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숭의동 침례교 성애원 50년대 사진 161009

인천 숭의동 침례교 성애원 50년대 사진
인천숭의동20번지-성애원숭의침례pic

2016-10-09 11:03:50

철이 들고 나이가 들면서…

마구들이 우는 사자와 같이, 아니 이미 한 나라는 다 잡혀먹은 것 같은 이 패악한 세대에…

옛 목숨을 바쳐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긴 믿음의 조상들은 모두 돌아가시고…

한경직목사나 김수환추기경같은 유명했던 분들도 많았지만 우리 침례교단에도 부산영안교회 박정근목사의 조부 돼시는 박기양목사님 같은 분들은 어린 내가 봤을 때도 참 신실하고 존경스러웠던 것 같다. 그렇게 독보적이고 교단의 큰 어른들은 아니 셨지만 개인적으로 존경할 수 밖에 없었던 부모님…

돌아가신지 벌써 10년 20년이 돼었는데 새삼스럽게 그분들이 마지막 까지 제일 가깝게 갖고 계시던 사진첩이 따로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다.

알고 있던 것인데도…

그 사진첩의 사진들 사이엔 오랜 동안 잊었던 사진들이 사이 사이 삽입되어 있다.

ㅎㅎ 부모님께서 주님께 돌아가시기전까지 누구를 가장 사랑했는지 알 수 있는…

두말 할 것 없이 제일 귀엽고 이뻤던 막내… ㅎㅎ

손주들의 사진들이 있고…

오마니 사진첩에는 북에 두고온 외가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이모들의 희미해져가고 있는사진들을 현대 디지틀로 당신께서 손수 다시 찍은 것들이 눈에 뛴다.

그리고 알지 못하는 베이비들이 두명 있는데,,, 아마도 둘째와 셋째 누이 사이에 유아사망 했다는 형들로 추측이 된다. ㅠㅠ

그리고 55년경부터 59년 미국 남침례교 첫선교사 나요한(John Abernathy)가 미국으로 이한 할때 까지 원장으로 계셨던 인천 숭의동 성애원의 사진들이 많이있다.

부모님이 돌아 가신 후 어릴적 보았던 사진들이 몇몇 보이지 않는 것 같아 혹 누이들이 가지고 갔나 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그간 오랜동안 보지 못했던 사진들이 거게는 다 부모님들께서 삶의 마지막까지 간직하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니 더욱 감개가 무량하다…

50년대 중반 국립? 사회사업자 수업? 수료 기념. 오른쪽 뒷줄 4번째 어깨가 넓고 잘생긴 훈남이 부친 김은섭. 625직후이니 아마도 사진에는 유명 사립재단이나 사회사업자들도 있을 것 같다.

성애원에서 가죽 공장 건너 와룡 소주 공장. 그 오른쪽 새로 지어진 신생 주택이 있는 것으로 봐서 같은 사진들 보다 나중에 찍은 것으로 생각 된다. 60년대 초???

ㅎㅎ 해서 미국 선교사나 미군들의 성능이 좋은 사진기가 아니고 아는 누구의 사진기로 찍은 것일 것 같다.

확실하게 윗 사진 보다는 훨씬 앞서 찍은 사진인데, 부친이 성애원에 부임하신후 인천숭의침례교회로 사용됐고 오마니가 현 제물포감리교회에기증한 2층창고도 지으시고 우물 옆 밑으로 실외 목욕탕과 빨래터 그리고 2층 대강당으로 오르는 계단을 축조 하셨는데 그 빨래터가 지어지던 때인 것 같다.

재미있는것은 가죽공장에서 사무실로 쓰이고 인천교대부국의 차중휘 부친이 공장장?으로 근무하시전 빌딩이 아직 천막이고 논밭 건너에 있던 신생주택은 아직 지어지지 않는 상태이다.

2층 대강당 뒤에 있던 높은 언덕. LA 안대벽 목사가 설립한 대한침례교회 후임 박경배 목사님 장남?

가죽공장 저수지 논밭을 건너 수봉산 배밭 주인집이 보이고 오른쪽으로 기독교 공동묘지 밑 포도밭 주인집이 바로 앞에 있는 것 처럼 가까이 보인다.

성애원 2층 대강당 뒷편 제일 높은 언덕에서 보이는풍경. 오른쪽 밑에 고아원 대문이 보이고 건물이 가죽공장 그 뒤가 가죽공장과 와룡소주 저수지. 저수지 주위로 뚝과 같이 보이는 것이 주인선(인천 숭의국민학교 앞으로 지나 가던 수인역에서 주안으로 이어지전 화물선로)

이 주인선으로 하루에 1-2번 정도 화물선이 지나가곤 했는데 우리는 언제나 그 화물선 칸수룰 세어보곤 했다. 그리고 가끔 칼을 만든다고 대못을 침을 뱉어 선로에 올려 놓곤 했는데 한번도 제대로 된적도 없고 어느 정도 납짝꿍이 되어도 실제로 칼이나 쓸만한 도구를 만들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래도 우리는 잊혀질만한 때가 되면 큰 대못을 찾아 들고 선로로 가곤 했다.

정면 언덕의 광채나는 흰빌딩은 선인재단의 터가 된 성광학교. 성광학교 밑으로는 중국인 묘지가 있었는데 중국인 묘지는 분봉이 아니고 조그마한 빌딩처럼 지어진 것들이었다. 그 앞이 현재 제물포역인데 아직 제물포 역은 지어지지 않고 주인선과 경인선이 만나는 곳데 간이역이 있었다.

앞에 보이는 전선철탑 왼쪽이 변전소 철조망 담.

저 성광학교 왼쪽으로 역시 학교로 보이는 커다란 건물이 보이는데,

성장해서는 다른 건물들이 가려서 본 기억이 없는데 저렇게 큰 건물은 박문여고와 동인천고등학교 뿐일 것이다.

박문여고가 뒷쪽에 있고 남향이 아닐 것 같으니 결국 동인천 중고등학교가 거의 확실하다.

그리고 전기철탑 뒤로 인천숭의 국민학교 끝 돌담 뒤로 남중고 동쪽으로 넓은 밭이 있고 그 가운데 아주 좋은 개들을 키우던 종자씨를 팔던 중국사람 집이 있었는데 사진에는 그 중국사람 집으로 보이는 건물은 보이지 않는다.

아니면 정가운데 큰집 왼쪽 작은 집일런지 모른다.

70년도인가 경인국도에서 철길까지 큰도로가 났을때

그전에 있던 자동차운전 교습소가 반토막이 나고 큰 흰집이 큰길 변에 서게되고

경인운전교습소 끝에 파출소가 들어 서고 저 작은 집은 그냥 있었던거 같은데…

중국인 집은 왠일인지 교습소가 들어올때 짤린것 같기도하다.

세째눈이가 운전배운다고 다니다가 그 중국집에서 강아지를 얻어온적이 있는데….

그리고 어느 인천이야기를 쓴 사람이 여기에 인천시내 똥이 다모이는 분료수거장이 있었다하고 47년생인 형도 있다고 우기는데 아무리 봐도 분료수거장이 있을만한 데가 없다.

와룡저수지 왼쪽으로 주인선 철길을 넘어 좁은 논길을 따라 가다 보면 경인국도 바로 전에는 미나리 밥이 있었고 그 전의 집은 나중 경기자동차 훈련장이 들어서면서 같이 합쳐졌고 그 왼쪽 조그마한 구조물이 중국사람 집이였을 가능성이 있는데 그집은 경기자동차운전훈련장 밖에 있었던것은 확실하다. 그 뒤로는 모두 밭이었고 그 북쪽으로 사진에 보이는 것 처럼 경인국도 까지 집들이 보인다.

이 사이로 똥소구루마가 다닐만한 길도 없었는데 어디로 똥을 날랐다고 하는 것인지…

아이고 누구 분명히 아는 사람이 있으면 말쫌 해주소…

다만 기억나는 것은 주안 개건너로 가기전에 아직 염전들이 있던 곳을 가기전 주안 고아원(향진원???) 뒤로 똥통으로 사용됐을 것 같은 콩크리트 구조물들이 있었는데 형이나 그 양반들이 이걸 혼동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고아원 동쪽 앞에도 제법 큰 군락을 이르고 살았는데 이때만 해도 집들이 많지 않다. 앞에 보이는 왼쪽 집과 가죽공장 담사이로 골목같은 좁은 길이 있어서 이 길로 가죽공장 압에 있던 조그만 저수지 논밭으로 나갈수 있다.

와룡저수지에서 수봉산 고개로 넘아가는 곳 까지 논밭으로 이어져 있었는데 여기에는 작은 저수지가 2개 더 있었다. 안쪽으로는 연꽃 저수지가 있어서 가을인가 가을이 끝날때 쯤이면 물을 빼고 연뿌리를 캘 때면, 추수때 고아원에서 밤나무를 따거나 할 때 같이 산9번지로 가는 모든 사람들이 들러 연뿌리 한 조각이라도 얻으려고 모여들곤 했다 우리도 버린 조그만 연뿌리나 뿌러진 조각들을 주어 맛이라도 보곤 하던 기억이 난다. ㅎㅎ

저 집에는 무당역을 하는 것은 본적이 없는데 무당이었다고 하는 분이 살았고 애들이 나보다 한살 어린 친구가 살았는데 많이 놀지는 아니했지만 아주 착하고 성실한 아이들 이었다. 이제는 이름도 기억나지 아니하지만 그 친구는 성실해서 나중에 철도 고등학교에 간것을 알고 있었는데 대한민국이 성실한 나라였다면 아마 철도청장쯤 하고 있지 않을 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집 오른 쪽으로 거의 우리가 살던 고아원와 정면에 놓인 집에 백씨인지 나보다 한살 많은 아이가 살았다 나중에 가게도 했는데 계속했던게 아니고 했다 안했다 한것 같다.ㅎㅎ 그리고 그 안쪽에는 항상 인상을 쓰고 경찰서에서 일을 한다는 바싹마른 ‘깜상’이라는 형이 살고 있었다.

노모에게 용돈을 달라고 땡깡을 부렸다나 어쨌다나…

ㅎㅎ 쓸쓸하기 그지 없는 시절 오른쪽 고아원 앞 동네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이 보인다. 미국사람들이 와서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는것 같다. ㅎㅎ

사실 나는 너무 어려서 직접 고아원 빨래를 말리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우리가 살던 1숙사 뒷편 빨래터라고 부르던곳. 빨래를 하는 곳아 아니라 빨래 말리던 곳인데 그냥 줄여서 빨래터라고 불렀던 것 같다.

우리나 고아원에 세들어 살던 사람들이 빨래를 말리곤 했다.

ㅎㅎ 고아원 아이들이 적씬 이불들을 말리고 있다. ㅎㅎ 지난밤 내가 그린 지도도 말라고 있나???

빨래터 뒤편으로 보이는 2층창고가 거의 다 건설되어 기와를 기다리고 있다.

성애원 터도 언제부터 있던 묘지들인지는 모르지만 묘지 터여서, 언젠가 저 빨래터 왼쪽 끝이 장마로 흐므러져서 관이 들어 있던 공간들이 몇 들어난 적이 있다. 여기서 아주 조그만 술병 같은 자기를 찾아낸 적이 있는데…

이게 몇억짜리 고려 자기이었을 지도 오르는데… 그냥 꽃가지 하나 정도 꽂아넣는 꽃병으로 얼마간 쓴 기억이 난다….ㅎㅎ

그 꽃병 어디 갔지??? 아이고.. 갖고 있었으면 몇 억??? 아이고 아까워…ㅎㅎ

황두섭형네가 살던 2기숙사 끝방과 오른쪽 장경순전도사네가 살던 사랑방 독채.

웃물이 있었던 기억은 나지만 물이 안나왔는지 패쇄했고 우물 왼쪽으로는 담이 다 무너져서 동네 사람들이 길로 다니지 않고 고아원 정문으로 들어와서 저리로 다니곤 했다.

담넘어 밭 건너 길가 집에는 무당아줌마가 살고 있었고 독자였는지 나보다 한살 많은 악동이 살았다.

성명중이 형, 정기등 나보다 1살 많던 아이들이 꽤 있었다.

ㅎㅎ 참 다시 봐도 얼굴이 생생하게 떠오를 것 같다.

산구번지로 오르는 수봉산 고개길.

저길로 모든 인천공고생들이 등교를 했고 거의 모든 고아원 형들도 그 학교를 다녔다.

그 고개에서 산등성이를 따라 왼쪽으로는 수봉산 정상으로 오른쪽으로 범바위, 호랑이 바위를 지나 인천 피난역사의 한장을 장식한 용현감리교회와 빈촌이 있어던 용현동으로 간다.

당시는 그 범바위 또는 호랑이 바위로 불렸을 것같은 큰 바위가 있었는데 정확히 뭐라 불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수봉산 활터가 있던 절로 넘어가던 고갯길.

배밭 오른쪽으로 포도밭이고 그 위로 기독교 묘지.

산 중턱에 빨래터가 있던 약수터.

길 오른쪽으로 산구번지 사람들이 사는 곳 까지 모두 일반묘지터였다.

고개에서 절로 넘어가기 전 오른쪽으로 제법 큰 넙죽바위가 있었고 그 길을 따라 수봉산 정상으로가는 길이 있었다.

정상넘어 현재 경인국도에서 올라오는 큰길 쪽으로 당시는 경찰탑이라고 불리던 충열탑이 있었고,

정상은 사실 2중으로 되어 있어서 넙죽바위에서 길을 오르면 엄청넓은 공터가 있고 그 다음 동북쪽으로 더 가서 높은 곳이 정상이었다.

그 전에는 할일 없이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없었던 같고 70년대나 돼서야 일요일이나 돼야 아침에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되었는데 이때도 사람들은 수봉산 더 높은 정상은 가지 않고 정상 전의 넓은 터까지 가는 것이 전부였던것 같다.

수봉산은 뭉퉁한 산이라서 정상에 가면 오히려 사방이 보이지 않았지만 이 넓은 터는 반대편은 보지지 않지만 한쪽 끝으로 가면 정말 산에 오른것 처럼 멀리까지 보였다.

그때 쯤 높은 뭔 탑을 세웠는데 아마도 정상에 세우지를 않고 그 넓은 터와 같은 높이로 산을 깍아서 탑을 세웠던 같다.

자연그대로 두어도 모자랄 판에 왜 산을 깍아서 탑을 세우나 하고 어린마음에 의아해 했던 기억이 있다. 에고…

ㅎㅎ 그러고 보니 저거이…

저거이…

그 유명한 56년도형 Chevy Bel Air 아닌가??? 우와 말로만 듣던…

집들 넘어로 추수를 마친 논밭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다.

그 뒤 아직 물이 차 있는 곳이 연꽃 저수지이다.

오늘 차는 56 Chevy Bel Air는 아닌데 뭔 차종인지는 모르겠다. 옆에서 일하는 롼이 말할길 58년도 형이란다.

롼은 평택 캠프 험프리에서 70년대 초반에 근무했다.

해서 헬기가 북쪽에 추락해서 조종사가 포로로 잡힌 일, 미류나무 도끼 만행등을 기억하고 있다.

뒤에 보이는 연꽃저수지는 얼어있다.

와룡저수지나 가죽공장 저수지는 겨울에 썰매를 타고 커서는 스케트장으로 유명했는데 연꽃 저수지에서는 썰매질을 한 기억이 없다.

아마도 연꽃으로 인해 썰매를 탈 수 없었기 때문일 것 같다.

나중에는 패쇄해서 나는 저 문을 사용한 기억이 없지만 고아원 빌딩 정면에서 앞동네 쪽으로 조그마한 쪽문이 나 있는데 그 왼쪽으로는 담을 따라 부친이 심었는지 이탈리아 포플라가 줄지어 있어고 쪽문쪽으로 돼지 우리를 지어서 돼지를 키웠는데 지독한 냄새도 기억이 나지만 형이 중학교 갈때인가 마지막 돼지를 판기억이 나는데…

그 돼지 우리 때문인지 인천교대부국을 다닐때 부자집 아이들이 신기했는지 우리가 돼지키운다고 놀림아닌 놀림을 하던 기억이 난다.

나는 돼지 키우지 않는다고 변명?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ㅎㅎ

수봉산 고개로 가는 길.

찝차 뒷부분 넘어로 보이는 각진 집이 뺀질이네. 나중에 가게를 열었다.

그 위로 전봇대 지나 보일것 같은 박찬원이네 가게.

이 찝차는 미군용 찝차랑 다르게 생겨서 뭔 일제 차인가 했더니…

옆에서 일하는 롼이 말하길…

2차세계대전 후 찝차가 없던 영국이 미군 찝차에 힌트를 얻어 만든 영국 찝차 랜드로바란다.

순시리 남편유니가 타고 다닌 다는 그 유명한 고가 수입차…랜드로바… 현재 11월15일경 그 좋은 랜드로바를 남겨두고 잠적을 했으니 얼마나 타고 싶을까??? –순수한 조선 아재들의 생가! ㅋㅋ

그러고 보니 ‘광수생각’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어디서 무얼 하고 있나??

친일군사독재 재벌족벌 사이비덜이 옳바른 지식인들을 다 죽여서 이제는 바른생각 바른말을 하는 이들이 없으니…

지식인의 양심이 다시 살아나야 이 민족이 살아날 텐데!!!

우리는 김대중 선상의 ‘행동하는 양심’을 헌 신짝처럼 버렸으니 우짜면 좋노????

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 기를…

ㅎㅎ 참 흥미로운 사진이다.

나무가 풍성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아직 봄은 아니 된것 같고…

뭔가 건축재료가 잔뜩 쌓여있는 것으로 보아 2층창고가 지어지기 전인것 같은데…

가죽 공장 오피스가 반듯하게 지어진 것으로 보면 분명 미국선교사들 사진에서 보이는 천막 오피스시절은 지난것 같다.

와룡소주 오른쪽으로 신생주택이 사진에 안 나오는 것인지 아니면 아직지어지지 않은 것인지???

신생주택이 지어진 맨 위 첫번째 사진 과 같은 때 찍은 것이거나 그 직전 찍은 것 같다. ㅎㅎ

고아원 남쪽 제2기숙사 위, 2층 대강당 남쪽으로 있던 운동장 동남쪽 끝에 있던 수평대.

동인천역 지하도 앞에서 가게를 하던 서병협형이 수평을 하고 있다.

그 것 참 신기한 일이다.

고아원 사진을 그렇게 많이 보았는데도 전혀 생각을 못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저 수평대가 기억이 난다. ㅎㅎ

가끔 동네 형들이나 심지어는 알지 못하는 형들이 저 수평을 하기 위해 오곤 했던 기억이 난다.

쓰다보니 우리도 어릴적 만히 했고 중고때 절친 호명석이도 잘하던 운동인데,

저 명칭이 생소하다. 평형대는 아니고 저게 왜 수평하고 관계가 있어서 수평, 수평대라 했을까??

내 가 맞다면 아마도 일제의 잔재??? 흠 수평대라…

뒤에 수봉산 약수터 오른쪽으로 있던 일반공동묘지가 선명하게 보인다.

침례교 박경배 목사님 사모님과 장남?

부친께서 병원복같은 바지를 입고 계신 것을 보면 병상 중이신 모양인데..

고아원 정문에서 2층 창고로 오는 길에 있던 로타리 가운데 깃대가 보이고 관리돼지 못해 막자란 코스모스로 몸을 감추고 계신다.

아마 고아원 패쇄 당신 고아원을 봉쇄한 대전파 사람들과의 몸 싸움으로 부상을 입으시고 계셔서 목사님이 문병을 오신 것 같기도 하고…

고아원 당시에는 보이지 않던 수봉산으로 오르던 약수터 윗쪽으로 벌써 구조물들이 들어산 것이 보이니…

고아원 패쇄 후이거나 60년대 초가 될것 같다.

후덕하신 박목사님 사모님께서는 년전 엘에이에서 돌아 가셨다.

부친 장례 후 목사님께 용돈을 보냈는데 한참 후 편지가 돌아오고 전화도 통화가 되지 않아 연락이 두절 되었는데 아직도 연락처를 받지 못한태 사모님 소천소식만 듣게 되었다 모두 강건하시던 분들인데 목사님도 건강하신지….

제물포 역 뒷편에서 주인선과 경인선이 만나는 곳에 있던 간이역이 있는 쪽을 찍은 사진이다.

오른쪽 경인철도 앞이 제물포역사 옆으로 있던 커다란 미나리 밭이고 저 집들 사이에도 콩나물 움막집이 있었던 것 같고 경인철도 뒤로 언덕 위에 있는 것이 숭의국민학교 앞 다리를 지나 와룡소주 저수지를 돌아 경인국도 철교를 넘어 나오는 주인선이다.

주인선 뒤로 경인 국도에 버스가 달리고 있고…

수봉산 동북쪽으로 움푹 파인곳은 활동적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채석장에 옛날 부터 있었던 것을 말하는 것 같다.

부친이 지으신 제1기숙사 앞 우물 지붕과 그 밑에 야외 목욕탕과 빨래터.

부친이 디자인한 이 빨래터는 우물에서 바로 물을 길어 올려 밑으로 부으면 동글하고 네모난 욕조가 세개 있어서 그 욕조들을 채우고,

다시 그 물들이 넘치면 그 물로 빨래를 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저 빨래터 모양은 특이해서 어린 무리들의 풍족한 놀이터 였다.

아이들은 가지가지 놀이를 개발?해서 놀곤 했다.

우물 옆에는 세수도 하고 바로 빨래도 할 수 있는 기다란 공동 세면대가 있었다,.

수봉산에는 일반공동묘지가 선명하게 보인다.

왼쪽 하얗게 언 곳은 연꽃저수지…

고아원 북쪽 밭.

그 옆으로 꽃밭 로타리가 있었고 그 끝은 고아원 정대문이 있었고 그 문 서쪽 코너에는 분뇨를 모아두는 커다란 똥통 웅덩이가 있었다.

왼쪽 전선철탑 옆 변전소 담이 보이고 뒤에 보이는 커다란 건물은 인천 숭의 국민학교. 후에 앞쪽 건물을 증축해서 뒷건물은 안 보이게 된다.

두 건물 오른쪽은 인천 남중고.

오른쪽 숭의 초등학교 지붕 위로 보이는 것은 멀리 숭의 사거리, 숭의동 청과시장, 도원동 도원운동장, 공설운동장을 지나 경인철도를 지나는 도원고개 다리 동쪽 산언덕에 있던 인천 전도관이 선명하게 보인다.

ㅎㅎ 수봉산 정상에서 동북쪽 채석장 쪽으로 충열탑이 건립되고 있다.

이때 건립되었는지 모르는데 왜 누가 가서 찍었는지는 모르지만 건립 중인 것은 확실하다.

경찰탑이라고 불리던 저탑에는 충열탑이라고 쓰여져 있었다.

건너편은 선인재단 동쪽으로 거대한 인천대학 체육관인가 지어진 곳.

그 너머에는 송림동이나 개건너가 보였을 것 같다.ㅎㅎ

고아원 원두막이 있던 솔밭에서 찍은 변전소 사택.

첫집이 한의사 곽지형이 살던 집. 지형이는 인천교대부국을 같이 다녔는데 입학당시에는 내가 가서 기다렸다가 같이 가곤 했는데 우등생인데다가 전국을 제패한 핸드볼 팀 리드까지 할 정도로 운동도 잘하는 소위 잘 나가는 학생이어서 그런지 언젠가 부터 같이 어울리지 못하게 되었다.

당시 최고의 경기중학에 지원했다가 그 해 뭔 문제에 문제가 생겨 낙방을 했는데 기여코 국민학교 재수를 해서 다음해 기여코 가려했는데 박정희가 중등학교 평등화를 한다고 학교를 없에는 바람에 인천중학으로 진학했다가 고등학교 때에는 고등학교를 평등화하는 바람에 결국 서울로 진출?하지 못했다는데…

교회를 같이 다니던 네비게이토의 스리랑카 선교사 신현승이 또한 저 사택에 살았는데 서울농대에 진학 했지만 어릴 적에는 항상 지형이와 비교를 당했다나 어쨌다나…

지형이는 어찌해서 인지 경희대 한방과를 간 모양인데 아직 한방과가 뜨기 전 일것 같은데 아직 이르기는 하지만 한국최고의 한방과을 갔다는 것도 선경지명이 있었다 할 만하다.

하여간 근래에 와서 인터넷이 발달하여 그의 자취를 찾아보니 내가 사는 이곳에서 가까운 뱅쿠버 카나다에서 한방을 크게 하는 모양이었다.

그곳 교류가 있는 목사들에게 물어보니 신임과 존경을 크게 받고 주의 일도 많이 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신기한 것은 풍경 벌리 규칙적으로 보이는 구조물들이 마치 염전 처럼 보이는데 옛날 옛날 수인선 넘어 바닷가 쪽으로 염전들이 있던 기억은 나는데 고아원 언덕 위에서 수인선 넘어에 있던 염전이 보일 수 있나 의아한 생각이 든다.

멀리 월미도?? 섬과 바다같이 보이는 풍경이 정말 신기해 보인다.

고아원 정상 솔밭에서 더 밖같 쪽에서 변전서 사택 윗쪽을 찍은 사진 인데,,,

변전소 지나서는 바로 주인선 철도가 있고 왼쪽은 숭의동 사거리에서 독쟁이 용현동으로 가는 차도가 그 철길을 넘어 갔는데…

그 차도가 분명하게 드러나 있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아직 그 길이 나지 아니한 때 일 수 있는데…

가운데 쯤에 커다란 건물이 보이는데 이는 인천교대 이전의 인천사범외에는 이렇게 큰 빌딩이 있을 수 없으니 분명할것 같고 아직 서향으로 지어져 있던 인천교대 부속국민학교는 아직 없고 인천교대 당시에는 본관 가운데가 뾰죽 지붕으로 되어 있었던 것 같은데 평평한 것으로 보아 건물이 개조되기 전이고 본관 오른쪽 동쪽 언덕에 기다란 실험실과 부속 건물 들이 이미 있었음을 볼 수 있다.

인천 교대 서쪽에는 뭔 제철소던지 커대한 굴뚝을 가지 공장 건물이 있었는데 그 회사 역시 아직 안 보이고 있다.

그게 뭔 회사 였나??? 교대부국에서 보면 바로 앞에 굴뚝에 커다란 글씨가 선명한 회사가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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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숭의동 성애원 형들 161009

인천 성애원 형들
인천숭의동20번지-성애원숭의침례pic

2016-10-09 15:13:12

성애원 형들.

59년도 인천 숭의동 성애원이 패쇄돼고도 종종 찾아오거나 와서 살다 간 형들이 많은데…

거의 모두 수봉산 넘어 인천공고에 다녔고 수인역 넘어 바닷가에 있던 수산고에 다니던 형들도 있었던 것 같다.

당연히 이름 날리던 주먹들이었고

인천을 떠나서는 성실하게 신풍제지에서 회사생활을 하던 풍길이 형은 정말 유명한 주먹이었다는 역시 집에 자주 놀러 오던 숭의동 건달형 이야기에 의하면 선배들이 졸업할때 인사하러 왔다거나 형사들이 잡으러 자주 왔다거나… ㅎㅎ

내가 좋아 하던 성찬이 형도 자신이 북파 공작원들에게 지뢰통과를 위해 잡혀온 인민군이였다고 한것 같은데,

나이가 차서 공부를 많이 못했다고 하곤 했다.

북에서 잡혀와 부모친지 하나 없이 결혼하던 날 오마니가 대신 엄마 노릇을 하고 있다.

신혼 집에도 가본적이 있는데 잘 살았는지 아들 딸은 얼마나 낳았는지 참 궁금하다.

그 옆에 형들도 가끔 오기도 했는데 이제는 하도 오래되서 기억…

광배 영배 뭔 이런 이름들이었는데… 들리기에는 북파 공작원으로 갔다오기도 하고 또 누구는 전도사가 되었다고도 하고…

용산에서 이민서류 수속을 해 주던 석근이 형은 엘에이에서 자동차 수리사업을 크게 한다고도 하고…

성실한 성찬이 형. 뭔 전생에 나라를 구해서 이렇게 이쁜 형수를 구했는지… ㅎㅎ

학창시절 성찬이형 같은데 얼굴을 같은 것 같은데 삐딱하게 선게 결혼사진 모습과는 다느니 아니것 같기도 하고…ㅎㅎ

충격적인 한국 근대사-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와 이흥선 대원군 – 정직이최선 161017

충격적인 한국 근대사-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와 이흥선 대원군 – 정직이최선
년도별/퍼온글

2016-10-17 08:03:14

흥선 대원군은 나쁜 사람이었을까요?

저는 역사가 외곡 되었다고 봅니다.

15세기까지 교황청이 최고의 권력기관 이었고 그 후 로스차일드가 권세를

잡았으며 일루미나티를 창설합니다. 프리메이슨이란 좋은 조직에 침투하여

프리메이슨을 일루미나티화 시킵니다…

일본의 막부시대도 서양의 지원으로 이루어졌으며 서양의 지원은 로스차일드가입니다.

로스차일드 대리인인 록펠러가의 지원은 한국에도 이루어 졌습니다.

루이스헨리 세브란스는 부호 록펠러의 동업자이기도 한 그는 1900년대 초에 이름

모를 동양의 작은 나라를 위해 4만 5천 달러를 내놓았고 우여곡절 끝에 1904년

세브란스 병원이 지어졌습니다.

미국의 소득세는 어디로 갈까요? 30%가 교황청으로 가고 있다고 세계은행

메니저가 폭로 했습니다. 그럼 교황청의 자금은 누가 관리할까요?

로스차일드 대리인인 jp모건이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럼 교황청이 강할까요? 로스차일드가 강할까요?

이 문제는 가족으로 대물림하는것과 한시적인 교황의 권력을 이용하는 것.

생각해보면 나옵니다.

로스차일드 대리인들 일부만 나열합니다.

록펠러의 성공신화: 록펠러는 중.소 규모의 석유개발업체 사장이었습니다.
록펠러는 원대한 꿈을 꾸고 로스차일드를 찾아가게 됩니다.

모든 석유회사를 합병하고 싶습니다. 자금을 지원해 주십시오.

자금을 지원해주실 경우 독점체제 이므로 저에겐 가격결정권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로스차일드 백작님에겐 안전한 이자수익이 보장되게 됩니다.

로스차일드의 지원하에 지금의 록펠러 그룹이 생겼으며 너무나 거대하여 정부에서는 분할을

명령합니다. 지금의 세계10대 메이저 정유사들이 대부분 록펠러그룹에서 분사한 똑같은

그룹입니다. 회사는 분할됐지만 대리인을 내세운 지분율로 기존의 회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록펠러의 자산은 1경 2000조라는 천문학적인 미국에서 가장잘나가는 대리인이 됩니다.

(ibrd, imf, frb주주) 시티은행 = fncb은행

록펠러와 한국: 루이스헨리 세브란스는 부호 록펠러의 동업자이기도 한 그는 1900년대 초에 이름 모를

동양의 작은 나라를 위해 4만 5천달러를 내놓았고 우여곡절끝에 1904년 세브란스 병원이 지어졌다.

철도왕 밴더빌트: 록펠러와 똑같은 경로로 성공합니다.

골드만삭스: 마르쿠스 골드만은 로스챠일드의 지원으로 철도채권을 어루만지며 거대한

성장가도를 달린다. (ibrd, imf, frb주주)

GE: 에디슨 기업으로 알려져있죠? 나중에 투자자인 jp모건에게 회사를 뺏기게됩니다.

지금도 jp모건의 자회사로 되어있습니다.

jp모건의 성공신화: 미국에서 성공한 상인이 로스차일드를 찾아갑니다.

로스차일드는 유대인 상인인 피버디를 국제금융가로 키워줍니다.

그는 자식이 없었으며 직원인 존피어폰트 모건에게 재산을 상속하게 됩니다.

피버디 금융그룹을 이어받은 모건은 사명을 jp모건으로 변경하며 미국에서 은행업으로

커다란 성공을 하게 됩니다.(ibrd, imf, frb주주)

아브라함 쿤 쿤롭그룹: 로스차일드의 대리인이며 로스차일드의 그림자같은 존재이다.

(ibrd, imf, frb주주)

출처: http://kiss7.tistory.com/660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뜻과 진실 – 흥선대원군시대의 지도

저작권법: 단, 직접 복사할 경우엔 반드시 원문주소 필수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뜻과 진실 – 흥선대원군시대의 지도

지도는 기술이며 문명입니다. 인공위성도 없던 시대에 정확한 지도를 만든다는 것은,

지금으로 치면 첨단기술을 가진 것과 같다고 합니다. 이런 일을 해낸 사람이 고산자

김정호지만, 흥선대원군 일화 등 알게 모르게 잘 못 알려진 것들이 꽤 많습니다. 다행히

대동여지도의 진실이 서서히 알려지고 있긴 합니다. 김정호의 호인 고산자의 뜻에서도

알 수 있듯이, 김정호는 인생의 많은 시간을 정확한 지리정보를 위해 헌신한 인물입니다. 그의 헌신 덕분에 우리는 대동여지도라는 세계적인 지도를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동여지도란 뜻은 큰 조선 땅의 지도라는 뜻입니다.

고산자 김정호와 흥선대원군에 얽힌 오해와 진실

이제는 제법 알려져서 다행이지만, 한동안 잘 못된 정보 때문에 지식인들이 안타까워

했던 것이 있습니다. 바로 흥선대원군과 고산자 김정호에 대한 얘기, 대동여지도의

진실입니다. 대동여지도란 뜻은 조선(大東) 여지(輿地) 도(圖)입니다. 여지는 수레라는

의미에서 파생해서 땅이라는 의미로도 쓰입니다.

고산자 김정호가 지도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겨우 대동여지도를

완성했더니, 이를 본 흥선대원군은 대로하여 김정호를 옥에 가두고 고문했다는 것입

니다. 쇄국정책을 하던 흥선대원군의 눈에는 국내의 군사, 지리 정보를 유출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였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대동여지도의 진실이 많이 바로 잡혀졌지만, 아직도 몇몇 어린이 역사만화에는

이런 얘기가 있다고 합니다. 어릴 때 이런 일화를 읽으며 자란 성인들 중에는 아직도

이것을 사실처럼 알고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사진: 조선말기의 흥선대원군. 쇄국정책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보고 벌을 줬다는 것은 진실이 아닌 낭설이다. [고산자 김정호와

흥선대원군에 얽힌 오해와 진실] / ⓒ 미상)

하지만 막상 역사를 뒤져보면 흥선대원군이 고산자 김정호를 옥에 가두고 고문을 했다는 사실은 찾아볼 수가 없다고 합니다. 더구나, 흥선대원군이 대동여지도의 인쇄 목판본을

불에 태워버렸다는 설은, 목판본들이 멀쩡히 발굴됨으로써 낭설이라는 것도 밝혀졌습니다. 실제로 국립중앙박물관 등에는 목판본이 전시 중입니다.

이런 거짓의 시초는 “조선어독본”이라고 합니다. 조선어독본은 일제강점기의 국어교과서

였습니다. 초기에는 국어독본이 필수였지만, 일제의 말살정책이 강화되면서 일본어가

기본 필수과목이 되고 조선어는 선택과목이 되었습니다. 일제가 국어교과서인 조선어

독본에 이런 거짓을 넣은 이유가 뭘까요? 조선인의 정신을 무력화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흥선대원군의 조선 정부는 대동여지도의 중요성도 모르는 무식한 정부라고 주입하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사진: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에서 제작한 조선어독본이라는 책으로 국어를 공부

했었다. 이 사진은 1학년용이다. [고산자 김정호와 흥선대원군에 얽힌 오해와 진실]

/ⓒ 김한영

조선어독본에 고산자 김정호와 흥선대원군의 거짓 일화가 적힌 것에는 육당 최남선이

조선어독본에 참여한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최남선은 당시 이광수, 홍명희와 함께

조선 3대 천재로 꼽히던 인물입니다. 신체시인 “해에게서 소년에게”로도 유명한 최남선

은 처음에는 친일인사가 아니었습니다. 3.1 만세운동에서 민족대표 33인 중 하나로,

기미독립선언서를 작성한 인물이 최남선입니다. 일제의 식민역사에 맞서 단군론을 주장

하기도 했지만, 말기에는 조선 청년들에게 일본 황국의 병사로 전쟁에 참여하라고 주장

하며 친일파로 변절하였습니다.

나름 지도에 관심이 있고 고산자 김정호의 공을 높이 샀던 최남선은 어떤 신문에서

흥선대원군과 김정호에 대해 언급하였는데, 그 글이 조선어 독본에 그대로 실렸던

것입니다. 일제의 입장에서는 정신 말살에 좋은 자료인 셈입니다.

(사진: 일제강점기 조선 3대 천재인 최남선, 이광수, 홍명희의 사진. 대동여지도의

진실이 왜곡된 것은 왼쪽 끝의 최남선이 시초인 것으로 보인다. [고산자 김정호와

흥선대원군에 얽힌 오해와 진실] /ⓒ 미상)

흥선대원군과 김정호에 대한 오해와 진실 외에도 또 하나의 논란이 있는데, 고산자

김정호가 정말로 전국을 다녀서 대동여지도를 만들었냐는 것입니다. 이 역시도 최남선

의 “고산자를 회함”에서 최초로 언급되며 오해를 불러일으킨 속설입니다. 악의적인

의도가 없이 김정호의 노력을 높이 사기 위해 언급된 말이지만, 그 후 한동안 대부분의

대한민국 사람이 정말로 믿게 되는 문제를 낳았습니다. 조선 말기는 낡고 무식했다는

의식이 강하다 보니 김정호가 혼자의 힘으로 거대한 일을 해냈다는 얘기가 먹힐만한

소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동여지도를 살펴보면 고산자 김정호가 이전의 다른 지도들을 참고한 흔적이

발견될 뿐만 아니라, 관인으로써 지도제작을 맡은 기간 안에 당시의 교통 수준을

이용해서 이렇게 정밀한 지도를 만든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라고

보입니다. 이렇듯 대동여지도의 진실은 따로 있었습니다.

(사진: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대동여지도의 뜻은 큰 조선의 땅을 그린 지도라는

뜻이다. 규모가 클뿐 아니라 정확도 또한 높다. [고산자 김정호와 흥선대원군에 얽힌

오해와 진실] /ⓒ 고산자 김정호)

고산자 김정호의 놀라운 대동여지도와 독도

전국을 일일이 다닌 것이 아니라 일부만 답사된 것이고, 그 외에는 기존에 만들어졌던

다른 지도들을 종합하여 만들어졌다는 것이 정설인 대동여지도. 그러나 현대인도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정확하고 거대한 규모로 놀라움을 주고 있습니다. 대동여지도의 크기는 3층 높이 정도의 공간이 있어야만 전체를 펼칠 수 있을 만큼 거대합니다. 축척은 실물의

16만 분의 1 크기입니다. 그래서 고산자 김정호는 대동여지도를 200여 개의 조각으로

나눠서 제작한 후 다시 연결하여 접었다가 펼칠 수 있도록 고안하였습니다.

흥선대원군에 의해 김정호의 목판이 부서졌다는 낭설이 있는데, 지도를 찍기 위한

인쇄용 목판의 일부가 현존하고 있으며, 목판만 해도 60여 개가 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지도가 너무 크다 보니 전도를 발간하기가 힘들어서, 간행된 대동여지도들은 대부분

축소된 영인본들이라고 합니다.

(사진: 검색엔진에서 대동여지도를 검색한 캡처모습. 가운데 사진을 보면 대동여지도가

얼마나 어마어마한 규모인가를 알 수있다. [고산자 김정호의 놀라운 대동여지도와 독도]

/ⓒ 캡처)

흥선대원군의 미움을 샀다는 낭설과는 다르게, 실제 조선은 지도가 더욱 필요했던 국가

입니다. 중앙에서 지방 곳곳에 관리를 보내 다스리는 중앙집권 국가였기 때문입니다.

고산자 김정호가 어떤 경로를 밟아서 지도제작에 참여하게 되었는지 기록이 없어서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 심지어 대동여지도의 제작자가 김정호인가의 진실도 의문을

가지던 때가 있었습니다.

대동여지도의 제작은 1800년대 역사에서 실학과 지리정보학에서 큰 획을 그은 사건

입니다. 김정호가 교류했던 신헌, 김정희 등이 흥선대원군의 주변에 있었기 때문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대동여지도는 김정호가 창안한 기호체계로 기록되어,

과거에 일일이 한자로 써넣었던 지도에 비해 편리하고 직관적인 지도입니다. 서양의

과학기술을 받아들여 훨씬 정확해졌으며, 대량 인쇄 보급도 가능했고, 인구와 면적

등이 조사된 통계자료까지 담고 있습니다.

(사진: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중 서울 부분 지도. 산은 산맥을 위주로 그렸으며 굵으면 높은 산이다. 강과 각 지명까지 그려져 있다. [고산자 김정호의 놀라운 대동여지도와 독도] /ⓒ 서울시립박물관 소장본)

대동여지도의 김정호가 스스로 호를 고산자라고 붙인 뜻은 그만큼 지도에 대한 애착을

알 수 있는 단면입니다. 어릴 때부터 지도 그리기를 좋아하던 김정호의 3대 지도는 청구도, 동여도, 대동여지도입니다. 그중에 청구도가 첫 지도인데 대동여지도와는 다르게

책처럼 되어 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학생들의 역사지리부도와 같은 형식입니다.

청구도도 뛰어난 점이 많지만 인쇄본이 아니라서 직접 베껴 쓰는 필사본으로 간행되다

보니 점점 오류가 많아지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대동여지도를 만들기 전에 동여도를 먼저 만들어보고(그러나 지리정보는 동여도가 훨씬 많다), 최종적으로

대동여지도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직접 발로 뛰어 만들었다는 속설과 달리, 고산자

김정호는 삼국사기, 고려사부터 신동국여지승람, 팔도총도, 동국팔역도, 해동여지도 등

수많은 지도를 연구한 후 대동여지도에 흡수시켰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구전후도 같은

세계지도 제작에도 참여했다고 합니다.

(사진: 고산자 김정호의 3대 지도 중 첫번째에 해당하는 청구도의 모습. 이 지도는 지도책 형식으로 되어 있다. [고산자 김정호의 놀라운 대동여지도와 독도] /ⓒ 김정호)

항 간에는 대동여지도에 독도가 없어서 곤란하다느니, 대마도가 나와 있다느니 하는 오해도 많습니다. 1500년대에 만들어진 조선방역지도에는 대마도가 표기되어 있었지만, 대동여지도에는 대마도가 있지 않습니다. 다만 대동여지도를 축소하여 새로 만든 대동여지전도에는 대마도가 표시되어 있는데, 대동여지도와 혼동하는 경우가 자주 있는 것입니다.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의 최초 목판본에는 독도가 표시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무인도일 뿐인 섬을 위해 목판본을 더 추가하는 것이 어려웠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대동여지도의 목판본과 거의 동시대에 만들어진 대동여지도 필사본에 독도가 그려져 있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대동여지도는 제작기간만 해도 10년이지만 이후에도 추가 작업은 계속되었는데, 이 대동여지도 필사본은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진실인 듯 보입니다.

(사진: 대동여지도의 필사본에 나와 있는 울릉도와 독도의 모습. YTN뉴스 캡처.

[고산자 김정호의 놀라운 대동여지도와 독도] / ⓒ YTN)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뜻과 진실

고산자 김정호는 딱히 기록이 남겨지지 않아서 출생과 행적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조선은 기록문화가 발달했고 족보 제도가 있었으므로 이런 기록이 없다는 것은 그가

중인이 아니었겠냐는 추측을 하게 합니다. 하지만 친구 최한기가 양반이었고, 이후에도

여러 양반신분들과 교류를 했던 것으로 보면 몰락한 양반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김정호는 1800년대에 황해도에서 태어났고, 지리학자이며 실학자입니다. 당시 청나라는 서구의 과학과 문화를 받아들이고 있었는데, 그 영향이 조선에 와서 실학으로 연구되고

있었습니다. 지인들의 기록에 의하면 스무 살 때부터 지도제작에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나타납니다. 김정호의 호인 고산자의 뜻은 옛 고, 메 산, 아들 자로 되어 있습니다

(古山子). 다른 기록에 의하면 김정호 스스로 고산자를 지었다고 합니다.

(사진: 고산자 김정호의 초상화. 고산자의 뜻은 옛고, 메 산, 아들 자자를 사용하고

있다. 대동여지도 등 조선말 실학에 큰 공헌을 하였다.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뜻과 진실] / ⓒ 미상)

동시대를 살았던 김정호의 인맥으로는 최한기, 신헌, 김정희 등이 있습니다. 최한기는

김정호와 매우 친한 친구사이였는데, 부유한 양반 가문에서 태어나서 중국의 수많은

책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최한기도 지리, 천문 등에 다양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김정호를 여러 방면에서 지원해 주었으며 수집한 자료들을 김정호와 함께 연구하기도

했습니다. 고산자 김정호에게 최한기 같은 친구가 있었기에 중앙에 있는 인맥을 통해

고급 자료들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을 것입니다.

최한기는 실학자 김정희의 제자였기에 김정호도 추사 김정희와 교류를 할 수 있었습니다. 서예가로 유명하지만 김정희는 고증학자이며 실학자이기도 했습니다. 더불어,

흥선대원군 시절 병조판서를 지낸 신헌의 도움도 컸습니다. 덕분에 김정호는 희귀한

규장각 도서를 볼 수 있는 길이 열렸던 것입니다.

(사진: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제작하는데 특히 많은 공헌을 한 왼쪽의 최한기와 오른쪽의 신헌.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뜻과 진실] / ⓒ 미상)

보통은 김정호의 작품으로 대동여지도만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청구도, 동여도, 대동여

지도를 3대 작품으로 꼽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산자 김정호는 지리서도 제작했는데,

동여도지, 여도비지, 대동지지를 그의 3대 지리서라고 합니다. 지리서는 그림으로 표현

못하는 기록과 묘사를 글로 적은 것인데, 당시의 사회상을 짐작할 수 있는 소중한 유산

이기도 합니다. 대동여지도의 뜻 자체가 큰 우리땅의 지도인 셈입니다.

그리고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는 하나가 아닙니다. 김정호는 죽을 때까지 자료를

보강하였는데, 그가 남긴 대동여지도는 목판본 외에도 여러 가지 필사본(손으로 직접

베낀 것)이 있습니다. 접는 방식에 따라 몇 개의 그림으로 구성된 지도냐를 가지고

14첩, 18첩, 22첩 등의 대동여지도가 따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목판본의

규모가 너무 크기 때문에 사용자의 편리까지 염두에 둔 작업이었습니다.

(사진: 대동여지도의 진짜 진실은 우수한 편리성과 정확성 뿐만 아니라, 김정호라는

인물의 집념의 결과이기도 하다.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뜻과 진실] / ⓒ ja.

wikipedia.org)

10년이 넘는 기간의 제작 열정과 끝없는 자료조사를 통해 인간 승리의 집념… 이런

점에 의해 고산자 김정호는 후대의 여러 인사에게서 추앙받았고, “고산자 회함” 같은

글이 일제강점기에 조선어 교과서인 조선어독본에도 실렸습니다. 그러나 일제의 조선인

정신 말살정책에 의하여 조선 정부를 비난하는 도구로 역이용되어 대동여지도의 진실이

덮혔습니다. 흥선대원군이 벌을 주었다는 얘기나 전국을 직접 발로 뛰며 지도를 만들

었다는 오해도 여기서 생깁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당시 서양문물을 더 일찍 접한

일제도 놀랄 정도로 정교한 작업을 한 인물이었으며, 지금에도 역사적으로 중요한 일을

해낸 인물로 남을만큼 대단한 업적을 남긴 사람이 고산자 김정호입니다.

이렇듯 큰 획을 그은 김정호이지만 말년에 어떻게 살았는지 어떻게 죽었는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일설에는 폐결핵에 걸려 죽었다는 말도 있지만 그것도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죽을 때까지 지도를 계속 연구하고 수정하며 살았던 것은 분명합니다.

김정호 #대동여지도 #대원군 #고산자 #흥선 대원군 #흥선 #정직이최선 #이흥선

제목이 ‘박대통령의 차명 재산’이란다… 최순실, 최태민의 돈방석… 161024

제목이 ‘박대통령의 차명 재산’이란다… 최순실, 최태민의 돈방석…
년도별/퍼온글

2016-10-24 06:58:24

http://story369.com/Article/ArticleView.php?UID=10202646

MBC에서 해고돼 고발뉴스라는 매체에서 활동 중인 이상호 기자가 자신의 특기인 ‘폭로’를 유감없이 발휘하는 동영상 뉴스를 19일 유튜브를 통해 공개했다.

이상호 기자가 내보낸 뉴스의 내용은 충격적이다.

이상호 기자는 “최태민씨 일가가 수천억대 부동산 재벌이 됐고 이처럼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한 비결은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상호 기자는 최태민씨의 딸인 최순실씨가 사실상 보유하고 있는 수천억원대의 재산이 박 대통령의 차명 재산일 가능성이 있다고 암시한 뒤 “천문학적 규모의 최씨 일가 부동산 구입자금 출처와 자금조성 경위, 또 그 과정에 있어서 박근혜의 지시 및 공모 관계에 대한 조사가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상호 기자가 내보낸 뉴스의 전문과 함께 영상을 소개한다.

이상호 기자가 유튜브를 통해 내보낸 영상뉴스의 전문

70년대 별 볼 일 없던 무당 최태민 일가는 고발뉴스 취재 결과 수천억대 부동산 재벌로 자라났습니다. 최씨 일가의 성공적 비즈니스의 비결은 뭘까요. 바로 박근혜였습니다. 박근혜를 앞세운 최태민, 최순실 40년 비즈니스 행태를 단독 보도해드립니다.

지난 73년 충남 계룡산 일대에서 사이비종교 교주 최태민은 교세 확장을 위해 서울로 상경합니다. 아현동 굴레방다리 작은 상가 한쪽에 신당을 차렸지만 번번이 옮겨 다녀야 할 정도로 빠듯한 생활을 이어가는 무속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결정적 기회가 오고야 맙니다. 75년 3월 청와대 박근혜양에게 보낸 편지에 답장이 오고 나서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근혜양과 한 달 만에 태자마마(최태민)는 구국선교단이라는 종교단체의 총재직에 취임하게 됩니다. 박근혜는 이 단체의 명예총재직을 맡아서 무당 출신 태자마마에게 엄청난 힘을 실어줍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구국선교단 산하에 구국십자군이라는 유사 군사단체도 만듭니다. 중세 서양의 십자군 이래 500년 만에 십자군이 대한민국에서 부활한 것입니다.

십자군까지 동원한 최태민, 박근혜의 전국 조직은 본격적으로 재벌들을 상대로 돈을 뜯어내기 시작했습니다. 대한통운 최원석 회장 등 재벌 60명을 운영위원으로 끌어들였는데 기업인들을 금세 200명 수준으로 불어납니다.

(쌀 한 가마니가 1만원이던 시절) 입단비가 최고 5,000만원, 매달 운영비 200만원은 기본이고 각종 명목의 지원금을 내야 했지만 기업인들은 이 단체 회원이 되는 것을 큰 영광으로 여길 정도였다고 김계원 청와대 비서실장은 한탄했습니다.

“(수석회의 석상에서) 매일 아침에 그걸 논의했대요. 박근혜 문제, 최태민 문제. 최태민과 올라오는 잡음이 하도 많아서 거의 매일 그걸 얘기하다가 언제나 결론은 ‘니가 (해결)해라’였어요.”(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박근혜를 앞세운 최태민 일가의 축재는 독재자 아버지 박정희의 사망으로 잠시 주춤했으나 박근혜가 영남대와 육영재단 등의 이사장 자리에 앉으면서 다시 시작됩니다. 박근혜의 문고리 역할을 하며 군림하던 최태민이 고령으로 물러나자 이제 최순실이 가업을 잇습니다. 하지만 87년 최순실에 대한 각종 특혜 의혹이 불거지면서 박근혜는 육영재단을 끝으로 일선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지난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당시 이명박 측에서 주장한 최태민 일가의 재산 규모는 수백억대로 (이명박 측은) “박근혜의 차명 재산”이라며 검찰 수사를 촉구한 바 있습니다. 5년 뒤인 고발뉴스가 현장 취재한 결과 최태민 일가 부동산은 이명박 측이 제기한 것 외에 3,000억대가 추가로 확인됐습니다.

고발뉴스는 먼저 경기도 하남시 신장동 254-1 미사리 카페촌 도로변 300평 규모의 음식점 부지가 최순실씨 소유임을 확인해 보도했습니다. 이번에 다시 가서 확인해보니 작년 4월 52억원에 임모씨에게 팔린 상태였습니다. 최태민이 사망할 때까지 살았다는 강남구 역삼동 689-25의 두 개 필지는 최순실이 다세대 주택 19세대를 지어서 2002년에 30억원에 매각한 것으로 고발뉴스 확인결과 드러났습니다.

최순실이 88년 매입해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신사동 640-1번지 7층 빌딩입니다. 200억대로 평가되는 이 건물 6, 7층에 한동안 거주했으나 2012년 대통령선거를 전후로 갑자기 이사를 나갑니다.

최순실씨가 비워준 건물 6, 7층에 들어온 사람은 과연 누구였을까. 관리비만 200만원이 넘는 대저택에 들어온 사람은 바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었습니다.

지하주차장에서 곧바로 6층 직행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기 때문에 보안상 유리하다는 이유가 고려됐습니다. 김기춘은 대선 직후인 2013년 1월부터 2013년 8월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나가기 전까지 이곳에 머물렀는데요. 최순실씨와 긴밀한 관계를 가지며 국정초반 청사진을 짰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빌딩 맞은 편 639-11번지 소재 빌딩에는 동부상호저축은행이 들어왔는데요. 이 맞은 편 건물보다 2년 전인 86년 최순실이 구입해서 가지고 있다가 2008년에 지금 주인에게 무려 85억원에 판 것으로 취재 결과 확인됐습니다.

최순실은 이 부동산들이 박근혜의 차명 재산이 아니라는 근거로 자신이 유치원을 해서 번 돈으로 구입했다는 주장을 거듭해왔는데요. 하지만 80억과 200억대 건물을 매입한 시점이 각각 86년과 88년으로 불과 스물아홉 살에 최순실이 이제 막 유치원 영업을 시작한 만큼 유치원을 운영해서 돈을 벌어 건물을 샀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크게 떨어집니다.

최순실의 여동생 최순천 이름으로 된 청담사거리 119-3 일대의 빌딩인데요, 아직 보유하고 있습니다. 1층에 시티은행이 들어와 있는데요. 지하 4층에 지상 9층 총 13층 규모로 가치가 무려 1,500억대로 평가됩니다.

최순실의 여동생 순천씨 이름으로 된 서초구 반포동 50-7번지 또 다른 4층짜리 100억대 상가도 아직 그대로 보유하고 있습니다.

최순실의 바로 위 언니 최태민의 네 번째 딸 순득씨 이름으로 된 강남구 삼성동 45-12 소재 7층 빌딩도 아직 그대로 소유하고 있습니다. 1층에 국민은행이 들어와 있는데 약 1,200억대로 평가됩니다. 박근혜 사저에서 100m도 채 되지 않는 근거리에 위치해 있습니다.

고발뉴스를 통해 지난 2012년 공개된 최순실 일가의 은닉 재산은 3,000억대가 넘습니다만 자금 출처에 대한 설명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보도 이후 4년이 지난 오늘까지 검찰조사는 물론 여타 언론에 후속보도가 나오고 있지 않는 상황입니다.

청산되지 않은 역사는 반복됩니다. 1975년 구국선교단에서 2015년 미르재단에 이르기까지 40년 세월을 한결같이 박근혜를 앞세워 벌여온 최씨 일가의 패밀리 비즈니스는 이제 국민의 이름으로 즉각 중단돼야 합니다.

또한 천문학적 규모의 최씨 일가 부동산 구입자금 출처와 자금조성 경위, 또 그 과정에 있어서 박근혜의 지시 및 공모 관계에 대한 조사도 시급히 이뤄져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박근혜를 앞세워서 지난 40년 최씨 일가가 빚은 전횡의 먹구름으로부터 억눌린 대한민국의 현대사가 비로소 벗어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박통 하야 하라네…161024

박통 하야 하라네…
년도별/퍼온글

2016-10-24 13:40:15

국정원 댓글 없었다는 거짓말로, 시작부터가 거짓말로 시작해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고 거짓말은 또 거짓말,사기꾼 지배 세상!!!

-국정원,국방부 심리전단,보훈처등 댓글강요로 대선 관권개입!!!

-국정원 관권개입이 사실로 판명,대선은 부정선거 판결-채동욱 검찰총장

-국정원 5163 부대, 대선개입 전방위 대규모 컴퓨터해킹 자행,

-국정원 5163 부대 모든 비밀을 알고 있는 국정원 직원 자살

-NLL회의록을 수십번 꺼내들어 문재인 북풍몰이 조작극 자행

-국정원 가짜 무인기 조작, 종북몰이 선동 극단에 달함

-국정원 가짜 간첩조작 사건: 남재준 국정원장 대국민 사과(4월15일)

–4.16 세월호 미성년자 250명 생수장,304명 생수장대참사

-전원구조 오보소동,해경은 세월호에 로프를 묶어 잡아당겨 침몰가중시켜

-구조 0명,박대통령 정수장학회연관 언딘이 구조는 안하고 시신인양

-9명 아직도 미수습,2년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미발견 너무 끔찍!

-세월호 특별법 수사권,기소권도 없는 껍데기 특조위 만들어

-온갖 협박과 방해로 조사 개시한 특조위마저 강제종료! 조사 강제중단

-생수장,구조포기 해경간부에 박대통령 꺼꾸로 승진잔치라니,초경악!!

-결국 세월호 인양도 안하고 증거물도 모두 감추고 악마보다 더하다!

-주한미군 쥬피터실험(세균실험) 한국몰래 미군기지에서 강행!!!

-미군 5월 평택에 몰래 탄저균 반입,시험만 3차례. 민간인 피해입음

-평택에서 5월 메르스 발생,국민을 최대공포로 몰아넣고 사과조차 안함

-故 성완종리스트 뇌물수수 1,2,3대 청와대비서실장 모두 나와 ,

-유정복 인천시장,서병수 부산시장,홍준표 경남지사 뇌물수수액 밝혀

-친일.유신독재 미화 역사교과서 국정화 강행!!친일파들 해도 너무해

-한일 일본군 성노예 문제, 일본가해자 시각으로 합의. 분노감 상승,

-박대통령,일본군 위안부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비용 전액 삭감,

-일본 아베는 위안부에 대해서 털끝만치도 사과할 생각없다는 망발

-새누리,야당이 위안부합의 무효선언하자 모두 퇴장,일본의 하수인인가?

-성과연봉제로 노동조합 붕괴, 노동권리 파괴시키려 해

-노동자 해고 쉽게,정규직을 파견직노동자로 최악의 노동법 개악!!!

-서비스산업 발전법 명분으로 공공의료 민영화 강행,가격폭등 촉진!

-서비스산업 발전법 핑계로 전기,가스,철도등 강제 민영화로 가격인상!!

-원샷법등 대기업,재벌에게만 상속 세금감면등 무제한 특혜,

-부채 5천조원(5조 달러) 시한폭탄, 수출경제의 최대위기국면 도래,

-가계부채 1,300조원 부동산가격 붕괴시 완전 부실 우려!!!

-경제 대불황임에도 대우조선 5조원 국고지원 국민세금 완전낭비,

-개성공단 폐쇄,남북 군사불안 조성에 혈안 정치이용!

-2030세대 최대빈곤 상상초월,실질 청년실업률 30% 육박

-무한정 늘어나는 실업자 문제,아무런 대책조차도 없음,

-금수저 흙수저 양극화를 부추끼고 극대화하고 있음

-전관예우,과도한 수임료등 법조계에 만연한 부정과 비리 드러남
-노무현 강압수사 홍만표 전 검사 구속,진경준 검사 직위해제

-자연파괴에 앞장,백두대간의 자연을 보존하기는 커녕 파괴! 미친 정권!!

-교육부 정책기획관,국민 99%가 개돼지.신분고정화 해야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모든 비리의 최종 종결자 등극!!

-친박계 대표좌장 최경환 롯데로부터 50억원 뇌물수수,친박 갑질에 경악!

-청와대 언론통제가 지금도 버젓이 진행돼, 해도해도 너무한 정권!!!!

-일체 상의나 고려없이 경북 성주에 강제로 사드배치,군민들 촛불들어

-개누리 장례식 거행, 박대통령은 물러가라!! 개누리는 성주를 떠나라!!!

-또 종북몰이냐! 김제동"난 종북이 아니라 경북이야 경북 이새끼들아"

-성주군수,뽑아준 성주군민을 배신하고 사드배치에 찬성하다니 해도해도 너무한 거 아닙니까??

-세월호의 진실을 감추고 보도 통제에 가장 앞장선 전 청와대홍보수석 이정현, 청와대의 1급 내시출신이 어떻게 국정의 핵심인 새누리당 대표! 반성은 없고, 오직 무법천지 상태로 나라를 몇십년 전으로 후퇴시켜

-샥스핀,송로버섯 청와대만찬에 국민들 가슴속에 분노감 최대 팽배해져

-비리종결자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국정원까지도 관리,초경악!!!!
-친일군인,반인권독재자 박정희우상화에 1,873억원 지원,초경악!!!!

-친일 박정희 1인을 위해,역사마저 건국절로 왜곡하다니 천벌 받을 것

-국회 정식 투표절차로 해임의결된 김재수장관을 박대통령 정면 해임거부

-검찰이 박대통령의 내시가 되어 야당핵심 중진들에게 선거법위반등의

탄압,정치의 가장 더러운 측면이란 측면 다 보여줌,

-최순실 게이트, 미르k재단 15일만에 대기업으로 부터 800억 갈취

-정유라 이대 불법 입학,불법 특혜로 이대총장 사퇴

-고영태가 최순실에게 차은택을 소개,새로운 고영태의 존재 드러나

-차은택 게이트, 국정농락의 대표적인 사례. 창조 경제문화 주물럭 돼

-최순실과 박대통령의 관계가 문제해결의 핵심으로 대두!!!!!!!!!!!!!

-NLL회의록 꺼내 북풍몰이하던 그 전례로 송민순회고록 꺼내서 문재인 북풍몰이 또 시도하다니 정말 사람이 아니다.새누리당은 야만 그자체

-백남기 농민 물대포직사 머리 뼈골절,뇌출혈로 식물인간 상태로 방치한 채로 317일만에야 급작스럽게 사망,국가폭력에 의한 사망

-빨간우의 직접해명,"타격이란거 자체가 허무맹랑,경찰의 조작극"

-경찰의 살수차 물대포14bar수압이면 유리,금속,합판,벽돌 모두 파괴..백남기 농민을 살인한 것이다. 전임경찰청장을 구속하라!

-부검을 왜 하려는가? 또 거짓과 사기로 백남기 농민을 두번 죽이려고 수작부리려는 악행인가? 인간이 할 짓인가,정말!!!!!!

-지상파,종편,조중동신문,여론조작기관 4위일체로 독재정권 유지 강화

-어버이연합,엄마부대 등 온갖 관제데모대 시위를 청와대가 지시관여!!!!

-장기집권 반대를 목놓아 외쳤던 대한민국 국민,개헌은 절대 안돼!!!!!!

-청와대 언론통제가 지금도 버젓이 진행돼, 국민의 눈과 귀를 자꾸 속이려 들지마라. 민심이 곧 天心!!!!

2017 신년시 일어나 불을 밝히자… 심갑섭, 전 미주한인문인협회장 시애틀, 촛불

2017 신년시 일어나 불을 밝히자… 심갑섭, 전 미주한인문인협회장 시애틀, 촛불
년도별/예술문학비평

2017-01-11 14:49:13

나라가 부정부패, 국정농란으로 1000만의 촛불이 밝아졌는데도…

알만한 늙은이덜이 헛소리를 해댄다.

바뀐애가 당선됐다고 했을때 ‘기분이 어떠냐’고 도전해 오던 형은 새해가 되었는데도 사랑하는? 동생을 피한다.

왠지는 모르지만 ㅋㅋ

그 때 나는 사랑하는 형에게 대답해 주었다.

‘에이 이제 나라 망했지 뭐!!1’

그 늙은이 들의 머리에는 무었이 들었을까???

어제는 학창시절 제일 친했던? 친구가 전화를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 할 수 없는 ….

그 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사랑하는 조국을 빨갱이들로 부터 지키는 것???

아니면 다른 서민들을 종삼아 노예 삼아 안일한 삶을 영위하는 것???

사회의 도덕이라는 개념과 양심이라는 것이 모두 무너지고 있는데도…

그들이 말하고 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거의 끝은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였다 그런, 그런거 비스므레한…

왜 그들은 대통령을 옹호 하는 것일까???

하여간, 개독들이나 늙은이들이 ‘느낀 점’ 또는 ‘시국 어쩌구 저쩌구’ 개소리를 해대는데…

문인들이레나 개독들이레나? 시라고 뭔 대통령 옹호하는 시를 년초부터 날리고 촛불 조롱하는 시?라라 뭐라나 개떡 같은 글들을 날리는데….

오늘도 우연히 지역 신문에 ‘신년시’라는 기사가 눈에 띈다.

보통, 아이고 뭔 개떡 같은 시인가 하고 열어 보지 않는데…

왠지 자꾸 관심이 가고 열어보고 푼…

혹, 또 뭔 개소리를 썼나 하는 미세한 관심??? ㅋㅋ

근데…

근디… 이게 뭔 일이레나???

전직 협회 회장이라는 양반이 울마나 멋진 시라 휘날리는지 ….

가슴이 뻥! 하고 뚤리네 그랴!!!

지역에 가끔 들여다 보는 신문이…

하나는 약간 개구? 그리고 다른 하나는 거의 개구인데…

이 개구는 그런 개독들이나 문인이랍시고 어용 같은 인간들만 모여 끼리끼리 하는 신문으로 보이는데…

편집인이 시인이 전직문인협회장이라서 시도 안 읽어보고 올린 것인지 아니면 할 수 없이 올린 것인지???

푸하하 시한번 멋져부러!!!!

어떤 시인인지 꼭 한번 만나서 악수라도,,, 아니 식사라도 한끼 하면 으메 좋것네!!!

[신년시] 일어나 불을 밝히자 …심갑섭

조국이여
그동안 얼마나 고통을 참았는가
큰 아픔에도 신음소리 한 번 내지 못했단 말인가
그 많은 의사도 병을 고치지 못하고
그 많은 검사도 잘못을 들추지 못했단 말인가
오랜 부정과 부패에 신경이 무뎌졌는가
백주대낮에 그들이 자행하는 일들을 보면서도
칠흑같은 어둠으로 침묵하고 있어야 만 했는가
핍박당한 백성의 애통함이 이 땅과 하늘에 사무치지 않던가
이 땅의 수 많은 아버지 어머니들을 권력아래 고개 숙이게 하고
협박으로 무릅꿇게 만든 저들이 아니더냐
굴복당한 사람들과 그 가족이 짊어지고 갈
수치와 부끄러움을 생각해 보았는가
간혹 누군가가 용감하게 일어나 촛불을 들었지만
악의 무리는 연약한 불꽃을 어둠속에 묻어버렸구나
모여라, 촛불이여
촛불 한 개는 작은 바람만 불어도 꺼지지만
큰 무리의 촛불은 바람이 거셀수록 타오를 것이다

조국이여
악과의 싸움에서는 악이 그 모양이라도 버릴 때까지 타협하지 말자
악어의 눈물앞에서 주춤하지도 말자
섣부르게 화해와 용서를 훈계하는 소리에 아직은 귀 기울이지 말자
청산되지 않은 과거때문에 지금도 악의 뿌리가 시퍼렇게 살아서
큰 소리치며 거침없이 군림하는 것을 겪고 있지 않은가
저들은 불의에 맞선 이들에게 거짓 누명을 씌우고
삶의 터전과 목숨마저 빼앗은 자들이다
저들에게 연민이나 동정을 속삭이는 값싼 사탕발림에도 현혹되지 말자
지금은 죄 없는 자가 일어나 돌을 던질 때이다
대한의 국민이여, 그대는 죄없다
저 포악한 집단에게 정의의 이름으로 돌을 던져라
절망을 깨부수지 않는 한 희망은 없으리라
세습 독재아래 신음하는 북한 동포에게도
자유와 민주와 평등의 신바람을 전하자
우리의 자녀들이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리게 할 것인가
역사의 수레바퀴를 끌게 할 것인가

이 흉악한 집단을 심판하지 않는다면
2017년 정유년 새해는 없다.

심갑섭
시인

전 서북미문인협회장

신년시 #시 촛불 #심갑섭 #서북미문인 #일어나 불을 밝히자 #국정농란

헬조선 – Total Command 170127

헬조선 – Total Command
년도별/퍼온글

2017-01-27 16:31:11

헬 조선을 총정리한 글…

개구보수들을 흉보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dj를 흉보고 있다…

과연 이런 글들은 누가 만들었을까????? 용….

잘 읽어 보고 근거를 가지고 논리적으로 반박을 한번 해보시라! 아마 반박하기 힘들껄?

이 글을 읽어보고 이번 설연휴 기간에는 먹고 놀지만 말고 생각이란걸 한번 하고 늙어서 꼰대 소리 안듣게

추하게 나이먹고 늙지 말고 이젠 좀 미개하게 살지들 마시라! 나라 돌아가는 꼴이 한심하고 진짜 끔찍하다.

헬조선 사람들의 특징이 다 진실이므로 논리적으로 반박할수는 없지만 사실이라고 인정하기는 싫어한다.

또한, 혼자 죽는다고 하면 악을 쓰고 저항을 하지만 쟤도 죽고 너도 죽고 나도 죽고 다 같이 죽는다고 하면 금방

다 포기하고 조용해졌다. 이런걸 수천년 동안 계속 무한 반복을 했었던게 헬조선의 희한한 역사였다.ㅋㅋㅋ

사회의 모순을 지적하면 빨갱이/패배자가 되는 국가.

젊은이들이 아프면 청춘이 되는 국가.

평범하게 살고 싶으면 죽을만큼 노오오력 해야되는 국가

세상 모든 문제가 내 마음가짐에 달린 문제인 국가.

열쩡과 노오력 두 단어로 모든 사회문제를 외면하는 국가.

사회가 잘못돼서 취업을 못해도 개개인의 노오력이 부족해서 취업이 안되는거라 말하는 국가.

정부가 잘못해서 나라가 망했는데 국민이 욕을먹더니 급기야 미안하다며 전국민이 손주 돌반지에 할머니 금니까지 빼서 나라에 상납하는 국가.

그걸 당연하게 여기며 국가의 문제가 생기면 ‘국민성금’ 을 모아야 하는 국가.

정부가 잘못해서 문제가 생기면 ‘국민성금’ 을 모아야 하는 국가.

그러다 정작 국민한테 문제가 생기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국가.

니 목숨은 니가 알아서 챙겨야 하는 국가.

의무는 산더미인데 권리는 거의 없는 국가.

엘리베이터 닫힘버튼을 너무 많이 눌러서 IMF가 왔다는 말을 정설로 믿는 국가.

3류 가설에 불과한 낙수효과를 국가 최고대학 교수들이 15년간 검증된 정설인줄로 진심으로 믿고있었던 국가.

30년전 작성한 교수노트로 종신교수직 끝날때까지 수업이 가능한 국가.

백수고졸들이 해외사이트에서 가져온 새로운 정보를 대학교수들이 검색해서 줏어가 수업자료로 쓰는 국가.

대학교수가 여학생을 강간하고 남학생을 착취,학대,구타,인분을 먹여도 다른 교수들이 탄원서를 써줘서 피해학생이 나쁜놈이 되는 국가.

그 교수에게 이쁨받으려고 사건의 원인을 피해학생의 내성적이고 비사교적 성격탓으로 매도하는 자들이 학교 친구인 국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결국 상위대학 교수임용은 교수들 지인과 그 자식들만 뽑히는 국가.

기업이 애국심으로 돈버는건 아름다운 일이지만, 국민이 기업에 애민심을 요구하면 피해의식에 찌든 반사회성 인격장애자가 되는 국가.

내 돈은 국가 돈이고, 국가 돈은 기업 돈이고, 기업 돈은 재벌 돈이고, 재벌 돈은 매년마다 최고치를 갱신하는 국가.

돈을 많이 벌수록 세금을 더 적게 내는 국가.

빚지고 토굴같은 단칸방에서 죽지못해 사는 자들이 재벌의 인생을 걱정해주는 국가.

직접세는 낮은데 간접세가 높아 서민들이 먹고사는 것만으로도 빚을 져야하는 국가.

우유가 썩어 돌아 제조업체들이 하수구에 폐기처분 하고있는데, 어찌된 일인지 우유값은 주기적으로 인상되는 국가.

우유값 인상을 핑계로 생필품 값이 오르더니, 마침내 나비효과를 통해 자동차 출고가격까지 올라가는 일치단결된 국가.

어쨌든 괴로우나 괴로우나 나라 사랑해야 하는 국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하는 국가.

그래서 떠나려니 애국심이 부족하다고 바짓가랑이 붙잡는 국가.

한국사회를 비판했더니, 내 부모님도 한국인이니 나의 주장이 틀렸다고 말하는 국가.

국민 4대 의무 다 이행해도 나이가 어리면 사회적 발언권이 없는 국가.

나이가 벼슬인 국가.

극과 극이 상통하는 국가.

좌우 구분은 못하는데 위아래 구분은 확실한 국가.

탈출만이 유일한 답인 국가.

지금 이런 글 쓰면서도 정작 지가 돈벌고 위로 올라가면 태세변환 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는 국민들이 사는 국가.

죄지은 자들이 천국에 살고, 죄짓지 않은 자들이 지옥에서 기어다니는 지옥에게 미안한 국가.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아는 국가.

스펙이 낮으면 스펙을 높이라고 하고, 스펙이 높으면 눈높이를 낮추라는 국가.

회사는 직원의 사생활에 간섭하는 게 당연하지만, 직원은 회사의 내부사정에 간섭하면 실직당하는 국가.

성수저설(인간은 날때부터 물고태어난 수저의 재질로 인생이 결정된다) 이론이 완벽히 성립됨을 입증한 표본국가.

사회문제가 나에게 유리할땐 보편적 현상이고, 나에게 불리할땐 일부의 돌발행동이라 말하는 국가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구분하지 못하는 국가.

공동체주의와 전체주의를 구분하지 못하는 국가.

서민이나 재벌이나 똑같이 받는 간접세는 높게, 부자에게 직접 걷는 세율은 낮게 매기는 나라

매국하면 3대가 잘사는 국가.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하는 국가.

군대에 가는 것은 “국민의 특권”이라 말하면서, 정작 본인과 그 자식들은 무슨짓을 해서라도 그 특권을 거부하는 훌륭한 분들이 정치를 하고있는 국가.

군대 면제된 매국노의 후손들이 군필한 일반 국민들에게 애국심이 부족하다고 호통치는 국가.

대통령, 국회의원이란 호칭 뒤에 ‘님’ 이란 호칭을 또 붙이는, 이중호칭이 생활화된 동방예의지국가.

골 프치고 놀러다니면서 가끔 시민사회에 초청받아 극진한 대접 받는걸 1년 하면 순수연봉 1억6천만원에 사무실,자동차,비서,운전기사를 국민세금으로 무상으로 지급해주고, 품위유지비, 국무집행비 명목으로 수십억원의 자금을 해외여행,자식학자금,부조,축의금,생일선물,회식비,결혼기념선물 비용으로 자유롭게 사용하다가, 은퇴후 평생 죽을때까지 월 수백만원대 연금까지 받아갈 수 있는 신의직업이 있는 국가. (직업명 ‘국회의원’)

국가니 국민이니 열심히 싸우다가도, ‘국회의원 연봉인상안’ 에 대해선 0무효 0반대 100% 찬성으로 표결되는 국가.

정당한 권리를 위해 시위를 하면 종북 빨갱이 취급 받는 국가.

보수라고 한적도 없고, 그냥 진보정당이 무능하다고만 말해도 자동으로 박정희 대통령을 신으로 모시는 일베충이 되는 국가.

재벌이든 중산층이든 서민이든 자신보다 아랫사람에게 갑질하려는 태도는 판박이인 국가.

데려갈 때만 대한의 건아고, 그러다 다치면 남의집 자식인 국가

군대가서 가혹행위를 참으면 의문사, 못 참으면 범죄자를 만드는 나라

월 25만원씩 받으면서 나라 지키다가 다리가 잘려도 평생 치료비 및 피해복구는 자기돈으로 해야하는 국가

불합리한 강제징병을 방치하거나 오히려 옹호하고, 군필자들은 “난 이미 갔다왔어” 라며 제도 개선의 의지가 없는 국가.

밥 먹을때 조차 집단주의적인 국가.

탈조선한 사람이 성공하면, 그래봤자 몸에는 한국피가 흐른다며 자랑스러워하는 나라.

빌게이츠가 자신이 한국인이었다면 이렇게까지 성공할 수 없었을거라고 말한 나라.

피해자가 피해를 호소하면 ‘너도 잘못했잖아’ 라며 가해자와 동일시하는 국가.

범죄자의 범죄 사실보다, 그 범죄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것이 더 큰 범죄인 국가.

인권을 헌법에 보장시켜놓았으나 그 인간의 범위가 매우 좁은 나라.

유교 탈레반
고속도로 1차로를 관광버스(시외.고속도 포함)와 대형 화물차가 정속주행하는 나라.

누구는 비싸게 사고 누구는 싸게 산다며 모두다 공평하게 비싸게 사게 만드는 나라.

나만 공짜로 먹으면 되고, 나만 싸게 사면 되고, 나만 먼저 앉으면 되고, 나만 먼저 가면 되고, 나만
안걸리면 되고, 나만 잘살면 되는 나라.

구급차에 환자 있는지 확인하려고 구급차를 잡아세우는 나라

수학을 태교하는 임산부가 있는 나라.

입시교육 때문에 아이들과 학생들의 인권은 바닥으로 추락하는 나라

죽을 각오로 공부해 대학에 붙었더니 성적비관으로 자살하는 나라 (죽을 각오로 해서 결국 죽었으니 노오력 성공!)

국민의 돈으로 만든걸 정부가 마음대로 외국에 팔아먹는 나라

개신교 탈레반
재벌들의 이익을 위해서 국민과 서민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국가

내리갈굼이라는 미풍양속을 아이부터 노인까지 잘 이어가는 국가

국가를 위해 50억을 기부했더니 쪽방에서 시한부 인생을 맞게 되는 국가

자살선진국
(OECD 국가중 한국이 연령대별로10대~40대의 사망원인중 1위가 ‘자살’ 인것으로 밝혀졌다. 사족으로 50~70대의 사망원인은 1위는 ‘암’ 이었다.)

결혼율보다 이혼율이 더 높은 국가.

후손을 위해서라도 후손을 만들면 안되는 국가
(여담이지만 한낯 짐승들도 환경이 좋지 않으면 절대 후손을 놓지않는다. 말 그대로 자기 먹고살기도 힘들기 때문)

호한호헬(조선을 헬이라 부르는 것)이 불가능한 나라.

갑질과 나일리지가 지배하는 전근대적 신분사회

노동권이 지켜질 기약이 없는 나라.
(적지않은 수의 노동자들은 노동자가 아닌 노비로 전락해버린다)

훈련중에 후배가 선배를 추월한 것이 폭력의 원인을 제공한 합당한 사유로 인정받는 국가.

존재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나라.

목적과 수단이 뒤바뀐 나라

모든 사람이 직업과 관계없이 40살만 넘으면 사장님, 선생님이라 불리는 나라

외국의 좋은 문화도 한국에만 들어오면 헬조선화 되는 하수구같은 나라.

식료품이 하나같이 싸구려 저질 또는 가짜 재료를 사용하고, 그래서 영양가 없고, 그럼에도 비싸고, 심지어 맛없기까지 한 나라.

그래서 외국의 명품 식료품들을 한국에 들여오니 수입업체의 농간으로 헬조선화 시켜 상기 문제점의 일부로 만드는 나라.

국제유가는 내려도 소비자 기름값은 오르는 나라

마약을 해도 마약인지 몰랐다고 하면 죄가 아닌 나라.

정작 엉뚱한 게임을 마약으로 취급하고 아다만티움 규제를 준비하는 나라.

자국의 전통 복식(한복)이 흉기가 된다며 착용자의 호텔 출입을 금지하는 나라. (신라호텔)

나라 지키라고 강제징집한 군인들이 건보료 체납했다고 쥐꼬리만한 월급까지 뺏어가는 나라.

사병 월급이 일용직 노동자 일당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군꼴푸장은 잘만 돌아가는 나라.

노동자들이 노동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주는 것은 당연한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나라.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는 최고수준의 일을 하고, 최고임금을 받는 노동자는 최저수준으로 일하는 나라.

청년 일자리 만든다면서 기업에게 기존 노동자들 자르고 청년들을 비정규직으로 쓰고 버리라고 재촉하는 나라

비정규직 차별 철폐 외치니까 정규직도 비정규직화 시켜서 하향평준화 시켜버리는 나라.

청년 실업률 해결을 위해 한평생 회사를 위해 몸바친 직장인들 월급을 깍아버리는 나라.

소방대원들이 화재 진압을 위해 급히 출동했을때 신호위반과 과속 범칙금을 소방대원들이 사비로 물어야 하는 나라

소방대원들이 화재 진압에 필요한 장비를 사비로 해외사이트에서 구매해야 하는 나라
(정부의 소방안전에 대한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다)

집회, 결사의 자유를 보장 받을 수 없는 나라

삼권이 완벽히 공생하며 권력을 공유하는 나라

굶어 죽을 것 같아 빵을 훔쳤더니 150억 횡령한 놈이랑 똑같이 형량을 사는 나라

대학교를 보내기 위해서 교육을 하는 나라

학생들의 인권과 자유롭게 놀 여가시간을 박살내고, 각자의 개성 또한 박살내고 학부모들 척추 뽑히도록 일한 돈으로 대학교 보내놨더니 결국은 40대 되서 치킨이나 튀기는 나라

흙수저는 그마저도 못하는 나라

국가 정보원이 대선때마다 댓글로 선동하는 나…읍! 으..읍! 읍! 당신들 누구야!

획일화된 입시교육을 따라가지 못하면 무슨 재능을 가지고 있든 간에 사회적 하층민이 되는 나라
한국에서 생산된 한국 물건을 외국에서 사면 30% 이상 더 저렴한 나라

그래서 국민들이 외국에서 한국물건을 샀더니, 국내 기업이 죽는다며 해외직구를 규제하는 나라
정부의 문제점이 아닌 국민을 규제하면 만사가 해결되는 나라.

OECD국가 2012년 통계 부패지수 1위 국가

힘든 노예가 편한 노예들 멸시하면서 우월감 느끼는 나라

떨어진 소비심리를 증진시킨다며 명품에 붙은 세금을 낮추는 나라.

방산비리엔 너그럽고 예비군 복장은 엄격하게 따지는 나라

청나라로부터 크게 바뀐게 없는데, 스스로가 굉장히 발전했다고 여기며 조선을 미개하다고 비웃는 나라.

군대를 가지 않아도 되는 미국국적자가 구태여 자원입대 했다가 장애인이 되었는데, 면제가 아닌 보충역 판정을 내리는 국가(김믿음 청년).

싸이코패스형 범죄자의 범죄 원인은 ‘가정환경’ 이나 ‘개인의 정신적 문제’가 아닌, 당연히 ‘폭력적인 게임’이 되는 국가.

술마시고 범죄를 저지르면 형량을 세일해주는 나라

학교 성교육조차도 숨기는 데만 급급해서 저들도 못 알아먹을 말미잘 다큐멘터리나 보여주는 나라

외모, 키, 소득, 부모직업, 학력을 방송에서 웃음을 핑계로 당연시 묻고, 이 주제를 제외한 토크 컨텐츠는 만들지 못하는 나라

돈을 훔친 가해자보다 돈을 많이 들고다닌 피해자가 잘못이라고 말하는 나라

최신 OS 깔면 은행거래도 제대로 못하는 나라

개인정보 관리는 자기들이 안해놓고 서버 털리면 이용자 책임이 되는 나라

구청에서 죄없는 음식점 위생불량으로 실수로 영업정지 시키고 그 실수로 사장이 빚더미에 쌓이고 인생 망했는데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나라

애들 상대로 장사하는 사람들이 더 돈밖에 모르는 나라

215억 기부했더니 225억 세금을 내라는 나라

세계의 누구보다도 북한을 사랑하면서 왜 본심을 숨기는지 이해가 안 가는 나라

평범하지 않으면 낙오자인 나라

국수주의와 사대주의가 혼합된 나라

기업의 경쟁은 완화하고 국민의 경쟁은 부추기는 국가

한 줄 요약이라면서 수십 줄 쓰는 나라

수십줄이 필요한 글을 한줄로 요약하라는 나라

인재 없으면 망하는 나라인데, 인재를 하찮게 여기는 나라.

프로게이머도 해외로 진출 하는게 더 나은 나라.

강화가 없으면 게임을 안하는 나라

패드립이 없으면 채팅을 안하는 나라

기술은 하찮고 폭력은 우아한 나라

운도 실력이니 불만갖지 말고 노오력 하는 나라.

외국에서 자국민 유학생과 신입 이민자들 등쳐먹는걸로 먹고사는 나라. (조적조)

군 계급보다 군 소속이 더 우선인 나라.

과자로 배를 건조할 수 있는 국가.

일란성 쌍둥이조차도 서열을 구분하고야 마는 나라.

국민부터 국회의원까지 거리낌 없이 인종차별을 하는 나라.

법 만드는 사람은 법 안지켜도 된다는 법이 있는 나라
(불체포특권)

노조가 회사일에 간섭하는걸 불법으로 규정해놓고서, 회사가 망하면 노조가 제할일을 못했다고 욕하는 나라.

국민연금의 대주주인 국민들이 연금의 운영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는 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불만을 갖지 않는 나라.

그 국민연금을 마치 개인 사비인것처럼 자유롭게 쓰는 자들이 공무원인 나라.

직,우회전 차로에서 직진차가 대기하고 있으면 우회전 차가 빵빵이를 울리는 나라.

위안부 피해자들의 눈물과 한을 피해자들과 아무런 사전합의 없이 멋대로 100억에 팔아먹는 나라.
피해자와 한마디 대화도 나눠본 적 없는 판사가 마음대로 가해자를 ‘용서’ 하고, ‘반성의 기미가 보여 감량’ 해주는 나라.

그래서 가해자가 피해자가 아닌 판사에게 ‘용서’ 를 구하는 괴이한 장면이 펼쳐지는 나라.
매년 사이즈가 작아져서 또 사야하는 교복의 가격이 어지간한 성인 기성맞춤양복 가격보다 비싼 나라.

그 비효율적인 교복문화를 법적으로 강제하는 나라.

공공장소인 공원, 산, 해변가에서 제 집처럼 고기를 구워먹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

‘대학 붙었니’,’어느 대학 붙었니?’,’시험점수 얼마 나왔니?’,’취업 했니?’ 같은 민감한 예기를 ‘안부’ 명목으로 자연스럽게 묻는 나라.

여러명이 왕복 인도를 가로막으며 걷는것이 잘못된 것인줄도 모르는 사람들이 사는 교양없는 나라.

과거 여성들이 받던 차별은 반대하면서, 과거 여성들이 입던 혜택은 그대로 가져가려는 여자들이 사는 나라.

자전거 탈 때 두 손 놓고 타는 곡예사들이 많은 나라.

사람 패죽여도 반성문 쓰면 망가 번역한 사람보다 형량 적게 받는 나라

갑부를 위해선 법도 새로 만들지만, 서민들은 있는 법도 보장받지 못하는 나라

자전거도로로 오토바이가 지나가는 나라

치한 당할뻔한 것을 구해주니 치한으로 고소당하는 나라

국민 모두가 크고작은 정신병을 하나 이상 가지고 있는 나라.

한줄평 쓰면서 자기는 다르다 생각하는나라

인터넷 뱅킹 하나 하려면 보안프로그램 20개 깔아야 하는 나라

MS도 버린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사용을 장려하는 나라

게임 폭력성 실험 한다 치고 PC방 전원 차단하는 나라

인터넷에 댓글 좀 제대로 썻다 싶으면 맞춤법 가지고 지랄하는 나라

신설 위키에 하라는 문서 작성은 안하고 반달이나 하고 토막글이나 싸지르는 나라

나보다 잘사는사람 입맛에 맞춰주지않으면 이기주의자라고 몰아붙이는 나라

초등학생이 공무원을 꿈꾸는 나라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나라

멸망이 답인 나라

연대의식은 떨어지나 집단이기주의는 심한 나라

부모가 적(敵)인 나라

정신적으로 힘든데 정신과에 가면 이상하게 보는 나라

언어와 문자를 구분하지 못하는 국가.

민주주의 국가라면서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밑에 사람 있는 국가.

사람을 무조건 윗사람과 아랫사람으로 나누고, 윗사람에게는 깍듯하게 예의를 지켜야 하지만 아랫사람에게 지켜야 할 예의는 존재하지 않는 국가.

짐승과 같은 위계서열의식이 확고하고, 무조건 상명하복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국가.

필연적으로 갑을관계, 갑질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국가.

태어나자마자 1살이고, 모두가 1월 1일만 되면 동시에 나이를 먹어야 하는 국가.

닭대가리의 꼬끼오 한번으로 움직이는 나라

닭의 머리에 사람의 몸통을 가진 ‘반인반닭’이 개XX 두마리 키우면서 경제 말아먹고 있는 국가.

존중과 배려, 역지사지가 없는 국가. 그러면서 자칭 동방예의지국이라 우기는 국가.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국가.

나이가 많으면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없는 국가.

출구로 들어가고 입구로 나가는 국가.

코딩하는 것이 자살행위인 나라.

일본 정부 잘못을 일본 국민까지 싸잡아서 욕하는 국가.

민주주의 국가라면서 세종특별자치시같은 도시를 만든 국가.

특정 재화(휴대폰, 도서 등)를 저렴하게 팔거나 사는 것이 큰 범죄가 되는 국가.

간첩새끼들을 석방시켜주고 적국이 핵을 만들게 해준 대통령을 까면 사회의 핵폐기물, 쓰레기가 되는 나라

쌀로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는 사람이 존재하는 나라

성장기 학생이 하루 8시간도 못자게 하는 나라

흙수저가 어떤 재능이 있어도 재능없는 금수저만도 못하게 사는 나라.

초등학생들이 노동자는 거지, 장애인이라고 믿을 정도로 노동권이 최악인 나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세금을 낭비하며 엉뚱한 것들만 규제하는 이상한 집단이 있는 나라

250명의 고등학교 2학년 어린 꽃들과 54명의 일반인들이 해양조난사고를 당했는데 구해주지 않고 시간만 끌다가 한명도 남기지 않고 몰살시킨 국가

그나마 개인 잠수부들이 어떻게든 구해볼라고 하니까 그거 이용해서 다른 잠수부 죽은 사건에 피의자로 법정에 세운 국가

그 해양조난사고의 주범 이준석 선장 검거 당일밤에 추울까봐 따뜻한 해경간부 아파트에서 재워주는 나라

업무에 대한 책임을 안 지는 상사가 많은 국가.

승진을 하면 할수록 권한과 권리는 늘어나지만 의무와 책임범위는 오히려 줄어드는 국가.

계급, 직급, 나이가 곧 인격이라고 믿는 국가(그래서 “하급자, 젊은이 = 천민, 노예”인 줄 안다).

노동자가 권리 찾으면 빨갱이 되는 나라.

지들은 노동자가 아닌 줄 아는 사람들이 태반인 나라.

하루가 멀다하고 갈수록 살기 어려워지고 높으신 분들 배만 점점 더 불러지는데도 이상할 만큼 조용한 나라.

법에서부터 Post hoc ergo propter hoc(라틴어, 이 뒤에 따라서 이 때문에) 인과의 오류를 범하는 국가.

무조건 비꼬고 돌려서 말하길 좋아하는 사람들만 있는 국가.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국가(꼭 ‘~한 것 같아요’라고 대답).

집단을 개인보다 중요시해야 한다고 지랄대면서 정작 위험에 빠지면 모른 척 하는 나라.

개인 자체의 소중함은 무시한 채 오직 집단 속 존재로서의 개인으로만 생각하며 집단에 대한 희생과 충성만 강요하는 나라.

북괴를 싫어하면서도 정신상태는 북괴와 동급인 나라.

지배층(소위 “높으신 분”, “윗대가리”)에 대한 충성을 국가(=국민)에 대한 충성으로 위장하여 강요하는 나라.

원칙을 지키면 손해보는 나라.

합리적이지 않은 규정을 만들어서 약자에게만 엄격하게 적용하는 나라.

고등학생 이하 미성년자는 사람 취급도 안하는 나라.

국민 모두가 미개한데 자신은 그보다는 낫다고 멀쩡한 기성 세대를 욕하고 정정한 노인을 욕하는 나라.

학생이 성적 비관으로 자살해도 의지력이 약하다며 욕하는 나라.

교육제도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개선의 여부는 미비한 나라.

학창시절 아무것도 안하고 쳐놀다 졸업했으면서 국가는 자신을 봐주지 않는다는 꼴통이 넘쳐나는 나라.

잘못된 교육제도를 자기 일자리라고 존나 빨아대는 선생들이 넘쳐나는 나라.

꼬우면 북한가야 하는 나라.

전생에 우리가 잘못했기에 온 지옥불반도(이번생은 착하게 살자)

헬조선 무적논리 10계명

  1. 다른 나라도 다 똑같다. 거기라고 다를거같냐?
  2. 넌 한국인 아니냐?
  3. 아프리카에서 안태어난걸 다행스럽게 생각해라.
  4. 사람사는데가 다똑같지.. – –
  5. 꼬우면 이민가던가
  6. 요즘 젊은것들은 노력이 부족해 노오오오력이
  7. 꼬우면 엄친아나 금수저로 태어나라
  8. 너네가 지금 이정도로 살수 있는게 누구 덕분인지 아는거냐?
  9. 우리나라정도면 천국이지 ㅡㅡ.
  10. 너 그럼 한국말쓰지마

객관적인 논리로 말하는 반박

  1. 다른 나라도 다 똑같다. 거기라고 다를거같냐?
    똑 같긴 개뿔! 한국 연간노동시간 2010시간에 연소득 3만불, 네덜란드 1320시간에 연소득 7만5천불. 이게 같다니 지나가는 개가 웃을 소리지. 세금 공제한다고 해도 노동시간 대비 임금은 한국보다 높다. 심지어 이 수치는 잔업이랑 야근 제외한거다.
    우루과이 >>> 넘사벽 >>> 한국. 우루과이는 모병제인데 군인을 끝장나게 잘 대우해줘서 서로 군대가겠다고 하는 바람에 병력이 엄청 많다. 한국처럼 손가락짤려도 현역병인 줄 아나 보네.
  2. 넌 한국인 아니냐?
    한국인이면 무조건 다 병신이어야 하는 이유는 뭘까? “넌 한국인 아니냐?” 이 발언 자체가 인종차별이다.
  3. 아프리카에서 안태어난걸 다행스럽게 생각해라.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네덜란드 같은 나라에서 못 태어난걸 불행하게 생각해야지?
    차라리 석기시대가 낫다. 원시인들이 우가우가하던 신석기 시대가 얼마나 살기 좋은지 모르지?
  4. 사람사는데가 다똑같지.. – –
    같은 사람 사는 곳인데 좀 살만한 데랑 똑같으면 얼마나 좋냐
  5. 꼬우면 이민가던가
    이런 놈들이 진정한 매국노다. 도대체 헬조선을 어디까지 망칠 작정인가?[1]왜 그렇게도 좋아하는 고치고자 하는 노오력을 안하지?
  6. 요즘 젊은것들은 노력이 부족해 노오오오력이
    웃기는 소리다. “요즘 젊은것들은 노력이 부족해 노오오오력이”라고 말하는 꼰대들이 삭월셋방 살이집 자식으로 태어나봐라. 아니면 사회복지 충만한 나라에서 태어나든가. 그 말 당장 쏙 들어갈것이다.
  7. 꼬우면 엄친아나 금수저로 태어나라
    본색을 드러내는 천하의 개소리 되시겠다.
  8. 너네가 지금 이정도로 살수 있는게 누구 덕분인지 아는거냐?
    김재규다. 지금 그소리 지껄인 새끼 덕은 절대 아닐 것이고, 노력 하나 없이 꿀빤 486세대의 개소리 되시겠다.
  9. 우리나라정도면 천국이지 ㅡㅡ.
    무슨 천국이 군대가서 맞아죽고 1년에 2000시간 넘게 혹사하나? 개소리도 믿을 수 있게 해야 하는 것이다.
    천국의 마인드는 ‘그건 니 사정’인가보다. 잘 되면 나라덕분, 잘못 되면 니탓 혹은 니 사정.
  10. 너 그럼 한국말 쓰지마ㅡㅡ
    제대로 가르치고나 해라 그 말. 시험에서 안틀리게만 가르쳐놓고 정작 자주 쓰는 말은 가르치지도 않는게 언어 교육이냐?
    우리나라 사람 중 한국말 제대로 쓸 줄 모르는 사람이 어마어마하다.

설선물!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만 만일 설날에 만날 친척이 박사모라면 대처법!ㅋㅋㅋ

시 봄날 송명희 170318

시 봄날 송명희
년도별/예술문학비평

2017-03-18 09:21:19

우리동네, 내가 좋아하는 카수?이자 시인 인 송명희 시인이 시 한 수를 올렸다.

종교자입네 문인입네 하면서 어떤 사람들이 시라는 것을 올리는데 어떤 시는 시인지 횡설수설인지 알 수 없다(순수한 내 개인적 의견 ㅎㅎ)

하지만 송명희 시인은 정말 귀한 시인이다.

선택된 언어가 어디서 어떻게 저런 언어를 찾아낼수 있을까? 어떻게 저렇게 배열할 수 있을까 하는 갘탄을 금치 못한다.

요즘은 말세라서, 또 사이비 마구들이 많은 시대이다 보니…

혹시 누구 노벨상 받을 만큼 훌륭한 시인이 대신 써 준게 아닐까??? 하는… ㅎㅎ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거 노벨상을 줘야하는 시인이 아닌가 하는 감탄을 스스로 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옆칸에는 태국기?라는 시가 올라 와 있다.

자기는 손주하고 죽도록 울었다고.. 승리해서… 자기네가 촛불을 죽였다나 어쨌다나…

그 할베는 뭐가 그리로 감격 스러웠을까???

자기네의 충정이 그리고 아집과 고집스런 애국심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촛불이 자존감을 상실하고 모욕감을 느끼며 고통 속에서 울어야 했는지 조금이라도 생각 해 보았을까???

하여가, 애국심 때문에 그리고 그 삐뚜러진 충성심 땀에 죽도록 울었단다.

자기와 자기의 후손들을 위해서 울라고 성경에 써 있는것도 아는지 모르는지… 문인아라는 할베가 무식하게??? ㅋㅋ

내가 좋아하는 송명희 시인의 시도 가시가 있음을 안다.

나는 그의 시를 감격해서 읽지만 그 시는 또 우리와 다를 의도에서 또 뭔가를 도모하기 위해 쓰여진 시 일 지도 모른다.

구약에 ‘도모하지 말라’고 도 했는데…

하여간, 나는 이 송명희 시인의 단어와 단어 배열과 그리고 그 시가 넘 좋다…

봄날 송명희

술 취한 하늘 품에

고달픈 저녁노을이 붉다

너를 이해하기에 너무도 부족한 봄날

나의 결핍된 밥상 위에

허술한 달빛이 가끔 머물고

긴 한숨에 뜸 들인 저녁이 버겁다

낮으로 풋내 나는 봄볕이 쌓여가고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봄날

아직은 덜 여물어 요란하지 않다

우리 동네 문에는 빗장도 없고

애타게 두드리는 사람도 없는데

나는 문을 자꾸 밀어 본다

잘 익은 사랑을 하기에

봄날은 속이 좁고 영글지 못해

내 한숨은 더욱 깊어만 간다

시 – 무딘 붓으로 그리는 날 -송명희 170624

시 – 무딘 붓으로 그리는 날 -송명희
년도별/예술문학비평

2017-06-24 06:43:08

동네 카수이자 시인인 송명희 시인이 또 오랜만에 시를 올렸다.
사실 몇사람 빼면 올릴만한 쌀람들도 많지 않을 것이다.

시인은 무딘 붓으로 그린다 한다.

나는 고등학교때 부터 쓰던 대붓(16호인가??? 근 50년만에 이런 붓칫수가 떠오르다니…ㅋㅋ)을 쓰고 햇빛이 쨍쨍 내리찌는 문간 앞 물통 위에 내 팽개쳐 놓았다.

왜 그랬는지는 나도 모른다.

그리다 만 풍경화를 그 붓으로 완성하려고 하거나?

가끔 문을 열어 볼때 뜨거운 태양볕에 노출된 오래된 붓을 힐끗 힐끗 본다.

그리곤 몽롱한 기분으로 문을 닫았다.

50년이 된 수채화 붓은 아직도 멀쩡하다.

하지만 나는 붓이 무디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좀이 먹었거나 길이 잘 못든 서예붓은 본 적이 있지만 이상하게도 수채화붓은 별로 상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무슨 다빈치나 고흐처럼 수천만 번의 붓질을 해서 무뎌진 붓도 갖고 있질 못하다.

미술실 기름통에는 공동으로 쓰는 유화붓들이 가끔 다 달아 빠져있기는 했는데…

무딘 붓으로 그리는 날은 어떤 날일까???

시인은 곱쌍하고 우아하게 생겼는데 시골의 변소깐을 운운한다.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들이나 사용했을 것 같은 변소깐 ㅎㅎ

조국에서는 삶의 밑바닥을 연상케하는 시골의 헛간…

참으로 무딘 붓은 시골의 헛간이 보이는 풍경에 잘 어울릴것 같은 생각이 든다.

돌아간 홍대 미대에 다니던 문형이 그리던 범어사의 천년된 뒷벽,

문형은 여름 내내 그 천년 뒷판자의 혼이라도 담을 듯이 칠하고 칠하고 그 위에 또 덧칠을 했었지…

풍만한 헬가가 있을 것 같은 Andrew Wyeth의 헛간들이 있는 풍경…

무딘 붓으로 헛간이 보이는 시골 정경을 담고 싶다….

무딘 붓으로 그리는 날 …송명희

한 여자가 만드는 꿈속에는
오늘이 있고, 한 계절이 있고, 한 해가 있다
지나간 순간, 먼 훗날이
순식간에 그렸다가 지워지고
은빛 허공도 웃으며 걸어 다닌다

그 여자는
구름 속에 뭉쳐진 하루의 지친 종을 꺼내고
숨겨놓은 죄의 날개도 펼쳤다가 접는다
자신의 모습이 너무 낯설다

가난한 행복을 다시 그린다
자른 신문을 쇠고리에 달아 걸어놓은 변소
그래, 화장실이 아니고 변소였다
시골 뒷간 수북이 삭혀진 회색의 거름과
과일주 서너 잔에 불그스레 세상을 얻는 사람들

그래, 평생 덧칠해야지
사철 피는 웃음꽃도 모퉁이에 심고
활짝 핀 꽃망울도 서너 개 달자
삐쩍 마른 태양도 살지게 그려 넣자

50년된 16호? 수채화 평붓

나는 학창시절 이 붓 하나로만 수채화를 그렸다. 작은 붓은 한번도 써 본적이 없는 것 같다.

근데 이게 정말 50년전 학창시절 쓰던 붓인가???

학창시절 상으로 받은 수채화물감을 모두 이민 보따리에 싸갖고 오기는 왔는디…

과연?

불행하게게 며칠 문밖 땡뼡에 방치해 둔 관계로 글자들이 있는 부분의 외장?이 떨어져나가 몇호 붓인지 영어인지 한글인지???

허기사 한국에서도 붓에 한글이 적혀있었던 기억은 없다.

16호도 정확한지 알 수가 없다 갑자기 50년만에 그 숫자가 생각 낫을 뿐이다.

확실한 것은 수채화 평붓중 가장 큰 사이즈를 썻었다는 사실 뿐이다 ㅎㅎ

시 – 별빛에 타 죽더라도…. 송명희 170902

시 – 별빛에 타 죽더라도…. 송명희
년도별/예술문학비평

2017-09-02 08:32:40

시인의 가슴에 블랙홀이 생겼단다.
이거이 뭔일이가?
가슴이 끔찍하다.
뭔일이데…
시, 어휘하나하나 그 깊은 뜻을 헤아리기 쉽지는 않지만…
아름다운 시인이 갑자기 우주 여행을 떠나는 건지 떠도는 건지 가슴에 멍이 들어 온다…

대학시절 아바이 대신 부산 동아화학 야간경비를 서고 돌아오는 새벽에는…

가야 넘어 개금동으로 넘는 고개 아닌 고개가 있었다.

아직 개발이 미치지 않은 곳이라 그냥 민둥산 곳곳에 움퍽움퍽 파인 맨흙 들이였다.

그 고개아닌 고개에 그냥 몇사람들이 걸어 다녔을 것 같은 길같지 않은 길이 있었고…

그 옆으로 세모텐트 같은 움막집에는 미친여자가 살고 있었다.

이른 새벽 밤경비를 서고 돌아올 때면, 그 녀는 항상 부지런히도 뭔가 음식을 만들기 위해 불을 피우고 있었다.

내 손에는 공장에서 야참으로 준 양과? 빵과 달걀이 있었다.

나는 그 것을 그 미친녀자에게 주웠다.

그 녀는 한번도 내얼굴을 본적이 없다.

나는 점점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녀가 나를 바라보는 순간 우리의 관계는 끝날 것만 같았다.

그러나 거의 마지막날..

내가 대학을 졸업할 때 쯤인가?

아니면 그 후 교편을 잡고도 방학이나 휴일에 부산에 들르면 아바이 대신 야간 경비를 나가곤 했는데…

하여간…

그 마지막 쯔음에 그녀는 이른 새벽 빵과 겨란을 주는 날 쳐다 보았다.

왜 쳐다 보았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 순간 끔찍했다.

그리고도 몇번 더 우리는 만났다.

그리고 그녀는 내가 빵과 달걀을 줄 때는 나를 쳐다 보았다.

그 표정이 어떤 것인는 기억에서 사라져 갔지만…

어쩌면 그녀와 나의 관계는 끝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인지 했는지도 모른다.

다행히 우리는 무리한? 이별은 할 필요가 없었다.

곧 그 동네가 개발이 되면서 그 녀는 더 높은 곳으로 쫓겨 갔고 그 후에는 그 높은 곳에서도 쫓겨갔는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시인의 새로운? 시를 보면서..

멍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시의 의미는 무엇일까??

참으로 시인의 속은 알 수가 없다…

별빛에 타 죽더라도 …송명희

가슴에 블랙홀이 생겼다
그 둘레는 짐작하기 어렵다.
순간의 욕망이 자리할 땐 천칭자리만큼
사랑의 구속이 몰려올 땐 염소자리만큼

우주에 버려진 먼지로
내 가슴에 자리한 당신은
별과 나와의 거리만큼
멀어졌다 다시 다가오곤 한다.

생전 처음 시작한 공간 여행
그대를 품고 떠나려 한다
별 행성 은하를 향해 여행을 나선다
일상을 묻어두고 또 다른 시간 속으로 들어간다

사랑도 미움도 순간이고 착각이라
지구의 사람들이 말했기에
영원을 찾아 아름다운 별로 떠날 것이다.
뜨거운 별빛에 타 죽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