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복 홀트 양자회 총재를 기리며 – 1/25/2018.
오레곤
2018-02-03 06:00:16
김형복 장로님이 지난 1월 25일 87세로 소천하셨다.
본인은 유언이었는지 가족의 소원으로 조촐하게 장례를 치뤘다 한다.
김형복 장로는 내가 이곳 시애틀로 이사하기 전 까지 한 15년 정도 돕던 오레곤 사회관을 도와 주시던 분이었다.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오레곤 사회관은 동네 유지들의 도움을 많이 받지 못했다.
이유 중에 하나가 관장이 감리교 목사인데 아마도 자기네 감리교단의 이익을 도모한다고 생각해서 그런것 같기도 하고…
해서 원래 기독교 사회관이었는데 ‘기독교’를 빼 버렸다.
하지만 여전히 한인회등등 관심을 가져 주지 않았다.
관장은 목사 특유의 뚝심이 있어서 인지 타엽도 없고 그냥 묵묵히 할 일을 해 나갔다.
나는 초기에 자원봉사자로 시작해서 돈을 멏푼내는 이사를 하게 되고 그것도 할 사람이 없어서 이사장을 하라는 것인데 나는 이를 끝까지 받아 들이지 않았다. 이유는 나같은 인지도도 낮은 사람이 하면 사회관을 더욱 우습게 알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부이사장으로 몇년을 소일?했다.
컴퓨터 클래스도 하고 1주에 두번 노인 급식하는 일이 제일 큰일이고 나머지는 관장과 가끔있는 총무가 노인들 뒷일을 바주는 일이다.
그동안 많은 목사들이 거쳐가고 사기?치다 도망간 사람들도 있고 총무들도 영주권을 받기 위해 온 사람들도 있지만 성공한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능력있는 젊은이들이 많았는데 그 들을 끝내 잡지 못했다는 것이다.
어찌꺼나 결코 짧지 않은 세월동안 한일은 많은데 한인들의 관심 밖에 있어야했다.
사회는 날로 교묘해져서 순시리 스러운 재단들이 생기고 뭔가를 도모하는 자들에 의해 영혼을 팔아 먹고 있는데…
사회관은 날로날로 멀어져 갔다.
관장목사는 전자공장에서 일하는 사모의 돈벌이로 겨우 살아가고 몇번인가 사회관을 닫겠다고 선언했지만 마지 못해 유지해 갔다.
에리자베스 풔인가 뭔가 하는 유명한 정치인이 관심을 갖고 강연회를 했는데 한인회 인사들은 아무도 참석하지 아니했다.
동창인 장태한 박사를 강사로 초청했을때도 아무도 오지 아니하였다. 답답한 장박사가 주상원의원을 지낸 임용근씨에게 직접 연락을 취해서 임용근씨가 당장달려오고…
한 해는 미주택공사에서 무료로 대금을 대주는 노인주거빌딩을 지을 자격을 주었는데 한인들의 비협조로 좌절되고 말았다.
중국타운에는 이 주택공사에서 지어준 10여층 짜리 근사한 노인주거 상가 빌딩이 자리잡고 있다.
한인사회에서는 시애틀 남쪽에 간병인단체로 유명한 한미여성회에서 주관하여 지은 빌딩이 있다.
하여간, 내가 김형복장로를 만난것은 사회관 이사로 참석하셔서 처음 만나게 되었다.
그때도 포트랜드에서 2시간 이상 거리에 사셔서 오기가 힘들고 이미 연로하셔서 그렇게 자주 만날 수 는 없었다.
김형복장로를 만났을 때 놀란것은…
- 홀트양자회를 만든 것이 장로님이였다는 것이었고
- 홀트여사는 이미 돌아 가셨지만 양자회는 아직도 살아서 아동복지를 위해 많은 일을 하고 있는데 그 규모가 엄청난 것이었는데 그런 단체의 총재가 너무 겸손하고 순수한 인품이었다.
사회의 많은 유명인사들이 자신을의 이득혹은 고집?철학?을 위해서 사회관을 돕지 아니 했지만 김형복장로는 그저 순수하게 노인들과 사회에 작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이름을 빌려준 아주 순수한 분이엇다고 밖에 할말이 없다.
그 인품이 그립다.
마태복음 10: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