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적인 한국 근대사-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와 이흥선 대원군 – 정직이최선 161017

충격적인 한국 근대사-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와 이흥선 대원군 – 정직이최선
년도별/퍼온글

2016-10-17 08:03:14

흥선 대원군은 나쁜 사람이었을까요?

저는 역사가 외곡 되었다고 봅니다.

15세기까지 교황청이 최고의 권력기관 이었고 그 후 로스차일드가 권세를

잡았으며 일루미나티를 창설합니다. 프리메이슨이란 좋은 조직에 침투하여

프리메이슨을 일루미나티화 시킵니다…

일본의 막부시대도 서양의 지원으로 이루어졌으며 서양의 지원은 로스차일드가입니다.

로스차일드 대리인인 록펠러가의 지원은 한국에도 이루어 졌습니다.

루이스헨리 세브란스는 부호 록펠러의 동업자이기도 한 그는 1900년대 초에 이름

모를 동양의 작은 나라를 위해 4만 5천 달러를 내놓았고 우여곡절 끝에 1904년

세브란스 병원이 지어졌습니다.

미국의 소득세는 어디로 갈까요? 30%가 교황청으로 가고 있다고 세계은행

메니저가 폭로 했습니다. 그럼 교황청의 자금은 누가 관리할까요?

로스차일드 대리인인 jp모건이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럼 교황청이 강할까요? 로스차일드가 강할까요?

이 문제는 가족으로 대물림하는것과 한시적인 교황의 권력을 이용하는 것.

생각해보면 나옵니다.

로스차일드 대리인들 일부만 나열합니다.

록펠러의 성공신화: 록펠러는 중.소 규모의 석유개발업체 사장이었습니다.
록펠러는 원대한 꿈을 꾸고 로스차일드를 찾아가게 됩니다.

모든 석유회사를 합병하고 싶습니다. 자금을 지원해 주십시오.

자금을 지원해주실 경우 독점체제 이므로 저에겐 가격결정권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로스차일드 백작님에겐 안전한 이자수익이 보장되게 됩니다.

로스차일드의 지원하에 지금의 록펠러 그룹이 생겼으며 너무나 거대하여 정부에서는 분할을

명령합니다. 지금의 세계10대 메이저 정유사들이 대부분 록펠러그룹에서 분사한 똑같은

그룹입니다. 회사는 분할됐지만 대리인을 내세운 지분율로 기존의 회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록펠러의 자산은 1경 2000조라는 천문학적인 미국에서 가장잘나가는 대리인이 됩니다.

(ibrd, imf, frb주주) 시티은행 = fncb은행

록펠러와 한국: 루이스헨리 세브란스는 부호 록펠러의 동업자이기도 한 그는 1900년대 초에 이름 모를

동양의 작은 나라를 위해 4만 5천달러를 내놓았고 우여곡절끝에 1904년 세브란스 병원이 지어졌다.

철도왕 밴더빌트: 록펠러와 똑같은 경로로 성공합니다.

골드만삭스: 마르쿠스 골드만은 로스챠일드의 지원으로 철도채권을 어루만지며 거대한

성장가도를 달린다. (ibrd, imf, frb주주)

GE: 에디슨 기업으로 알려져있죠? 나중에 투자자인 jp모건에게 회사를 뺏기게됩니다.

지금도 jp모건의 자회사로 되어있습니다.

jp모건의 성공신화: 미국에서 성공한 상인이 로스차일드를 찾아갑니다.

로스차일드는 유대인 상인인 피버디를 국제금융가로 키워줍니다.

그는 자식이 없었으며 직원인 존피어폰트 모건에게 재산을 상속하게 됩니다.

피버디 금융그룹을 이어받은 모건은 사명을 jp모건으로 변경하며 미국에서 은행업으로

커다란 성공을 하게 됩니다.(ibrd, imf, frb주주)

아브라함 쿤 쿤롭그룹: 로스차일드의 대리인이며 로스차일드의 그림자같은 존재이다.

(ibrd, imf, frb주주)

출처: http://kiss7.tistory.com/660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뜻과 진실 – 흥선대원군시대의 지도

저작권법: 단, 직접 복사할 경우엔 반드시 원문주소 필수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뜻과 진실 – 흥선대원군시대의 지도

지도는 기술이며 문명입니다. 인공위성도 없던 시대에 정확한 지도를 만든다는 것은,

지금으로 치면 첨단기술을 가진 것과 같다고 합니다. 이런 일을 해낸 사람이 고산자

김정호지만, 흥선대원군 일화 등 알게 모르게 잘 못 알려진 것들이 꽤 많습니다. 다행히

대동여지도의 진실이 서서히 알려지고 있긴 합니다. 김정호의 호인 고산자의 뜻에서도

알 수 있듯이, 김정호는 인생의 많은 시간을 정확한 지리정보를 위해 헌신한 인물입니다. 그의 헌신 덕분에 우리는 대동여지도라는 세계적인 지도를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동여지도란 뜻은 큰 조선 땅의 지도라는 뜻입니다.

고산자 김정호와 흥선대원군에 얽힌 오해와 진실

이제는 제법 알려져서 다행이지만, 한동안 잘 못된 정보 때문에 지식인들이 안타까워

했던 것이 있습니다. 바로 흥선대원군과 고산자 김정호에 대한 얘기, 대동여지도의

진실입니다. 대동여지도란 뜻은 조선(大東) 여지(輿地) 도(圖)입니다. 여지는 수레라는

의미에서 파생해서 땅이라는 의미로도 쓰입니다.

고산자 김정호가 지도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겨우 대동여지도를

완성했더니, 이를 본 흥선대원군은 대로하여 김정호를 옥에 가두고 고문했다는 것입

니다. 쇄국정책을 하던 흥선대원군의 눈에는 국내의 군사, 지리 정보를 유출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였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대동여지도의 진실이 많이 바로 잡혀졌지만, 아직도 몇몇 어린이 역사만화에는

이런 얘기가 있다고 합니다. 어릴 때 이런 일화를 읽으며 자란 성인들 중에는 아직도

이것을 사실처럼 알고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사진: 조선말기의 흥선대원군. 쇄국정책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보고 벌을 줬다는 것은 진실이 아닌 낭설이다. [고산자 김정호와

흥선대원군에 얽힌 오해와 진실] / ⓒ 미상)

하지만 막상 역사를 뒤져보면 흥선대원군이 고산자 김정호를 옥에 가두고 고문을 했다는 사실은 찾아볼 수가 없다고 합니다. 더구나, 흥선대원군이 대동여지도의 인쇄 목판본을

불에 태워버렸다는 설은, 목판본들이 멀쩡히 발굴됨으로써 낭설이라는 것도 밝혀졌습니다. 실제로 국립중앙박물관 등에는 목판본이 전시 중입니다.

이런 거짓의 시초는 “조선어독본”이라고 합니다. 조선어독본은 일제강점기의 국어교과서

였습니다. 초기에는 국어독본이 필수였지만, 일제의 말살정책이 강화되면서 일본어가

기본 필수과목이 되고 조선어는 선택과목이 되었습니다. 일제가 국어교과서인 조선어

독본에 이런 거짓을 넣은 이유가 뭘까요? 조선인의 정신을 무력화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흥선대원군의 조선 정부는 대동여지도의 중요성도 모르는 무식한 정부라고 주입하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사진: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에서 제작한 조선어독본이라는 책으로 국어를 공부

했었다. 이 사진은 1학년용이다. [고산자 김정호와 흥선대원군에 얽힌 오해와 진실]

/ⓒ 김한영

조선어독본에 고산자 김정호와 흥선대원군의 거짓 일화가 적힌 것에는 육당 최남선이

조선어독본에 참여한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최남선은 당시 이광수, 홍명희와 함께

조선 3대 천재로 꼽히던 인물입니다. 신체시인 “해에게서 소년에게”로도 유명한 최남선

은 처음에는 친일인사가 아니었습니다. 3.1 만세운동에서 민족대표 33인 중 하나로,

기미독립선언서를 작성한 인물이 최남선입니다. 일제의 식민역사에 맞서 단군론을 주장

하기도 했지만, 말기에는 조선 청년들에게 일본 황국의 병사로 전쟁에 참여하라고 주장

하며 친일파로 변절하였습니다.

나름 지도에 관심이 있고 고산자 김정호의 공을 높이 샀던 최남선은 어떤 신문에서

흥선대원군과 김정호에 대해 언급하였는데, 그 글이 조선어 독본에 그대로 실렸던

것입니다. 일제의 입장에서는 정신 말살에 좋은 자료인 셈입니다.

(사진: 일제강점기 조선 3대 천재인 최남선, 이광수, 홍명희의 사진. 대동여지도의

진실이 왜곡된 것은 왼쪽 끝의 최남선이 시초인 것으로 보인다. [고산자 김정호와

흥선대원군에 얽힌 오해와 진실] /ⓒ 미상)

흥선대원군과 김정호에 대한 오해와 진실 외에도 또 하나의 논란이 있는데, 고산자

김정호가 정말로 전국을 다녀서 대동여지도를 만들었냐는 것입니다. 이 역시도 최남선

의 “고산자를 회함”에서 최초로 언급되며 오해를 불러일으킨 속설입니다. 악의적인

의도가 없이 김정호의 노력을 높이 사기 위해 언급된 말이지만, 그 후 한동안 대부분의

대한민국 사람이 정말로 믿게 되는 문제를 낳았습니다. 조선 말기는 낡고 무식했다는

의식이 강하다 보니 김정호가 혼자의 힘으로 거대한 일을 해냈다는 얘기가 먹힐만한

소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동여지도를 살펴보면 고산자 김정호가 이전의 다른 지도들을 참고한 흔적이

발견될 뿐만 아니라, 관인으로써 지도제작을 맡은 기간 안에 당시의 교통 수준을

이용해서 이렇게 정밀한 지도를 만든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라고

보입니다. 이렇듯 대동여지도의 진실은 따로 있었습니다.

(사진: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대동여지도의 뜻은 큰 조선의 땅을 그린 지도라는

뜻이다. 규모가 클뿐 아니라 정확도 또한 높다. [고산자 김정호와 흥선대원군에 얽힌

오해와 진실] /ⓒ 고산자 김정호)

고산자 김정호의 놀라운 대동여지도와 독도

전국을 일일이 다닌 것이 아니라 일부만 답사된 것이고, 그 외에는 기존에 만들어졌던

다른 지도들을 종합하여 만들어졌다는 것이 정설인 대동여지도. 그러나 현대인도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정확하고 거대한 규모로 놀라움을 주고 있습니다. 대동여지도의 크기는 3층 높이 정도의 공간이 있어야만 전체를 펼칠 수 있을 만큼 거대합니다. 축척은 실물의

16만 분의 1 크기입니다. 그래서 고산자 김정호는 대동여지도를 200여 개의 조각으로

나눠서 제작한 후 다시 연결하여 접었다가 펼칠 수 있도록 고안하였습니다.

흥선대원군에 의해 김정호의 목판이 부서졌다는 낭설이 있는데, 지도를 찍기 위한

인쇄용 목판의 일부가 현존하고 있으며, 목판만 해도 60여 개가 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지도가 너무 크다 보니 전도를 발간하기가 힘들어서, 간행된 대동여지도들은 대부분

축소된 영인본들이라고 합니다.

(사진: 검색엔진에서 대동여지도를 검색한 캡처모습. 가운데 사진을 보면 대동여지도가

얼마나 어마어마한 규모인가를 알 수있다. [고산자 김정호의 놀라운 대동여지도와 독도]

/ⓒ 캡처)

흥선대원군의 미움을 샀다는 낭설과는 다르게, 실제 조선은 지도가 더욱 필요했던 국가

입니다. 중앙에서 지방 곳곳에 관리를 보내 다스리는 중앙집권 국가였기 때문입니다.

고산자 김정호가 어떤 경로를 밟아서 지도제작에 참여하게 되었는지 기록이 없어서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 심지어 대동여지도의 제작자가 김정호인가의 진실도 의문을

가지던 때가 있었습니다.

대동여지도의 제작은 1800년대 역사에서 실학과 지리정보학에서 큰 획을 그은 사건

입니다. 김정호가 교류했던 신헌, 김정희 등이 흥선대원군의 주변에 있었기 때문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대동여지도는 김정호가 창안한 기호체계로 기록되어,

과거에 일일이 한자로 써넣었던 지도에 비해 편리하고 직관적인 지도입니다. 서양의

과학기술을 받아들여 훨씬 정확해졌으며, 대량 인쇄 보급도 가능했고, 인구와 면적

등이 조사된 통계자료까지 담고 있습니다.

(사진: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중 서울 부분 지도. 산은 산맥을 위주로 그렸으며 굵으면 높은 산이다. 강과 각 지명까지 그려져 있다. [고산자 김정호의 놀라운 대동여지도와 독도] /ⓒ 서울시립박물관 소장본)

대동여지도의 김정호가 스스로 호를 고산자라고 붙인 뜻은 그만큼 지도에 대한 애착을

알 수 있는 단면입니다. 어릴 때부터 지도 그리기를 좋아하던 김정호의 3대 지도는 청구도, 동여도, 대동여지도입니다. 그중에 청구도가 첫 지도인데 대동여지도와는 다르게

책처럼 되어 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학생들의 역사지리부도와 같은 형식입니다.

청구도도 뛰어난 점이 많지만 인쇄본이 아니라서 직접 베껴 쓰는 필사본으로 간행되다

보니 점점 오류가 많아지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대동여지도를 만들기 전에 동여도를 먼저 만들어보고(그러나 지리정보는 동여도가 훨씬 많다), 최종적으로

대동여지도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직접 발로 뛰어 만들었다는 속설과 달리, 고산자

김정호는 삼국사기, 고려사부터 신동국여지승람, 팔도총도, 동국팔역도, 해동여지도 등

수많은 지도를 연구한 후 대동여지도에 흡수시켰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구전후도 같은

세계지도 제작에도 참여했다고 합니다.

(사진: 고산자 김정호의 3대 지도 중 첫번째에 해당하는 청구도의 모습. 이 지도는 지도책 형식으로 되어 있다. [고산자 김정호의 놀라운 대동여지도와 독도] /ⓒ 김정호)

항 간에는 대동여지도에 독도가 없어서 곤란하다느니, 대마도가 나와 있다느니 하는 오해도 많습니다. 1500년대에 만들어진 조선방역지도에는 대마도가 표기되어 있었지만, 대동여지도에는 대마도가 있지 않습니다. 다만 대동여지도를 축소하여 새로 만든 대동여지전도에는 대마도가 표시되어 있는데, 대동여지도와 혼동하는 경우가 자주 있는 것입니다.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의 최초 목판본에는 독도가 표시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무인도일 뿐인 섬을 위해 목판본을 더 추가하는 것이 어려웠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대동여지도의 목판본과 거의 동시대에 만들어진 대동여지도 필사본에 독도가 그려져 있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대동여지도는 제작기간만 해도 10년이지만 이후에도 추가 작업은 계속되었는데, 이 대동여지도 필사본은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진실인 듯 보입니다.

(사진: 대동여지도의 필사본에 나와 있는 울릉도와 독도의 모습. YTN뉴스 캡처.

[고산자 김정호의 놀라운 대동여지도와 독도] / ⓒ YTN)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뜻과 진실

고산자 김정호는 딱히 기록이 남겨지지 않아서 출생과 행적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조선은 기록문화가 발달했고 족보 제도가 있었으므로 이런 기록이 없다는 것은 그가

중인이 아니었겠냐는 추측을 하게 합니다. 하지만 친구 최한기가 양반이었고, 이후에도

여러 양반신분들과 교류를 했던 것으로 보면 몰락한 양반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김정호는 1800년대에 황해도에서 태어났고, 지리학자이며 실학자입니다. 당시 청나라는 서구의 과학과 문화를 받아들이고 있었는데, 그 영향이 조선에 와서 실학으로 연구되고

있었습니다. 지인들의 기록에 의하면 스무 살 때부터 지도제작에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나타납니다. 김정호의 호인 고산자의 뜻은 옛 고, 메 산, 아들 자로 되어 있습니다

(古山子). 다른 기록에 의하면 김정호 스스로 고산자를 지었다고 합니다.

(사진: 고산자 김정호의 초상화. 고산자의 뜻은 옛고, 메 산, 아들 자자를 사용하고

있다. 대동여지도 등 조선말 실학에 큰 공헌을 하였다.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뜻과 진실] / ⓒ 미상)

동시대를 살았던 김정호의 인맥으로는 최한기, 신헌, 김정희 등이 있습니다. 최한기는

김정호와 매우 친한 친구사이였는데, 부유한 양반 가문에서 태어나서 중국의 수많은

책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최한기도 지리, 천문 등에 다양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김정호를 여러 방면에서 지원해 주었으며 수집한 자료들을 김정호와 함께 연구하기도

했습니다. 고산자 김정호에게 최한기 같은 친구가 있었기에 중앙에 있는 인맥을 통해

고급 자료들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을 것입니다.

최한기는 실학자 김정희의 제자였기에 김정호도 추사 김정희와 교류를 할 수 있었습니다. 서예가로 유명하지만 김정희는 고증학자이며 실학자이기도 했습니다. 더불어,

흥선대원군 시절 병조판서를 지낸 신헌의 도움도 컸습니다. 덕분에 김정호는 희귀한

규장각 도서를 볼 수 있는 길이 열렸던 것입니다.

(사진: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제작하는데 특히 많은 공헌을 한 왼쪽의 최한기와 오른쪽의 신헌.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뜻과 진실] / ⓒ 미상)

보통은 김정호의 작품으로 대동여지도만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청구도, 동여도, 대동여

지도를 3대 작품으로 꼽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산자 김정호는 지리서도 제작했는데,

동여도지, 여도비지, 대동지지를 그의 3대 지리서라고 합니다. 지리서는 그림으로 표현

못하는 기록과 묘사를 글로 적은 것인데, 당시의 사회상을 짐작할 수 있는 소중한 유산

이기도 합니다. 대동여지도의 뜻 자체가 큰 우리땅의 지도인 셈입니다.

그리고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는 하나가 아닙니다. 김정호는 죽을 때까지 자료를

보강하였는데, 그가 남긴 대동여지도는 목판본 외에도 여러 가지 필사본(손으로 직접

베낀 것)이 있습니다. 접는 방식에 따라 몇 개의 그림으로 구성된 지도냐를 가지고

14첩, 18첩, 22첩 등의 대동여지도가 따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목판본의

규모가 너무 크기 때문에 사용자의 편리까지 염두에 둔 작업이었습니다.

(사진: 대동여지도의 진짜 진실은 우수한 편리성과 정확성 뿐만 아니라, 김정호라는

인물의 집념의 결과이기도 하다.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뜻과 진실] / ⓒ ja.

wikipedia.org)

10년이 넘는 기간의 제작 열정과 끝없는 자료조사를 통해 인간 승리의 집념… 이런

점에 의해 고산자 김정호는 후대의 여러 인사에게서 추앙받았고, “고산자 회함” 같은

글이 일제강점기에 조선어 교과서인 조선어독본에도 실렸습니다. 그러나 일제의 조선인

정신 말살정책에 의하여 조선 정부를 비난하는 도구로 역이용되어 대동여지도의 진실이

덮혔습니다. 흥선대원군이 벌을 주었다는 얘기나 전국을 직접 발로 뛰며 지도를 만들

었다는 오해도 여기서 생깁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당시 서양문물을 더 일찍 접한

일제도 놀랄 정도로 정교한 작업을 한 인물이었으며, 지금에도 역사적으로 중요한 일을

해낸 인물로 남을만큼 대단한 업적을 남긴 사람이 고산자 김정호입니다.

이렇듯 큰 획을 그은 김정호이지만 말년에 어떻게 살았는지 어떻게 죽었는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일설에는 폐결핵에 걸려 죽었다는 말도 있지만 그것도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죽을 때까지 지도를 계속 연구하고 수정하며 살았던 것은 분명합니다.

김정호 #대동여지도 #대원군 #고산자 #흥선 대원군 #흥선 #정직이최선 #이흥선

제목이 ‘박대통령의 차명 재산’이란다… 최순실, 최태민의 돈방석… 161024

제목이 ‘박대통령의 차명 재산’이란다… 최순실, 최태민의 돈방석…
년도별/퍼온글

2016-10-24 06:58:24

http://story369.com/Article/ArticleView.php?UID=10202646

MBC에서 해고돼 고발뉴스라는 매체에서 활동 중인 이상호 기자가 자신의 특기인 ‘폭로’를 유감없이 발휘하는 동영상 뉴스를 19일 유튜브를 통해 공개했다.

이상호 기자가 내보낸 뉴스의 내용은 충격적이다.

이상호 기자는 “최태민씨 일가가 수천억대 부동산 재벌이 됐고 이처럼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한 비결은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상호 기자는 최태민씨의 딸인 최순실씨가 사실상 보유하고 있는 수천억원대의 재산이 박 대통령의 차명 재산일 가능성이 있다고 암시한 뒤 “천문학적 규모의 최씨 일가 부동산 구입자금 출처와 자금조성 경위, 또 그 과정에 있어서 박근혜의 지시 및 공모 관계에 대한 조사가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상호 기자가 내보낸 뉴스의 전문과 함께 영상을 소개한다.

이상호 기자가 유튜브를 통해 내보낸 영상뉴스의 전문

70년대 별 볼 일 없던 무당 최태민 일가는 고발뉴스 취재 결과 수천억대 부동산 재벌로 자라났습니다. 최씨 일가의 성공적 비즈니스의 비결은 뭘까요. 바로 박근혜였습니다. 박근혜를 앞세운 최태민, 최순실 40년 비즈니스 행태를 단독 보도해드립니다.

지난 73년 충남 계룡산 일대에서 사이비종교 교주 최태민은 교세 확장을 위해 서울로 상경합니다. 아현동 굴레방다리 작은 상가 한쪽에 신당을 차렸지만 번번이 옮겨 다녀야 할 정도로 빠듯한 생활을 이어가는 무속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결정적 기회가 오고야 맙니다. 75년 3월 청와대 박근혜양에게 보낸 편지에 답장이 오고 나서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근혜양과 한 달 만에 태자마마(최태민)는 구국선교단이라는 종교단체의 총재직에 취임하게 됩니다. 박근혜는 이 단체의 명예총재직을 맡아서 무당 출신 태자마마에게 엄청난 힘을 실어줍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구국선교단 산하에 구국십자군이라는 유사 군사단체도 만듭니다. 중세 서양의 십자군 이래 500년 만에 십자군이 대한민국에서 부활한 것입니다.

십자군까지 동원한 최태민, 박근혜의 전국 조직은 본격적으로 재벌들을 상대로 돈을 뜯어내기 시작했습니다. 대한통운 최원석 회장 등 재벌 60명을 운영위원으로 끌어들였는데 기업인들을 금세 200명 수준으로 불어납니다.

(쌀 한 가마니가 1만원이던 시절) 입단비가 최고 5,000만원, 매달 운영비 200만원은 기본이고 각종 명목의 지원금을 내야 했지만 기업인들은 이 단체 회원이 되는 것을 큰 영광으로 여길 정도였다고 김계원 청와대 비서실장은 한탄했습니다.

“(수석회의 석상에서) 매일 아침에 그걸 논의했대요. 박근혜 문제, 최태민 문제. 최태민과 올라오는 잡음이 하도 많아서 거의 매일 그걸 얘기하다가 언제나 결론은 ‘니가 (해결)해라’였어요.”(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박근혜를 앞세운 최태민 일가의 축재는 독재자 아버지 박정희의 사망으로 잠시 주춤했으나 박근혜가 영남대와 육영재단 등의 이사장 자리에 앉으면서 다시 시작됩니다. 박근혜의 문고리 역할을 하며 군림하던 최태민이 고령으로 물러나자 이제 최순실이 가업을 잇습니다. 하지만 87년 최순실에 대한 각종 특혜 의혹이 불거지면서 박근혜는 육영재단을 끝으로 일선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지난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당시 이명박 측에서 주장한 최태민 일가의 재산 규모는 수백억대로 (이명박 측은) “박근혜의 차명 재산”이라며 검찰 수사를 촉구한 바 있습니다. 5년 뒤인 고발뉴스가 현장 취재한 결과 최태민 일가 부동산은 이명박 측이 제기한 것 외에 3,000억대가 추가로 확인됐습니다.

고발뉴스는 먼저 경기도 하남시 신장동 254-1 미사리 카페촌 도로변 300평 규모의 음식점 부지가 최순실씨 소유임을 확인해 보도했습니다. 이번에 다시 가서 확인해보니 작년 4월 52억원에 임모씨에게 팔린 상태였습니다. 최태민이 사망할 때까지 살았다는 강남구 역삼동 689-25의 두 개 필지는 최순실이 다세대 주택 19세대를 지어서 2002년에 30억원에 매각한 것으로 고발뉴스 확인결과 드러났습니다.

최순실이 88년 매입해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신사동 640-1번지 7층 빌딩입니다. 200억대로 평가되는 이 건물 6, 7층에 한동안 거주했으나 2012년 대통령선거를 전후로 갑자기 이사를 나갑니다.

최순실씨가 비워준 건물 6, 7층에 들어온 사람은 과연 누구였을까. 관리비만 200만원이 넘는 대저택에 들어온 사람은 바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었습니다.

지하주차장에서 곧바로 6층 직행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기 때문에 보안상 유리하다는 이유가 고려됐습니다. 김기춘은 대선 직후인 2013년 1월부터 2013년 8월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나가기 전까지 이곳에 머물렀는데요. 최순실씨와 긴밀한 관계를 가지며 국정초반 청사진을 짰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빌딩 맞은 편 639-11번지 소재 빌딩에는 동부상호저축은행이 들어왔는데요. 이 맞은 편 건물보다 2년 전인 86년 최순실이 구입해서 가지고 있다가 2008년에 지금 주인에게 무려 85억원에 판 것으로 취재 결과 확인됐습니다.

최순실은 이 부동산들이 박근혜의 차명 재산이 아니라는 근거로 자신이 유치원을 해서 번 돈으로 구입했다는 주장을 거듭해왔는데요. 하지만 80억과 200억대 건물을 매입한 시점이 각각 86년과 88년으로 불과 스물아홉 살에 최순실이 이제 막 유치원 영업을 시작한 만큼 유치원을 운영해서 돈을 벌어 건물을 샀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크게 떨어집니다.

최순실의 여동생 최순천 이름으로 된 청담사거리 119-3 일대의 빌딩인데요, 아직 보유하고 있습니다. 1층에 시티은행이 들어와 있는데요. 지하 4층에 지상 9층 총 13층 규모로 가치가 무려 1,500억대로 평가됩니다.

최순실의 여동생 순천씨 이름으로 된 서초구 반포동 50-7번지 또 다른 4층짜리 100억대 상가도 아직 그대로 보유하고 있습니다.

최순실의 바로 위 언니 최태민의 네 번째 딸 순득씨 이름으로 된 강남구 삼성동 45-12 소재 7층 빌딩도 아직 그대로 소유하고 있습니다. 1층에 국민은행이 들어와 있는데 약 1,200억대로 평가됩니다. 박근혜 사저에서 100m도 채 되지 않는 근거리에 위치해 있습니다.

고발뉴스를 통해 지난 2012년 공개된 최순실 일가의 은닉 재산은 3,000억대가 넘습니다만 자금 출처에 대한 설명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보도 이후 4년이 지난 오늘까지 검찰조사는 물론 여타 언론에 후속보도가 나오고 있지 않는 상황입니다.

청산되지 않은 역사는 반복됩니다. 1975년 구국선교단에서 2015년 미르재단에 이르기까지 40년 세월을 한결같이 박근혜를 앞세워 벌여온 최씨 일가의 패밀리 비즈니스는 이제 국민의 이름으로 즉각 중단돼야 합니다.

또한 천문학적 규모의 최씨 일가 부동산 구입자금 출처와 자금조성 경위, 또 그 과정에 있어서 박근혜의 지시 및 공모 관계에 대한 조사도 시급히 이뤄져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박근혜를 앞세워서 지난 40년 최씨 일가가 빚은 전횡의 먹구름으로부터 억눌린 대한민국의 현대사가 비로소 벗어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박통 하야 하라네…161024

박통 하야 하라네…
년도별/퍼온글

2016-10-24 13:40:15

국정원 댓글 없었다는 거짓말로, 시작부터가 거짓말로 시작해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고 거짓말은 또 거짓말,사기꾼 지배 세상!!!

-국정원,국방부 심리전단,보훈처등 댓글강요로 대선 관권개입!!!

-국정원 관권개입이 사실로 판명,대선은 부정선거 판결-채동욱 검찰총장

-국정원 5163 부대, 대선개입 전방위 대규모 컴퓨터해킹 자행,

-국정원 5163 부대 모든 비밀을 알고 있는 국정원 직원 자살

-NLL회의록을 수십번 꺼내들어 문재인 북풍몰이 조작극 자행

-국정원 가짜 무인기 조작, 종북몰이 선동 극단에 달함

-국정원 가짜 간첩조작 사건: 남재준 국정원장 대국민 사과(4월15일)

–4.16 세월호 미성년자 250명 생수장,304명 생수장대참사

-전원구조 오보소동,해경은 세월호에 로프를 묶어 잡아당겨 침몰가중시켜

-구조 0명,박대통령 정수장학회연관 언딘이 구조는 안하고 시신인양

-9명 아직도 미수습,2년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미발견 너무 끔찍!

-세월호 특별법 수사권,기소권도 없는 껍데기 특조위 만들어

-온갖 협박과 방해로 조사 개시한 특조위마저 강제종료! 조사 강제중단

-생수장,구조포기 해경간부에 박대통령 꺼꾸로 승진잔치라니,초경악!!

-결국 세월호 인양도 안하고 증거물도 모두 감추고 악마보다 더하다!

-주한미군 쥬피터실험(세균실험) 한국몰래 미군기지에서 강행!!!

-미군 5월 평택에 몰래 탄저균 반입,시험만 3차례. 민간인 피해입음

-평택에서 5월 메르스 발생,국민을 최대공포로 몰아넣고 사과조차 안함

-故 성완종리스트 뇌물수수 1,2,3대 청와대비서실장 모두 나와 ,

-유정복 인천시장,서병수 부산시장,홍준표 경남지사 뇌물수수액 밝혀

-친일.유신독재 미화 역사교과서 국정화 강행!!친일파들 해도 너무해

-한일 일본군 성노예 문제, 일본가해자 시각으로 합의. 분노감 상승,

-박대통령,일본군 위안부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비용 전액 삭감,

-일본 아베는 위안부에 대해서 털끝만치도 사과할 생각없다는 망발

-새누리,야당이 위안부합의 무효선언하자 모두 퇴장,일본의 하수인인가?

-성과연봉제로 노동조합 붕괴, 노동권리 파괴시키려 해

-노동자 해고 쉽게,정규직을 파견직노동자로 최악의 노동법 개악!!!

-서비스산업 발전법 명분으로 공공의료 민영화 강행,가격폭등 촉진!

-서비스산업 발전법 핑계로 전기,가스,철도등 강제 민영화로 가격인상!!

-원샷법등 대기업,재벌에게만 상속 세금감면등 무제한 특혜,

-부채 5천조원(5조 달러) 시한폭탄, 수출경제의 최대위기국면 도래,

-가계부채 1,300조원 부동산가격 붕괴시 완전 부실 우려!!!

-경제 대불황임에도 대우조선 5조원 국고지원 국민세금 완전낭비,

-개성공단 폐쇄,남북 군사불안 조성에 혈안 정치이용!

-2030세대 최대빈곤 상상초월,실질 청년실업률 30% 육박

-무한정 늘어나는 실업자 문제,아무런 대책조차도 없음,

-금수저 흙수저 양극화를 부추끼고 극대화하고 있음

-전관예우,과도한 수임료등 법조계에 만연한 부정과 비리 드러남
-노무현 강압수사 홍만표 전 검사 구속,진경준 검사 직위해제

-자연파괴에 앞장,백두대간의 자연을 보존하기는 커녕 파괴! 미친 정권!!

-교육부 정책기획관,국민 99%가 개돼지.신분고정화 해야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모든 비리의 최종 종결자 등극!!

-친박계 대표좌장 최경환 롯데로부터 50억원 뇌물수수,친박 갑질에 경악!

-청와대 언론통제가 지금도 버젓이 진행돼, 해도해도 너무한 정권!!!!

-일체 상의나 고려없이 경북 성주에 강제로 사드배치,군민들 촛불들어

-개누리 장례식 거행, 박대통령은 물러가라!! 개누리는 성주를 떠나라!!!

-또 종북몰이냐! 김제동"난 종북이 아니라 경북이야 경북 이새끼들아"

-성주군수,뽑아준 성주군민을 배신하고 사드배치에 찬성하다니 해도해도 너무한 거 아닙니까??

-세월호의 진실을 감추고 보도 통제에 가장 앞장선 전 청와대홍보수석 이정현, 청와대의 1급 내시출신이 어떻게 국정의 핵심인 새누리당 대표! 반성은 없고, 오직 무법천지 상태로 나라를 몇십년 전으로 후퇴시켜

-샥스핀,송로버섯 청와대만찬에 국민들 가슴속에 분노감 최대 팽배해져

-비리종결자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국정원까지도 관리,초경악!!!!
-친일군인,반인권독재자 박정희우상화에 1,873억원 지원,초경악!!!!

-친일 박정희 1인을 위해,역사마저 건국절로 왜곡하다니 천벌 받을 것

-국회 정식 투표절차로 해임의결된 김재수장관을 박대통령 정면 해임거부

-검찰이 박대통령의 내시가 되어 야당핵심 중진들에게 선거법위반등의

탄압,정치의 가장 더러운 측면이란 측면 다 보여줌,

-최순실 게이트, 미르k재단 15일만에 대기업으로 부터 800억 갈취

-정유라 이대 불법 입학,불법 특혜로 이대총장 사퇴

-고영태가 최순실에게 차은택을 소개,새로운 고영태의 존재 드러나

-차은택 게이트, 국정농락의 대표적인 사례. 창조 경제문화 주물럭 돼

-최순실과 박대통령의 관계가 문제해결의 핵심으로 대두!!!!!!!!!!!!!

-NLL회의록 꺼내 북풍몰이하던 그 전례로 송민순회고록 꺼내서 문재인 북풍몰이 또 시도하다니 정말 사람이 아니다.새누리당은 야만 그자체

-백남기 농민 물대포직사 머리 뼈골절,뇌출혈로 식물인간 상태로 방치한 채로 317일만에야 급작스럽게 사망,국가폭력에 의한 사망

-빨간우의 직접해명,"타격이란거 자체가 허무맹랑,경찰의 조작극"

-경찰의 살수차 물대포14bar수압이면 유리,금속,합판,벽돌 모두 파괴..백남기 농민을 살인한 것이다. 전임경찰청장을 구속하라!

-부검을 왜 하려는가? 또 거짓과 사기로 백남기 농민을 두번 죽이려고 수작부리려는 악행인가? 인간이 할 짓인가,정말!!!!!!

-지상파,종편,조중동신문,여론조작기관 4위일체로 독재정권 유지 강화

-어버이연합,엄마부대 등 온갖 관제데모대 시위를 청와대가 지시관여!!!!

-장기집권 반대를 목놓아 외쳤던 대한민국 국민,개헌은 절대 안돼!!!!!!

-청와대 언론통제가 지금도 버젓이 진행돼, 국민의 눈과 귀를 자꾸 속이려 들지마라. 민심이 곧 天心!!!!

헬조선 – Total Command 170127

헬조선 – Total Command
년도별/퍼온글

2017-01-27 16:31:11

헬 조선을 총정리한 글…

개구보수들을 흉보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dj를 흉보고 있다…

과연 이런 글들은 누가 만들었을까????? 용….

잘 읽어 보고 근거를 가지고 논리적으로 반박을 한번 해보시라! 아마 반박하기 힘들껄?

이 글을 읽어보고 이번 설연휴 기간에는 먹고 놀지만 말고 생각이란걸 한번 하고 늙어서 꼰대 소리 안듣게

추하게 나이먹고 늙지 말고 이젠 좀 미개하게 살지들 마시라! 나라 돌아가는 꼴이 한심하고 진짜 끔찍하다.

헬조선 사람들의 특징이 다 진실이므로 논리적으로 반박할수는 없지만 사실이라고 인정하기는 싫어한다.

또한, 혼자 죽는다고 하면 악을 쓰고 저항을 하지만 쟤도 죽고 너도 죽고 나도 죽고 다 같이 죽는다고 하면 금방

다 포기하고 조용해졌다. 이런걸 수천년 동안 계속 무한 반복을 했었던게 헬조선의 희한한 역사였다.ㅋㅋㅋ

사회의 모순을 지적하면 빨갱이/패배자가 되는 국가.

젊은이들이 아프면 청춘이 되는 국가.

평범하게 살고 싶으면 죽을만큼 노오오력 해야되는 국가

세상 모든 문제가 내 마음가짐에 달린 문제인 국가.

열쩡과 노오력 두 단어로 모든 사회문제를 외면하는 국가.

사회가 잘못돼서 취업을 못해도 개개인의 노오력이 부족해서 취업이 안되는거라 말하는 국가.

정부가 잘못해서 나라가 망했는데 국민이 욕을먹더니 급기야 미안하다며 전국민이 손주 돌반지에 할머니 금니까지 빼서 나라에 상납하는 국가.

그걸 당연하게 여기며 국가의 문제가 생기면 ‘국민성금’ 을 모아야 하는 국가.

정부가 잘못해서 문제가 생기면 ‘국민성금’ 을 모아야 하는 국가.

그러다 정작 국민한테 문제가 생기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국가.

니 목숨은 니가 알아서 챙겨야 하는 국가.

의무는 산더미인데 권리는 거의 없는 국가.

엘리베이터 닫힘버튼을 너무 많이 눌러서 IMF가 왔다는 말을 정설로 믿는 국가.

3류 가설에 불과한 낙수효과를 국가 최고대학 교수들이 15년간 검증된 정설인줄로 진심으로 믿고있었던 국가.

30년전 작성한 교수노트로 종신교수직 끝날때까지 수업이 가능한 국가.

백수고졸들이 해외사이트에서 가져온 새로운 정보를 대학교수들이 검색해서 줏어가 수업자료로 쓰는 국가.

대학교수가 여학생을 강간하고 남학생을 착취,학대,구타,인분을 먹여도 다른 교수들이 탄원서를 써줘서 피해학생이 나쁜놈이 되는 국가.

그 교수에게 이쁨받으려고 사건의 원인을 피해학생의 내성적이고 비사교적 성격탓으로 매도하는 자들이 학교 친구인 국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결국 상위대학 교수임용은 교수들 지인과 그 자식들만 뽑히는 국가.

기업이 애국심으로 돈버는건 아름다운 일이지만, 국민이 기업에 애민심을 요구하면 피해의식에 찌든 반사회성 인격장애자가 되는 국가.

내 돈은 국가 돈이고, 국가 돈은 기업 돈이고, 기업 돈은 재벌 돈이고, 재벌 돈은 매년마다 최고치를 갱신하는 국가.

돈을 많이 벌수록 세금을 더 적게 내는 국가.

빚지고 토굴같은 단칸방에서 죽지못해 사는 자들이 재벌의 인생을 걱정해주는 국가.

직접세는 낮은데 간접세가 높아 서민들이 먹고사는 것만으로도 빚을 져야하는 국가.

우유가 썩어 돌아 제조업체들이 하수구에 폐기처분 하고있는데, 어찌된 일인지 우유값은 주기적으로 인상되는 국가.

우유값 인상을 핑계로 생필품 값이 오르더니, 마침내 나비효과를 통해 자동차 출고가격까지 올라가는 일치단결된 국가.

어쨌든 괴로우나 괴로우나 나라 사랑해야 하는 국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하는 국가.

그래서 떠나려니 애국심이 부족하다고 바짓가랑이 붙잡는 국가.

한국사회를 비판했더니, 내 부모님도 한국인이니 나의 주장이 틀렸다고 말하는 국가.

국민 4대 의무 다 이행해도 나이가 어리면 사회적 발언권이 없는 국가.

나이가 벼슬인 국가.

극과 극이 상통하는 국가.

좌우 구분은 못하는데 위아래 구분은 확실한 국가.

탈출만이 유일한 답인 국가.

지금 이런 글 쓰면서도 정작 지가 돈벌고 위로 올라가면 태세변환 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는 국민들이 사는 국가.

죄지은 자들이 천국에 살고, 죄짓지 않은 자들이 지옥에서 기어다니는 지옥에게 미안한 국가.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아는 국가.

스펙이 낮으면 스펙을 높이라고 하고, 스펙이 높으면 눈높이를 낮추라는 국가.

회사는 직원의 사생활에 간섭하는 게 당연하지만, 직원은 회사의 내부사정에 간섭하면 실직당하는 국가.

성수저설(인간은 날때부터 물고태어난 수저의 재질로 인생이 결정된다) 이론이 완벽히 성립됨을 입증한 표본국가.

사회문제가 나에게 유리할땐 보편적 현상이고, 나에게 불리할땐 일부의 돌발행동이라 말하는 국가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구분하지 못하는 국가.

공동체주의와 전체주의를 구분하지 못하는 국가.

서민이나 재벌이나 똑같이 받는 간접세는 높게, 부자에게 직접 걷는 세율은 낮게 매기는 나라

매국하면 3대가 잘사는 국가.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하는 국가.

군대에 가는 것은 “국민의 특권”이라 말하면서, 정작 본인과 그 자식들은 무슨짓을 해서라도 그 특권을 거부하는 훌륭한 분들이 정치를 하고있는 국가.

군대 면제된 매국노의 후손들이 군필한 일반 국민들에게 애국심이 부족하다고 호통치는 국가.

대통령, 국회의원이란 호칭 뒤에 ‘님’ 이란 호칭을 또 붙이는, 이중호칭이 생활화된 동방예의지국가.

골 프치고 놀러다니면서 가끔 시민사회에 초청받아 극진한 대접 받는걸 1년 하면 순수연봉 1억6천만원에 사무실,자동차,비서,운전기사를 국민세금으로 무상으로 지급해주고, 품위유지비, 국무집행비 명목으로 수십억원의 자금을 해외여행,자식학자금,부조,축의금,생일선물,회식비,결혼기념선물 비용으로 자유롭게 사용하다가, 은퇴후 평생 죽을때까지 월 수백만원대 연금까지 받아갈 수 있는 신의직업이 있는 국가. (직업명 ‘국회의원’)

국가니 국민이니 열심히 싸우다가도, ‘국회의원 연봉인상안’ 에 대해선 0무효 0반대 100% 찬성으로 표결되는 국가.

정당한 권리를 위해 시위를 하면 종북 빨갱이 취급 받는 국가.

보수라고 한적도 없고, 그냥 진보정당이 무능하다고만 말해도 자동으로 박정희 대통령을 신으로 모시는 일베충이 되는 국가.

재벌이든 중산층이든 서민이든 자신보다 아랫사람에게 갑질하려는 태도는 판박이인 국가.

데려갈 때만 대한의 건아고, 그러다 다치면 남의집 자식인 국가

군대가서 가혹행위를 참으면 의문사, 못 참으면 범죄자를 만드는 나라

월 25만원씩 받으면서 나라 지키다가 다리가 잘려도 평생 치료비 및 피해복구는 자기돈으로 해야하는 국가

불합리한 강제징병을 방치하거나 오히려 옹호하고, 군필자들은 “난 이미 갔다왔어” 라며 제도 개선의 의지가 없는 국가.

밥 먹을때 조차 집단주의적인 국가.

탈조선한 사람이 성공하면, 그래봤자 몸에는 한국피가 흐른다며 자랑스러워하는 나라.

빌게이츠가 자신이 한국인이었다면 이렇게까지 성공할 수 없었을거라고 말한 나라.

피해자가 피해를 호소하면 ‘너도 잘못했잖아’ 라며 가해자와 동일시하는 국가.

범죄자의 범죄 사실보다, 그 범죄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것이 더 큰 범죄인 국가.

인권을 헌법에 보장시켜놓았으나 그 인간의 범위가 매우 좁은 나라.

유교 탈레반
고속도로 1차로를 관광버스(시외.고속도 포함)와 대형 화물차가 정속주행하는 나라.

누구는 비싸게 사고 누구는 싸게 산다며 모두다 공평하게 비싸게 사게 만드는 나라.

나만 공짜로 먹으면 되고, 나만 싸게 사면 되고, 나만 먼저 앉으면 되고, 나만 먼저 가면 되고, 나만
안걸리면 되고, 나만 잘살면 되는 나라.

구급차에 환자 있는지 확인하려고 구급차를 잡아세우는 나라

수학을 태교하는 임산부가 있는 나라.

입시교육 때문에 아이들과 학생들의 인권은 바닥으로 추락하는 나라

죽을 각오로 공부해 대학에 붙었더니 성적비관으로 자살하는 나라 (죽을 각오로 해서 결국 죽었으니 노오력 성공!)

국민의 돈으로 만든걸 정부가 마음대로 외국에 팔아먹는 나라

개신교 탈레반
재벌들의 이익을 위해서 국민과 서민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국가

내리갈굼이라는 미풍양속을 아이부터 노인까지 잘 이어가는 국가

국가를 위해 50억을 기부했더니 쪽방에서 시한부 인생을 맞게 되는 국가

자살선진국
(OECD 국가중 한국이 연령대별로10대~40대의 사망원인중 1위가 ‘자살’ 인것으로 밝혀졌다. 사족으로 50~70대의 사망원인은 1위는 ‘암’ 이었다.)

결혼율보다 이혼율이 더 높은 국가.

후손을 위해서라도 후손을 만들면 안되는 국가
(여담이지만 한낯 짐승들도 환경이 좋지 않으면 절대 후손을 놓지않는다. 말 그대로 자기 먹고살기도 힘들기 때문)

호한호헬(조선을 헬이라 부르는 것)이 불가능한 나라.

갑질과 나일리지가 지배하는 전근대적 신분사회

노동권이 지켜질 기약이 없는 나라.
(적지않은 수의 노동자들은 노동자가 아닌 노비로 전락해버린다)

훈련중에 후배가 선배를 추월한 것이 폭력의 원인을 제공한 합당한 사유로 인정받는 국가.

존재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나라.

목적과 수단이 뒤바뀐 나라

모든 사람이 직업과 관계없이 40살만 넘으면 사장님, 선생님이라 불리는 나라

외국의 좋은 문화도 한국에만 들어오면 헬조선화 되는 하수구같은 나라.

식료품이 하나같이 싸구려 저질 또는 가짜 재료를 사용하고, 그래서 영양가 없고, 그럼에도 비싸고, 심지어 맛없기까지 한 나라.

그래서 외국의 명품 식료품들을 한국에 들여오니 수입업체의 농간으로 헬조선화 시켜 상기 문제점의 일부로 만드는 나라.

국제유가는 내려도 소비자 기름값은 오르는 나라

마약을 해도 마약인지 몰랐다고 하면 죄가 아닌 나라.

정작 엉뚱한 게임을 마약으로 취급하고 아다만티움 규제를 준비하는 나라.

자국의 전통 복식(한복)이 흉기가 된다며 착용자의 호텔 출입을 금지하는 나라. (신라호텔)

나라 지키라고 강제징집한 군인들이 건보료 체납했다고 쥐꼬리만한 월급까지 뺏어가는 나라.

사병 월급이 일용직 노동자 일당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군꼴푸장은 잘만 돌아가는 나라.

노동자들이 노동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주는 것은 당연한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나라.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는 최고수준의 일을 하고, 최고임금을 받는 노동자는 최저수준으로 일하는 나라.

청년 일자리 만든다면서 기업에게 기존 노동자들 자르고 청년들을 비정규직으로 쓰고 버리라고 재촉하는 나라

비정규직 차별 철폐 외치니까 정규직도 비정규직화 시켜서 하향평준화 시켜버리는 나라.

청년 실업률 해결을 위해 한평생 회사를 위해 몸바친 직장인들 월급을 깍아버리는 나라.

소방대원들이 화재 진압을 위해 급히 출동했을때 신호위반과 과속 범칙금을 소방대원들이 사비로 물어야 하는 나라

소방대원들이 화재 진압에 필요한 장비를 사비로 해외사이트에서 구매해야 하는 나라
(정부의 소방안전에 대한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다)

집회, 결사의 자유를 보장 받을 수 없는 나라

삼권이 완벽히 공생하며 권력을 공유하는 나라

굶어 죽을 것 같아 빵을 훔쳤더니 150억 횡령한 놈이랑 똑같이 형량을 사는 나라

대학교를 보내기 위해서 교육을 하는 나라

학생들의 인권과 자유롭게 놀 여가시간을 박살내고, 각자의 개성 또한 박살내고 학부모들 척추 뽑히도록 일한 돈으로 대학교 보내놨더니 결국은 40대 되서 치킨이나 튀기는 나라

흙수저는 그마저도 못하는 나라

국가 정보원이 대선때마다 댓글로 선동하는 나…읍! 으..읍! 읍! 당신들 누구야!

획일화된 입시교육을 따라가지 못하면 무슨 재능을 가지고 있든 간에 사회적 하층민이 되는 나라
한국에서 생산된 한국 물건을 외국에서 사면 30% 이상 더 저렴한 나라

그래서 국민들이 외국에서 한국물건을 샀더니, 국내 기업이 죽는다며 해외직구를 규제하는 나라
정부의 문제점이 아닌 국민을 규제하면 만사가 해결되는 나라.

OECD국가 2012년 통계 부패지수 1위 국가

힘든 노예가 편한 노예들 멸시하면서 우월감 느끼는 나라

떨어진 소비심리를 증진시킨다며 명품에 붙은 세금을 낮추는 나라.

방산비리엔 너그럽고 예비군 복장은 엄격하게 따지는 나라

청나라로부터 크게 바뀐게 없는데, 스스로가 굉장히 발전했다고 여기며 조선을 미개하다고 비웃는 나라.

군대를 가지 않아도 되는 미국국적자가 구태여 자원입대 했다가 장애인이 되었는데, 면제가 아닌 보충역 판정을 내리는 국가(김믿음 청년).

싸이코패스형 범죄자의 범죄 원인은 ‘가정환경’ 이나 ‘개인의 정신적 문제’가 아닌, 당연히 ‘폭력적인 게임’이 되는 국가.

술마시고 범죄를 저지르면 형량을 세일해주는 나라

학교 성교육조차도 숨기는 데만 급급해서 저들도 못 알아먹을 말미잘 다큐멘터리나 보여주는 나라

외모, 키, 소득, 부모직업, 학력을 방송에서 웃음을 핑계로 당연시 묻고, 이 주제를 제외한 토크 컨텐츠는 만들지 못하는 나라

돈을 훔친 가해자보다 돈을 많이 들고다닌 피해자가 잘못이라고 말하는 나라

최신 OS 깔면 은행거래도 제대로 못하는 나라

개인정보 관리는 자기들이 안해놓고 서버 털리면 이용자 책임이 되는 나라

구청에서 죄없는 음식점 위생불량으로 실수로 영업정지 시키고 그 실수로 사장이 빚더미에 쌓이고 인생 망했는데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나라

애들 상대로 장사하는 사람들이 더 돈밖에 모르는 나라

215억 기부했더니 225억 세금을 내라는 나라

세계의 누구보다도 북한을 사랑하면서 왜 본심을 숨기는지 이해가 안 가는 나라

평범하지 않으면 낙오자인 나라

국수주의와 사대주의가 혼합된 나라

기업의 경쟁은 완화하고 국민의 경쟁은 부추기는 국가

한 줄 요약이라면서 수십 줄 쓰는 나라

수십줄이 필요한 글을 한줄로 요약하라는 나라

인재 없으면 망하는 나라인데, 인재를 하찮게 여기는 나라.

프로게이머도 해외로 진출 하는게 더 나은 나라.

강화가 없으면 게임을 안하는 나라

패드립이 없으면 채팅을 안하는 나라

기술은 하찮고 폭력은 우아한 나라

운도 실력이니 불만갖지 말고 노오력 하는 나라.

외국에서 자국민 유학생과 신입 이민자들 등쳐먹는걸로 먹고사는 나라. (조적조)

군 계급보다 군 소속이 더 우선인 나라.

과자로 배를 건조할 수 있는 국가.

일란성 쌍둥이조차도 서열을 구분하고야 마는 나라.

국민부터 국회의원까지 거리낌 없이 인종차별을 하는 나라.

법 만드는 사람은 법 안지켜도 된다는 법이 있는 나라
(불체포특권)

노조가 회사일에 간섭하는걸 불법으로 규정해놓고서, 회사가 망하면 노조가 제할일을 못했다고 욕하는 나라.

국민연금의 대주주인 국민들이 연금의 운영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는 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불만을 갖지 않는 나라.

그 국민연금을 마치 개인 사비인것처럼 자유롭게 쓰는 자들이 공무원인 나라.

직,우회전 차로에서 직진차가 대기하고 있으면 우회전 차가 빵빵이를 울리는 나라.

위안부 피해자들의 눈물과 한을 피해자들과 아무런 사전합의 없이 멋대로 100억에 팔아먹는 나라.
피해자와 한마디 대화도 나눠본 적 없는 판사가 마음대로 가해자를 ‘용서’ 하고, ‘반성의 기미가 보여 감량’ 해주는 나라.

그래서 가해자가 피해자가 아닌 판사에게 ‘용서’ 를 구하는 괴이한 장면이 펼쳐지는 나라.
매년 사이즈가 작아져서 또 사야하는 교복의 가격이 어지간한 성인 기성맞춤양복 가격보다 비싼 나라.

그 비효율적인 교복문화를 법적으로 강제하는 나라.

공공장소인 공원, 산, 해변가에서 제 집처럼 고기를 구워먹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

‘대학 붙었니’,’어느 대학 붙었니?’,’시험점수 얼마 나왔니?’,’취업 했니?’ 같은 민감한 예기를 ‘안부’ 명목으로 자연스럽게 묻는 나라.

여러명이 왕복 인도를 가로막으며 걷는것이 잘못된 것인줄도 모르는 사람들이 사는 교양없는 나라.

과거 여성들이 받던 차별은 반대하면서, 과거 여성들이 입던 혜택은 그대로 가져가려는 여자들이 사는 나라.

자전거 탈 때 두 손 놓고 타는 곡예사들이 많은 나라.

사람 패죽여도 반성문 쓰면 망가 번역한 사람보다 형량 적게 받는 나라

갑부를 위해선 법도 새로 만들지만, 서민들은 있는 법도 보장받지 못하는 나라

자전거도로로 오토바이가 지나가는 나라

치한 당할뻔한 것을 구해주니 치한으로 고소당하는 나라

국민 모두가 크고작은 정신병을 하나 이상 가지고 있는 나라.

한줄평 쓰면서 자기는 다르다 생각하는나라

인터넷 뱅킹 하나 하려면 보안프로그램 20개 깔아야 하는 나라

MS도 버린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사용을 장려하는 나라

게임 폭력성 실험 한다 치고 PC방 전원 차단하는 나라

인터넷에 댓글 좀 제대로 썻다 싶으면 맞춤법 가지고 지랄하는 나라

신설 위키에 하라는 문서 작성은 안하고 반달이나 하고 토막글이나 싸지르는 나라

나보다 잘사는사람 입맛에 맞춰주지않으면 이기주의자라고 몰아붙이는 나라

초등학생이 공무원을 꿈꾸는 나라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나라

멸망이 답인 나라

연대의식은 떨어지나 집단이기주의는 심한 나라

부모가 적(敵)인 나라

정신적으로 힘든데 정신과에 가면 이상하게 보는 나라

언어와 문자를 구분하지 못하는 국가.

민주주의 국가라면서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밑에 사람 있는 국가.

사람을 무조건 윗사람과 아랫사람으로 나누고, 윗사람에게는 깍듯하게 예의를 지켜야 하지만 아랫사람에게 지켜야 할 예의는 존재하지 않는 국가.

짐승과 같은 위계서열의식이 확고하고, 무조건 상명하복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국가.

필연적으로 갑을관계, 갑질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국가.

태어나자마자 1살이고, 모두가 1월 1일만 되면 동시에 나이를 먹어야 하는 국가.

닭대가리의 꼬끼오 한번으로 움직이는 나라

닭의 머리에 사람의 몸통을 가진 ‘반인반닭’이 개XX 두마리 키우면서 경제 말아먹고 있는 국가.

존중과 배려, 역지사지가 없는 국가. 그러면서 자칭 동방예의지국이라 우기는 국가.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국가.

나이가 많으면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없는 국가.

출구로 들어가고 입구로 나가는 국가.

코딩하는 것이 자살행위인 나라.

일본 정부 잘못을 일본 국민까지 싸잡아서 욕하는 국가.

민주주의 국가라면서 세종특별자치시같은 도시를 만든 국가.

특정 재화(휴대폰, 도서 등)를 저렴하게 팔거나 사는 것이 큰 범죄가 되는 국가.

간첩새끼들을 석방시켜주고 적국이 핵을 만들게 해준 대통령을 까면 사회의 핵폐기물, 쓰레기가 되는 나라

쌀로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는 사람이 존재하는 나라

성장기 학생이 하루 8시간도 못자게 하는 나라

흙수저가 어떤 재능이 있어도 재능없는 금수저만도 못하게 사는 나라.

초등학생들이 노동자는 거지, 장애인이라고 믿을 정도로 노동권이 최악인 나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세금을 낭비하며 엉뚱한 것들만 규제하는 이상한 집단이 있는 나라

250명의 고등학교 2학년 어린 꽃들과 54명의 일반인들이 해양조난사고를 당했는데 구해주지 않고 시간만 끌다가 한명도 남기지 않고 몰살시킨 국가

그나마 개인 잠수부들이 어떻게든 구해볼라고 하니까 그거 이용해서 다른 잠수부 죽은 사건에 피의자로 법정에 세운 국가

그 해양조난사고의 주범 이준석 선장 검거 당일밤에 추울까봐 따뜻한 해경간부 아파트에서 재워주는 나라

업무에 대한 책임을 안 지는 상사가 많은 국가.

승진을 하면 할수록 권한과 권리는 늘어나지만 의무와 책임범위는 오히려 줄어드는 국가.

계급, 직급, 나이가 곧 인격이라고 믿는 국가(그래서 “하급자, 젊은이 = 천민, 노예”인 줄 안다).

노동자가 권리 찾으면 빨갱이 되는 나라.

지들은 노동자가 아닌 줄 아는 사람들이 태반인 나라.

하루가 멀다하고 갈수록 살기 어려워지고 높으신 분들 배만 점점 더 불러지는데도 이상할 만큼 조용한 나라.

법에서부터 Post hoc ergo propter hoc(라틴어, 이 뒤에 따라서 이 때문에) 인과의 오류를 범하는 국가.

무조건 비꼬고 돌려서 말하길 좋아하는 사람들만 있는 국가.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국가(꼭 ‘~한 것 같아요’라고 대답).

집단을 개인보다 중요시해야 한다고 지랄대면서 정작 위험에 빠지면 모른 척 하는 나라.

개인 자체의 소중함은 무시한 채 오직 집단 속 존재로서의 개인으로만 생각하며 집단에 대한 희생과 충성만 강요하는 나라.

북괴를 싫어하면서도 정신상태는 북괴와 동급인 나라.

지배층(소위 “높으신 분”, “윗대가리”)에 대한 충성을 국가(=국민)에 대한 충성으로 위장하여 강요하는 나라.

원칙을 지키면 손해보는 나라.

합리적이지 않은 규정을 만들어서 약자에게만 엄격하게 적용하는 나라.

고등학생 이하 미성년자는 사람 취급도 안하는 나라.

국민 모두가 미개한데 자신은 그보다는 낫다고 멀쩡한 기성 세대를 욕하고 정정한 노인을 욕하는 나라.

학생이 성적 비관으로 자살해도 의지력이 약하다며 욕하는 나라.

교육제도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개선의 여부는 미비한 나라.

학창시절 아무것도 안하고 쳐놀다 졸업했으면서 국가는 자신을 봐주지 않는다는 꼴통이 넘쳐나는 나라.

잘못된 교육제도를 자기 일자리라고 존나 빨아대는 선생들이 넘쳐나는 나라.

꼬우면 북한가야 하는 나라.

전생에 우리가 잘못했기에 온 지옥불반도(이번생은 착하게 살자)

헬조선 무적논리 10계명

  1. 다른 나라도 다 똑같다. 거기라고 다를거같냐?
  2. 넌 한국인 아니냐?
  3. 아프리카에서 안태어난걸 다행스럽게 생각해라.
  4. 사람사는데가 다똑같지.. – –
  5. 꼬우면 이민가던가
  6. 요즘 젊은것들은 노력이 부족해 노오오오력이
  7. 꼬우면 엄친아나 금수저로 태어나라
  8. 너네가 지금 이정도로 살수 있는게 누구 덕분인지 아는거냐?
  9. 우리나라정도면 천국이지 ㅡㅡ.
  10. 너 그럼 한국말쓰지마

객관적인 논리로 말하는 반박

  1. 다른 나라도 다 똑같다. 거기라고 다를거같냐?
    똑 같긴 개뿔! 한국 연간노동시간 2010시간에 연소득 3만불, 네덜란드 1320시간에 연소득 7만5천불. 이게 같다니 지나가는 개가 웃을 소리지. 세금 공제한다고 해도 노동시간 대비 임금은 한국보다 높다. 심지어 이 수치는 잔업이랑 야근 제외한거다.
    우루과이 >>> 넘사벽 >>> 한국. 우루과이는 모병제인데 군인을 끝장나게 잘 대우해줘서 서로 군대가겠다고 하는 바람에 병력이 엄청 많다. 한국처럼 손가락짤려도 현역병인 줄 아나 보네.
  2. 넌 한국인 아니냐?
    한국인이면 무조건 다 병신이어야 하는 이유는 뭘까? “넌 한국인 아니냐?” 이 발언 자체가 인종차별이다.
  3. 아프리카에서 안태어난걸 다행스럽게 생각해라.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네덜란드 같은 나라에서 못 태어난걸 불행하게 생각해야지?
    차라리 석기시대가 낫다. 원시인들이 우가우가하던 신석기 시대가 얼마나 살기 좋은지 모르지?
  4. 사람사는데가 다똑같지.. – –
    같은 사람 사는 곳인데 좀 살만한 데랑 똑같으면 얼마나 좋냐
  5. 꼬우면 이민가던가
    이런 놈들이 진정한 매국노다. 도대체 헬조선을 어디까지 망칠 작정인가?[1]왜 그렇게도 좋아하는 고치고자 하는 노오력을 안하지?
  6. 요즘 젊은것들은 노력이 부족해 노오오오력이
    웃기는 소리다. “요즘 젊은것들은 노력이 부족해 노오오오력이”라고 말하는 꼰대들이 삭월셋방 살이집 자식으로 태어나봐라. 아니면 사회복지 충만한 나라에서 태어나든가. 그 말 당장 쏙 들어갈것이다.
  7. 꼬우면 엄친아나 금수저로 태어나라
    본색을 드러내는 천하의 개소리 되시겠다.
  8. 너네가 지금 이정도로 살수 있는게 누구 덕분인지 아는거냐?
    김재규다. 지금 그소리 지껄인 새끼 덕은 절대 아닐 것이고, 노력 하나 없이 꿀빤 486세대의 개소리 되시겠다.
  9. 우리나라정도면 천국이지 ㅡㅡ.
    무슨 천국이 군대가서 맞아죽고 1년에 2000시간 넘게 혹사하나? 개소리도 믿을 수 있게 해야 하는 것이다.
    천국의 마인드는 ‘그건 니 사정’인가보다. 잘 되면 나라덕분, 잘못 되면 니탓 혹은 니 사정.
  10. 너 그럼 한국말 쓰지마ㅡㅡ
    제대로 가르치고나 해라 그 말. 시험에서 안틀리게만 가르쳐놓고 정작 자주 쓰는 말은 가르치지도 않는게 언어 교육이냐?
    우리나라 사람 중 한국말 제대로 쓸 줄 모르는 사람이 어마어마하다.

설선물!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만 만일 설날에 만날 친척이 박사모라면 대처법!ㅋㅋㅋ

빡쫑히와 정인숙 그리고 워싱톤 한인회장 노진환 170905

빡쫑히와 정인숙 그리고 워싱톤 한인회장 노진환

년도별/픽션 이야기 911

2017-09-05 11:52:59


▶ ‘이제는 말할수 있다’…안홍균의 ‘코리아 게이트’증언 3

본보는 코리아 게이트에 관한 안홍균 씨의 증언을 기획 시리즈로 연재한다. 안 씨는 이번 증언을 통해 코리아 게이트를 둘러싼 한미 간의 숨막혔던 긴장과 갈등의 역사적 시간들을 재구성할 예정이다. 또 그가 가까이에서 지켜본 박동선, 김형욱, 김한조와 김상근, 손호영 등 코리아 게이트의 주역에 관한 숨은 스토리와 에피소드들도 소개한다. 


노진환의 삼선개헌 지지광고 

미 당국은 통일교와 한국 중앙정보부의 유착관계에 주목했다. 또 수지 박을 KCIA가 미 의회에 위장 침투시킨 여인으로 의심하고 있었다. 
한미관계의 악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번에는 박종규 청와대 경호실장이 주역이었다. 그리고 워싱턴한인회장 출신으로 유정회 국회의원을 하던 노진환과 닉슨 대통령의 백악관 특별보좌관이던 존 E. 니데커(Nidecker)가 조연을 맡았다. 
사건은 노진환(魯璡煥)의 원맨쇼로 시작됐다. 1928년 전남 영광군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성장한 노진환은 1968년부터 ‘워싱톤재류한인회’(현 워싱턴한인연합회) 회장을 지낸 인물이다. 



그는 출세욕이 강한 사람이었다. 한인회장을 하게 된 유일한 이유도 그것을 발판으로 한국의 정계에 진출하고자 하는 속셈으로 보였다. 
1969년 워싱턴 한인사회는 깜짝 놀랐다. 서울의 한국, 동아, 조선일보 등 여러 신문에 ‘호소문, 박정희 대통령 7.25 성명을 지지하면서’란 광고가 실린 것이다. 광고를 낸 주인공은 바로 ‘재미 워싱톤 교포회장 노진환’이었다. 
당시 한인사회는 3선 개헌 반대시위로 뜨거울 때였다. 그런 와중에 느닷없는 노진환의 3선 개헌 지지 광고에 한인들은 격분했다. 

노진환이 한국의 신문에 낸 호소문.


노진환의 샌프란시스코 1인 시위 

노진환의 친정부 행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1969년 8월 박정희 대통령이 샌프란시스코에서 닉슨 미 대통령과 회담을 할 때다. 박 대통령이 머물던 호텔 앞에 노가 불쑥 나타났다. 그리고 팻말을 들고 개헌 지지 1인 시위를 벌였다. 교포사회를 대표한 것처럼 워싱턴 한인회장이 친정부 시위를 한 것이다. 
그 장면을 박종규 경호실장이 목격하고 노진환을 불렀다. 
“당신 뭐하는 사람인데 혼자 시위를 하느냐?”

“저는 워싱턴 교포회장으로 홀리데이 인 호텔 미국 총 지배인을 하고 있으며~.” 
물론 노진환이 워싱턴 지역에서 홀리데이 인 호텔 매니저를 한 것은 맞지만 한 호텔이었지 전국 지배인은 아니었다. 
65년 내가 워싱턴 유학생회 회장을 할 때다. 8.15 광복절 경축행사를 노진환이 매니저로 있던 홀리데이 인 호텔에서 한 적이 있다. 이 행사에는 김현철 주미대사는 물론 6.25전쟁을 겪은 무초 전 주한 초대 미 대사, 그리고 미국인들과 유학생, 교포들이 참석했었다. 그런 인연으로 그를 알고 있었다. 

저렇게 예쁜 여자가… 

워싱턴에 머물다 귀국해 살해당한 정인숙.


그의 과장된 자기 선전을 박종규는 귀가 솔깃해 들었다. 박종규에게 노는 미국에서 크게 성공한 대단한 인물로 비쳐졌을 것이다. 더군다나 재미교포들이 반정부 시위를 벌이는 가운데 워싱턴의 한인회장이 샌프란시스코 호텔 앞에 나타나 지지 시위를 벌이니 대견스러웠을 것이다. 

박종규는 경호실 자금을 그에게 주며 대미 로비 역할을 비밀스럽게 맡겼다. 그렇게 노진환은 박 정권의 권력 실세이던 박종규와 줄이 닿았다. 
그러나 한인들은 노진환을 용서하지 않았다. 8월30일 한인회 임시총회가 소집돼 호소문 게재 경위를 조사하고 노에 대한 불신임안을 결의했다. 노는 한인사회에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었다. 

그 무렵 우연히 DC의 어느 백화점에서 노를 만났다. 저 멀리서 노진환이 어떤 여자와 함께 있는 게 보였다. 노에 대한 평판이 워낙 나빠 인사를 하기 싫어 못 본 체 했다. 그런데 그 옆의 여인이 눈길을 끌었다. 대단한 미인이었다. “저렇게 예쁜 여자가 다 있나” 할 정도도 발군의 미녀였다. 난 속으로 생각했다. 

“노진환이처럼 별로인 위인이 어떻게 저처럼 예쁜 여자를 데리고 다니지?” 
얼마 뒤 신문에서 그녀의 사진을 봤다. 마포 강변에서 죽은 정인숙이었다. 세상을 놀라게 한 그 여인이 백화점의 그 여자였다. 나중에 알았지만 정인숙은 노진환이 69년 10월경 워싱턴에서 잠시 데리고 있었다. 정인숙은 뉴욕으로 간 후 한국에 들어갔다 변을 당했다. 



백악관 조찬기도회와 니데커 특보 

얼마 후 노진환은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고대하던 권력의 세계로 다가간 것이다. 노는 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 민주공화당 전국구 29번으로 출마했으나 당선권 밖이었다. 그러나 이듬해 72년 1월 황종률 의원이 사망하면서 전국구 의원직을 승계했다. 
73년에는 유신정우회(유정회) 국회의원으로 발탁됐고 76년 다시 유정회 의원이 되면서 출세가도를 달렸다. 그의 든든한 배경은 박종규 실장이었다. 
당시로서는 드문 워싱턴 출신인데다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은 국회의원 노진환의 또 다른 힘이 되었다. 기독교도 그는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백악관 조찬기도회가 열렸다. 노와 여러 한국 국회의원들이 워싱턴을 방문해 이 기도회에 참석했다. 노진환은 이 행사에서 닉슨 대통령의 특별보좌관이던 니데커를 만났다. 그는 69년 5월부터 백악관에서 의회 연락과 학생들이나 종교단체와 관련된 연락 및 재정지원을 담당했으며 조찬기도회도 맡고 있던 인물이었다. 
노는 이 백악관 참모를 만나 천부적인 사교술을 발휘했다. 니데커의 환심을 산 그는 한국에서 열리는 조찬기도회에 그를 초청했다. 

박종규가 준 봉투 

1974년 4월 29일 니데커와 백악관 고문 목사인 클립턴 로빈슨 목사 등은 한국을 찾았다. 백악관 특보를 맞은 한국은 대통령 급에 준하는 예우를 하며 그를 환대했다. 호화스런 호텔이 제공되고 박종규의 경호실 요원들이 그를 모시고 다녔다. 
박종규의 주선으로 박 대통령도 면담했다. 박 실장은 자신의 사무실에서 니데커에게 감사패를 증정했다. 거기에는 ‘대통령 경호실 고문’이라 적혀 있었다. 백악관 참모가 졸지에 한국 대통령 경호실 고문이 된 것이다. 

안내는 노의 몫이었다. 그는 니데커가 머문 호텔 스위트룸 바로 옆에 묵었다. 
니데커가 귀국할 때였다. 노진환이 그를 청와대로 데려 갔다. 박 대통령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가자는 것이었다. 청와대에 박 대통령은 없었다. 박종규와 골프를 치러 나간 것이었다. 

공항으로 가려는 그에게 박종규의 부하가 봉투를 건넸다. 봉투에는 박의 이름이 박혀 있었다. 그는 김포공항으로 가는 차 안에서 뭔가 싶어 봉투를 살짝 뜯어보았다. 
현금이 보이자 그는 깜짝 놀라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주한 미 대사관 직원에게 봉투를 전해주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봉투 안에는 1만 달러의 현금이 들어 있었다. 
백악관 참모를 한국에 데려오면서 노진환의 주가는 올라갔다. 

노진환의 은밀한 제안 

한참 후 노진환은 다시 워싱턴을 찾았다. 백악관을 방문해 니데커를 만난 그는 은밀하면서도 특별한 제안을 했다. 
“당신들 연방의원 선거 치르는데 한국에서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하원의원 출마자에게는 3천-5천 달러, 상원의원에는 1만-3만 달러를 제공하겠습니다. 그러니 어떤 사람에게 주면 좋을지 추천을 해주세요.”
노진환의 은밀한 제안에 니데커는 귀를 의심했다. 미국의 원조를 받는 가난한 나라에서 온 국회의원이 미국 선거에 돈을 대겠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백악관에 와서 말이다. 
“아닙니다. 필요 없습니다. 그것은 불법입니다.”

요즘과 달리 당시에는 외국인도 선거자금을 제공할 수 있었다. 다만 외국 정부의 자금은 불법이었다. 나중에 박동선도 미 의원들에 준 자금을 한국 정부가 아닌 개인 자격으로 제공한 것이라고 말해 빠져나갈 수 있었다. 
니데커는 단박에 노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리고 노진환을 밖으로 쫓아냈다. 

내 후임이던 박종규와의 인연 

몇 년 후 미국 신문에 폭로기사가 실렸다. 한국 정부가 미 의원 선거에까지 개입하려 했다는 사실에 미국민은 다시 큰 충격을 받았다. 한국의 불법적 행태에 대한 보도들이 연일 미 신문을 장식했다. 한국의 이미지는 구겨질 대로 구겨졌다. 
박종규는 워싱턴 포스트에 반박문을 기고했다. 

“니데커가 나를 만나자고 해서 잠깐 만난 것 밖에는 없다. 돈을 준 적도 없다.”
박은 니데커와의 만남이 별 것 아니었다는 식으로 자신의 관련설을 부인했다. 
니데커는 78년 6월1일 프레이저 청문회에 출석해 당시 상황을 증언했다. 
박종규는 사실 나의 군 동료였다. 유재흥 장군이 육군참모차장으로 있을 때 내가 부관을 3년간 지낸 적이 있다. 당시 박종규 소령은 유 장군 집무실을 자주 드나들었다. 게다가 내 후임으로 박종규가 부임했다. 그는 괄괄하고 단순한 성격이었지만 나와 친하게 지냈다. 그는 내가 미국으로 유학 올 때 유일하게 송별연을 열어주기도 했다. 

5.16 당시 박종규(왼쪽)와 박정희.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으로 경호실장에서 물러난 후 박종규가 워싱턴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워싱턴 근교인 알링턴의 한 호텔로 그를 만나러 갔다. 그와 반갑게 인사를 하는데 옆에 낯익은 인물이 서 있었다. 바로 권력을 향해 불나방처럼 달려들었던 노진환이었다. 국회의원이었던 그는 마치 박종규의 부관처럼 앉지도 못하고 옆에 시립해 있었다. 
나는 그를 무시했다. 그가 워싱턴을 다녀간 후 코리아 게이트가 연일 미 신문을 장식했다. 

퀘이커 평화운동 주의자 엘리스 보올딩 여사 170906

퀘이커 평화운동 주의자 엘리스 보올딩 여사
년도별/픽션 이야기 911

2017-09-06 13:16:40

한국에서는 알려지지 않은 이 엘리스 보올딩 여사가 우리 앞에 나타난것은 왠일인가??

1990년 미국 American Friends Service Commitee 에 의해서 Nobel Peace Prize 후보에 추천되었으나 노벨상을 타지는 못했다.

1991년에는 우리 남침례교의 자랑이신 카터 대통령이 후보에 올랐다.

The Spirit of Ma’at, Volume 1 No. 5 “The Futurists Creating Peace”

Peace: The Untold Story

with Dr. Elise Boulding
by Susan Barber

Elise Boulding, PhD has been an important peace activist since World War II. Author of eleven books (see book list) and contributor to many more, she built the Peace Studies program at Dartmouth College, and both she and her husband, Dr. Kenneth Boulding, were active all their lives in conflict-resolution studies and in the more important groups that have been working for world peace. Although she has been retired for some time, and was widowed in 1993, Elise Boulding spent the mid-nineties writing Cultures of Peace: The Hidden Side of History (see Source Books). And she still makes her peaceful presence felt in the corridors of power.

We called Elise Boulding at her home in Massachusetts, near Boston, in order to learn about peace efforts during the latter half of the 20th century, and to gain her experienced perspective on where the world is tending now. But perhaps even more importantly, we wanted to paint for our readers a portrait of one woman’s life dedicated to creating a world in which children might feel safe.

No Safe Place on Earth

The course of Dr. Boulding’s adult life grew out of a childhood perception. “I was born in Norway in 1920,” she said, “and we came to this country when I was three. My early memories were of war movies, and Mom being homesick for Norway.” As a little girl, Elise was frightened by the images of war, so she decided on a plan. If war broke out again, she would return to Norway. The peaceful homeland for which her mother longed. Where she knew she would be safe.

“Then came World War II,” she said, “and the invasion of Norway. And that was when I realized that there was no safe place on earth. And I knew that I had found my life’s mission.”

Like all of the thousands, perhaps hundreds of thousands, of peace-people who are truly making a difference, Dr. Boulding has primarily focused on what’s right with the world, not on what’s wrong with it. Rather than opposing war, she has studied what can be done to prevent it – how to resolve conflicts without fighting.

“We Had No Sense of Strategy”

During and after WWII, Elise Boulding began to become involved in various efforts to bring an end to all wars. She became a Quaker, and she and some of her fellow “witnesses against war” wrote what she calls a ”seditious public letter.” The letter simply said that we should not be in the war, that people should just lay down their arms. ”We had no sense of strategy. And we expected to go to jail. But nobody paid any attention to us.”

Soon, marriage and five children captured most of her time, but she remained active during her childbearing years, teaching peace to children and participating in activist projects of the fifties. She also joined Women’s International League for Peace and Freedom, and started a newsletter to unite women in behalf of world peace.

”When we went to Japan for a year, from 1963 to 1964, my kids were in school – they used to walk to school through the rice fields. I had some time, so I decided to find out how things work. In those days, Japanese women were demonstrating in the streets.”

But the research she sought to undertake needed resources, and she could not obtain them with her master’s degree. So upon returning to the states, she took a PhD at the University of Michigan. ”Then I could get funds. It made a ridiculous amount of difference,” she said.

The Dartmouth Years

She was in the Sociology Department at the University of Colorado when Dartmouth College invited both Elise and her husband, Kenneth, to become Scholars in Residence. This program offered room and board plus a stipend; all they had to do was spend the year talking to students and faculty.

Although Kenneth eventually returned to Michigan because of the research staff he had there, Elise Boulding remained behind at Dartmouth, where she chaired the Sociology Department and developed the college’s Peace Studies program. ”We had a long-distance marriage,” she said. ”And we were both traveling so much, we were just as likely to run into each other in some foreign city as anywhere else.”

”Some . . . Have Lost Their Husbands
and Children to Each Other’s Men”

When asked what she felt was the most important thing to creating world peace, Dr. Boulding answered without hesitation. ”We need more women in decision-making positions, both in government and in the public sphere. Especially in the United States.”

Dr. Boulding talked of an Africa-wide peace council, an offshoot of the International Fellowship for Reconciliation, that includes groups of women in every country in Africa. ”These women are always in contact with each other,” she said. ”Some of them are being trained to work with the elders, to point out to them the ways that exist already in their traditions to resolve conflicts in a peaceful way.

”They are saying to the elders, ‘We have to sit down in a circle and talk.’ These are ways that the men have always known and have forgotten. Some of these women have lost their husbands and children to each other’s men. Yet they come together, to share, and to strengthen each other.” Wherever there is genocidal conflict in Africa, Dr. Boulding said, these women are there, too, trying to end it.

”The Women’s Movement has worked hard, but other countries are way ahead of us,” Dr. Boulding says. ”And it’s been proved in all peace organizations that when women are in a coordinating role, it works better. I don’t think this is a genetic thing. It’s cultural. Partly, I think, it’s because women’s culture involves a lot of listening.”

”There is a generation of women who are full professionals coming into conflict resolution,” Dr. Boulding said. ”This new cadre of women can change the direction of how we handle conflict. We’re learning to create the governing structures that would make disarmament possible.”

A hopeful thing that’s happened recently, Dr. Boulding said, is that the United Nations Security Council has finally acted upon the knowledge that women are more effective than men at this peacemaking business. ”After years of effort trying to make this happen, the U.N. have finally made it an official policy to have women on all peace projects,” she said (see U.N. Resolution 1325: A New Landmark Initiative for World Peace).

The Back-and-Forth People

The second most important thing to improving efforts at peace, according to Dr. Boulding, is for us to become aware of the sheer size of the peace effort that is happening in today’s world. If we knew what was actually happening – how many thousands of individuals and groups were working to create peace – this in itself, she feels, would change world consciousness.

And the peace-seekers do not have an easy job. one of the big stumbling blocks, she said, is that representatives to the United Nations and other bodies do not usually have the power to sign agreements. ”Every little change requires an intensive process, back and forth. The representative goes home or across town and talks to his own country’s officials, then returns to the conference table, then it’s back to his own people, and back to the conference table, on and on.”

Dr. Boulding paints us a vivid picture of the huge cadre of dedicated civil servants spending their lives in taxis, on buses and airplanes, or walking – from country to country, city to city, hotel to hotel, room to room – all trying to bring peace to our planet.

”The only reason any positive change ever comes about is because of these thousands of people, going back and forth, back and forth. And the only way they can do this is that they have a Vision.”

This, Then, Is the Untold Story

Until we ourselves at the Spirit of Ma’at began to research the world’s efforts to create peace, we had no inkling of the sheer size of the peace movement. The subject of peace has become bigger than the subject of war – the reason it doesn’t seem so is that it’s not reported in the media.

The great, untold story of the peace movement is how many people and organizations are involved in it. Not only people, but newsletters, conferences, councils, committees, elderly groups, youth groups, celebrities, art, music, websites. The untold story is the sheer weight of the numbers of those who have the vision of a world without war.

What we need, Elise Boulding insists, is more awareness of what’s going on. Identify the players. Realize the expenditures of energy.

Give them energy, she urges.
Pray for them.
Know that they exist.
And if it’s yours to do —
become one of them.
Dr. Boulding concluded by describing a Buddhist worship service that she attended during the holidays. ”I could see the whole room – several thousand people. And I was thinking, ‘These are my neighbors, and I never see them.’ We were chanting together, lifted in the Spirit together, to a new place.

”I remember reading in the New York Times about biomusic – how human beings did not invent music, every living thing makes music.

”I love to think,” she said, ”of all the world singing. Every living thing.”

Books by Elise Boulding, PhD:

The Future: Images & Prophecies, Sage Publications, Incorporated(1994) [with Kenneth Boulding]; One Small Plot of Heaven: Reflections on Family Life by a Quaker Sociologist, Pendle Hill Publications(1993); New Agendas for Peace Research: Conflict & Security Reexamined, Rienner, Lynne Publishers, Incorporated(1992); Building a Global Civic Culture: Education for an Independent World, Syracuse University Press(1990), Peace & Conflict Resolution (Paperback) Series; Women: The Fifth World, Foreign Policy Association(1980), Headline Series; Children’s Rights & the Wheel of Life, Transaction Publishers(1980); The Family As a Way into the Future, Pendle Hill Publications(1978); The Underside of History: A View of Women Through Time, Sage Publications, Incorporated(1992), Westview Press(1976), Westview Press(1977); Born Remembering, Pendle Hill Publications(1975); Children & Solitude, Pendle Hill Publications(1962).

박정희의 현충사 현판 떼라-충무공 후손 170914

박정희의 현충사 현판 떼라!!! 충무공 후손
년도별/픽션 이야기 911

2017-09-14 07:56:37

일제가 박은 대못은 뽑는다고 난리를 치면서 친일독재자가 충무공을 희롱하고 개구덜이 각종 단체를 만들어서 도산 안창호의 흥사단을 희롱하고 심지어는 각 독립투사 유공자 후원단체라고 만들어서 희롱하는데도 좋다는 궁민덜… 그들이 민족정신을 희롱할때는 항상 ‘빨갱이’ 공산당이라는 이름을 쒸웠지!!!! 그래도 좋단다!!! 에고 그나저나 빡쫑히가 충무공 뒤뜰에 심었다는 그 일본 금송은 아직도 잘있나?? 에고….

우주 팽창 빅뱅은 천지창조 171103

우주 팽창 빅뱅은 천지창조
년도별/퍼온글

2017-11-03 10:43:57

얼마 전 프란치스코 교황이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머무는 우주인들과 철학적인 대화를 나누어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교황은 우주인들에게 “우주 속 인간 존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고, 우주생활에 대한 관심과 함께 세상을 신의 시각에서 볼 수 있는 우주인들에게 부러움을 표하면서 20분간 우주인들과의 대화를 이어갔다.

원래 로마 교황들의 우주에 대한 관심은 오랜 전통이다. 자신들의 신앙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갈릴레오의 대학 동문이었던 교황 우르바누스 8세가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오를 모질게 박해한 것도 교리 문제가 얽혀 있었기 때문이다. 갈릴레오가 “성서는 하늘로 가는 방법을 가르쳐줄 뿐이며, 하늘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는 말해주지 않는다”라고 항변했지만, 끝내 종신 연금을 피할 수가 없었다.

이처럼 과학을 억압했던 기독교이지만, 20세기 들어서 세불리를 느끼자 더이상 저항을 멈추고 과학에 편승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마침 나타난 빅뱅 이론이 기독교에 더없이 좋은 소재가 되어주었다.

영원 이전부터 우주가 존재했다는 정상 우주론은 한마디로 ‘반기독교적인 우주론’이었다. 기독교에서 볼 때 가당찮은 주장이었다. 영원 이전이라니, 우주는 분명 하나님이 6000년 전에 창조하신 것이라고 성서는 말하고 있잖은가. 이건 남의 얘기가 아니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도 한 공직자 후보가 “지구의 역사가 6000년”이라 말해 세상을 경악시킨 일이 있었다.

성서에는 분명 이렇게 적혀 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빅뱅 이론이 바로 이 천지창조를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우주도 시작이 있었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더욱이 이 빅뱅 이론을 맨먼저 주창한 이는 벨기에 출신의 천문학자인 가톨릭 신부였다. 조르주 르메트르. 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하다가 1차대전에 참전하고 돌아온 후 인생 항로를 크게 틀어 천문학자가 되었다.

우주가 탄생한 날은 ‘어제 없는 오늘’

수학에 폭넓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르메트르는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원리에 나오는 중력장 방정식을 깊이 연구한 끝에, 우주는 과거 한 시점에서 시작되었으며 지금도 팽창하고 있다는 ‘팽창우주 모델’을 세상에 선보였다.

빅뱅이론의 아버지 르메트르. 평생 ‘신의 길’과 ‘과학의 길’을 같이 가기로 결심한 후 천문학자로 빅뱅이론을 주창했다.

빅뱅이론의 아버지 르메트르. 평생 ‘신의 길’과 ‘과학의 길’을 같이 가기로 결심한 후 천문학자로 빅뱅이론을 주창했다.
르메트르는 후일 빅뱅 이론으로 발전된 ‘원시원자’(primeval atom) 개념을 도입하여 팽창하는 우주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우주의 기원, 즉 그가 ‘어제가 없는 오늘’(The Day without yesterday)이라고 불렀던 태초의 시공간에 도달한다는 선구적 이론을 펼쳐냈다.

1927년 브뤼셀에서 열렸던 세계 물리학자들의 솔베이 회의에 참석한 르메트르는 아인슈타인을 한쪽으로 데리고 가서 자신의 팽창우주 모델을 설명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으로부터 “당신의 계산은 옳지만, 당신의 물리는 끔찍합니다”라는 끔찍한 말을 들었다. 아인슈타인이 거부한다는 것은 곧 전 과학계가 거부한다는 뜻으로, 르메트르는 자신의 이론에 흥미를 잃고 한동안 잊은 듯이 지냈다.

그러나 그로부터 2년 뒤인 1929년 혜성처럼 나타난 미국의 신참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이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움직일 수 없는 관측 증거를 내놓았다. 이 하나의 발견으로 허블은 20세기 천문학계의 영웅으로 등극했고, 빅뱅 이론은 화려하게 부활했다.

1950년, 교황 비오 12세가 르메트르의 팽창우주 모형, 즉 원시원자 이론이 유신론의 증거로, “성서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를 과학적으로 입증해주었다”고 선언했다. 르메트르는 이 교황의 말에 크게 화를 내며, 개인적으로 종교와 과학을 섞는 것을 반대한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에는 아직 빅뱅 이론이 정상 우주론과 치열한 논쟁을 하는 중으로, 교황의 개입이 오히려 빅뱅 이론을 궁지로 몰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프레드 호일 등 정상 우주론자들은 르메트르를 비판하면서, 가톨릭 신부 교육이 우주의 기원에 대한 그의 관점을 왜곡시켜 원시원자 이론이 성서의 창세기에서 ‘창조’라는 개념을 이끌어냈다고 공격했다. 아인슈타인 역시 팽창하는 우주라는 개념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으로 간주했다.

일개 신부의 신분이었지만 르메트르는 빅뱅 이론을 종교적으로 언급하는 것을 삼가줄 것을 교황에게 건의했고, 그후 비오 12세는 두번 다시 빅뱅이 창세기의 천지창조라는 주장을 펼치지 않았다.

르메트르가 ‘솔베이의 절망’을 맛본 지 6년 만인 1933년, 마침내 아인슈타인의 항복을 받아냈다. 우주 팽창을 발견한 허블의 윌슨산 천문대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르메트르는 에드윈 허블을 비롯한 쟁쟁한 천문학자와 우주론자들 앞에서 빅뱅 모델에 대해 발표했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불꽃놀이를 가미하여 현재의 우주 시간을 시적으로 표현했다.

“모든 것의 최초에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불꽃놀이가 있었습니다. 그런 후에 폭발이 있었고, 그후엔 하늘이 연기로 가득 찼습니다. 우리는 우주가 창조된 생일의 장관을 보기엔 너무 늦게 도착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르메트르의 팽창우주 강의를 듣고 “내가 들어본 것 중에서 창조에 대해서 가장 아름답고 만족스러운 설명”이라는 찬사를 보냈다.

빅뱅 이론과 정상 우주론의 승부는 르메트르가 말한 ‘태초의 휘광’의 증거물이 1965년에 발견됨으로써 결정되었다. 바로 대폭발의 화석이라 불리는 우주배경복사였다. 미국 물리학자 펜지어스와 윌슨은 우주배경복사의 발견으로 1978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지금도 우리는 우주배경복사를 직접 볼 수 있는데, 방송이 없는 채널의 텔레비전에 지글거리는 줄무늬 중의 1%는 바로 그것이다. 138억 년이란 억겁의 세월 저편에서 달려온 빅뱅의 잔재가 당신 눈의 시신경을 건드리는 거라고 생각해도 결코 틀린 말은 아니다.

빅뱅이 과연 신의 ‘천지창조’일까?​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과학자들이 지금까지 내놓은 답은 이렇다. 인과(因果)에는 반드시 시간이 개입되며, 시간 역시 빅뱅과 함께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 이전에 무엇이 있었는가 묻는 것은 성립되지 않는 질문으로 아무런 의미도 없다.

빅뱅의 화석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은 임종을 앞둔 르메트르에게도 전해졌다. 평생 신과 과학을 함께 믿었던 빅뱅의 아버지 르메트르는 1966년 우주 속으로 떠나갔다. 향년 72세였다.

펌) 삶의 기술 171231

삶의 기술
2017-12-31 08:48:36

UC 버클리에는 ‘그레이터 굿 과학 센터(GGSC)’라는 부설기관이 있다. 안녕과 행복에 관해 연구하는 기관이다. GGSC 연구에 의하면 안녕/ 행복은 연습하고 익혀서 얻는 기술이다. 감사를 연습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를 실천하며, 마음집중으로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삶을 익히면 무거웠던 삶의 무게가 가벼워지면서 평안과 행복이 찾아든다고 한다.

삶 혹은 행복의 기술을 익히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 매일 아침 일어나 거울을 보며 웃는 것이다. 웃으면 뇌에서 도파민과 세로토닌이 분비되면서, 행복감을 높여주고 스트레스를 낮춰주며 면역기능을 활성화함으로써 장수를 돕는다. 거울 속 웃는 나를 보면 웃음의 효과는 배가한다고 한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으니 행복해지는 이치이다.

배우 황정민 주연의 영화 중에 “쇠문을 여는 건 큰 힘이 아니라 작은 열쇠”라는 대사가 있었다. 삶에 눌리지 않고, 도중하차 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내게 하는 것은 대단한 게 아닐 수 있다. 힘들 때 마다 허허 웃는 작은 미소, 그 긍정의 마음이 우리를 살아가게 한다.

펌) 곡성 – 인권 변호사 조영래 180131

곡성 – 인권 변호사 조영래
년도별/퍼온글

2018-01-31 11:58:05

http://blog.naver.com/hyung9624/221183821172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hyung9624&logNo=221183821172

영화 곡성인가???

한국 영화에 대한 실망감으로 한국 영화를 잘 안 보려고 노력한다.

특히 유명세를 떨치는 영화들은…

명바기 순시리그네 이후로는 거의 모든 것이 조작?으로 보여서…

또 그 유명한 블랙리스트로 인하여서 모든 지식인, 예술인, 영화인들은 권력의 시녀로 전락해 있어 보인다.

모든 시스템이 공산 사회주의 화 그리고 자격증화해 있어서 모든 자금을 정부로 부터 받기 때문이다.

이 자유민주주의 사회라는 개한민국은 무스그 협회 무스그 협회 해서 그 협회에 가입되어 잇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한다.

작게는 아파트도 무슨 회장을 뽑아서 그 갑질이란 하늘을 찌른다…. 이게 뭔 자유 민주주의 국가라는 거인지??? 궁민학교도 안다닌거인지??? ㅜㅜㅜ

말이 공공 기관이지 표면상 공공기관은 당연히 권력자의 한 손으로 핸들이 가능하다.

어떤 시스템이든지 사이비나 한 개인의 권력으로 모든 콘트롤이 가능해 졌다.

우민들은 뭐가 우짜 돌아가는지 모르고 우짜던지 한푼이라도 더 뜯어 내려고? 안달이다.

영화 제작도 마찬가지 이리라…

자유경제 시장은 몰락한지 벌써 오래고 ‘진흥 발전 기금’리라는 명목하에 모든걸 공공 기관에서 그 비용을 지출한다.

그러니 그 비용 지출 기관에 잘못 뵈면 궁물도 없다.

유명한 영화감독도 자살을 시도 한적이 있다.

멍청한? 궁민들은 그 이유를 모르고 오늘도 뭔가 자기 이익과 주장을 위해 대통령 관저의 게시판에 청원을 올리고 있다.

불이 나면 사용해서는 절대 안되는 유독성 건축, 보온 자재로 인해서 불에 타 죽기전에 질식해서 죽는데,

이런 대형 사고가 나도 건축 시스템은 절대로 바뀌지 않고…

오늘도 멍청한 국민들은 건축주나 당당 시청장이나 소방관들의 잘못과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한다.

세월호 같이 잘못된 엄청난 사고와 정말 아이들이 사먹는 사탕 사고 같이 아주 작은 사고에까지 그 유형을 같이 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궁민들은 원인이나 다른 사고엔 관심 없고 자기가 사고를 당하면 세상이 망한 것 처럼 울어 된다…

하여간, 대 히트를 친 밀정에 관한 영화도 수상하지 그런 유의 영화들이? 조작되어 보이는(ㅋㅋ 내눈에??) 흥행률도 약간 사기 같아서 보지 않으려 하는데….

오늘 우연히 어린시절을 보낸 고향 인천에 관한 검색에 부천이 뜨면서 80년대 부천경찰서 권모양 성고문 사건의 조영래 변호사가 떴다.

촛불이라는 거대한 괴물?이 결국 불가능할 것 같던 그네와 순시리를 몰아 냈지만 그동안 스러져간 민주투사나 희생자들은 잊혀가고 있는 것 같은데…

그 위대한 이름 조영래…

사실 사인은 담배를 너무피워서 걸린 폐암이지만 누가 그를 그렇게 담배 꼴초로 만들었는가???

군사독재라고 나는 단언한다.

하여간, 넘 아까운 사람이다.

전문을 카피하려 했지만 공권과 밀접해 보이는 네이버에 잇어서 자주 안쓰다 보니 패스워드가 기억나지 않는다.

다음도 정부 사찰이 가능해지고 조작의 앞편에 있어 보여서 더 이상 믿기는 힘들지많은…

곡성 #인권 #권인숙 #조영래 #민주 #밀정 #부천성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