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성록 1월11일 금 흐림

1월 11일 금요일 흐림
나의 이야기

2008-02-09 04:57:00

벌써 금요일,

별로 한일도 없는데 벌써 일월 중순으로 접어들고 있다.

사실 어제 오늘 아침 일을 가고 오면서 밴안에서 부모님 생각이 났다.

‘참 신앙의 모범’을 보여주시고 ‘나그네’의 삶을 사시다 가신 분들에게 감사한 생각이 났다.

ㅎㅎ 남들(여편네?)은 내가 부친을 안 닮았다고 비양거리지만,

난 부친을 꼭 닮았다!!

생긴것도 그렇고 맘 약한것도 그렇고…ㅋㅋ

더욱 감사한 것은 아무리 맘이 약해도 절대로 신앙만은 흔들리지 않으신 것이다.

당신께서는 세상의 모든 손실을 감당하셨지만 ‘신앙’에 있어서는 타협하지 않았다.

‘타협’이라는 단어를 나의 뇌리에 박어준 사람은 옥수였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지만…

여자를 만나기도 어색했던 대학 1학년 여름 방학,

그녀는 놀랍게도 나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에, 그녀는 놀랍게도 ‘반말’로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뭔가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살겠노라’식의 표현이 있었다.

뭘 타협하지 않고 살겠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순수하게 살겠노라는 이야기인것으로 이해가 된다.

어찌보면, 현실적으로 처음 사랑한 여인이었는데 왜 한번도 데이트도 못하고, 언제가 여행을 가려던 계획이 이뤄지지 않았나 알수가 없다.

신의 계획이었나?

기독신앙도 모르고 자랐지만, 신앙좋은 대기업 지점장에게 시십가서 신앙그룹의 멘토역활을 톡톡히 하고 있다니…

‘신의 역사’가 놀라울 따름이다. 큰누이네와 가깝게 지내고 이러저러한 인연으로 누이네를 잘 섬긴다니 감사할 따름이다.

하여간, 부친을 생각하면서 감사했다.

부모님을 같이 ‘앗살하게?’ 신을 섬기지 못하지만, 항상 신을 먼저 생각할수 있는 믿음을 주신것이 눈물 나도록 감사했다.

아버님을 생각하면서 떠오른 것은 할머니이다.

그래서 오늘 일기의 제목은 ‘나의 친할머니’, ‘두분의 할머니’ ‘할머니 최병묵’등이다.

제목 :나의 할머니

나에게는 할머니가 두분계시다.

물론 뵌적은 없었지만…

한분은 청주 한씨이시고 다른 한분은 아버님 3형제를 키워주신 최병묵 할머니이시다.

한씨 할머니는 왜 이름이 없으신지 알수가 없다.

친가인 갈엽형네 족보에도 이름이 나와있질 않다.

장교장 부인이신 고모할머니도 최고의 교육을 받으신 신여성인데,

왜 우리할머니만 이름이 없는지 알수가 없다.

하여간, 삼촌을 낳고 돌아가셔서인지 부친께서는 친 할머니이신 이 ‘한씨할머니’에 대해 별로 언급을 하지 않으셨다.

가끔, 여쭤보면 최할머니에 대한 감사함만 몇마디 하셨었다.

부친이 돌아가시기전 2주전, 부친과 열흘을 같이 보냈다.

정신이 가물가물하셔서, 옛기억을 기억해 내지 못하고 있으셨다.

하루는, 물어보았다.

하늘에 가시면 누가 제일 보고싶으신가 하고 어떻게 하실것인지…

물론 예수님 빼고…

사실 나는 ‘모친’에 대해 언급하시길 기대 했다.

헌데, 친모가 아닌 길러주신 최할머니를 언급하셨다.

고집세고 무서운 할아버지때문에 할머니가 불쌍했다는 내용인것 같다.

언제가도 비슷한 말씀을 하신것 같기도 하다.

할아버지는 이마가 잘 발달되고 삼촌과 부친과는 달리 얼굴이 길지 않은 편이고,

긴 눈썹이 양쪽으로 쳐올라간 것이 장군상에 마치 불교의 어느 문을 지키는 나찰?과 같이 무시무시하게 생기셨다.

부친은 최할머니가 당신과 당신의 4형제를 잘 키워주셔서 감사하다는 것인지,

무서운 할아버지 밑?에서 고생하신 할머니가 불쌍하신것인지 정확히 알수는 없다.

홀로 전쟁중에 남하하셔서 부산서 병사하신 백부에 대해서도 할아버지를 닮아서 고집때문에 마음의 병이였다고 말씀하시곤했다.

아마 어린 삼촌은 어려서 할아버지에게 가까이 갈수 없었을지 모른다.

해서 그나마, 할아버지가 부친하고는 조금 서로 통하는 바가 있었을 런지도 모른다.

부친께서는 별로 말이 없으셨지만, 아마도 부친의 어감으로 봐서,

할아버지과 화를 내시고 하시면, 최할머니가 화를 당하시거나 피신?을 하시면 10대?의 부친께서만이 할아버지를 말리거나 도움을 줄수있었던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후, 최할머니가 어찌 되었는지 알수 없지만…

일찍 용정으로 나가 양복점을 여신 백부를 따라 부친도 집을 떠나셨다.

사실 그 무서운 할아버지 때문에 부친이 선한 성품을 갖게 되었는지 모른다.

그 무서운 조부는 부친이 어려서 심하게 앓게되어 아들을 살리기 위해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부친에 대한 조부의 사랑은 조금은 남 달랐는지 모른다.

부친은 이때 후로 한약을 괘짝으로 달여 마셨다하니 그 시골 노투고의 농부로서는 만만치 않은 낭비?였을지도 모른다.

인간의 애증의 관계?

이런 고집스럽고 무서운 조부때문에 ‘나그네?’같은 부친은 나에게 ‘항상 감사할수있는 성격’을 물려주신것이 아닐까?

나의 이런점을 가장 가깝게 안사람은 달라스에서 같이 매니저를 하던 미스터안이었던것 같다.

나를 ‘여린’사람이라고 했었다.

결국 중국 공산당에게 지주로 몰린 조부는 ‘북’으로 축줄되셨다는데…

60년대 혁명이후 북조선을 같다온 중헌형이 조부를 뵈고 왔다고 했다.

그때 최할머니가 같이 계셨는지 확실하게 물어보질 못해다.

그리고 당시, 쌀밥을 먹는 집은 할아버지 집밖에 없었다고 하니, 할아버지는 세계최고의 농부가 틀립없다.

그래서 그러신지, 부친은 어디를 가든지 조그마한 가든을 만드셨는데, 가끔 조부가 농사를 잘 지으셨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볼티모어 노인 아파트에서도 아파트 측이 마련해눈 가든을 하셨는데 봄철에는 땅을 되집어 주는 일들 해드렸다.

그 따뜻한 감정이 가슴에 살아있다. 부친의 농사가 남달리 잘되어서 다른 미국노인들이 시기하기도 햇다.

성애원 살때는 내가 초등학생이었지만 농사를 한번도 도와드리지 못한게 참 죄송한 생각이든다.

부친은 농사나 나무가지 치고 운반하는 일들을 한번도 시키시지 않으셨다.

좀 시켜주시지(가르쳐?) 않고… 초등학생이였스면 알아서 할수 있는나이였을까? 죄책감에 원망을 하게되기도 한다.

최할머니의 조카는 그 유명한 ‘간도20만원사건’의 주역 최봉설이다.

독립운동가로 모친의 이모부 전홍섭과 함께 ‘건국공로훈장’을 받으셨다.

손주인가 아드님이 아직 연길에 생존해 계시다.

최병묵

I. 자유주의 이전2 071123

I. 자유주의이전2
LT홉하우스의 자유주의

2007-11-23 08:28:11

이옛 사회기구는 내가 앞으로 지시하겠듯이 주로 자유주의 사상의 영감아래, 시민국가Civic State의 새조직에 천천히 나마 그러나 확실하게 굴복함으로써 그 자신은 물러가는 것이었다.

물론 구사회기구 자체가 근원적인 것일 수는 없다.

무엇이 참으로 근원적인가는 단언하기가 매우 어렵다.

허나 자못 명백한 한 事理사리가 있으니, 그것은 어느 시대임을 막론하고 인간은 사회 중에서 살아 왔으며, 혈연과 이웃이라는 끄나풀이 사회조직의 모든 형태 밑에 있다는 것이다.

가장 단순한 사회에 있어서는 아마 이 두 끄나풀이 참으로 중시되는 유일한 것이겠다.

이 두 끄나풀은 종교적 신앙이나 기타 신앙에 의해서 더욱 더 굳어지며 그 작용범위도 넓어진다.

자손의 날줄과 결혼의 씨줄로 확실히 일종의 천이 짜여지고, 이 천으로부터 작고 간단하기는 하되 밀접하고도 견고한 공동사회들이 형성된다.

허나 혈연과 이웃의 끄나풀들은 오직 좁다란 범위 안에서만 유효한 작용을 한다.

지방적인 집단, 동성의 씨족 혹은 부락 공동체는 왕왕 유력한 생활의 중심이 되지만, 또한편 종족Tribe이라는 보다 더 큰 집단에 이르러서는 군대적 조직에라도 의존하지 않는 한 진정으로 사회적 정치적 통일을 달성할 수가 거의 없다.

군대조직은 한 종옥을 단결시키는데 뿐 아니라, 다른 종족을 종속시키는데도 유용하며, 따라서 원시생활에서 가장 유가치하다고 할 많은 것을 희생하면서, 보다 더 큰 사회인 동시에 보다 더 질서가 서는 사회를 건설하는데 유용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한번 사회질서가 확립되고 보면 그 다음에는 도저히 徒手空拳도수공권으로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통치자에게는 드디어 불가침의 권력이 부여된다.

이에 그들 통치자는 제 마음대로 신이나 神孫신손이 되어서 절대적 권력을 부린다.

훅은 그들 통치자에게는 통치자에게는 특수한 승려계급의 신분이 주어져서 축복되고 높여진다.

어쨌든 잡아 쥐게 된 그들의 권력은 민중의 생명을 지배할 뿐더러 민중의 정신마저 지배하고 만다.

이들이 단지 현재 생명을 내리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명령권이 신으로부터 예정되있다고 한다.

이런 정치는 민중이 반드시 용인하지 않음이 아니요, 또 민중과 무관계하지도 않으나, 본질적으로는 위로부터 하는 정치GOVERNMENT FROM ABOVE다.

이런 정치가 민중PEOPLE의 생활을 전적으로 지배하는 동안 그것은 민중에게 이익되는 듯한 방법과 원칙에 기초해서 병역.納貢납공.의례등의 의무 및 신법에 복종하는 의무까지 부과한다.

일부 법학파가 주장하듯이, 법률은 강자가 약자에게 과는 명령이요, 그 배후에 형벌의 제재가 있는 명령이라고 함은 진리가 아니다.

일반법률에 관해서는 그 런 주장은 도저히 진리가 되지 않는 다.

그러나 권력주의 사회authoritarian society라고 우리가 말하는 특수한 단계의 사회에 있어서는 이런 주장은 진리인 것이다.

2.

대부분의 세계와 대부분의 역사를 통해서 두 형태의 사회조직만이 명백히 구별되어 발견된다.

물론 이 두형태는 그 자신 각각 세부에 있어서 변천할 수 있는 여지가 많으나, 그러한 변천의 밑바닥을 들여다볼 때에, 역시 그 두 타입이 되풀이해서 나타남을 우리는 안다.

즉 한쪽에 혈연관계의 작은 집단이 있어서 집단 자체만으로서는 가끔 매우 강력하되 통일적 행동을 하기에는 자못 미약한 타입이 있다.

다른 쪽에는 중국제국에서 작은 흑인왕국에 이르기까지, 크기와 문명정도가 서로 다른 큰 사회가 있고, 이런 사회는 군대의 힘과 종교적(혹은 준종교적) 신념의 어떤 결합에 의존하며 이런 결합을 우리는 권력주의principle of authority라는 공정한 명목으로 불렀다.

문명이 아직 낮은 단계에서는 서로 적대하는 씨족 사이의 분쟁을 진압하고, 공동의 적에 대해서 국경을 보전하며, 외면의 여러 질서를 확립하는 바, 권력주의의 한 방법만이 보통 나타났을 뿐이었다.

그래서 권력주의 지배를 택하지 않고 다른 것을 취함은, 도리어 야만생활의 비교적 무정부상태로 타락하는 것이었다.

3.

그러나 또하나의 방법이 고전적인 고대에 나타났었다.

고대 희랍과 고대 이탈리아와의 도시국가city state는 사회조직의 새로운 한 타입이었다.

그것은 혈연적 씨족과 다른 것이요, 어떤 점에서는 지방자치체commune와도 다른 것이다.

처음에 도시국가는 많은 씨족과 많은 촌락들을 내포하였다.

그리고 그것의 기원은 정복에서가 아니라 비교적 평등했던 동맹에 기초해서, 흩어져 있던 씨족들이 한 곳에 집결한데 있었다.

이런 도시국가를 고대의 제국이나 근대국가에 비교하면, 그것은 대단히 작은 규모이나, 원시적인 혈연적 친족보다는 훨씬 큰 규모였다.

도시국가의 생활은 변화가 있었고 복잡하였다.

그것은 개인에게 자유활동을 상당히 허락했으며, 그것이 발전함에 따라서 옛 씨족조직을 압박하였고 그 대신 지리적인 새로운 구분 및 기타의 새로운 구분을 두었다.

그 것은 사실 결코 혈연관계 위에 기초하지 않고, 공민적civic right에 기초해 있었다.

도시국가가 지방 자치체로부터 구별될 뿐더러 동양의 군주정치로부터 구별되는 것도 바로 이 점에 있어서다.

도시국가에서는 국가가 인정하였고 또 국가가 존립하도록 한 바, 법률은 복종하는 대중의 위에 우월자로 나선 정부가 과는 명령이 아니었다.

반대로 정부 자체가 법율에 복종해 있어서 법률은 국가의 생명이었고, 자유 시민의 전체에 의해서 자발적으로 법률은 지지 받았다.

이런 의미에서 도시국가는 자유인들의 공동사회community였다.

요약해 말하면 도시국가의 시민들은 아무런 상전도 가지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 자신들을 지배하였고, 자고로 전해져 온 생활의 원칙과 규칙에만 복종하였으며, 그들의 세력은 繼起계기한 세대들의 자발적인 순종에 유래한 것이었다.

이러한 사회공동체에서 사람을 괴롭게 한 문제등 중의 약간은 가장 단순한 형태를 띠고 나타났다.

더구나 개인가 사회공동체와의 관계는 밀접했고, 직접적이었으며, 자연스러웠다.

시민들의 이해관계는 명백히 일괄되어 있었다.

개개인이 그들의 의무를 수행하지 않으면 국가는 쉽사리 무너져서 인민은 노예화 하였다.

또 한층 더 중대한 일은 그 사회공동체에서는 교회와 국가와의 대립도 없었고, 정치생활과 종교생활 사이의 알력(軋轢)도, 현세의 요구와 내세의 요구 사이의 분열도 없었으며, 그래서 시민들의 공순(恭順)을 방해하는 일이나 양심의 권위가 애국작인 의무에 반대함이 도무지 없었다.

安(안)隱(은)한 생활을 위해서 그런 사회공동체를 사람들이 결성한 것이라고 진술하는 것은 철학적인 어떤 사색의 소치가 아니라 단지 사실의 솔처럼 절로 고대 희랍의 생활상태로부터 발단하였다.

이 화백 071127

이화백071127
편지

2007-11-28 02:59:07

히히 그래도 니 글 보니 반갑고나!!
나이가 들면 더 여유가 있을것 같은데 맨날 정신없이 산다.

거의 교회를 중심으로 사니 원가 신이 원하는 일을 한다고 하지만 아무것도 하는 것이 없는것 같다.

다인 모의 어린이 집도 뭔가 같이 동역을 해야되는데…

교회라는 곳도 하도 의견이 분분하니 의견을 내 놀수 조차 없다.

이곳 사회관도 제대로 운영을 못하고 있으니…

다인이가 학교가 결정되지 않았구나?

우리 큰애 조이옥경은 가을에 씨애틀에 워싱톤 주립대학UW에 진학했다.

추수감사절이라 처음으로 집에 왔다 갔다.

컴퓨터 클래스에 들어서 자바로 인테넷 프로그램에 속 빠졌다.

며칠 간 왔다 가면서도 내내 프로그램만 짜다가 갔다.

자주 연락 하자

Merry Christmas and Happy New Year!!

———[ 받은 메일 내용 ]———-
제목 : 킹다비드야 반갑구나!
날짜 : 2007년 11월 27일 화요일, 오후 23시 04분 46초 +0900
보낸이 : “이화백”
받는이 : “kingdavid”

오랜만에 내 홈페이지에 가보니 너 글이 있구나.

늦어서 미안 하고나.

아버님께서 돌아가셨구나. 위로의 말 전한다.

우리집 딸내미(다인)도 올해 시험을 쳤다. 미대간다구 그러는데

결과가 어떨지 몰것다.

그라고 문근이 전화번호가

 핸드폰 : 000000000이다.  문근이에게 너가 보고 싶어 하드라고 전하마.

지금은 어디 있냐?

누님도 몸이 안좋으시다고 하더니만……

미국갔던게 아득하구먼. 언제 또 갈 기회가 있을지. ㅋㅋ

너하고 며칠 여행한게 참 좋았다. 한 열흘간 더 여행하다 올걸 그랬나 보다.

시애틀 어딘가에서 수대 식공과 동기가 주유소를 한다고 하더니만

대벽아 종종 소식 전하며 살자.

See u again…

자유주의 이전 2

I. 자유주의이전2

LT홉하우스의 자유주의

2007-11-23 08:28:11


이옛 사회기구는 내가 앞으로 지시하겠듯이 주로 자유주의 사상의 영감아래, 시민국가Civic State의 새조직에 천천히 나마 그러나 확실하게 굴복함으로써 그 자신은 물러가는 것이었다.

물론 구사회기구 자체가 근원적인 것일 수는 없다.

무엇이 참으로 근원적인가는 단언하기가 매우 어렵다.

허나 자못 명백한 한 事理사리가 있으니, 그것은 어느 시대임을 막론하고 인간은 사회 중에서 살아 왔으며, 혈연과 이웃이라는 끄나풀이 사회조직의 모든 형태 밑에 있다는 것이다.

가장 단순한 사회에 있어서는 아마 이 두 끄나풀이 참으로 중시되는 유일한 것이겠다.

이 두 끄나풀은 종교적 신앙이나 기타 신앙에 의해서 더욱 더 굳어지며 그 작용범위도 넓어진다.

자손의 날줄과 결혼의 씨줄로 확실히 일종의 천이 짜여지고, 이 천으로부터 작고 간단하기는 하되 밀접하고도 견고한 공동사회들이 형성된다.

허나 혈연과 이웃의 끄나풀들은 오직 좁다란 범위 안에서만 유효한 작용을 한다.

지방적인 집단, 동성의 씨족 혹은 부락 공동체는 왕왕 유력한 생활의 중심이 되지만, 또한편 종족Tribe이라는 보다 더 큰 집단에 이르러서는 군대적 조직에라도 의존하지 않는 한 진정으로 사회적 정치적 통일을 달성할 수가 거의 없다.

군대조직은 한 종옥을 단결시키는데 뿐 아니라, 다른 종족을 종속시키는데도 유용하며, 따라서 원시생활에서 가장 유가치하다고 할 많은 것을 희생하면서, 보다 더 큰 사회인 동시에 보다 더 질서가 서는 사회를 건설하는데 유용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한번 사회질서가 확립되고 보면 그 다음에는 도저히 徒手空拳도수공권으로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통치자에게는 드디어 불가침의 권력이 부여된다.

이에 그들 통치자는 제 마음대로 신이나 神孫신손이 되어서 절대적 권력을 부린다.

훅은 그들 통치자에게는 통치자에게는 특수한 승려계급의 신분이 주어져서 축복되고 높여진다.

어쨌든 잡아 쥐게 된 그들의 권력은 민중의 생명을 지배할 뿐더러 민중의 정신마저 지배하고 만다.

이들이 단지 현재 생명을 내리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명령권이 신으로부터 예정되있다고 한다.

이런 정치는 민중이 반드시 용인하지 않음이 아니요, 또 민중과 무관계하지도 않으나, 본질적으로는 위로부터 하는 정치GOVERNMENT FROM ABOVE다.

이런 정치가 민중PEOPLE의 생활을 전적으로 지배하는 동안 그것은 민중에게 이익되는 듯한 방법과 원칙에 기초해서 병역.納貢납공.의례등의 의무 및 신법에 복종하는 의무까지 부과한다.

일부 법학파가 주장하듯이, 법률은 강자가 약자에게 과는 명령이요, 그 배후에 형벌의 제재가 있는 명령이라고 함은 진리가 아니다.

일반법률에 관해서는 그 런 주장은 도저히 진리가 되지 않는 다.

그러나 권력주의 사회authoritarian society라고 우리가 말하는 특수한 단계의 사회에 있어서는 이런 주장은 진리인 것이다.

2.

대부분의 세계와 대부분의 역사를 통해서 두 형태의 사회조직만이 명백히 구별되어 발견된다.

물론 이 두형태는 그 자신 각각 세부에 있어서 변천할 수 있는 여지가 많으나, 그러한 변천의 밑바닥을 들여다볼 때에, 역시 그 두 타입이 되풀이해서 나타남을 우리는 안다.

즉 한쪽에 혈연관계의 작은 집단이 있어서 집단 자체만으로서는 가끔 매우 강력하되 통일적 행동을 하기에는 자못 미약한 타입이 있다.

다른 쪽에는 중국제국에서 작은 흑인왕국에 이르기까지, 크기와 문명정도가 서로 다른 큰 사회가 있고, 이런 사회는 군대의 힘과 종교적(혹은 준종교적) 신념의 어떤 결합에 의존하며 이런 결합을 우리는 권력주의principle of authority라는 공정한 명목으로 불렀다.

문명이 아직 낮은 단계에서는 서로 적대하는 씨족 사이의 분쟁을 진압하고, 공동의 적에 대해서 국경을 보전하며, 외면의 여러 질서를 확립하는 바, 권력주의의 한 방법만이 보통 나타났을 뿐이었다.

그래서 권력주의 지배를 택하지 않고 다른 것을 취함은, 도리어 야만생활의 비교적 무정부상태로 타락하는 것이었다.

3.

그러나 또하나의 방법이 고전적인 고대에 나타났었다.

고대 희랍과 고대 이탈리아와의 도시국가city state는 사회조직의 새로운 한 타입이었다.

그것은 혈연적 씨족과 다른 것이요, 어떤 점에서는 지방자치체commune와도 다른 것이다.

처음에 도시국가는 많은 씨족과 많은 촌락들을 내포하였다.

그리고 그것의 기원은 정복에서가 아니라 비교적 평등했던 동맹에 기초해서, 흩어져 있던 씨족들이 한 곳에 집결한데 있었다.

이런 도시국가를 고대의 제국이나 근대국가에 비교하면, 그것은 대단히 작은 규모이나, 원시적인 혈연적 친족보다는 훨씬 큰 규모였다.

도시국가의 생활은 변화가 있었고 복잡하였다.

그것은 개인에게 자유활동을 상당히 허락했으며, 그것이 발전함에 따라서 옛 씨족조직을 압박하였고 그 대신 지리적인 새로운 구분 및 기타의 새로운 구분을 두었다.

그 것은 사실 결코 혈연관계 위에 기초하지 않고, 공민적civic right에 기초해 있었다.

도시국가가 지방 자치체로부터 구별될 뿐더러 동양의 군주정치로부터 구별되는 것도 바로 이 점에 있어서다.

도시국가에서는 국가가 인정하였고 또 국가가 존립하도록 한 바, 법률은 복종하는 대중의 위에 우월자로 나선 정부가 과는 명령이 아니었다.

반대로 정부 자체가 법율에 복종해 있어서 법률은 국가의 생명이었고, 자유 시민의 전체에 의해서 자발적으로 법률은 지지 받았다.

이런 의미에서 도시국가는 자유인들의 공동사회community였다.

요약해 말하면 도시국가의 시민들은 아무런 상전도 가지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 자신들을 지배하였고, 자고로 전해져 온 생활의 원칙과 규칙에만 복종하였으며, 그들의 세력은 繼起계기한 세대들의 자발적인 순종에 유래한 것이었다.

이러한 사회공동체에서 사람을 괴롭게 한 문제등 중의 약간은 가장 단순한 형태를 띠고 나타났다.

더구나 개인가 사회공동체와의 관계는 밀접했고, 직접적이었으며, 자연스러웠다.

시민들의 이해관계는 명백히 일괄되어 있었다.

개개인이 그들의 의무를 수행하지 않으면 국가는 쉽사리 무너져서 인민은 노예화 하였다.

또 한층 더 중대한 일은 그 사회공동체에서는 교회와 국가와의 대립도 없었고, 정치생활과 종교생활 사이의 알력(軋轢)도, 현세의 요구와 내세의 요구 사이의 분열도 없었으며, 그래서 시민들의   공순(恭順)을 방해하는 일이나 양심의 권위가 애국작인 의무에 반대함이  도무지 없었다.安(안)隱(은)한 생활을 위해서 그런 사회공동체를 사람들이 결성한 것이라고 진술하는 것은 철학적인 어떤 사색의 소치가 아니라 단지 사실의 솔처럼 절로 고대 희랍의 생활상태로부터 발단하였다.  

071226 조선제일갑싼책이다

조선제일갑싼책이다

나의 이야기

2007-12-26 10:13:17


전에 이승만대통령전기나 오래된국어사전(최현배?) 또 첫침례교 번역신약 ‘만민됴흔기별’등 오래된 책을 어렸을때 성애원에서 박기양목사님께 드려버리고 나중 목사님이 가시면서 두섭이형 큰형(일지?)에게 주었는지 그가 갖고 있는것을 본것 같다.

찾아두었으면 좋았었을것을…

형이 잘 갖고 있는지…

하여간 인천을 떠나면서 성애원에 있던 축음기도 엿장사에게 부모님이 주어버려서 너무 안타까웠다.

부산에 대학입시때문에 갔다온 사이에 일이벌어졌었나?

어찌꺼나…

크리스마스 만찬을 나누다.

오래된 옥편을 펴보았다.

모친이 60년 3월에 ‘고서’에서 사신것으로 기록하신 옥편은

‘戊申년 拾貳일 서대문에서 李飛峯’이라는 글이 남아 있다.

어머니는 어디 헌책방에서나 길거리에서 책을 사셨을 것이다.

그책은 단기 4293(1960년)발행하고 원가가 1,000원으로 붙어있다. 80년대 갈비탕이 천원이었으니 아마도 ‘원가절하’가 한번더 있기전이었나 보다.

또 한책은 아무 크루?가 없는데,

끝 부분에 ‘모범鮮和사전’선전광고가 나오고

‘경성 박문서관’발행으로

이원오십전짜리를 일원20전에 드리겠다는 것과

부록만 보아도 몇십원가버치는 있다는 글귀가 나온다.

‘漢日鮮신옥편’으로 되어있어서 해�전에 만들어 진건 확실한데…

언제 만들어진것일까?

또하나는 포트랜드 시내 파월책방에서 구입한 조그마한 김소월의 ‘못잊어’인데…

한문 달필로 쓴 ‘이혜숙’싸인이 있다.

그 주인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한일선 옥편, 모범선화 사전 – 박문서관

2011년 선화사전 경매가 14만원??

#김소월 #못잊어 #경성 #이혜숙 #옥편 #이비봉 #한일선 #박문서관 #모범선화

071226 2007년 크리스마스

2007년 크리스마스
나의 이야기

2007-12-26 07:27:05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부천에서 수업을 시작할때 수업전에 칠판에 이글을 먼저 쓰곤했다.

박장군이 만든? 교육헌장!

왜 지금은 없어졌는지 모르지만 그시절에는 습관적으로 외우곤 했다.

대선을 통해서 얻은것은 ‘절망’이 더 많을까?

아름다운 글보다, 건설적인 말보다 미움과 증오의 글들이 더 많고 ‘자조’하는 글에 더 열광을 한다.

간혹 건설적인 글들이 올라오지만 대개는 ‘봉창두드리는’ 너무 innocence하게 느껴진다.

어쪄다 좋은글들은 그냥 맥이 없이 사라진다.

10여년전 ‘조독투’때는, 정말 쌍소리가 난부하는 속에서도 참 ‘학자’? 같은 사람들이 여럿있어서 …

볼만한 글들이 많았는데….

기독교는 악풀의 대상이고 증오의 대상일 뿐이다.

내가 기독교인이라는 것을 두려와 하거나 부끄러워 한적은 한번도 없는데 …

이제는 ‘미안한?’ 생각이든다.

대부문 좀 아는체하고 기독교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은 아니고 수준도 낮다.

그들은 더 낮은 사람들을 위해서 설명도 해주고 ‘말씀’도 들먹이지만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참 크리스찬들은 결국 끼어?들지 않고 있다.

아니면, 모르는 체!하고 대중속에 끼어서 같이 욕질들이나 하고 있거나…

‘까마귀 노는 골에?’ 오지 않고 있다.

증오를 갖고 비난하는 사람들을, 참 크리스찬은 비난하고 있을까?

참 크리스찬들은 ‘기독교를 증오를 갖고 욕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서로 만난다면 끝없는 비난과 비난으로 대화의 실마리를 풀지 못할것이다.

사이비?들은 더욱 심하다.

그들에게 ‘대화’는 없다. ‘주장’과 protect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거룩한?’사람들은 지저분?한 대화의 광장으로 나오질 않는다.

크리스찬과 비교도들 사이에 연결고리는 없는 것 처럼 보인다.

크리스찬에게 ‘참 진리의 능력?’이 적은 탓일까?

구원파를 우습게 알고 있었는데 그들이 ‘기독교한국남침례회’라는 명칭을 사용함으로 ‘침례교’라는 의미가 혼동됨을 알게 되었다.

좀 뭔가 해야만 할것 같다.

주님오신날 가족들과 만찬을 나누면선 자랑스런 한국침례교역사를 다시 흩어보았다.

다시 한번 감사한 일이다.

김용해 목사님이 64년도에 출판하신 ‘대한기독교침례회(기독교한국침례회)사’를 쓸까하다가 일단 홉하우스의 ‘자유주의’를 끝내야할것 같다.

언제나 끝낼수 있을런지 ㅎㅎ

071127 이인철화백

이인철화백 071127
편지

2007-11-28 02:59:07

히히 그래도 니 글 보니 반갑고나!!
나이가 들면 더 여유가 있을것 같은데 맨날 정신없이 산다.

거의 교회를 중심으로 사니 원가 신이 원하는 일을 한다고 하지만 아무것도 하는 것이 없는것 같다.

다인 모의 어린이 집도 뭔가 같이 동역을 해야되는데…

교회라는 곳도 하도 의견이 분분하니 의견을 내 놀수 조차 없다.

이곳 사회관도 제대로 운영을 못하고 있으니…

다인이가 학교가 결정되지 않았구나?

우리 큰애 조이옥경은 가을에 씨애틀에 워싱톤 주립대학UW에 진학했다.

추수감사절이라 처음으로 집에 왔다 갔다.

컴퓨터 클래스에 들어서 자바로 인테넷 프로그램에 속 빠졌다.

며칠 간 왔다 가면서도 내내 프로그램만 짜다가 갔다.

자주 연락 하자

Merry Christmas and Happy New Year!!

———[ 받은 메일 내용 ]———-
제목 : 킹다비드야 반갑구나!
날짜 : 2007년 11월 27일 화요일, 오후 23시 04분 46초 +0900
보낸이 : “이화백”
받는이 : “kingdavid”

오랜만에 내 홈페이지에 가보니 너 글이 있구나.

늦어서 미안 하고나.

아버님께서 돌아가셨구나. 위로의 말 전한다.

우리집 딸내미(다인)도 올해 시험을 쳤다. 미대간다구 그러는데

결과가 어떨지 몰것다.

그라고 문근이 전화번호가

 핸드폰 : 000000000이다.  문근이에게 너가 보고 싶어 하드라고 전하마.

지금은 어디 있냐?

누님도 몸이 안좋으시다고 하더니만……

미국갔던게 아득하구먼. 언제 또 갈 기회가 있을지. ㅋㅋ

너하고 며칠 여행한게 참 좋았다. 한 열흘간 더 여행하다 올걸 그랬나 보다.

시애틀 어딘가에서 수대 식공과 동기가 주유소를 한다고 하더니만

대벽아 종종 소식 전하며 살자.

See u again…

071123 LT홉하우스의 자유주의-자유주의 이전2

I. 자유주의이전2
LT홉하우스의 자유주의

2007-11-23 08:28:11

이옛 사회기구는 내가 앞으로 지시하겠듯이 주로 자유주의 사상의 영감아래, 시민국가Civic State의 새조직에 천천히 나마 그러나 확실하게 굴복함으로써 그 자신은 물러가는 것이었다.

물론 구사회기구 자체가 근원적인 것일 수는 없다.

무엇이 참으로 근원적인가는 단언하기가 매우 어렵다.

허나 자못 명백한 한 事理사리가 있으니, 그것은 어느 시대임을 막론하고 인간은 사회 중에서 살아 왔으며, 혈연과 이웃이라는 끄나풀이 사회조직의 모든 형태 밑에 있다는 것이다.

가장 단순한 사회에 있어서는 아마 이 두 끄나풀이 참으로 중시되는 유일한 것이겠다.

이 두 끄나풀은 종교적 신앙이나 기타 신앙에 의해서 더욱 더 굳어지며 그 작용범위도 넓어진다.

자손의 날줄과 결혼의 씨줄로 확실히 일종의 천이 짜여지고, 이 천으로부터 작고 간단하기는 하되 밀접하고도 견고한 공동사회들이 형성된다.

허나 혈연과 이웃의 끄나풀들은 오직 좁다란 범위 안에서만 유효한 작용을 한다.

지방적인 집단, 동성의 씨족 혹은 부락 공동체는 왕왕 유력한 생활의 중심이 되지만, 또한편 종족Tribe이라는 보다 더 큰 집단에 이르러서는 군대적 조직에라도 의존하지 않는 한 진정으로 사회적 정치적 통일을 달성할 수가 거의 없다.

군대조직은 한 종옥을 단결시키는데 뿐 아니라, 다른 종족을 종속시키는데도 유용하며, 따라서 원시생활에서 가장 유가치하다고 할 많은 것을 희생하면서, 보다 더 큰 사회인 동시에 보다 더 질서가 서는 사회를 건설하는데 유용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한번 사회질서가 확립되고 보면 그 다음에는 도저히 徒手空拳도수공권으로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통치자에게는 드디어 불가침의 권력이 부여된다.

이에 그들 통치자는 제 마음대로 신이나 神孫신손이 되어서 절대적 권력을 부린다.

훅은 그들 통치자에게는 통치자에게는 특수한 승려계급의 신분이 주어져서 축복되고 높여진다.

어쨌든 잡아 쥐게 된 그들의 권력은 민중의 생명을 지배할 뿐더러 민중의 정신마저 지배하고 만다.

이들이 단지 현재 생명을 내리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명령권이 신으로부터 예정되있다고 한다.

이런 정치는 민중이 반드시 용인하지 않음이 아니요, 또 민중과 무관계하지도 않으나, 본질적으로는 위로부터 하는 정치GOVERNMENT FROM ABOVE다.

이런 정치가 민중PEOPLE의 생활을 전적으로 지배하는 동안 그것은 민중에게 이익되는 듯한 방법과 원칙에 기초해서 병역.納貢납공.의례등의 의무 및 신법에 복종하는 의무까지 부과한다.

일부 법학파가 주장하듯이, 법률은 강자가 약자에게 과는 명령이요, 그 배후에 형벌의 제재가 있는 명령이라고 함은 진리가 아니다.

일반법률에 관해서는 그 런 주장은 도저히 진리가 되지 않는 다.

그러나 권력주의 사회authoritarian society라고 우리가 말하는 특수한 단계의 사회에 있어서는 이런 주장은 진리인 것이다.

2.

대부분의 세계와 대부분의 역사를 통해서 두 형태의 사회조직만이 명백히 구별되어 발견된다.

물론 이 두형태는 그 자신 각각 세부에 있어서 변천할 수 있는 여지가 많으나, 그러한 변천의 밑바닥을 들여다볼 때에, 역시 그 두 타입이 되풀이해서 나타남을 우리는 안다.

즉 한쪽에 혈연관계의 작은 집단이 있어서 집단 자체만으로서는 가끔 매우 강력하되 통일적 행동을 하기에는 자못 미약한 타입이 있다.

다른 쪽에는 중국제국에서 작은 흑인왕국에 이르기까지, 크기와 문명정도가 서로 다른 큰 사회가 있고, 이런 사회는 군대의 힘과 종교적(혹은 준종교적) 신념의 어떤 결합에 의존하며 이런 결합을 우리는 권력주의principle of authority라는 공정한 명목으로 불렀다.

문명이 아직 낮은 단계에서는 서로 적대하는 씨족 사이의 분쟁을 진압하고, 공동의 적에 대해서 국경을 보전하며, 외면의 여러 질서를 확립하는 바, 권력주의의 한 방법만이 보통 나타났을 뿐이었다.

그래서 권력주의 지배를 택하지 않고 다른 것을 취함은, 도리어 야만생활의 비교적 무정부상태로 타락하는 것이었다.

3.

그러나 또하나의 방법이 고전적인 고대에 나타났었다.

고대 희랍과 고대 이탈리아와의 도시국가city state는 사회조직의 새로운 한 타입이었다.

그것은 혈연적 씨족과 다른 것이요, 어떤 점에서는 지방자치체commune와도 다른 것이다.

처음에 도시국가는 많은 씨족과 많은 촌락들을 내포하였다.

그리고 그것의 기원은 정복에서가 아니라 비교적 평등했던 동맹에 기초해서, 흩어져 있던 씨족들이 한 곳에 집결한데 있었다.

이런 도시국가를 고대의 제국이나 근대국가에 비교하면, 그것은 대단히 작은 규모이나, 원시적인 혈연적 친족보다는 훨씬 큰 규모였다.

도시국가의 생활은 변화가 있었고 복잡하였다.

그것은 개인에게 자유활동을 상당히 허락했으며, 그것이 발전함에 따라서 옛 씨족조직을 압박하였고 그 대신 지리적인 새로운 구분 및 기타의 새로운 구분을 두었다.

그 것은 사실 결코 혈연관계 위에 기초하지 않고, 공민적civic right에 기초해 있었다.

도시국가가 지방 자치체로부터 구별될 뿐더러 동양의 군주정치로부터 구별되는 것도 바로 이 점에 있어서다.

도시국가에서는 국가가 인정하였고 또 국가가 존립하도록 한 바, 법률은 복종하는 대중의 위에 우월자로 나선 정부가 과는 명령이 아니었다.

반대로 정부 자체가 법율에 복종해 있어서 법률은 국가의 생명이었고, 자유 시민의 전체에 의해서 자발적으로 법률은 지지 받았다.

이런 의미에서 도시국가는 자유인들의 공동사회community였다.

요약해 말하면 도시국가의 시민들은 아무런 상전도 가지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 자신들을 지배하였고, 자고로 전해져 온 생활의 원칙과 규칙에만 복종하였으며, 그들의 세력은 繼起계기한 세대들의 자발적인 순종에 유래한 것이었다.

이러한 사회공동체에서 사람을 괴롭게 한 문제등 중의 약간은 가장 단순한 형태를 띠고 나타났다.

더구나 개인가 사회공동체와의 관계는 밀접했고, 직접적이었으며, 자연스러웠다.

시민들의 이해관계는 명백히 일괄되어 있었다.

개개인이 그들의 의무를 수행하지 않으면 국가는 쉽사리 무너져서 인민은 노예화 하였다.

또 한층 더 중대한 일은 그 사회공동체에서는 교회와 국가와의 대립도 없었고, 정치생활과 종교생활 사이의 알력(軋轢)도, 현세의 요구와 내세의 요구 사이의 분열도 없었으며, 그래서 시민들의 공순(恭順)을 방해하는 일이나 양심의 권위가 애국작인 의무에 반대함이 도무지 없었다.

安(안)隱(은)한 생활을 위해서 그런 사회공동체를 사람들이 결성한 것이라고 진술하는 것은 철학적인 어떤 사색의 소치가 아니라 단지 사실의 솔처럼 절로 고대 희랍의 생활상태로부터 발단하였다.

071117 LT홉하우스의 자유주의1

I 자유주의 이전
071117 LT홉하우스의 자유주의1

2007-11-17 05:39:04

1.

근대국가(modern state)는 무쌍한 문명의 탁월한 산물이다.

그러나 이런한 산물은, 아주 완성돤 것이 아니라, 지금도 형성되는 도중에 있으며, 그 형성과정의 일부는 사회질서의 신구원리新舊原理 사이의 투쟁임에 틀림없다.

우리의 주요한 목적은 사회 질서의 새원리(자유주의)를 이해하는데 있으나, 이를 위해서 사회질서의 구원리(권력주의)를 우선 별견瞥見할 필요가 있다. 즉 우리는 자유주의 발생하기 이전의 사회기구Social Structure가 어떠했던가를 이해해야 한다.

주)15년전 부친이 돌아가실때 인가부터 홉하우스의 자유주의를 타입하려고 했었는데 이유는 지금은 누구도 읽지 않을것 같은 구닥다리 고전이지만 민주주의의 역사가 없는 조선인들에게는 근본적인 개념일수 있다고 생각 핬었기 때문일것이다.

하지만 현대 심리학이 고전심리학을 정의 할때 근본적인 무의식속의 자아를 찾아내는 것 보다 현실적인 임상치료가 더 효과적이라고 정의 하는 것이나 스마트폰이라는 무선전화를 쓰는 시대에 굳이 전화선이 필요한것이 아이여서..

누구도, 아니 이제는 민주주의의 근본적인 개념이라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잇다.
해서 몇자 끄적이다가 펜을 놓고 만다… ㅠㅠ?? or ㅋㅋㅋㅋㅋ

071117 일성록780129맑음-흐리고 우박미스므레한것

071117 일성록780129맑음-흐리고 우박미스므레한것
년도별/78.1~11(6)

2007-11-17 04:57:57

1978년 1월 29일, 21시20분 , The Weather is not thinked? – 뭔소리??

日成錄

주-왠지 이순신 충무공의 난중일기를 읽고 일기를 꼬박꼬박 쓰자고 결심했었는데 일기를 그때문에 일성록이라고 부르곤 했는데…

난중일기에 일성록이라고 했는지는 기억이 없다.

어젠 心과 여행?

아침 6:25 청량리착 경주行

아침 5時 기상

‘갸’는 말을 하지 않는다.

無識? 해서, 아니면 말을 불필요해서라면

차라리 낫지.

‘갸’는 그의 성장과정에서 컴플렉스가

‘갸’를 그렇게 만들었다.

‘몰라’라고 대답하는 (버릇)에 관한 카운셀링.

시기는 최종학교를 졸업한 후 사회에 나온 지금부터 약 1년사이

-거짓말 일꺼다

이유는 갚은 고민 中 친구들의 참여에 대한 답변으로 정확한 해답을 내릴수 없는데 기인했던 것 같다고 한다.

  1. 고민의 量은 같으나 친구의 참여(질문) 증가로 인한 싫증에서 오는(말하기 ?은, 말할수 없는) 무성의한 대답.
  2. 친구의 참여(上同)의 量은 같으나…

결국 對話회피.

이유는 60-70%밖에는 친구들(부모, 형제보다)에게 말할수 없느 깊이의 고민을 하는 까닭?

對話의 ‘길이’ 내지는 대화에 대한 적극적인 자세 要.

이따위 말을 꺼내게 하기 조차 힘든애다.

‘갸’ㄴ느 그녀의 자신을 숨기려한다.

그래서 그녀에 대해 알기 원치 않으면 그것으로 끝나고 만다. 그녀의 친구들은 어떨까? 정말 모든 얘기는 事實的 표현 이상인것은 아무것ㅇ도 없을 것이다.

-실수!! 사실 ‘갸’는 이보다 훌륭한 애일꺼다. ‘781106

오늘 11時 기상.

이짓 저짓, 창가에 앉아

定理를 좀 해야 겠다.

‘갸’한테 말한 ‘자신을 회복되야한다.’는

말이 나한테 해당한 말인 줄 잘안다.

너무나도, 만든 것인지 설혹 진심인지. 너무 계집생각을 한다는 것은 바보스럽고 自身을 피로하게 하는 일이다.

그동안 읽은 책.

  1. 내려오는 계단으로 올라가며.
  2. 금각사, 푸른산맥.
  3. 지하여자대학(장덕조)
  4. 인생대리점(李浩哲) – 읽는 中

地下 女子 大學은 心에게 빌려주고

돌아오는 수요일까지 독후감써서 받기로 함

-실수! 명청하고 무자비 한짓 781106

포항들러 경주 55고분(천마총 天馬塚)

그림그려진 모자 창(그림)

(토기그림) 토기에 뚫린 구멍은 위생적(벌레가 안생긴다.

(청동주전자그림) 청동주전자 등등

                   땜질(산소땜?)

                    정말 정교

(금그림) 금 內冠(조립식)

금허리띠 (ㅡ그림)

                        잘한일에 따라 달아줌

(옥돌그림) 구멍 옥돌 (해방후 10년동한 돌구멍 일본서 뚫어옴)

(금관그림) 山자 4개(보통 3개)

             금관(쌍무덤-00王-에서 나온 금관 보다 큼) 여지껏 제일큼.

           미는데 쓴 금철사(과연 어떻게 만들었을까)

정말 정말 훌륭한!!

(무덤 단면도) 돌층

                 방수층(진흙) 팔때 곡괭이가 안들어 갔다함.

                 흙=5m

                 괘짝 탄화-약 1만몇천점 나옴

                장식물(관), 시체 뼈다쉬 모두 흙으로 돌아가다.

                 과학적으로 , 흙을 태워서 깔고 그 위에 (관)시체를 누윈것 같음.

                밤나무 통나무 室

現 23시 15분전, 공장 (당시 공장밤? 수위인 부친 대신 주말과 방학에는 공장수위를 즐겼다?ㅋㅋ)

冊(人生代理店)읽다가 車나 좀 몰다 잤음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