 못한다.

잡학(?)에 도가 깊은 나로써는 한심한 일이 아닐수 없다.

하지만 시대가 변한걸 어찌하랴?

아이들은 책을 눈에 달고 살지만 가벼운 추리, 미스터리소설 따위같다.

반지제왕이나 요술, 마술이야기 또 심지어는 ‘다빈치 코드’등 그 전개가 흥미진진하다는데 아이들은 쏙빠져있는것 같다.

이야기가 길어져서 각설하고…

자유주의는 100년전(1911년)에 쓰여졌는데 민주주의를 스스로 쟁취하지 못한 우리는 이런 정치,문화에 대한 사고와 검증이 없이 달려오지 아니하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래서 우리는 이 ‘100년전의 한 인간의 생각’을 다시한번 해 봐야하지 않나 사료된다.

후후,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서구에 비해 100년정도 뒤떨어 진것일까?

하여간 한번 다시 읽어보자!!

자유주의 홉하우스 삼성문화문고 김대벽

071117 나의 블로그가 완성되다.

071117 나의 블로그가 완성되다.
갖고 싶었던 블로그가 완성되다.

그동안 서버들을 믿을수 없어서 , 하루 아침에 문닫아 버리니…

다음이야 그러지 않겠지?

하하 이제 진짜로 나의 집을 지어 보자!!

주) 이게 언제일까???
아마도 조선 한반도 역사에 처음 서민 민중의 첫 대통령이자 세계 최초의 인터넷의 힘으로 대통령이 되 노통이 물러나고 한번더 민주의 세상이 한번더 이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다음 블로그를 열었다.

그리고 그러한 흔적이 만고에 남을 것이라는 바람으로… ㅋㅋㅋ
그러나 그런 희망?과 기대는 조선에서 언제나 그랬듯이 여지 없이 깨지고 만다,
돈에 눈먼 넘들이 항상 그들의 양심을 팔아 먹었듯이…

그래도 다음은 반석위의 집이 될줄 알았다….ㄷㄷㄷ

그러나 그것은 반석이 아닌 모래위의 집이었다.
사이비들의 모함에도 불구하고 클리닝에 맞서 싸우던?? 다음은 순식간에 사찰이 가능해지고…
클리닝 센터라는 곳에서는 어떤 판결없이 이메일 한통으로 삭제하는 만행??들이 행해졌다.

어느날 갑자기 내 블로그가 없어져 버렸다.
카카오와 통합되기전 히스토리인가 뭔가와 무슨 연계가 있는 것은 알았지만 이제는 새로운 것에 둔해 졌을 나이가 이미 되기도 했지만 사찰과 해킹이 언제 어디서 일어날수 있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에 새로운 네트워킹을 쓰는 것은 안전하지 못한 시대가 되었기 때문에 다른 제의를 받아들이는 것은 관심이 없었다….

하여간, 블로그가 없어져서 오랜동안 보지 않던 이메일을 열어보니 딱! 3개월 전에 경고를 보낸 모양이다.
세월이 유수처럼 흐르는 나이도 되었지만 요즘 달나라에 갔다오는 시대에 누가 이메일을 본단 말인가??
지네는 이메일 못쓰도록 카카오를 유행 시킨 넘들이 아닌가 ???

그런데 달랑 3개월 경고문을 보내고 15년을 해온 내 블로그를 한 순간에 없엔단 말인가???
이게 뭔 친일군사독재란 말인가 공쌴 빨강이 짓이란 말인가???

매일보는 뉴스에도 어떤 경고도 소문도 듣지 못했다…
옛날 컴퓨터를 공부하고 네트워크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을 때…

이런 것들을 시작한 유명인들은 네트워크 또는 인터넷 선서??? 뭐 이런 선서문을 만든 것을 본적이 있다.
인터넷은 자유롭고 어떤 정치, 국가에 예속되지 않는… 뭐 이런…

그 양반들이 다 어디서 뭘하는 지는 모르지만..
통신통제 기관들이 권력에서 나와서 권력의 시녀 역활을 하는 동안 믿엇던 지식인의 양심…
자유로운 시대가 되면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 될것 이라는 기대는 또 다른 정신적 폭력과 독재사기로 무너져 간다…

대한 민국 육군사관학교의 최고 엘리트 였던 최추봉 선생이 소천하기전 써 놓은 ‘이상한 세상이 되었다’ 는 글이 새삼 눈에 들어 온다…

글도 잘 쓰시던 최추봉 선생은 작고 후 그리고 다음의 만행으로 인해 그 블로그는 사라졌고 그의 글도 다 사라져갔다.
어떤 넘들이 계획하고 주도 하는 것일까???
마치 진시황이 책을 다 불태웠다고 하는데… 모든 것을 불태워 버리겠다는 노력인지…
그러면 그들이 만행이 다 지워지리라 믿는 것일까??? 후후후 어림없는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