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봄이 휘이익 -송명희 180325

시 봄이 휘이익 – 송명희
년도별/예술문학비평

2018-03-25 11:30:40

시 봄이 휘이익 송명희

날 선 높바람이
지이익 지익 벽을 긋던 지난겨울
나뭇잎도 하얗게 질려 말라버리고
우리 손안에는 뜬구름만 가득했다

어느덧 찾아온 봄의 정령
설렁설렁 농땡이 치던 추위가
삐거덕거리며 뒷걸음친다
눅눅한 햇볕 사이로 봄의 소리 참 곱다

짠물에 젖은 머리카락 꾸덕꾸덕한
머킬티오 바닷가 자잘한 모래 위로
삶이 시작된 날과 떠난 날이 새겨진 돌들이
봄빛을 등에 지고 물가로 스륵스륵 미끄러진다

바다와 하나가 되려는 것일까
붉게 달궈진 석양 아래 둥글게 굽어져 샛섬이 돼버린
고집 센 노인의 헛기침 소리가
파도소리에 몽골 몽골 묻혀버리고

스카짓 밸리의 너른 들판에 푸릇푸릇 아귀찬 푸성귀 한 판이 펼쳐지면
눈동자만 반짝이는 아낙들이 몸을 반으로 접고
땀 흘려 봄을 캔다
여름이 휘이익 오기 전에

사이비의 정체 180404

  1. 사이비의 정체
    년도별/픽션 이야기 911

2018-04-04 13:48:11

악한 세력들은 우리 주변에 아주 가까이 와 있다.

그들은 누구인가?

성서는 말한다.

신의 이름으로도 온다고…

진리가 여기있다 저기 있다 할 것이라고…

사이비들의 특징은 무엇인가???

첫째는 선한 영을 갖고 있지 않다.

그들은 선한 모습을 하려고 노력한다.

예수의 마음을 푼은 자들 처럼 자신들이 예수의 마음을 품었다고 강조한다. …

무엇보다도 제일 먼저…

두번째는 이중성을 들어낸다.

상황에 따라 대처하는 태도가 틀리다. 예수님같이 남들을 섬기지 만은 언제든 예외가 있다.

예수만 말해야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딴 이야기라고 생각되면 하품을 하거나 한숨을 쉰다든가 괜심없다는 무례를 섬슴치 않고 행한다.

섬길 수 없는 이유도 많다.

믿는 자들이 섬기지 못할 사람들은 어디에 가서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예수의 이름으로 거부 당하거나 쫓겨나야 하는 영혼들 만든다???

세번째는 어떤 특정 부분에 있어서 강력하다.

이단들은 특징중에 하나 어떤 것은 꼭 해야만 하고 어떤 것은 꼭 해서는 안된다.

예전 김경주 목사도 동성부부 가정에서 자란 아동에 관한 소설이

베스트 셀러 넘버 1이 되엇을 때

‘동성연애’라는 타픽으로 쓰여졋다는 것만으로도

설교시간에 흥분해서 그런 책들이 넘버 1이라고 비란을 해 댔다.

많은 재난 속에서 굳건하게 일어난 사람들이

‘우리는 해낼수 있다!’

‘우리는 스스로 일어설수 있다’라고

외치는 것을 신의 아들의 이름이 빠졌다는 이유로 마귀로 몰기도 한다.

‘우리는 해 낼수 있다’ 앞에는 ‘예수의 도음으로’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일까 모르는 것일까???

설사 몰랐다고 해도 그것을 신의 이름으로 까지 비난할 일은 아닐것이다….

이제는 사이비들을 구분하기 아주 어려운 시대에 놓여있다.

존경하던 많은 지도자들이 사이비들과 유사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들이 변질한 것일까?

아니면 원래 사이비 였을까???

최목사는 전도자 시절 가장 존경하는 주님의 일꾼중에 하나엿다.

그가 우리 청소년기에 머리를 빡빡깍은 군인 전도사였는데,

하루에 한번 씩 신약전서를 읽는다고 했다.

우리의 믿음의 우상?이었다.

80년대 언제쯤인가, 지금은 지구촌교회로 이름을 바꾼 워싱톤 제일침례교회에 처음 부임해온 이동원 목사는 그를 불러서 부흥회를 했다.

그 때만해도 보기는 괜찮았다.

군인 전도사 시절 만큼 샤프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2000년대인가, 다 쓰러져가는 포트랜드교회에 왔을 때는 …

늙은 돼지가 되어서 돌아왔다.

부흥회인데 뭔 몇억씩 주님의 은혜로 헌금을 했다는 소리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살찐 돼지는 계속 찬송을 해 댔다.

내가 좋아하는 부흥사 특유의 쇠소리로 중반을 넘어서는 수시로 찬송을 불러댔다.

나의 우상이었던 부흥사가 성령충만?하여 찬양을 자꾸 해대니…

참으로 은혜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그 찬양이 밑도 끝도 없이 자꾸 반복되니…

아 이양반이 찬양 사랑이 대단한가 보다 라고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나는 잘몰랐지만,

원래 음악에 대한 정렬이 있어서 그 열정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열정으로 변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사실 설교이든 찬양이든 하나님의 임재하심으로 집회를 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을 것이다.

부흥회는 몇 곡의 부흥사 자신의 찬양으로 끝났다.

좀 신경질이 났던것도 같다… ㅎㅎ 실망감 때문에…

세월이 엄청 흘러서..

15년은 더 되었을 것도 같다.

소시적 즐기던 이단과의 논쟁은 졸업하고,,,

사이비 종교에 대한 관심을 끊은지 오래된 어느 날…

베뢰아라는 교회 교주가 음란문제로 언론에 올라왔다.

별 괸심을 갖지 아니 하였는데,

우연히 그의 변론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오래전 이단사이비로 교단에서 왕따 당하던 시절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우리 교단의 넘버원 부흥사 오관석목사를 운운 하는 것이었다.

오목사는 우리 교단의 기라성 같은 부흥사들 중에서도 최고의 전설이었다.

사실 나는 너무 어려서 그의 설교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 그가 자기를 넘 좋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베레아 교실의 제자 중에는 최목사가 있었다.

조금 충격적이었다.

신약전서를 하루에 한번씩 읽어 성령충만 했을 것 같은 목회자는 왜 그런 성경공부 학원을 찾아간 것일까?

그가 배우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하루 한번 만나는 예수님으로 부족했던 것일까???

그리고 많은 경우 무책임 할 수 있다.

약간 죄악스러운 것을 어느 때는 아무일도 아닌냥 또는 모두다 그렇게 하는것 처럼, 또는 했던 것 처럼 말하거나 행동한다.

마치 당연한 것 처럼…

그리고 예 아니오를 분명하게 말하지 않는다…..

11-1 영혼이 통하지 않는다.

비이성적인 사고는 소통, 판단, 결정 등에 문제를 일으킨다. 이와 관련해 ‘허프포스트’가 소통과 바른 판단을 방해하는 생각의 오류 7가지를 소개했다.

  1. 이분법적 사고를 한다

흰색 아니면 검은색, 양자택일의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양단간에 내린 결정은 위험한 측면이 있다.

옳고 그르다는 이분법은 다양한 생각의 가능성을 제한한다. 흰색과 검은색 사이에 회색이 있다는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1. 상대방에게 낙인을 찍는다

하나의 단일 사건을 계기로 특정한 친구나 동료를 멍청이로 낙인찍는다면 이는 자신에게도 불이익이다. 상대방의 장점을 인지하기 못하거나 무시하게 되기 때문에 좋은 인맥이 될 수도 있는 인연을 잃게 된다.

  1. 지나치게 일반화한다

하나의 특정 사례를 보편적인 것으로 단정 짓는 일반화도 흔히 저지르는 생각의 오류다. 하나의 경험을 전체인 것 마냥 일반화하게 되면 다양한 도전을 시도하기도 전에 포기하게 된다.

대인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특정 직업을 가진 사람의 무례한 행동을 보고, 해당 집단의 사람들을 모두 무례한 사람으로 보게 되면 다양한 사람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된다.

  1. 긍정적인 상황을 걸러낸다

9가지의 좋은 일이 생기고, 한 가지의 나쁜 일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나쁜 일에만 신경을 곤두세우는 사람이 있다. 나쁜 일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나치게 부정적인 측면만 보다보면 균형적인 시각이 깨져 상황 판단이 흐려질 수 있다.

  1. 상대의 마음을 읽으려 한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짐작할 수 있다는 판단은 착각일 경우가 많다. 특히 “저 사람은 날 우습게 알겠지”와 같은 의기소침한 생각은 자신감을 저하시키는 원인이 되므로 속단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1. 최악의 상황을 상상한다

자신이 실제로 겪고 있는 상황보다 더욱 나쁜 상황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사람들이 있다. 가령 이번 달에 목표로 한 재정적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면 “난 파산하게 될 거야”라거나 “은퇴 후에 남는 돈이 없겠지”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다보면 자신의 다양한 잠재적 가능성을 제한하게 된다.

  1. 모든 상황을 자신과 연관시킨다

세상의 주인공이자 중심은 언제나 자기 자신이다. 하지만 모든 상황을 자신과 연관시키는 것은 현실 감각이 떨어지는 행동이다.

가령 친구가 오랫동안 연락이 없을 때 “나한테 화난 일이 있는 게 분명해”와 같이 모든 상황을 자신과 연관 지어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태도가 필요하다.

한국 최초 침례교회 남현자 사모 180411

한국 최초 침례교회 – 강경침례교회 남현자 사모
침례교역사- pic

2018-04-11 11:18:21

추석을 앞두고 영글어 가는 가을풍경은 우리들 마음의 영원한 그리움의 그림이다. 그러한 행복한 풍경화 속에서 갑자기 48시간의 제한부 전쟁선포에 나라 전채가 검은 구름에 쌓여 “이땅을 전쟁 위기에서 구하소서” 교회마다 기도소리 하늘을 향하여 울려 퍼졌고 목함지뢰와 포격 도발로 야기된 남북간 대치로 긴장감이 흘렀을 때, 주님의 뜻은 어디에, 여러 가지로 번민 속에 평화를 위해 기도하던 남한 성도들의 기도에 응답을 주심에 감사드린다.
여름의 꽃 7월에서 9월까지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배롱나무는 3개월동안 꽃이 피고 지고를 반복하여 오랫동안 피기 때문에 “백일홍”이라고도 부른다.

나무껍질을 손으로 긁으면 잎이 움직이기 때문에 “간지럼나무”라고도 부른다. 이 꽃이 많은 곳은 논산과 강경 근처이기 때문에 침신대가 목동에 있을 때 교정 안에서도 여름이면 분홍색 백일홍 배롱나무를 잊을 수가 없다. 교정의 푸른 나무들과 푸른 잔디의 배경으로 그리움의 꽃이기도 하였다.
새로 시작되는, 필리핀의료선교회 컨퍼런스 참석을 위해 오랜만에 고향의 땅을 밟게 되었다. 길가에 피어있는 배롱나무꽃이 핀 숙소는 논산교회 근처 갑동호수가의 아름다운 전경으로 모두 행복한 미소가 흘렀다. 이튿날 선교역사의 발자취를 따라 강경으로 향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침례교회” 이 제목은 논산시 강경읍에서 만든 기독교성지 순례코스다.
기독교 성지 순례코스를 중심으로 본 강경지역 역사문화 탐방코스로 “우리나라최초의 강경침례교회” “최초의 사립 만동학교와 최초 유치원 설립제일 감리교회” “최초 신사참배를 거부한 성결교회” “한국 현존의 한옥 북옥감리교회” “6.25전쟁 66명 순교현장 병촌성결교회” 5교회를 성지순례코스로 2005년 논산시 강경읍 소도시 가꾸기 사업으로 복원해 놓았다고 하였다.

강경교회의 연혁에서 1896년 2월에 파울링 내외분 아만다 가데린 선교사가 인천에서 배를 타고 오가며 포목장사를 하던 지병석씨를 1895년에 전도하여 서울에서 침례를 주고 겨울철 금강의 결빙이 풀려 뱃길이 열리자 강경으로 내려와 1896년 2월 9일 주일에 강경 북옥동 136번지 지병석성도의 자택에서 강경침례교회를 세우고 파울링 선교사 부부와 아만다 가데린 양과 지병석성도와부인 천성녀 성도 다섯 분이 예배를 드림으로 한국침례교회의 첫 교회로 설립이 되었다고 기록되었다.

1897년에 파울링 선교사가 지병석성도집 바로 옆 137번지에 교회를 신축 하였는데 그 시절에는 남자와 여자 좌석이 분리되어 예배를 보았다고한다.
1906년 10월 6일에 최초의 침례교단 발족 대화회총회가 있었고 1943~1945년 8월까지 일본인들이 신사당 건축으로 교회를 강제 철거하여 폐교하고 토지를 몰수(4732평)했다. 해방이 되어 1945년 10월9일 홍교동 114번지 일본인들의 사찰을 매입하여 교회당으로 사용하였다.
펜윅 선교사는 3대 담임목사님으로 현 기독교한국침례회총회의 출발점을 만들어 주었고 1935년 12월8일 26세에 한국에 선교사로 오시어 45년 동안 한국기독교회의 초석을 놓아 주시고 일생을 헌신하시었다고 기록되어있다.

펜윅선교사 후임으로 조국광복 후 이종덕 목사님께서 강경교회 4대 담임목사로 취임하시어 6.25동란에 순교하셨다. 이런 시(詩)가 있다. “금강에서” 미루나무 줄지어 선 강가/밤마다 달맞이꽃/가득 피어 있는 내 고향/나루터에는 뱃사공 아저씨/배 떠난다 부르는 소리/겨울이면 강물이 꽁꽁 얼어/얼음 사이로 노저어 갔고/여름이면 홍수져 배가 떠내려가는/갈대숲 둔덕에 앉아 시를 적었다/어느해 이른 봄날/고향에 가니 모두 떠난 빈 자리에/나루터는 보이지 않고/차량들이 줄지어 콘크리트 다리를/넘나들고 있었다. 나의 고향 강경과 세도의 금강을 이야기한 글이다.

이번 성지순례의 길에서 오랜만에 다시 찾은 소녀시절의 꿈 많은 풍광 속에 언제나 그리워하던 강경산(江景山) 옥녀봉의 그 옛 동산의 느티나무를 볼수 있음에 감개무량하였다. 그 옥녀봉 공원에 최초의 침례교회가 있었다는 것도 놀라운 사실이었다. 부여군 세도면의 사람들은 이십리 길을 걸어서 금강 나룻터에 와서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서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매일 통학해야했다.

여유가 있는 가정은 다행히 여학생은 학교 안에 기숙사가 있어서 숙식을 하면서 공부할 수가 있었다. 기숙사가 아니면 강경에 하숙하거나 자취를 하기도 하였다. 기숙사에는 200명이란 인원이 제한되어서 부여나 서천 한산 양화 금강 건너 있는 면소재지의 여학생들은 기숙사를 선호하였다. 하나님의 은혜로 기숙사에서 6년동안 생활하면서 토요일에 고향집으로 가지 않을 때는 강경침례교회에 출석하였다. 토요일에는 학생회를 출석하였다. 그때 여학생회장은 2년 선배인 인기 연기자 강부자 언니였었다.

교회당이 절을 변경 시켰기 때문에 기와지붕이 절모양 이어서 교회당 모양세 치고는 잊혀 지지 않는다. 1971년 11대 유흥태 목사님때 지금의 교회 터로 이전되었다고 기록되었다. 여중때는 내 옆자리에 연혁으로 보니 7대 김장배 목사님 따님 김계자 친구가 있었고 지금은 미국에 살고 있다.
여고시절에는 같은 반으로 8대 윤덕훈 목사님의 딸 윤정자가 있었다. 친구도 간호사가 되어 미국에 살고 있다. 그러고 보니 한국침례교의 최초 교회에 출석하였다는 것이 자랑스럽게 느껴진다. 우리 세도침례교회는 칠산침례교회에 다니시던 김만근 장로님께서 개척하신교회이다.

그 장로님은 어릴 때 우리는 심방오시면 “하나님이 오신다”고 할 정도로 신앙심이 모든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셨다. 신학시절에 그 어른의 아버님이 김희서 순교자이라는 것을 구전으로 들었다.
아침 저녘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고 있다. 가을이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 계절의 변화를 막을 수 없는 것처럼 주님의 섭리를 거슬려 나갈 수는 없다. 우리는 하나 된 한국교회의 기도로 ‘평화’의 응답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언제까지의 잠정적인 평화일까란 물음표가 붙는다. 그래도 우리 기독교인들이 할 수 있는 한 가지 그것은 ‘북한선교’이다. 복음의 빚 진자로써 복음증거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 우리 침례교 총회와 목회자들이 선교에 올인(AII IN)하시는 사역에 하나님의 사랑이 넘치는 아름다운 공동체의 행복한 동행이라 생각한다.

남현자 사모 /목산문학회 전 회장

고침) 1935년은 펜공부가 돌아가신 해이다. 펜공부는 1889에 내한했고 1893년 고든 박사에게 신학공부와 선교보고차 미국 보스턴의 클라랜돈가 침례교회의 집회로 이교회의 씽 집사가 자신의 딸 엘라를 기념한 「엘라 씽 기념선교회」가 조직되고 이선교회가 “파울링 선교사 부부와 아만다 가데린 양”를 조선 코리아에 파송하기로 결정한다.

혹 많은 사람들이 펜위익선교사와 파울링 선교사 선교팀을 서로 다른 별개의 조직?으로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파우링선교사팀은 펜위익선교사에 의해서 세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찌꺼나 새로 쓰여진 우리의 자랑 대전 침례신학 대학의 기원은 울 오마니가 졸업하시고 펜위익선교사 부인이 세운 원산성경학습원(사실은 여성들만 위한, 어떤분김성녀권사는 여성찬양팀이 있었다고 들었다고 간증.. 안대벽목사 부인 이순도여사가 리더) 과 이 강경침례교회 성경공부반을 그 기원으로 한다고 공식적으로 쓰여져있다, 아멘.

제14회 을숙도 사생대회 개최 안내 180519

제14회 을숙도 사생대회 개최 안내- 2014년5월 19일(월) 오전10시
년도별/예술문학비평

2018-04-22 11:58:33

제14회 을숙도 사생대회 개최 안내

제14회 을숙도 사생대회

일시 : 2014년5월 19일(월) 오전10시
장소 : 을숙도 문화회관 조각공원
대상 : 유치부. 초등1부. 초등2부
접수 : 4월28일 ~5월18일 까지

신청방법 : 사하구홈페이지(문화관광-문화예술행사-을숙도사생대회) 신청
▷ 학교 단체접수 또는 개인별 신청

※ 인터넷 주소 : http://www.saha.go.kr/tour/paint

시 지루한 당신을 위한 – 송명희 180430

시 지루한 당신을 위한 ————–송명희
년도별/예술문학비평

2018-04-30 08:12:39

탁월한 시제, 그리고 발상… 그리고 자유스러운 아이디어…

재미있는 시이다.

잠시 만난 시인은 충분히 그런 사고와 행동과 돌발적 발언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옛습에 억메여서, 아니 우리는 모두가 자유롭지 못해서 모든 것을 말하지 못했다.

어떤 이데오르기가 틀린 사람들이 왓을때 그들과 만났다는 이유만으로 빨갱이라고 비난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충분히 그럴수 있는 시인이라고 생각했다. 극히 실망했지만…

자유로울것 같은 사고 또 노벨상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되는 어귀… 놀라운 통찰력…

그런데 왜 우리는 갗혀 있는 것 일까??? 아니 우리는 무엇이 두려워 더 이상 대화를 나눌수 없는 것일까??

한탄할 그 무엇이 두려워 … 떠나는 것일까? 박인환??

우리는 서로의 영에 갖혀있는지도 모른다.

하여간, 재미있는 시이다.

지루한 당신을 위한 …송명희

주차금지 경고를 보고 들어갔다.

선택할 상황이 아니었다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이었거든
맘처럼 되는 세상일 하나도 없는 거
할 수 없지
이 말이 최선이었다.

선을 그어 구분해 놓은 공간
억지로 어기고 싶은 자 어디 있으랴만
가끔은 텅 빈 주차금지 구역을 보면
팻말을 옮겨 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아니, 더 세우고 싶기도 해

간혹 맘 좋은 관리를 만나면
조금의 뇌물로 편한 시간을 보낼 수도 있지
영원한 자기 구역이 존재할까
잠시 맡았다 놓아야 할 뿐이지
영원한 것인 양 착각하는 것이다.

누구라도 금지된 일을
지킬 수 없을 때가 있는 거야
서로의 입장이 바뀌는 것이지
그래서 영원한 건 없어
흥얼거리며 금지구역에 차를 세웠다.

지루한 일상을 벗어난 순간이었다

한국목회 1세대 – 홍정길목사 180613

한국목회 1세대 – 홍정길 목사

하나님이 원하시는교회-풀뿌리공동체

2018-06-13 05:46:41


한국목회 1세대

한국에서 가장 훌륭할것 같은 목사님.

그들은 잘 할려고 했는데 이러 저러한 이유로 잘 못했다고 고백한다.

예전 미국의 수도 워싱톤 제일침례교회를 시작하신 김현칠목사님도 교회를 잘 이끌다가 ‘체험이 없었다’라고 하며 이동원목사를 후임으로 하고 교단 디렉터로 옮겼다.

허기사, 그래도 몇십년을 피터지게 싸우고 교인들을 시험에 들게 하고도 잘못한게 하나도 없다고 하는 목회자들이 많으니 할 수 없는 일이다.

이 홍목사님도 결론으로 ‘예수를 잘 믿으라’이다.

어쩌면 예수님은 이 말을 하기 위해서 왔는데…

우리는 아직도 이말을 하고 있는가??

처음 제자들을 내 보냈을때 그들이 한 말 처럼???

하지만, 첫오순절 이후 제자들은 변했고 오늘에 이르렀다.

그런데, 우리 한국 교계는 아직도 이말만 거듭하고 있다.

그리고  생활전선에 나선 진보지도자을은 용납도 하지 않고 권력과 재물에 밀착해서 살고 있다.

그리고 사이비들의 수 많은 꽁수, 또 새로운 우상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

무슨 은사를 해야 하고, 무슨 신앙을 해야하고… 

수많은 신학 과외학원?들이 세워지고 난무하고 있다.

회개없이!!!????….

예수를 잘 믿기위해서???…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목자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목자처럼 행동한다….

홍정길
▲홍정길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홍정길 목사는 “목회한 지 50년이 넘었지만, 교회 개척해서 처음 3년을 빼곤 목회자로 불릴 수 없을 것 같다”며 “목회의 본질은 요한복음 10장에 나와 있듯 목자는 양을 알고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는 것인데, 3년이 지나 500가정이 되고 교인이 2,000명으로 불어나니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게 불가능해지더라”고 털어놓았다.

홍 목사는 “누가 양인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목자라 할 수 있겠나. 그러다 보니 어느새 목회는 사라지고 매니지먼트(management·관리)만 남게 됐다”며 “주님이 보시기에 나는 가짜 목사였던 것이다. 그래서 고민이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 한국교회가 가장 잊고 있는 것’에 대해선 “무엇보다 목회의 본질을 찾지 못하고 있다. 우리 1세대는 교인들이 교회로 몰려드는 시기였다. 하지만 지식과 경험이 없다 보니 미국의 대형교회를 벤치마킹할 수밖에 없었다”며 “문제는 그 과정에서 날로 커지는 자신의 교회를 어떻게 하면 잘 유지·관리하느냐에 모든 시선이 고정돼 버린 것이다. 교회는 목사와 교인이 인격 대 인격으로 깊이 교류하는 현장이 바탕이 돼야 하는데, 이게 결여되니 인격이 없는 목회가 돼 버렸다”고 지적했다.

‘기독교의 본질’에 대해서는 “당연히 구원이지만, 한국교회 복음주의자들은 구원의 반쪽만 가르쳤다”며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을 십자가에서 희생시켜 인간에게 새 생명을 준 게 구원의 본질이다. 또한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났으면 그에 걸맞게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성경도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구원받은 친백성이 되라고 가르치는데, 한국교회는 후자를 잊어버렸다”며 “우리 말은 생명·삶·생활이 각각 다른 단어지만 영어는 ‘life’ 하나다. 그런데 우리는 이걸 나눠서 새 생명을 얻은 걸로 딱 끝나버리고 삶으로 연결하는 건 애써 외면했다. 그러면서 아주 이기적인 기독교인의 삶이 돼 버렸다. 물질·건강 축복받고, 자식들 잘 되고…. 복음의 본질은 사라지고 자기 위안의 종교만 남은 셈”이라고 비판했다.

‘교회의 대형화·세속화 논란’에 대한 질의에는 “대부분의 대형교회 예배는 연출이 돼 버렸다. 목사도 좋은 엔터테이너가 돼야 성공했다고 인정받는다. 교인들은 어떤가. 일주일에 한 번 교회 나가는 걸로 면피만 하려 하진 않은지, 일상의 삶에서 십자가를 지고 가려는 노력 없이 십자가를 의지해 먹으려고만 하진 않은지 곰곰이 되새겨볼 때”라며 “한국교회는 실천의 종교였다. 3·1 운동도 교회가 주도하지 않았나. 당시 기독교인은 1.4%에 불과했지만, 감옥에서 숨진 사람 중엔 3분의 2나 됐다. 기꺼이 십자가를 등에 졌던 그때의 초심은 지금 어디로 갔는가”라고 반문했다.

‘젊은 층의 교회 외면’에 관해선 “근본 원인은 어른들에게 있었다. 엄마 아빠가 교회 장로·권사·집사인데, 말로는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다면서 실천이 뒤따르지 않으니 자녀들이 교회에 나갈 마음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요즘 젊은이들이 얼마나 영리한데, 윗세대의 말에 그냥 속아 넘어가겠나. 한국교회의 우민화가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또 “교회마다 성경공부에 공을 들인다. 제자훈련이라고도 하는데, 이게 큰 모순을 낳았다”며 “목사들은 제자훈련 프로그램으로 네트워크를 만들기 시작했다. 공부하려면 교회에 계속 나와야 하니, 이 프로그램을 통한 네트워킹으로 교인들을 교회에 묶어두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문제는 거기서 머물렀다는 점이다. 성경공부는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게 아니라 삶이 바뀌도록 하는 게 목적이 돼야 하는데, 목사가 먼저 본이 되는 삶의 모습을 보이지 못하니 스승이 없는 제자훈련이 돼 버렸다”며 “한국교회도 제2의 종교개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 중 하나”라고도 했다.

교회 세습 논란에는 “하나님의 법을 따르는 사람이 자기 교단의 법을 따르지 않는 것은 근본적으로 모순”이라며 “가장 안타까운 건 아들에게 평생의 멍에를 물려줬다는 점이다. 이전에 세습했던 2세 목사들도 요즘 많이 힘들어하더라. 그 멍에를 왜 물려주나. 자기가 이룩해 놓은 게 너무 크고 좋아서 남에게 줄 수 없다는 생각은 세상적인 욕심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부활절의 의미’에 대해선 “부활절 앞엔 반드시 고난주간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죽음이 있었기에 부활도 가능했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부활의 영광만 강조했지 부활 전의 고난은 소홀히 해 왔다”며 “죽음 없는 부활은 실체가 없는 빈껍데기에 불과하다. 먼저 희생하고 먼저 낮아지는 일상의 삶을 통해 고난을 감내해 나갈 때 부활도 의미가 있는 법”이라고 제언했다.

이를 위해서는 ”자아 성찰의 능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요즘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기 전에 30분간 어제의 삶을 하나씩 되새겨본다. 내가 말로 상처를 준 적은 없는지, 그릇된 행동을 하진 않았는지, 세상의 유혹에 넘어진 적은 없는지. 회개하다 보면 끝이 없다”며 “회개는 곧 자아 성찰이다.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마지막으로 후배 목회자들에게 “이전 세대를 흉내만 내려 하지 말고 넘어서길 바란다. 그게 진정한 선배 대접”이라며 “대형교회 목사들의 성공 사례를 그대로 답습하면 기존 사고의 노예만 될 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수를 잘 믿어야 한다. 너무 당연한 말 같지만, 자기가 쌓아놓은 것과 눈에 보이는 세상의 경험을 신뢰하지 예수를 신뢰하지 않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고 전했다.

2018년

2018년
년도별/년도별

2018-08-01 06:48:28

Jan

July 1

  1. Joy 1 yr at Adobe

Test

180731 화 로마서 13 ‘사랑 완성’

우리는 구원을 받았고

매일 의 삶을 통해서 가져야할 ‘하나님의 자녀’ 이자 ‘예수님이 제자’ 로서의 태도도 12장을 통해서 알게 되었 습니다.

그러면 세상 에서의 기본적 태도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물질적 이고 세속적 인 세상을 적대시 하고

거룩하고 고고하게 하기만 하면 될까요?

우리 바울 형님은

  1. 위 에 있는 권세 들에게 굴복 하라고 권면 하십니다. – 공세 와 국세 받을자 에게 바치고 두려워 할 자를 두려워 하고 존경 할자를 존경 하라. 7절.
  2. 사랑 으로 ‘율법 의 완성’ 을 이루라 –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 에게든 아무 빚도 지지 말라. 8절
  3. 어둠 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 을 입자. – 깰 때 가 벌써 되었고 낮이 가까워 왔으니..11, 12 절.
  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 로 옷 입고 정욕 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 하지 말라. 14 절.

Aug 1.

사도 바울 타임라인 test 180830

사도 바울 타임라인 test

자유토론판

2018-08-30 14:56:25


TlmellneoftheApostlePaul
Note:ThechronologyanddatingoftheeventsinPaul’slifearestilldisputedamongscholars.
YearTheLifeofPaul
AD
4
5Born—anIsraelite—inTarsusofCilicia(Acts
22:03Phil3:5)
ARomancitizenbybirthright(Acts22:28)
7
14
c.1-5AttheschoolofGamalielJerusalem(Acts
2022:3)
28
30
31(?)APharisee(Phil3:5)
c.32PresentatStephen’sstoning(Acts7:588:1)
c.33-Persecutorofthechurch(Acts8:1-3Phil3:6)
34
34ConversionontheRoadtoDamascus(Acts
9:1-9)
35
36
37
GoestoDamascus(Acts9:10-19)
TravelstoArabiaandremainsthere(Gal1:17)
BooksWrittenHistoricalEvents
AugustusadoptsTiberiusand
recognizeshimasthesuccessor
JudeabecomesaRomanImperial
province
CensusofCaesarandTiberius
LyviapoisonsAugustusTiberius
comesintopower
Pilatebeginsservingasprocurator
ofJudea
JohntheBaptistexecutedby
HerodAntipas
CrucifixionofChrist
ImprisonmentofHerodAgrippa
In.Iti..In..h..
IÍ
YearReIurrtoDamascusthenexitsthecityforBooksWritten#NAME?Events
safety(GrI117:00Acts9:20-252Cor11:32-33)
GoesuptoJerusalem(Acts9:26-29Gal1:18)Caligulabecomesemperoratthe
deathofTiberius
GoesbacktoTarsusforsafety(Acts9:30)
38
39HerodAntipasdeposedbyCaligula
andexiledtoGaul
40
41Caligulamurdered
Cladlusdeclaredemperor
42Famine¡nRome
43RomancampaignsagainstBritain
44DeathofHerodAgrippaI
45
46
BarnabastravelstoTarsus¡nordertoseek
Saul(Acts11:25)
47GoestoAntiochwithBarnabasteachingand
manypeople(Acts11:26)
Agabusprophesiesafamine(Acts11:2728)
AidsenttoJerusalemthroughBarnabasand
Saul(Acts11:2930)
BarnabasandSaulreturnwithJohnMark(Acts
12:25)
BarnabasandSaul“separated”andsentout
(Acts13:023)
TheytravelfromAntiochtoSeleuciathento
48Cyprus(Acts13:4)
WhileonCyprustheygotoSalamisand
Paphos(Acts13:5-12)
FromPaphostheygotoPergaofPamphylia
whereJohnMarkdepartsforhome(Acts13:13)
MinistryinAntiochofPisidia(Acts13:14-50)
AtIconium(Acts13:5114:6)
FleestoLystraandDerbepreachingthe
gospel(Acts14:6-7)
InLystraPaulandBarnabasaremistakenfor
Ii.ItIrhÑrIt4sSn0.4.
YearBooksWrittrìF
StonedatLystrasupposedtobedeadbutre
entersthecity(Acts14:19-20)
DepartswithBarnabastoDerbepreachingthe
gospel(Acts14:20-21)
TheyreturntoLystraIconiumandAntiochto
strengthendisciplesandappointelders(Acts
14:21-24)
FromPisidiatheyreturnedtoAntiochofSyria
andreportedtheirjourneytothechurch(Acts
14:24-28)
49GoesuptotheJerusalemCouncilwithClaudiusexpelsJewsfromRome
Barnabas(Acts15:1-29Galatians2:1)andblamesitonChrestus(a
possiblereferencetoChrist)
PaulandBarnabasreturntoAntiochofSyria
teachingandpreaching(Acts15:30-35
Galatians2:11-14)
ContentionoverJohnMarkBarnabasand
JohnMarksailtoCyprus(Acts15:36-39)
PaulandSilasdepartgoingthroughSyriaandGalatians(?)
Ciliciastrengtheningthechurches(Acts15:40
41)
50GoestoDerbeandLystraandpicksupTimothy.TheriseoftheZealots
strengtheningthechurches(Acts16:1-5)
TheygotoTroasandPaulseesavisionofa
Macedonianman(Acts16:6-10)
51TheysailfromTroastoNeapolis(Acts16:11)
ToPhilippiwherePaulmeetsLydia(Acts16:12
15)
PaulandSilasimprisonedaftercastingouta
demonfromaslavegirl(Acts16:16-25)
Prisondoorsopenedmiraculouslyandthejailer
saved(Acts16:25-34)
DepartsfromPhilippi(Acts16:35-40)
TheypassedthroughAmphipolisandApollonia
(Acts17:1)
AtThessalonicaandpreachedChristbuthad
toflee(Acts17:1-10)
AtBereawhereheleavesSilasandTimothy
(Acts17:10-14)
AtCorinthandrejoinedwithSilasandTimothyGalatians(?)
I+4sSn0.4.
Yearts:TlíUl
52
nooksWrittenHistoricalEvents
Thessalonians
2
Thessalonians
53PaulreturnstoAntiochafterstoppingat
Ephesus.CaesereaandJerusalem(Acts
18:18-22)
TravelsthroughGalatiaandPhrygia
strengtheningthedisciples(Acts18:23)
Passesthroughtheupperregionsonhiswayto
Ephesus(Acts19:1)
MinistryinEphesus(Acts19:1-41)
54
55
56GoestoMacedonia(Acts20:1)
TravelstoGreece(Acts20:2)
GoesbacktoMacedonia(Acts20:3)
AtTroas(Acts20:4-12)
Assos.Mitylene.Chios.Samos.Togyllium.
(Acts20:13-15)
PaulexhortstheEphesianeldersatMiletus
(Acts20:15-38)
Cos.Rhodes.Patara.Phoenicia.(Acts21:012)
AtTyre(Acts21:3-6)
AtPtolemais(Acts21:7)
AtCaesarea(Acts21:8-14)
57AtJerusalem(Acts21:15-25)
Paulgetsarrestedinthetempleandcausesa
mob(Acts21:26-36)
Addressesthemob(Acts21:3722:21)
Paul’scitizenshipsaveshimfromscourging
(Acts22:22-29)
BeforetheSanhedrin(Acts22:3023:10)
JesustellsPaulthathewillbearwitnessofhim
inRome(Acts23:11)
TheplotagainstPaul’slife(Acts23:12-22)
1Corinthians
2Corinthians
Romans
Claudiuspoisonedbyhiswife
NerobecomesEmperor
SentsafelytoFelixthegovernor(Acts23:23
krftsSn0.4.
YearLfBooksWrittrìF
PaulbeforeFelixI)
59PaulbeforeFestus(Acts25:1-12)
Paul’sappealhonoredturningpointtowardsAssassinationofAgrippinathe
Rome(Acts25:12)motherofNero
PaulbeforeAgrippa(Acts25:13:0026:32)
PauldepartsforRomeandsailstoMyra(Acts
27:1-5)
TheysailtoFairHavensonCrete(Acts27:6-8)
InspiteofPaul’swarningtheysetsailagain
(Acts27:9-12)
Inthemidstofaterriblestormtheyget
shipwreckedontheislandofMalta(Acts27:13:00
-28:1)
AtMalta(Acts28:2-10)
SailstoSyracuse(Acts28:11:0012)
SailstoRhegiumthenPuteoli(Acts28:13)
60ArrivesinRome(Acts28:14-16)
MeetswiththeJews(Acts28:17-28)
PreachesthegospelwithouthindrancefortwoPhilemon
61wholeyearsInhisrentedhouse(Acts28:30:00Colossians
31).Ephesians
62Philippians
ReleasedfromRomanimprisonment1Timothy(C.
63Furthermissionarywork62-64)
Titus(c.62-64)..
64TheGreatFireinRomeMajor
persecutionofChristianitybegins
Josephuspleadstheinterestsof
theJewsbeforeRome
2Timothy(c.NeroconstructstheDomusAurea
6564-66)
66SecondimprisonmentandmartyrdomunderThebeginningoftheJewishRevolt
NeroagainstRome
67Josephussurrenderstothe
Romans
68Nerocommitssuicide
hi.rft-(r.
rTheLifeofPaulBooksWrittenVeianprevailsastheEmperorj
amidstcivilwar
70Destructionofthetempleunder
Titus

인천답동교회 66년사 ? 1952년 창립?? 김기복 목사 크리스챤연합신문???

인천숭의동20번지-성애원숭의침례pic

2018-09-23 10:26:48


00.jpg

1952년 인천에서 침례교회로서는 처음 설립된 인천침례교회가 설립 66주년을 맞았다.

침례교단 아비넛트 선교사로부터 5500만환을 후원받아 조선각을 매입하고 설립한 경동침례교회는 건물을 가진 교회로서의 인천교회 역사의 출발이라 할 수 있다.

이후 1대 목회자 장일수 목사로부터 2대 김용해 목사, 3대 신정호 목사, 4대 구두서 목사, 5대 신정호 목사, 6대 한충우 목사에 이어 7대 김기복 목사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의 근현대사를 관통하며 부침을 같이해 오늘에 이르렀다.

실로 오늘날 침례교의 전신인 동아기독교로부터 이어지는 인천침례교회의 역사는 기독교한국침례회(총회장 안희묵 목사)의 역사를 오롯이 새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0.jpg

현재 인천침례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김기복 목사는 북한에서 피난 내려와 인천에서 살아온지 정확히 66년째를 맞는다. 올해는 그가 인천침례교회 근속 40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동아기독교회 신앙생활을 했던 아버지 김흥렬 장로를 따라 남으로 내려온 김 목사는 인천침례교회에서 주일학교부터 신앙생활을 했고, 1977년 전도사를 거쳐 1980년 부목사로 부임했다. 1981년 교회 분열로 한국중앙교회가 떨어져 나가면서 인천침례교회 담임을 맡은 김 목사는 지금까지 목회 일선에서 복음선포에 전력을 다해왔다.

김 목사는 인천침례교회 설립 66주년과 근속 40주년을 기념해 최근 「인천침례교회 66년사」와 함께 설교, 칼럼, 자서전이 실린 「희망의 사람이 되라」를 출간했다.

000000.jpg

특히 「인천침례교회 66년사」는 김 목사가 어려서부터 지켜보고 경험한 교회의 역사를 각종 사료와 자료를 토대로 정리해 인천 최초 침례교회라는 의미를 가진 인천침례교회의 역사를 정리했다는 의의를 갖는다.

김 목사는 “목회 은퇴를 준비하고 있는 시점에 인천침례교회의 역사를 한 번은 정리해야 한다는 거룩한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다. 선대 목회자들이 모두 세상을 떠난데다, 가장 오랜 시간 가장 가까이에서 교회에 몸담아 온 내가 아니고는 역사를 제대로 기록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다”며 “최대한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몸부림쳤다”고 말했다.

000.jpg

이어 “인천침례교회 초기 부분을 제외하고는 유년 주교시절부터 성장하여 담임목회자가 되기까지 교회 역사를 지켜보고 자랐기에 기록자의 주관적인 판단과 오류의 가능성 때문에 기록에 주저함이 없지 않았다”는 김 목사는 “그러나 누군가에 의해 반드시 기록되어야 할 역사이기에 이 작업을 회피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게 됐다”고 밝혔다.

김 목사는 “기록의 역사성을 위해 목회자 재임 기간별로 기록했으며, 기록의 사실성을 확보하기 위해 당시 사진과 관련 서적을 인용했다. 또한 기록의 은혜성을 위해 가급적 긍정적이며 좋은 면을 기록했다”면서 “인천교회 초기 부분의 기록을 위해 사진과 도움을 주신 고 김동창 장로님께 각별한 감사를 드린다”고 전했다.

김기복 목사는 인천침례교회 66년의 역사를 정리하면서 자신의 목회인생 40년사도 함께 정리해 자서전을 발간했다. 이 자서전에는 오랫동안 그가 써내려 온 대표적인 설교문과 칼럼들도 함께 담겨 그의 신학과 신앙, 신념과 생각들이 잘 구체화 되어 있다.

0000.jpg

특히 평안남도 맹산군 원남면 기양리에서 태어나 5살 때 겪었던 1·4후퇴, 인천에 정착해 직업 소년학교를 거쳐 어려운 집안사정 가운데서도 열심히 공부하여 시은고등공민학교 교장을 역임했고, 억울한 옥살이와 군생활, 큰딸 농약사건과 보험사기 등 롤러코스터와 같은 그의 인생 기록은 하나님의 연단과 예비하심, 합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역사를 논픽션으로 펼쳐놓는다.

김기복 목사는 “피난길에서 언 밥을 서걱서걱 씹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칠순이란다. 많은 사람들이 다 자기가 겪은 고생이 제일 힘들다고 말하지만, 모두가 다 힘들다고 비명을 지를 때 그래도 살 구멍은 있다는 점을 일깨우고 싶었다”며 “기억은 흐려져도 기록은 지워지지 않는다. 나의 삶을 인도하시고 정리하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린다”고 말했다.

김기복 목사는 기독교한국침례회 교단에서 인천지방회 회장, 교회진흥원 감사, 총회 해외선교·교육·전도부장, 국내선교회 이사장, 침례병원 건축위원장, 침례병원 이사장, 경인지역연합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총회 유지재단 이사로 섬기고 있다.

인천 지역사회에서는 중구기독교연합회 회장, 연수구기독교연합회 회장, 보수교단연합회 총회장, 연수경찰서 경목위원장, 인천기독교총연합회 총회장 등을 역임했다.

00000.jpg

안대벽 목사 창립한 LA 대한침례교회 마지막예배 처 화재 2018 10월 5

안대벽 목사 창립한 LA 대한침례교회 마지막예배 처 화재 2018 10월 5

침례교역사- pic

2018-10-06 07:01:09


마지막 간것이 언제 인가???ㅅ

94년도 오마니 장례식때 안희묵목사가 있었으니… 여기서 예배를 드렸나…

박경배 목사님이 안희묵목사님 있을때…

어떤 목사님인가 장례가 있어서 한국 김갑수 목사님 막네 용기가 그 때 있었는데…

오마니가 돌아가시 전 연길 고모와 사촌 김중헌목사가 와서 비데오 찍어준 기억이 있는데…

교회의 모양과 색은 그대로 있는데…

원산 펜위익선교사의 재산 관리인 3인중에 한 분이셨고 남한으로 내려와 1947년경 처음으로 서울 필동교회 혹은 충무로 교회로 알려지

서울 침례교회를 시작하신 안대벽 목사님이 60년대 LA로 이주하여서

처음 세우신 LA 대한침례교회.

안대벽목사님은 고집도 쎄서 원산에서 철수 할때 다시 원산이 회복될것을 염두에 두고 원산재단을 처분 하지 아니했다고 하는데,

아마 그럴 시간도 없었거니와 

당시 누구도 이렇게 오랜시간동안 돌아가지 못하리라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 전쟁직후 들어온 나요한 John Abernity 미남침례교 첫선교사와도 문제가 있어 결국 한국침례교회는 분열하고 나선교사도 59년경 이한 했다

오랜 역사의 LA 대한 침례교회 이후 한국에서 박경배목사를 모셔서 오늘에 이르렀는데

후임으로 안희묵 목사를 초빙했는데 그 좋은 목사를 받아들이지 못해 결국 문을 닫고 말았다.

94년 오마니가 돌아 가셨을때

안희묵목사가 다 도와 주었는데

안희묵 목사는 이제 부임한지 얼마되지 아니했고 처음 만났지만

장례식 며칠 동안 그는 부친과 펄순얼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것을 나는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장례식 기간 이었고 설사 아니었다 하더라도 부친의 성격상 교회내분이 있을 경우 누구의 힘이 되어 주는 분이 아니므로 도움이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장례식 직후 나는 오레곤 집으로 돌아 왔고

그후 곧 안목사가 떠나 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아직도 그가 손수 손으로 만든 작은 교회 메뉴얼같은 교회 수첩을 간직하고 있다.

안대벽 목사가 돌아가신 것은 언제 인가???

LA 에서 돌아 가셔서 부인 이순도 여사가 큰아들이 있는 푸로리다로 가셨나?

두 분이 가셔서 계시다가 목사님이 돌아 가셨나???

세월이 유수와 같이 흐르고 있다.

#침례교 #안대벽목사 #박경배목사 #안희묵목사 #LA 대한침례교회 #이순도 여사 #푸로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