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자유주의 이전2 071123

I. 자유주의이전2
LT홉하우스의 자유주의

2007-11-23 08:28:11

이옛 사회기구는 내가 앞으로 지시하겠듯이 주로 자유주의 사상의 영감아래, 시민국가Civic State의 새조직에 천천히 나마 그러나 확실하게 굴복함으로써 그 자신은 물러가는 것이었다.

물론 구사회기구 자체가 근원적인 것일 수는 없다.

무엇이 참으로 근원적인가는 단언하기가 매우 어렵다.

허나 자못 명백한 한 事理사리가 있으니, 그것은 어느 시대임을 막론하고 인간은 사회 중에서 살아 왔으며, 혈연과 이웃이라는 끄나풀이 사회조직의 모든 형태 밑에 있다는 것이다.

가장 단순한 사회에 있어서는 아마 이 두 끄나풀이 참으로 중시되는 유일한 것이겠다.

이 두 끄나풀은 종교적 신앙이나 기타 신앙에 의해서 더욱 더 굳어지며 그 작용범위도 넓어진다.

자손의 날줄과 결혼의 씨줄로 확실히 일종의 천이 짜여지고, 이 천으로부터 작고 간단하기는 하되 밀접하고도 견고한 공동사회들이 형성된다.

허나 혈연과 이웃의 끄나풀들은 오직 좁다란 범위 안에서만 유효한 작용을 한다.

지방적인 집단, 동성의 씨족 혹은 부락 공동체는 왕왕 유력한 생활의 중심이 되지만, 또한편 종족Tribe이라는 보다 더 큰 집단에 이르러서는 군대적 조직에라도 의존하지 않는 한 진정으로 사회적 정치적 통일을 달성할 수가 거의 없다.

군대조직은 한 종옥을 단결시키는데 뿐 아니라, 다른 종족을 종속시키는데도 유용하며, 따라서 원시생활에서 가장 유가치하다고 할 많은 것을 희생하면서, 보다 더 큰 사회인 동시에 보다 더 질서가 서는 사회를 건설하는데 유용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한번 사회질서가 확립되고 보면 그 다음에는 도저히 徒手空拳도수공권으로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통치자에게는 드디어 불가침의 권력이 부여된다.

이에 그들 통치자는 제 마음대로 신이나 神孫신손이 되어서 절대적 권력을 부린다.

훅은 그들 통치자에게는 통치자에게는 특수한 승려계급의 신분이 주어져서 축복되고 높여진다.

어쨌든 잡아 쥐게 된 그들의 권력은 민중의 생명을 지배할 뿐더러 민중의 정신마저 지배하고 만다.

이들이 단지 현재 생명을 내리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명령권이 신으로부터 예정되있다고 한다.

이런 정치는 민중이 반드시 용인하지 않음이 아니요, 또 민중과 무관계하지도 않으나, 본질적으로는 위로부터 하는 정치GOVERNMENT FROM ABOVE다.

이런 정치가 민중PEOPLE의 생활을 전적으로 지배하는 동안 그것은 민중에게 이익되는 듯한 방법과 원칙에 기초해서 병역.納貢납공.의례등의 의무 및 신법에 복종하는 의무까지 부과한다.

일부 법학파가 주장하듯이, 법률은 강자가 약자에게 과는 명령이요, 그 배후에 형벌의 제재가 있는 명령이라고 함은 진리가 아니다.

일반법률에 관해서는 그 런 주장은 도저히 진리가 되지 않는 다.

그러나 권력주의 사회authoritarian society라고 우리가 말하는 특수한 단계의 사회에 있어서는 이런 주장은 진리인 것이다.

2.

대부분의 세계와 대부분의 역사를 통해서 두 형태의 사회조직만이 명백히 구별되어 발견된다.

물론 이 두형태는 그 자신 각각 세부에 있어서 변천할 수 있는 여지가 많으나, 그러한 변천의 밑바닥을 들여다볼 때에, 역시 그 두 타입이 되풀이해서 나타남을 우리는 안다.

즉 한쪽에 혈연관계의 작은 집단이 있어서 집단 자체만으로서는 가끔 매우 강력하되 통일적 행동을 하기에는 자못 미약한 타입이 있다.

다른 쪽에는 중국제국에서 작은 흑인왕국에 이르기까지, 크기와 문명정도가 서로 다른 큰 사회가 있고, 이런 사회는 군대의 힘과 종교적(혹은 준종교적) 신념의 어떤 결합에 의존하며 이런 결합을 우리는 권력주의principle of authority라는 공정한 명목으로 불렀다.

문명이 아직 낮은 단계에서는 서로 적대하는 씨족 사이의 분쟁을 진압하고, 공동의 적에 대해서 국경을 보전하며, 외면의 여러 질서를 확립하는 바, 권력주의의 한 방법만이 보통 나타났을 뿐이었다.

그래서 권력주의 지배를 택하지 않고 다른 것을 취함은, 도리어 야만생활의 비교적 무정부상태로 타락하는 것이었다.

3.

그러나 또하나의 방법이 고전적인 고대에 나타났었다.

고대 희랍과 고대 이탈리아와의 도시국가city state는 사회조직의 새로운 한 타입이었다.

그것은 혈연적 씨족과 다른 것이요, 어떤 점에서는 지방자치체commune와도 다른 것이다.

처음에 도시국가는 많은 씨족과 많은 촌락들을 내포하였다.

그리고 그것의 기원은 정복에서가 아니라 비교적 평등했던 동맹에 기초해서, 흩어져 있던 씨족들이 한 곳에 집결한데 있었다.

이런 도시국가를 고대의 제국이나 근대국가에 비교하면, 그것은 대단히 작은 규모이나, 원시적인 혈연적 친족보다는 훨씬 큰 규모였다.

도시국가의 생활은 변화가 있었고 복잡하였다.

그것은 개인에게 자유활동을 상당히 허락했으며, 그것이 발전함에 따라서 옛 씨족조직을 압박하였고 그 대신 지리적인 새로운 구분 및 기타의 새로운 구분을 두었다.

그 것은 사실 결코 혈연관계 위에 기초하지 않고, 공민적civic right에 기초해 있었다.

도시국가가 지방 자치체로부터 구별될 뿐더러 동양의 군주정치로부터 구별되는 것도 바로 이 점에 있어서다.

도시국가에서는 국가가 인정하였고 또 국가가 존립하도록 한 바, 법률은 복종하는 대중의 위에 우월자로 나선 정부가 과는 명령이 아니었다.

반대로 정부 자체가 법율에 복종해 있어서 법률은 국가의 생명이었고, 자유 시민의 전체에 의해서 자발적으로 법률은 지지 받았다.

이런 의미에서 도시국가는 자유인들의 공동사회community였다.

요약해 말하면 도시국가의 시민들은 아무런 상전도 가지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 자신들을 지배하였고, 자고로 전해져 온 생활의 원칙과 규칙에만 복종하였으며, 그들의 세력은 繼起계기한 세대들의 자발적인 순종에 유래한 것이었다.

이러한 사회공동체에서 사람을 괴롭게 한 문제등 중의 약간은 가장 단순한 형태를 띠고 나타났다.

더구나 개인가 사회공동체와의 관계는 밀접했고, 직접적이었으며, 자연스러웠다.

시민들의 이해관계는 명백히 일괄되어 있었다.

개개인이 그들의 의무를 수행하지 않으면 국가는 쉽사리 무너져서 인민은 노예화 하였다.

또 한층 더 중대한 일은 그 사회공동체에서는 교회와 국가와의 대립도 없었고, 정치생활과 종교생활 사이의 알력(軋轢)도, 현세의 요구와 내세의 요구 사이의 분열도 없었으며, 그래서 시민들의 공순(恭順)을 방해하는 일이나 양심의 권위가 애국작인 의무에 반대함이 도무지 없었다.

安(안)隱(은)한 생활을 위해서 그런 사회공동체를 사람들이 결성한 것이라고 진술하는 것은 철학적인 어떤 사색의 소치가 아니라 단지 사실의 솔처럼 절로 고대 희랍의 생활상태로부터 발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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