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은 별로 경험은 없지만, 정말 황토 벽으로 둘러 쌓인 조그마한 시골 초가 사랑방 에서 칠흙같이 어두운 긴긴 겨울밤을 지새울때 이런 생각들이 들것 같기도 하다.
또 친구의 방문…
세상에 목메고 사는 범생들의 이야기…
어떨 때는 하나님의 아들의 마음을 품고자 하나, 찌질한 세상이야기를 듣고 있으려면 짜증이 날때도 있는데…
그러나 절박하게 사는 세상사람들…
그들의 고통을 동사습(同事習)의 마음으로 공감하려고 해도 짜증만 난다….
왜? 내 모습 같기 때문이다.
..
아!! 참 시인은 나의 마음을 잘알도 표현해 주는 것 같다.
오늘의 시는 정말 짜증이 나면서도 넘 재미가 있다.
시, 긴 겨울 – 송명희
사랑방 천정에 매달린 메줏덩이가 내 얼굴로 떨어졌다 하루 종일 메주 냄새와 함께 지낸 메주 같은 하루였다 메주처럼 네모난 친구가 밤에 나를 찾아왔다 고해 아닌 고해를 꺼낸다 어리석은 인간 여기 또 있었네 밤새 내 이야기를 친구가 대신한다 “깊고 고요한 겨울 들판, 한가운데 서 있어” 참 긴 겨울이라고 푹 꺼진 눈가에 물기가 퍼진다 “모두가 행복할 수 있을까” 더는 말하고 싶지 않았다 기울어진 천정 아래 냄새나는 방안에는 서로의 가슴팍을 치는 뽀오얀 곰팡이들만 메주 위에 가득했다
UC 버클리에는 ‘그레이터 굿 과학 센터(GGSC)’라는 부설기관이 있다. 안녕과 행복에 관해 연구하는 기관이다. GGSC 연구에 의하면 안녕/ 행복은 연습하고 익혀서 얻는 기술이다. 감사를 연습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를 실천하며, 마음집중으로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삶을 익히면 무거웠던 삶의 무게가 가벼워지면서 평안과 행복이 찾아든다고 한다.
삶 혹은 행복의 기술을 익히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 매일 아침 일어나 거울을 보며 웃는 것이다. 웃으면 뇌에서 도파민과 세로토닌이 분비되면서, 행복감을 높여주고 스트레스를 낮춰주며 면역기능을 활성화함으로써 장수를 돕는다. 거울 속 웃는 나를 보면 웃음의 효과는 배가한다고 한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으니 행복해지는 이치이다.
배우 황정민 주연의 영화 중에 “쇠문을 여는 건 큰 힘이 아니라 작은 열쇠”라는 대사가 있었다. 삶에 눌리지 않고, 도중하차 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내게 하는 것은 대단한 게 아닐 수 있다. 힘들 때 마다 허허 웃는 작은 미소, 그 긍정의 마음이 우리를 살아가게 한다.
예전 미국의 수도 워싱톤 제일침례교회를 시작하신 김현칠목사님도 교회를 잘 이끌다가 ‘체험이 없었다’라고 하며 이동원목사를 후임으로 하고 교단 디렉터로 옮겼다.
허기사, 그래도 몇십년을 피터지게 싸우고 교인들을 시험에 들게 하고도 잘못한게 하나도 없다고 하는 목회자들이 많으니 할 수 없는 일이다.
이 홍목사님도 결론으로 ‘예수를 잘 믿으라’이다.
어쩌면 예수님은 이 말을 하기 위해서 왔는데…
우리는 아직도 이말을 하고 있는가??
처음 제자들을 내 보냈을때 그들이 한 말 처럼???
하지만, 첫오순절 이후 제자들은 변했고 오늘에 이르렀다.
그런데, 우리 한국 교계는 아직도 이말만 거듭하고 있다.
그리고 생활전선에 나선 진보지도자을은 용납도 하지 않고 권력과 재물에 밀착해서 살고 있다.
그리고 사이비들의 수 많은 꽁수, 또 새로운 우상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
무슨 은사를 해야 하고, 무슨 신앙을 해야하고…
수많은 신학 과외학원?들이 세워지고 난무하고 있다.
회개없이!!!????….
예수를 잘 믿기위해서???…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목자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목자처럼 행동한다….
▲홍정길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홍정길 목사는 “목회한 지 50년이 넘었지만, 교회 개척해서 처음 3년을 빼곤 목회자로 불릴 수 없을 것 같다”며 “목회의 본질은 요한복음 10장에 나와 있듯 목자는 양을 알고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는 것인데, 3년이 지나 500가정이 되고 교인이 2,000명으로 불어나니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게 불가능해지더라”고 털어놓았다.
홍 목사는 “누가 양인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목자라 할 수 있겠나. 그러다 보니 어느새 목회는 사라지고 매니지먼트(management·관리)만 남게 됐다”며 “주님이 보시기에 나는 가짜 목사였던 것이다. 그래서 고민이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 한국교회가 가장 잊고 있는 것’에 대해선 “무엇보다 목회의 본질을 찾지 못하고 있다. 우리 1세대는 교인들이 교회로 몰려드는 시기였다. 하지만 지식과 경험이 없다 보니 미국의 대형교회를 벤치마킹할 수밖에 없었다”며 “문제는 그 과정에서 날로 커지는 자신의 교회를 어떻게 하면 잘 유지·관리하느냐에 모든 시선이 고정돼 버린 것이다. 교회는 목사와 교인이 인격 대 인격으로 깊이 교류하는 현장이 바탕이 돼야 하는데, 이게 결여되니 인격이 없는 목회가 돼 버렸다”고 지적했다.
‘기독교의 본질’에 대해서는 “당연히 구원이지만, 한국교회 복음주의자들은 구원의 반쪽만 가르쳤다”며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을 십자가에서 희생시켜 인간에게 새 생명을 준 게 구원의 본질이다. 또한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났으면 그에 걸맞게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성경도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구원받은 친백성이 되라고 가르치는데, 한국교회는 후자를 잊어버렸다”며 “우리 말은 생명·삶·생활이 각각 다른 단어지만 영어는 ‘life’ 하나다. 그런데 우리는 이걸 나눠서 새 생명을 얻은 걸로 딱 끝나버리고 삶으로 연결하는 건 애써 외면했다. 그러면서 아주 이기적인 기독교인의 삶이 돼 버렸다. 물질·건강 축복받고, 자식들 잘 되고…. 복음의 본질은 사라지고 자기 위안의 종교만 남은 셈”이라고 비판했다.
‘교회의 대형화·세속화 논란’에 대한 질의에는 “대부분의 대형교회 예배는 연출이 돼 버렸다. 목사도 좋은 엔터테이너가 돼야 성공했다고 인정받는다. 교인들은 어떤가. 일주일에 한 번 교회 나가는 걸로 면피만 하려 하진 않은지, 일상의 삶에서 십자가를 지고 가려는 노력 없이 십자가를 의지해 먹으려고만 하진 않은지 곰곰이 되새겨볼 때”라며 “한국교회는 실천의 종교였다. 3·1 운동도 교회가 주도하지 않았나. 당시 기독교인은 1.4%에 불과했지만, 감옥에서 숨진 사람 중엔 3분의 2나 됐다. 기꺼이 십자가를 등에 졌던 그때의 초심은 지금 어디로 갔는가”라고 반문했다.
‘젊은 층의 교회 외면’에 관해선 “근본 원인은 어른들에게 있었다. 엄마 아빠가 교회 장로·권사·집사인데, 말로는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다면서 실천이 뒤따르지 않으니 자녀들이 교회에 나갈 마음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요즘 젊은이들이 얼마나 영리한데, 윗세대의 말에 그냥 속아 넘어가겠나. 한국교회의 우민화가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또 “교회마다 성경공부에 공을 들인다. 제자훈련이라고도 하는데, 이게 큰 모순을 낳았다”며 “목사들은 제자훈련 프로그램으로 네트워크를 만들기 시작했다. 공부하려면 교회에 계속 나와야 하니, 이 프로그램을 통한 네트워킹으로 교인들을 교회에 묶어두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문제는 거기서 머물렀다는 점이다. 성경공부는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게 아니라 삶이 바뀌도록 하는 게 목적이 돼야 하는데, 목사가 먼저 본이 되는 삶의 모습을 보이지 못하니 스승이 없는 제자훈련이 돼 버렸다”며 “한국교회도 제2의 종교개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 중 하나”라고도 했다.
교회 세습 논란에는 “하나님의 법을 따르는 사람이 자기 교단의 법을 따르지 않는 것은 근본적으로 모순”이라며 “가장 안타까운 건 아들에게 평생의 멍에를 물려줬다는 점이다. 이전에 세습했던 2세 목사들도 요즘 많이 힘들어하더라. 그 멍에를 왜 물려주나. 자기가 이룩해 놓은 게 너무 크고 좋아서 남에게 줄 수 없다는 생각은 세상적인 욕심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부활절의 의미’에 대해선 “부활절 앞엔 반드시 고난주간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죽음이 있었기에 부활도 가능했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부활의 영광만 강조했지 부활 전의 고난은 소홀히 해 왔다”며 “죽음 없는 부활은 실체가 없는 빈껍데기에 불과하다. 먼저 희생하고 먼저 낮아지는 일상의 삶을 통해 고난을 감내해 나갈 때 부활도 의미가 있는 법”이라고 제언했다.
이를 위해서는 ”자아 성찰의 능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요즘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기 전에 30분간 어제의 삶을 하나씩 되새겨본다. 내가 말로 상처를 준 적은 없는지, 그릇된 행동을 하진 않았는지, 세상의 유혹에 넘어진 적은 없는지. 회개하다 보면 끝이 없다”며 “회개는 곧 자아 성찰이다.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마지막으로 후배 목회자들에게 “이전 세대를 흉내만 내려 하지 말고 넘어서길 바란다. 그게 진정한 선배 대접”이라며 “대형교회 목사들의 성공 사례를 그대로 답습하면 기존 사고의 노예만 될 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수를 잘 믿어야 한다. 너무 당연한 말 같지만, 자기가 쌓아놓은 것과 눈에 보이는 세상의 경험을 신뢰하지 예수를 신뢰하지 않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고 전했다.
주) 이게 언제일까??? 아마도 조선 한반도 역사에 처음 서민 민중의 첫 대통령이자 세계 최초의 인터넷의 힘으로 대통령이 되 노통이 물러나고 한번더 민주의 세상이 한번더 이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다음 블로그를 열었다.
그리고 그러한 흔적이 만고에 남을 것이라는 바람으로… ㅋㅋㅋ 그러나 그런 희망?과 기대는 조선에서 언제나 그랬듯이 여지 없이 깨지고 만다, 돈에 눈먼 넘들이 항상 그들의 양심을 팔아 먹었듯이…
그래도 다음은 반석위의 집이 될줄 알았다….ㄷㄷㄷ
그러나 그것은 반석이 아닌 모래위의 집이었다. 사이비들의 모함에도 불구하고 클리닝에 맞서 싸우던?? 다음은 순식간에 사찰이 가능해지고… 클리닝 센터라는 곳에서는 어떤 판결없이 이메일 한통으로 삭제하는 만행??들이 행해졌다.
어느날 갑자기 내 블로그가 없어져 버렸다. 카카오와 통합되기전 히스토리인가 뭔가와 무슨 연계가 있는 것은 알았지만 이제는 새로운 것에 둔해 졌을 나이가 이미 되기도 했지만 사찰과 해킹이 언제 어디서 일어날수 있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에 새로운 네트워킹을 쓰는 것은 안전하지 못한 시대가 되었기 때문에 다른 제의를 받아들이는 것은 관심이 없었다….
하여간, 블로그가 없어져서 오랜동안 보지 않던 이메일을 열어보니 딱! 3개월 전에 경고를 보낸 모양이다. 세월이 유수처럼 흐르는 나이도 되었지만 요즘 달나라에 갔다오는 시대에 누가 이메일을 본단 말인가?? 지네는 이메일 못쓰도록 카카오를 유행 시킨 넘들이 아닌가 ???
그런데 달랑 3개월 경고문을 보내고 15년을 해온 내 블로그를 한 순간에 없엔단 말인가??? 이게 뭔 친일군사독재란 말인가 공쌴 빨강이 짓이란 말인가???
매일보는 뉴스에도 어떤 경고도 소문도 듣지 못했다… 옛날 컴퓨터를 공부하고 네트워크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을 때…
이런 것들을 시작한 유명인들은 네트워크 또는 인터넷 선서??? 뭐 이런 선서문을 만든 것을 본적이 있다. 인터넷은 자유롭고 어떤 정치, 국가에 예속되지 않는… 뭐 이런…
그 양반들이 다 어디서 뭘하는 지는 모르지만.. 통신통제 기관들이 권력에서 나와서 권력의 시녀 역활을 하는 동안 믿엇던 지식인의 양심… 자유로운 시대가 되면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 될것 이라는 기대는 또 다른 정신적 폭력과 독재사기로 무너져 간다…
대한 민국 육군사관학교의 최고 엘리트 였던 최추봉 선생이 소천하기전 써 놓은 ‘이상한 세상이 되었다’ 는 글이 새삼 눈에 들어 온다…
글도 잘 쓰시던 최추봉 선생은 작고 후 그리고 다음의 만행으로 인해 그 블로그는 사라졌고 그의 글도 다 사라져갔다. 어떤 넘들이 계획하고 주도 하는 것일까??? 마치 진시황이 책을 다 불태웠다고 하는데… 모든 것을 불태워 버리겠다는 노력인지… 그러면 그들이 만행이 다 지워지리라 믿는 것일까??? 후후후 어림없는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