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빛에도 눈물이 있다 – 송명희
년도별/예술문학비평
2017-11-18 10:02:12
시인을 안지는 그리 오래지 않다.
또한 그의 시를 많이 읽거나 연구해 본적도 없고 오랜 시인의 팬이라고는 할 수 없다.
시인을 알게 된것은 기타동우회에서 만나 그녀의 노래를 들은 것이, 기실은 전부이다.
나는 자칭 고아원출신(고아는 아님)이라서 그런지 조금 우아하고 세련된 사람은 두려워?하는 기색이 있다.
해서 시인과 말을 섞어나 대화를 나눠 본적도 없다.
하지만, 그녀의 노래는 남달랐고, 그리고 나는 그녀의 시가 좋을 뿐이다.
그래서 그때 부터 시인의 시가 눈에 띄면 다시 읽어보게 되고…
그 범상치 않은 시에 유명한 상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 ‘과연!’하고 감탄 했을 뿐이다.
내가 두려워 하는 ‘우아한 사람들’은 대체로 부르조아적 사고와 이데오르기에 편견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든다.
나는 기독교인 이지만 내가 잘 알고 가까운, 그리고 나름대로 유명한 종교지도자들이 그런 부류에 속해서 실망하는 적이 많다.
내가 읽은 시인의 시들은 종교적 표현을 자제한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런데 오늘의 시는 마치 신에게 ‘내가 당신에게 가노라’라고 선언하는 것 같다.
선언하기 까지도 그 절차가 시원 스럽게 진행된다.
시인의 신앙이 성숙된 것일까???
아니면, 시인의 마음이 선언을 하고 싶은 것일까??
타성에 젖은 우리 신앙인들의 모습에서 실망할 수도 있고,
누가 뭐라든 우리는 신에게 다가 갈 수도 있다.
시이든 삶이든 시원 시원한 것은 시원 시원 한것 같다….
빛에도 눈물이 있다 …송명희
나는 태양을 서너 개 가진
별의 문지기이다
어떤 날은 금빛 햇살로
여기저기 뒹구는 애착을
한나절씩 잠재워놓고
하얀 꿈을 가지런히 다시 고른다
누구의 재물로도 쓰이지 못하는
부유하고 비만한 허욕의 바벨탑
빛의 강물에 소리 없이 던져 버리고
딱딱하게 박힌 불신의 굳은살도
노래하듯 훌훌 떠내려 보낸다
검게도, 희게도 보이는 화폭에
영원한 것의 형태 없는 모습이
붓들의 증언으로 그려진다
보이지 않는 천상의 이야기가
두려움에서 극복의 대상으로
아니, 긍정으로 바뀌면
언제나 문을 열고 들어오는 또 하나의 빛
예정된 고통의 문턱을 가볍게 사뿐 넘는다
“죽음입니다
종착역이니 내리십시오”
육체의 강을 건너니
도공이 환희의 눈물을 흘리며
손을 내미신다
사랑한다
나를 사랑한다고 하며
겹겹이 쌓인 영생의 시간을
펼쳐 보이신다
녹슬어 땅에 뒹구는
십자가의 울부짖음은
모두 온전한 구원의 흔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