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서울 침례교회 ( 서울 충무로 필동 )약사

2020년 서울 침례교회 ( 서울 충무로 필동 )약사
침례교역사- pic

2020-10-24 13:59:11
최근 사이비들이 법이 없는 이나라의 약점을 이용 서울이 아닌 곳에 서울침례교회라는 것을 세워 놓고 유명인들이 행사를 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 그 넘들은 스스로 남의 이름을 도용하는 것이 사이비들이 하는 짓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일까???
의도적이지 않다고 변명할까???
서울 침례교회는 우리 정통 한국 침례교회의 큰형님교회로 해방직후 1946년 우리 부모님과 안대벽목사가 처음 예배를 드린곳이다.

한 15년의 되었으려나???

바나바 이황철 목사님이 있었을 때

우리 한국 침례교의 기둥인 서울 침례교회의 역사를 50년사인지 60년사인지 새로 정리하고 있었는데

그 때 정리한 역사를 간략하게 또는 새로 정리를 했는데 몇가지 차잇점들이 있다.

뭔저 눈에 띄는 것은 우리 부모님과 관계해서 보면

부모님과 삼촌 김은택외 5명 총 8명 첫 예배자들이 약사에는 기록이 삭제 되었고

전에 있던 기존 역사에는 56년도에 부친 김은섭이 집사보선으로 기록되어 있었는데,

날짜가 조금 틀리기는 하지만 부친께서 안수집사로 그냥 인정 ‘인준’으로 기록되었다는 점이다.

해방직후 46년 침례교 본부 원산에서 철수한 침례교인들이 서울서 첫 예배를 드리기 전후로 안대벽목사가 해방전 만주 동만신학교를 나오신 부친을 장로로 옹립하였는데 원래 침례교회에는 장로제도가 없어서인지

아니면 미남침례교와 교류를 맺게되어서 인지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부친께서는 장로직을 거의 수행 할수 없었는지 모르지만

어찌꺼나 한국에서 첫 침례교 장로가 되는 셈이다.

아마도 이런 일로 해서

56년도에 한 집사 보선이 ‘안수집사 안수’가 아닌 안수집사로 인정 즉 ‘안수집사 인준’으로 기록된 모양이다.

날짜들도 각기 틀리게 기록 되어 있다…

새 역사에는 ‘한국 최초’라는 말이 많이 사용되었는데

그러고 보면 부친께서는 ‘침례교 첫 안수집사’인 동시에 ‘안수를 받지 않고 안수집사가 된 첫 안수집사’가 되는 셈이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65년도에 등장하는 방호선 집사인데..

방호선여사는 안대벽집사 사모 이순도여사가 시작한 침례교 여전도회 회장을 지닌 여걸인데

육군사관학교 7기 최고 엘리트 최추봉대령의 기억에는 방호선씨를 안수집사로 불렀었고 같이 일?을 많이 햇다고 했었다.

천주교인으로 개신교에 대해서는 잘모르는 추봉선생은 마치 방호선씨를 침례교 대표로 알고 있었다.

여성 안수가 없는 침례교회에서 그런 명칭을 가진 것을 보면 결코 침례교 출신은 아닌것 같고

516혁명? 이후에 등장하는 점과 이 한국침례교회의 기둥인 서울침례교회 기록에도 방호선여사를 ‘집사’로 기록 된것을 보면 이상한 점이 아니라고 아니 할수 없을 것 같다… 흠..

또 재미있는 것은 63년도에 이건기, 김용구집사, 주성범등이 레바논에 잇었던 세계 침례교연맹 청년대회에 참가했다는 기록이 새롭게 나와 있다.

우리 고향 만주에도 살았던 울릉도 출신 김용구 집사는 선교사들로 부터 미국 차를 받아 파는 일도 했다고 하는데

이 청년대회를 기회로 미국으로 탈출??? 해서 신석태 워싱톤 침례신학대학장과 함께 워싱톤지역에서 초기 치공사업을 개척한 분이다.

부인은 광장 최인훈선생의 동생이고 원래 함경도 회령에 최부자가 이름을 날렸는데… 어찌꺼나 회령에서 온 최씨집안이다….

1946-1965

1946~1952
1946/09/29 안대벽, 이순도 부부가 원산에서 월남, 중구 필동 2가 101-1번지에서 필동교회의 첫 예배를 드림(8명)—8명 명단 생략…
1946/12/04 주일학교 개설(장일수 교사를 초빙), 필동교회로 명명
1948/09 제1대 담임목사로 한기춘 목사 부임, 교단총회에서 파송
1949/07 제2대 담임목사로 장일수 목사 부임, 교단에서 잠정적으로 파송
1949/09 제3대 담임목사로 김용해 목사 부임, 교단총회에서 파송

1950
02/27 나요한(John A. Abernaty) 선교사 내한하여 본 교회를 중심으로 사역
06/25 한국전쟁 발발로 성도들 유리분산
12/15 안대벽 목사와 서울필동교회 성도들이 부산 충무로침례교회의 첫 예배드림

1951/04 김용해 목사 사임

1953
08/03 나요한 선교사 주선으로 필유일 전도사 부임
11/11 제4대 강성주 목사, 교회 초청 첫 담임모사로 부임
12/22 나요한 선교사, 협동목사로 부임

1954
03/07 주보 제1호 발행 “대한기독교침례회 서울필동교회”
05/09 교회명을 “서울침례교회”로 개칭
05/12 현 서울교회 부지에서 한국전쟁 중 전사한 미국 침례교 군목들과 장병들을 기념하는 예배당의 기공예배를 드림
12/28 헌당 예배 (부지 671평에 연건평 298평), 교회명을 ‘서울침례교회'(Seoul Memorial Baptist Church)로 개칭

1955
04/05~04/06 교단 45차 총회를 본 교회당에서 개최
04/25 주한 미종군목사회로부터 2,800달러 상당의 볼드윈 전자오르간을 기증 받음

1956
01/29 김은섭 집사를 안수집사로 인준 – 전에 있던 역사에는 나와 있지 않은 것…결국 부친께서 한국 침례교 최초의 안수집사님이 되신 기록???
09/02 세계침례교연맹 총회장 Dr. Theodore Adams 목사가 본 교회 방문 설교
09/09 이성녀 여전도사 부임(1966. 9. 28. 사임)

1957
09/08 주희중 집사를 본 교회 안수집사로 인준
09/22 서울침례교회 최초로 박원진, 최동희 집사 안수식

1958
07/13 필유일 전도사, 본 교회 최초로 목사 안수 후 7월 28일 도미 유학
10/05 백동호 전도사 부임

1959
04/29 본 교회 강성주 담임목사, 침례교단 제49회 총회(대전)에서 총회장에 선임
05/17 지교회 답십리침례교회 설립 (김영제 집사 파송)
12/27 나요한 선교사 정년은퇴 환송예배

1960
03/20 주일 낮예배를 2부(영어예배와 우리말 예배)로 구분
11/06 최희준(Don C. Jones) 선교사, 본 교회 협동목사로 부임

1961
04/05 지교회 미아리침례교회(현 서울소망교회) 설립(김원일 집사 파송)

1963
04/21 김원일, 이대성 집사 안수
04/23 강성주 담임목사, 교단 총회장에 재선
07/16 세계침례교연맹 청년대회(레바논)에 이건기, 김용구 집사와 주성범 파송

1964
02/14 이승기 집사의 전화 기증으로 첫 교회전화 개통
04/18 미남침례교 한국선교회관 건립을 위하여 343.5평을 양도
07/19 교회당 신축 10주년 기념예배

1965
06/19 방호선 집사, 세계침례교 부인회 총회에 참석(미국 마이에미)
12/31 강성주 담임목사 사임

한국 침례교 첫 안수 집사 김은섭 #방호선여사 침례교 여자집사??? 육사7기 엘이트 최추봉대령

아!! 조선 대한민국– 201210

아!! 조선 대한민국—-
자유토론판

2020-12-10 12:20:19

빚이 몇천불인가 몇만불인가 하는데 선진국이고 잘먹고 잘살고 있다고 믿는 혼란의 대한민국을 가장 적절하게 정의하는 세계의 석학들…

밍바기가 4대강을 콩크리트로 바르겠다고 했을때도 그렇고…

경제적 위기가 있을때에도 완전한 민주주의을 선조건으로 말해 왔었다….

하지만 아무도 듣지 않는다…..

친일군사독재 재벌족벌 사이비들이 다 때려죽인 지식인들과 언론의 양심이 살아야 민족과 나라가 살것이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가 한국에 대해서 매우 신랄한
비판을 하였습니다.

우리가 이런 객관적이고 날카로운 비판을 유심히 들어봐야 한다고 봅니다.

  1. “트럼프 대통령 같은 포퓰리스트의 성공은 엘리트의 오만에 노동자층이 분노했기 때문”이라며 “이는 세계화의 이익을 독점해온 엘리트층에 대한 반발이었다”고 했다.
  2. “미국은 아직도 ‘아메리칸 드림’을 믿지만 세대를 거듭할수록 계층 상승 가능성은 줄어들고 있다. 한국도 미국 못지않게 불평등이 뚜렷한 능력주의 사회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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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창조 신화 – 심갑섭 210103

시 창조 신화 – 심갑섭
년도별/예술문학비평

2021-01-03 09:27:07

내가 좋아 하는 울 동네 심갑섭시인이 신년을 맞이해서 시 한수를 올렸다.

개인적으로 잘 알지 못하지만,

제목은 “창조 신화” … 종교 용어 처럼 보인다.

시에서 운운하는 것 처럼

고래가 다녀야 할 청량 지역이 쓰레기로 오염 되듯이

거룩하고 신성할 성서적 단어들은 사이비 마구들의 사기 수단으로 동원되고 있다.

창조라는 단어는 사실 창조주 한분 만에게 적용되는 단어 인데

사이비 마구 들이 뭔 새 창조 교회니 뭐니 하면서 마구 같다 쓰기 때문이다…

고래가 다니던 시절 이런 거룩한 단어가 쓰여질때는 마음을 모두고 우리가 거룩하게 바라다 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단 사이비들이 불쌍한 영혼들을 잡아 먹기?? 위해서 사용하기 시작한 부터는…

쓰레기로 오염되듯 의심의 눈동자로 바라다 볼수 밖에 없다….

귀한 시를 쓰는 시인의 의미는 전혀 알수 없지만…

시인은 인 창조라는 단어와 신화라는 단어를 통해서 뭘 말하고 있는것일까 궁금해진다.

힘차게 동터오는 태양을 바라보며 속 시원한 신년축하 시를 쓰던 시인은

너무 힘들었고 또 그 고통이 끝나지 않은 새로운 신축년을 맞이 하면서…

오묘하고도 알수 없는 시로 우리의 고통을 대변해 주는 것 같기도 하다.

창조 신화 – 심갑섭

신호등에 물이 파랗게 차오르면
물고기들은 서둘러 물길을 따라 오간다
길가에 가지런히 늘어선 수초들
그 누구도 그 경계를 넘나들지 않는다
심해 바닥부터 세워지는 거대한 통발들
물고기들이 빼곡히 드나든다
모세는 교통통제시스템을 바라보며
모니터에 드러난 수많은 어항을 관리한다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수족관 덕분에
갇혀 있다고 생각하는 물고기는 없다

물을 잊고 살던 물 속 세상은
온갖 폐기물로 오염되었고
고래가 다니던 길은
쓰레기를 내다버리는 공터가 되었다
외출은 고립되었고
수많은 벽들이 생겨나고 말았다
누군가는 노아의 방주가 필요하다고 외쳤다
재빠르게 배를 띄워 노를 젖는 자도 있고
수영을 배우려는 사람도 생겼다

공기를 잊고 살던 물 밖 세상도
3만년을 곱씹던 바이러스를 깨우고 말았다
일상은 기적이 되었고
기억은 치매를 앓다가 어제를 잊었다
풀어서는 안되는 매듭이었고
열어서도 안되는 문이었다
판도라 상자가 열렸다.

신년시 숨죽인 희망의 씨앗 심갑섭 210103

신년시 숨죽인 희망의 씨앗 – 심갑섭
년도별/예술문학비평

2021-01-03 09:37:10

올해는 상황이 그래서 그런지 신년시를 여러편 쓴것 같다….

신년시 숨죽인 희망의 씨앗 – 심갑섭

텅 빈 상가

문이 잠긴 가게들

한 가족의 삶이 걸린 동아줄인데

가게 안에 맴도는 적막

코비드로 얼어붙은 가계부

그 끝자락 어딘가에서

다시 일어서야 할텐데

봄은 경황 없이 오가고

불바다로 변한 여름 숲

태양이 사라진 대낮

자욱한 연기

마스크를 쓰고도

멀찍이 피해가며

꽁꽁 숨어버린 이웃들

가을은 무심하게 단풍이 들고

고압선 아래 널찍한 공터에

사과가 열리고 포도넝쿨 넘친다

아이들은 신나게 조잘거리며

바구니에 시절을 주어담고

자전거는 경쾌한 바퀴를 흔들며

집으로 향한다

맑고 푸르름이 전설이 되어가는

이 계절에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

생각하지 않는다면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될

사무치게 아름다운

그 이름

지구.

개그맨들의 죽음 210103

개그맨들의 죽음…
자유토론판

2021-01-03 15:52:06

동네 사이트에 올라온글…


개그맨들은 그냥 친일군사독재 재벌족벌 사이비들이 죽였을 뿐이다.
학자라는 지식인들도 잘나간다는 연예인들도 가수도 아무도 이 나라에서는 정치를 말하지 않는다.`

그냥 꼭두각시들일 뿐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코미디언과 개그맨들만이 기득권자들의 말을 잘 않듣는다…
다른 연예계인들은 블랙리스트만 작성되면 죽은 목숨이다.

나라가 자본주의 민주주의라 착각하지 마라…
국밥하나를 만들어도, 머리를 자르는 일을 해도 허다 못해 못하나를 박아도 자격증이 있어야 하는 나라…
카톡하나를 날려도 모든것이 사찰될수 있는 나라….

거대한 영화를 만들어 만들어도 동네 마당에서 굳을 해도 권력가진 ㄴ들이 주는 진흥자금 못 받으면 아무것도 못한다.
오죽하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던 영화감독이 스스로 목을 매려했을까???

광대의 속성 때문인지 어차피 말한마디로 웃기고 먹고 사는 것인데 권력기관이 주는 진흥자금에 목매지 않아도 되는 코메디언 개그맨들 만이
그래도 자기 주장을 하고 살아 ??? 있어다.

이 험한 시대에 일터를 더 창출해도 모자랄 판에 그냥 일개의 군락 개그맨들을 모두 자른다???
그래도 궁민들은 좋단다!!! 니 모 ㄱ ㅈ도 짤릴지 모른다 조만간에….

대한민국의 개그맨들아 영원하라!!!
그대들 만이 살아 있는 생명체이다.

친일군사독재 재벌족벌 사이비들이 때려죽인 지식인들과 언론의 양심이 살아야 민족과 나라가 산다.
정신차리자 국민덜아!!!

신년시 떨기나무 같은 당신 송명희 210104

신년시 떨기나무 같은 당신 – 송명희
년도별/예술문학비평

2021-01-04 08:22:40

동네 최고 시인 송명희 시인이 신년시를 한 수 올렸다.

내가 좋아하는 송명희 시인의 거의 연래적으로 신년시를 올리는데,

올해는 갑자기 왜??? 코로나 때문??? 어마어마??? 한 시들이 올라와 있다.

그가운데 살짝 가려져 있다.

여전히 범상치 않은 어귀?? 들과 어순…

문학엔 무뢰한인 내가 보기에도 훌륭해 보인다.

오늘, 1월 3일 주일 우리 교회 2021년 신축년 첫 예배 말씀 타이틀은 요엘 2장28절의 ‘꿈을 꿉시다’이다.

꿈, 비젼은 우리 크리스찬이나 또 많은 사람이 일상적으로 말하고 또 격려하는데 사용되는 말이다.

말세에 더해서 코로나로 풍지박살의 상태인 이 싯점에 쉽게??? 할수 있는 말일수 있다.

하지만, 신앙적으로 이 비젼, 꿈이라는 단어를 안다면 이 말씀이 얼마나 우리 영혼의 골수를 찌를수 있는지 알수 있을것이다.

이 단어들은 세상에서 좋은 뜻으로 충분히 사용되어질수 있는 단어이기도 하지만

영적인 꿈과 비젼을 이해하고 갖는다면 이것은 우리 삶의 모든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낮게 무릎꿇고 기도하는 겸손은 당신의 몫’이라며 끝을 맺는다.

부디 이 시를 읽는 모든 사람들이

그냥 격려의 말이 아니고 우리 영혼의 꿈과 비젼을 보고 만나는 하늘의 축복이

이 새로운 2021 신축년에 있기를 기도해 본다.


송명희 신년시 떨기나무 같은 당신

예기치 않았던 바람에

흔들렸던 지난 한 해, 이제 보내라고

꽁꽁 언 저 가슴도 머잖아 풀릴 거라고

적삼 입은 갈새가 옹골차게 노래한다

어느새 12월이 지나고

투실 하니 살 오른 정월이

새해를 준비했다

눅눅했던 열두 달의 잔뿌리가

찰나의 흔적들로 아직 남아 있지만

이제, 아팠던 2020년은 잊어버리고

새 하늘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희망의 새해는 당신의 몫이니까

늘 부족한 떨기나무같이

낮게 무릎 꿇고 기도하는

겸손한 당신의 몫이니까

송명희 신년시 2 늙은 어미의 기도 210105

송명희 신년시 2 늙은 어미의 기도
년도별/예술문학비평

2021-01-05 08:28:30

코로나 땀시??? 올해는 신년시가 풍산인데

내가 좋아하는 명품 시인들도 사이트 별로 인지 또 다른 신년시들을 올렸다.


늙은 어미의 기도 – 송명희

아픔을 먹고 해를 품은 길손아

지난해가 비록 맛깔나지 않아도

보아라, 벌겋게 물오른 새날이

꽃으로 환하게 피어나는 것을

묵은해의 여물지 못한 시간

병마로 홀연히 사라져간 사람들

일자리를 잃고 헤매는 사람들

집 밖을 나오지 못하는 고독한 사람들

사방이 막힌 길 위에 함께 멈춰 있었지

그래도 우리는 알고 있다

늙은 어미가 밤새 읊조리는 기도 소리로

희망이 싹튼다는 것을

늙은 어미가 흘리는 눈물의 기도로

오늘도 그 꽃이 붉게 피어난다는 것을

북한선교과 구금 목사들 210105

북한선교과 구금 목사들 – 이광덕, 전용수, 케네스 배 – 최재영목사
자유토론판

2021-01-05 10:55:31

최재영 목사 / NK VISION 2020 대표

왜 유독 라선시에서 선교사들의 억류사태가 발생하나?

1993년 이전까지는 남한 사람들이 합법적으로 북한에 들어갈 수가 없었으나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92년 남북의 최고지도자가 서명한 남북기본합의서에 따라 합법적인 방북이 시작되었다. 이와 더불어서 해외동포들의 방북도 문전성시를 이루기 시작했으며 특히 이때부터 경제특구로 지정된 나진선봉을 비롯해 북한 영토 내에서 남한과 해외동포 사역자들이 구금되거나 억류되는 사건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억류자들은 대부분 대북지원이나 구호활동을 하는 기독교 사역자들이었으며 지금도 억류되어 있거나 노동교화소에서 수형생활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북에서 체포된 외국 국적의 해외동포나 남한 국적의 기독교 사역자들에 대한 북한 당국의 사법절차를 간단히 살펴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우선 북 정보당국이나 보위부에서는 특정인에 대해 의심이 가거나 신고가 접수되면 혐의를 증빙하기 위해 은밀하게 내사를 벌이거나 증거를 확보하기 위한 치밀한 계획을 세운다. 그러다가 혐의가 입증될만한 결정적인 증거가 확보되면 범법행위 현장을 덮치거나 결정적인 순간에 체포해 신병을 확보한다. 그리고 집중조사를 통해 혐의가 인정되면 이때부터 법적 조치 수순에 들어가는데 그 과정을 보면 대략 ‘체포’-‘제한조치’-‘집중조사’-‘구금’-‘기소’-‘재판’-‘형집행’-‘교화소 수형생활’ 등의 절차를 밟게 된다. 서방세계에서는 이런 전체적인 과정을 통 털어서 그냥 ‘억류’라고 표현할 뿐이다. 보위부나 북 정보당국에서 가장 예민하게 여기는 죄목은 간첩행위나 체제전복 혹은 최고지도자를 중상 모략하는 언행들이다. 이러한 혐의들은 심각한 중범죄로 취급당하며 그중에서도 최고지도자와 관련된 소위 ‘최고존엄 모독’과 관련된 혐의는 무기징역이나 종신노동교화형 혹은 처형 등의 판결을 내린다.

북한이라는 국가는 헌법상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으며 실제 인민들의 사회생활면에서도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주체사상과 사회주의 철학에 무장된 인민들은 대부분 종교에는 관심이 없으며 분단 70년 동안 그런 사회체제로 변모하고 말았다. 알기 쉽게 말한다면 북한 당국은 인민들의 종교를 권장하지도 않고 압제하지도 않는다. 헌법상의 종교의 자유는 타국인들이나 해외동포들에게는 제한이 있도록 법제화되어있다. 자국민이 아닌 외국인들이 북 영토 내에 들어와서 북 당국의 승인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비합법적, 불법적으로 선교나 포교활동을 하는 행위는 일절 허용하지 않고 있는데 그 이유들은 간단하다.

현재 북한은 한국전쟁 정전 이후 지금까지 미국과 지속적인 대립 관계에 있는 상황이며 최근 들어서는 더욱 악화되어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만큼 기독교 복음 전파를 가장한 선교사들과 목회자들을 체제전복 세력으로 간주하거나 경계의 대상으로 여겨 철저히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남한 소속의 선교사가 중국을 경유해 북한에 들어오거나 미국 등 서방세계 선교사가 북한에 들어와 활동하는 경우 대부분 보건, 복지, 의료, 식량 등의 지원과 농어업 지원, 공장설립과 기업활동 등을 통해서 라선시에 발을 들여놓는다. 그 이후 어느 정도 기반을 닦거나 북 당국이나 관료들, 인민들의 신뢰를 어느 정도 얻는 단계에 도달하면 노골적이거나 은밀한 선교행위에 돌입하는 경우가 허다했고 결국 발각되는 사태가 꼬리를 물고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때문에 라선시를 정기적으로 왕래하거나 장기체류하는 대북지원자들이나 크리스챤 기업인들은 항상 자신이 보위부의 블랙리스트에 올라가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하고 항상 자신들을 예의주시하거나 상시적으로 수사선상에 올려놓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특히 북 당국은 4대 경제특구에서 자본주의 폐단이 유입되지 않도록 차단하기 위해 다양한 경로와 정보력을 동원해 체제를 지키고 있으며 의혹이 가는 인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체크하고 있다. 게다가 라선시에서는 입국한 모든 사역자들의 활약상이 노출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북 정보 당국이 자신의 행동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니고 알고 있으면서도 묵인하거나 모르는 척 할 뿐이다. 또한 북 보위부나 정보당국은 혐의점이 발견된다고 해서 무대포식으로 체포하거나 억류하지 않는다. 그동안 라선시에서 발생한 억류사태의 사례들을 통해 공통적으로 확인된 것은 무작정 느닷없이 체포하지 않고 혐의가 엿보이면 사전에 서너 차례 경고하거나 알기 쉽도록 주의를 준다. 그래도 끝까지 경고를 무시하는 경우에는 체포와 억류로 이어지는 것이다.

라선시에서 발생했던 대표적인 억류 사례들

북 영토 내에서 선교와 전도 혹은 포교 목적 하에 북 인민들을 대상으로 성경책 종교경전 혹은 이에 따른 전도용 책자나 전단지, CD/DVD 등을 배포하는 행위는 매우 무모하고 위험한 행동이다. 또한 예배시간에 은밀하게 북 인민들을 끌어들이는 행위들은 북 당국에 의해 범죄행위로 간주되기 때문에 즉시 체포되거나 억류조치를 당해 법적인 심판을 받는다. 평소 라선시나 북한 본토를 자주 왕래하는 대북 사역자들이 더욱 조심해야 할 부분은 북한에 방문할 때 뿐 아니라 남한이나 해외에 가서도 북한 관련 발언들을 조심해야 한다. 일반교회나 기독교 기관 혹은 교회연합행사나 국내외 선교대회에 초청을 받아 강연이나 간증, 강의, 설교를 할 때 북한 체제나 최고지도자를 노골적으로 비판하거나 험담하면 그것이 결국 빌미가 되어 신변에 불리해진다.

특히 대북 사역자들은 직책과 업무의 특성상 강연이나 언론 인터뷰, 방송출연에 자주 노출되기 쉬운데 이때 자신의 발언이 북 당국에 모니터링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특히 요즘은 자신의 각종 집필활동과 강연 내용들이 인터넷에 공개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항상 언행에 신중해야 한다. 자신이 하고 있는 대북사역을 은퇴하고 회고록을 쓰는 경우가 아니라면 언제나 보안유지와 언행에 유의하는 것이 좋다. 통상적으로 대부분의 사역자들이 단골메뉴로 실수하는 부분이 바로 ‘북한 붕괴 예측 발언’과 ‘북 지도자에 대한 험담’ 그리고 ‘북 체제비판’이기 때문에 공개석상에서는 이런 함정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한편 대북 사역자들은 북한을 악마화하고 적대적 대상으로 취급하는 사대주의 수구세력들의 대북관을 답습할 것이 아니라 보다 더 객관적인 시각으로 북을 바라보고 평가할 수 있는 식견과 지식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대북 사역자들이 실수하는 언행들은 대부분 북한 인민들이 헌법의 의미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는 ‘유일사상 10대 원칙’에 위반되는 중범죄에 해당되기 때문에 이를 빌미로 체포되면 사법부나 군법에 회부되어 처벌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필자가 여러 차례 방북하면서 파악한 바로는 북 당국은 순수한 차원에서의 개인의 종교생활이나 신앙생활은 전혀 문제 삼지 않는다. 방북 시 개인적으로 드리는 예배나 기도는 물론 함께 방북한 단체나 그룹에서 드리는 기도생활과 예배활동도 전혀 문제 삼지 않는다. 그러나 북 인민들이 보는 공개된 장소나 인민들을 예배장소로 끌어 들이는 행위는 철저히 금지하고 있으며 인민들에게 직접 전단지를 배포하며 기독교를 전파하는 행위도 강하게 제한하고 있다.

이에 필자는 그동안 라진선봉 지역에서 발생한 수많은 억류사례들 중에서 대표적인 사례들 몇 가지만 선별해 경각심을 갖도록 할 것이며 선교전략과 방법상의 문제점을 발견하여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우선 1998년 6월 나진선봉 지역에서 간첩혐의로 체포돼 3개월(103일간)간 억류된 후 풀려난 미국 LA의 이광덕 목사가 그 대표적 사례에 해당된다. 이 목사의 체포는 미국 국적 목회자에 대한 최초의 억류사태였다. 그 후 2007년 11월 3일 캐나다 시민권자인 김재열 목사가 라선시에 자신이 설립한 치과병원에서 “인민들이 보는 공공장소에서 종교행위를 했다”는 혐의 등으로 억류되었고 이어서 2009년 12월 25일 성탄절에는 “김정일 하야”, “정치범수용소 해체”를 주장하며 방문 비자도 없이 두만강을 무단으로 건너 월북해 체포되어 고초를 겪다가 43일 만에 석방된 로버트 박 사건이 발생했다. 미국 시민권자로서 교포 2세 청년인 그는 평소 기독교 근본주의 신앙을 소유한 상태에서 북 최고지도자를 악으로 규정하고 그 같은 행동을 했던 것이다.

또한 2010년 11월에는 미국과 한국 두 곳에 각각 본부를 두고 있는 보수적인 북한선교단체인 ‘모퉁이돌 선교회’ 소속 선교사로서 미국시민권자인 전용수 목사가 북측을 자극하는 공격적 선교 행위로 인해 억류된 사건이 발생했다. 이어서 2012년 11월에는 미국의 ‘예수전도단’ 소속 선교사인 미국 시민권자 케네스 배 목사가 종교 활동을 통한 정부 전복혐의로 북 당국에 체포되어 이듬해 4월 ‘국가전복음모죄’로 노동교화형 15년형을 선고받고 수형생활을 하다가 미국인으로는 가장 최장 기간인 2년간의 복역생활을 하던 중 석방되었다.

이어서 2015년 1월 31일에는 캐나다 시민권자로서 전문적인 대북사역 활동을 하던 임현수 목사가 라선시에서 평양으로 이동한 후 억류되어 그해 12월 16일 북 최고재판소에서 국가전복 음모 등의 혐의로 종신노동교화형을 선고 받고 현재 복역중에 있다. 임 목사는 연락이 투절된 지 6개월 만인 7월 30일 평양 인민문화궁전 기자회견장에 나타나 “공화국의 최고 존엄과 체제를 중상 모독하고 국가 전복 행위를 감행했으며 이 모든 행적이 범죄 행위임을 솔직하게 인정합니다”라는 사죄문을 읽어 내려가는 모습이 언론에 공개되며 억류 사실이 최초로 확인되었다.

또한 2015년 4월 8일에는 미 서부 LA에 본부를 둔 민간 구호단체 ‘위트 미션(Wheat Mission)’ 대표로서 왕성한 대북 구호활동을 해온 한국계 미국인 서계옥 권사(미국명 산드라 서) 억류됐다가 보름 만에 석방되어 추방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한국어로 ‘미주 밀알선교단’이라는 단체를 이끌며 수십 년 넘게 대북 지원 활동을 해 온 그녀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대북 사역자들 중에서 가장 오래돼 대북 사역의 ‘대모’로 불렸다. 기독교 정신에 바탕을 두고 의약품과 의료기기, 식량, 의류, 신발, 담요 등을 지속적으로 지원해 왔고 장애인 복지회관을 건축하는데도 크게 일조하는 등 북한의 신뢰를 받으며 활동해왔다. 심지어 과거에는 미국에서 북한을 갈 때 서 권사를 통해서 북한비자를 받을 정도였다.

그러나 북 정보 당국에서는 3월말 방북 시 갑자기 억류했는데 그 혐의를 들어보면 “근 20년 동안 무상기증의 명목으로 조선(북한)에 드나들면서 반공화국 모략, 선전행위에 가담했으며 지난 1998년부터 조선(북한)에서 인도주의 활동을 하면서 사진과 동영상을 제작 연출해 우리 조선을 모략해 왔다. 이는 공화국의 자주권을 침해하고 공화국 법을 위반한 씻을 수 없는 범죄행위라는 것을 인정하고 사죄를 했다. 그러나 공화국 법의 관대성과 산드라 서의 연령을 충분히 고려해 추방하기로 결정하였다”는 것이다.

당시 70대 후반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대북 지원에 헌신한 서 권사는 지병과 고령이라는 이유로 특별 배려를 받고 재판 없이 석방된 것이다. 서 권사가 억류될 무렵 북한에서는 1월 임현수 목사 체포 사건 외에도 2월에는 평양에 상주하던 독일 구호단체인 ‘세계기아원조’의 평양사무소장을 맡고 있는 ‘벨트훙게르힐페’를 추방하는 등 대북 지원단체와 사역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과 검증작업을 벌이던 시기였다. 서 권사가 결정적으로 체포된 사유들 중에 하나는 비공식적으로 이산가족들과 관련된 업무를 보는 과정에서 혐의가 발각된 듯했다. 그 후 미국 얼바인 온누리교회를 출석하던 서 권사는 북에서의 억류 충격과 지병으로 인해 이듬해에 LA에서 향년 80세로 병사했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미 동부 버지니아주의 박시몬 목사가 설립한 ‘미주북한선교회’ 소속 선교사인 김동철 목사가 2015년 10월 2일 라선시에서 간첩혐의로 체포됐는데 그는 이듬해인 2016년 4월 29일 열린 재판에서 ‘국가전복음모’ 등의 죄목으로 10년 노동교화형을 선고받고 현재 복역 중이다. 또한 현재 북한에는 남한에서 북으로 건너가 억류된 목회자와 선교사들도 여러 명이 있다. 2013년 10월, 기독교한국침례회 소속 김정욱 선교사가 체포돼 간첩혐의로 무기노동교화형을 선고받아 복역 중에 있으며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중앙총회 소속의 김국기 목사와 최춘길도 체포되어 2015년 6월 23일 무기노동교화형을 선고받고 현재 복역 중에 있다.

이번 중편과 하편 방북기에서는 미국시민권 목사 중에 최초로 억류된 남가주의 이광덕 목사를 필두로 전용수 목사와 케네스배 목사의 사례를 살펴볼 것이며 이어서 캐나다 시민권자인 김재열 목사와 임현수 목사의 사례를 들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최근에 노동교화형을 선고 받은 미국시민권자 김동철 목사의 사례를 살펴보면서 나진선봉에서의 억류사태에 대한 해법과 대안책을 찾고자 한다.

  1. 최초로 억류된 미국교포 이광덕 목사

미주 국적의 해외교포들이 북한에 억류된 사건은 그리 오래 전의 일이 아니다. 미국 LA에 거주하는 이광덕 목사는 미국인 역사상 최초로 라선시에서 억류되었는데 그는 평소 1970년대부터 LA한인사회에서 한국문화를 미 주류사회에 전파시키고 북한과 중국과의 문화교류에 힘써온 인물이다. 평양 출신의 실향민인 그는 한국전쟁 때 단신 월남한 뒤 60년대 초 도미, 목사안수를 받았으며 이후 ‘아주문화중심’, ‘고려문화센터’ 등의 단체를 만들었으며 남가주 한인사회에 ‘한국문화회관’을 건립하기도 했으며 그동안 수십 차례 북한을 오가면서 이산가족 상봉과 대북지원 활동과 투자사업, 문화교류사업 등을 벌여왔다.

당시 LA에서 베벌리 장로교회를 개척하여 목회를 하던 중 고령으로 인해 은퇴한 그는 대북사역에 올인하며 지난 1992년에는 한국 기독교가 모은 ‘사랑의 쌀’ 800톤을 북한에 전달하는 데도 큰 역할을 했으며 96년 12월 나진선봉시 행정경제위원회 김경운 위원장으로부터 고려문화센터 지사 설립과 투자유치권을 위임받을 정도로 북한과 두터운 교류관계를 맺은 인물이었다. 또한 남한 내 기독교 인사들의 도움으로 나진선봉 인근에 국수공장을 설립했던 그가 1998년 5월말 라선시에서 간첩활동을 한 혐의로 느닷없이 체포된 것이다. 당시 북 공안당국에 여권을 압수당한 채 조사를 받았고 그때부터 8월말까지 무려 3개월간 억류된 것이다.

미 국적의 재미동포가 북한 라선시에서 억류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 목사가 억류된 주 원인은 간첩혐의였으며 특히 북 보위부는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와 이 목사와의 관계를 집중 추궁했는데 북측은 이 목사 자신은 물론 한국과 중국 미국 등에 있는 친지들까지도 안기부와의 관련성을 캐기 위해서 집중 조사를 했다. 어느 날 이 목사가 북한 인민들이 들고 다니는 일종의 식량주머니를 중국화폐 100위안에 구입한 적이 있었는데 북측은 이런 행위가 어려운 식량사정을 외부에 유출시키는 간첩행위로 간주했던 것이다. 또한 그가 LA이민사회에서 한국문화를 미국인들에게 알리는 비영리단체를 운영하며 한때 청와대 등으로부터 직접 지원을 받기도 했는데 이 목사의 이런 이력도 북 당국에서는 의혹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한편 이 목사는 간첩혐의 외에도 북한과 체결한 투자계약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경제사범 혐의가 추가되었다. 이 목사가 38만 달러에 달하는 장공장과 국수공장 투자계약을 라선시 측과 맺었으나 아무런 통보 없이 계약기간을 위반해 북측에 12만 2000불의 재정적 손해를 입혔다는 혐의를 받고 손해배상을 요구받기도 했다. 그러나 계약건은 애당초 장공장과 국수공장을 두레마을 김진홍 목사가 책임진다고 약속해서 북측과 계약을 추진했으나 나중에 김진홍 목사 측에서 번복하며 취소하는 바람에 문제가 발생하며 이 목사가 책임을 뒤집어 쓴 것이다. 결국 이 목사는 북측이 요구하는 금액의 일부를 미국의 가족을 통해 송금하고 나서야 석방되었다. 항간에 알려진 대로 12만 2000 달러 전액을 송금했다거나 거액의 벌금을 내고 풀려났다는 루머는 사실이 아니다.

평소 북한뿐 아니라 한국 정부와도 교류가 활발한 이 목사는 ‘라진고려식품합영회사’ 대표 자격으로 라진선봉에 위치한 국수공장의 노후 설비 교체와 장공장 설립 등을 목적으로 자주 방북했으며 97년 7월부터 라진선봉시 행정경제위원회와 식품회사를 합영으로 운영해 왔다. 이 목사의 혐의 중에 하나는 오랫동안 이산가족 상봉 활동을 벌여오는 과정에서 남쪽에 친지를 둔 북한 주민의 편지를 남측에 전달하기 위해 은밀히 건네받은 것이 단초가 됐으며 그 외 여러 가지 혐의가 될 만한 사안들이 누적돼 발생한 사건이었다.

이 목사의 억류사건을 통해 얻은 교훈은 북측과 계약을 할 때는 책임질 수 있는 범위에서 서명해야하며 일단 계약을 성사시켰을 경우 철저하게 신용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며 부득이한 사정이 발생할 경우에는 납득할 만한 사유를 북측에 고지해서 일방적으로 재정적, 인적 손해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또한 남측 정보기관이나 중요한 핵심 권력기관과 연관이 있을 경우에는 사전에 미리 고지하여 북측에서 오해를 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 미국 시민권자로서 최초로 라선시에서 억류된 이광덕 목사가 자신이 설립한 ‘한국문화회관’ 설립기념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제공 – 최재영]

▲ 이광덕 목사가 미국 남가주의 어느교회에서 자신의 억류시절을 회고하는 간증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 – 최재영]

  1. 캐나다 시민권자 김재열 목사의 사건

캐나다 에드먼튼에서 치기공으로 일하다 뒤늦게 목사안수를 받은 김재열 선교사는 북한 주민에 대한 보건, 복지의료 지원을 위해 1997년 라진에 치과병원에 해당하는 ‘라진구강예방원’을 개원했고 그 후 ‘고려의학병원(고려한방병원)’, ‘산원병원(산부인과)’, ‘창평유치원’, ‘장애인치료센터’ 등의 의료시설들을 연이어 지원 해 오던 중 갑자기 억류되어 3개월 동안 구금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캐나다 시민권자인 그는 과거 북한선교를 준비하기 위해 전 재산을 정리한 뒤 늦은 나이에 신학을 공부해 미주한인예수교장로회 캐나다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노회와 에드먼튼 제일장로교회 파송 선교사로서 라선시에 파송된 상태였다.

파송되기 전부터 북한을 선교지로 정해 놓고 라선시를 드나들며 자신이 봉사할 수 있는 기반을 다져오던 중 북한 당국의 승인과 협조 하에 구강병원을 설립해 라선시 인민들을 대상으로 의료와 교육 활동을 왕성하게 펼쳐왔다. 병원은 2천 3백 평의 대규모 시설이었으며 김 선교사와 함께 일하는 북측의 의사와 간호사도 모두 합치면 100명이나 될 정도였다. 그처럼 헌신적인 의료 봉사 활동에 주력해왔던 그가 2007년 11월 3일 느닷없이 “인민들을 선동해 교회를 세우려고 한다”는 죄목으로 북 보위부에 의해 억류된 것이다.

그러나 평소 북 당국은 김 선교사의 봉사활동과 치과 진료소 설립 등을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었으며 영주권에 해당하는 ‘거주권’도 발급해주었다. 심지어 종교적으로도 배려를 해 그가 활동하고 있는 지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예배 참여 권유 활동을 허락해주는 등 전폭적인 지원과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알고 보니 김 선교사가 억류된 된 단초는 노트북 컴퓨터에서 시작되었다. 2006년 7월 하순 라선시에서 캐나다로 출국하려던 김 선교사는 중국 훈춘지역 쪽에 있는 권하통상구(권하세관)를 통해 출국하기 위해 라선시 쪽에 있는 원정출입국 사무소를 통과하던 중 검문검색 과정에서 노트북을 압수당한 것이다. 노트북 안에는 그동안 라선시에서의 다양한 활동내용과 영상물들이 상당수 담겨 있었는데 북 당국과 보위부에서 볼 때 이런 자료들이 북 당국을 위협하는 결정적인 요소로 판단한 것이다.

노트북은 압수당했으나 그 후 8월말에 캐나다 방문을 무사히 마치고 다시 라선시에 입국한 김재열 목사는 예전처럼 의료봉사를 하던 중 두 달이 지난 어느 날 전격 체포되며 보위부의 집중 조사를 받게 된 것이다. 노트북에 있던 각종 자료와 영상물들을 확인한 북 정보 당국은 조사하는 과정에서 “최고존엄을 모독하고 인민들을 선동해 교회를 세우려고 했다”는 혐의가 추가되었으며 결국 본인으로 하여금 그런 내용의 자술서를 작성하기에 이르렀으며 그 이후 자신이 체류하는 호텔숙소에서 석달 동안 구금된 상태로 지냈다.

사업상 외국에서 라선시를 방문한 장기 체류자가 평소 자신의 호텔이나 숙소에서 주일예배나 각종예배를 드릴 경우 북 정보 당국은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으며 문제를 삼지 않는다. 하지만 인민들이 드나드는 공공장소나 공개 장소에서의 예배는 불허한다는 규정이 있는데 김 목사는 이런 규정을 따르지 않고 자신이 진료하는 치과 공간에 딸린 임시숙소에서 북 의료진들과 인민들이 드나드는 가운데 예배를 드린 것이 발단이 됐다. 이와 관련해 북 당국은 평소 김 목사에게 여러차례 지적을 했으나 이를 무시하며 공개예배를 강행하자 결국 법적인 제재조치에 들어간 것이다.

이에 대해 북측 관료들은 라선시를 방문한 캐나다 영사에게 아래와 같이 자신들의 입장을 항변하기도 했다.

“우리가 감내할 수 있는 한계가 있는데 여러 차례의 경고를 무시한 김 목사님의 처신은 그 수위를 넘어선 것입니다. 그러나 간첩행위 같은 심각한 반체제 행동은 아니기 때문에 본인이 잘못을 시인하기만 하면 곧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봅니다. 그러니 이 문제는 결코 종교탄압의 측면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전적으로 김 목사님이 우리 공화국의 원칙을 무시한 것에 따른 결과일 뿐입니다.”

당시 캐나다의 한인교단과 노회, 에드몬튼 지역 연합교회 등은 그의 석방을 위해 기도하는 한편 구금 직후인 12월부터 대사관과 영사관에 팩스와 이메일을 보내는 등 구명운동을 진행해 왔고 캐나다한인회총연합회는 토론토, 오타와, 밴쿠버 등 11개 지역 캐나다 한인회장들이 서명한 진정서를 연방정부에 보내 억류 문제에 대해 정부가 개입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구금 직후인 12월 20일 결국 캐나다 영사가 라선시를 직접 방문해 김 목사를 면담했고 이듬해 1월 둘째 주에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또 다시 방북해 김 목사와 40분에 걸친 면담을 했다. 결국 2008년 1월 23-25일까지 리프먼 캐나다 대사가 라선시를 방문해 김 목사를 면담하고 북 당국과의 협상을 통해 재발방지를 약속한 1월 26일, 구금된 지 85일 만에 석방되어 본국으로 출국했다.

▲ 캐나다 김재열 선교사가 설교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 자신이 설립한 치과병원에서 공개예배를 드린 혐의로 억류되었던 김재열 선교사. [사진제공 – 최재영]

  1. ‘모퉁이돌 선교회’ 소속 전용수 목사 사건

미국 남가주 오렌지 카운티에 아내와 1남 1녀를 두고 있는 전용수 목사(영어명 Eddy Jun)는 평신도로 신앙생활하던 중 나성순복음교회에서 장로로 임직받고 다시 얼바인 소재 베델한인교회로 옮기면서 신앙생활을 이어가던 중 2000년대 초반에 베델한인교회를 떠나 가까운 곳에 본부를 두고 있는 ‘모퉁이돌 선교회’를 통해 공산권 선교사 훈련을 받은 후 중국선교사로 파송되었다. 그는 중국 현지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다시 라선시를 오가며 다양한 선교활동을 펼치는 북한선교사가 되었으며 선교적 기반을 다지기 위해 라선시에서 농기계 생산공장인 ‘나선변강뜨락또르’ 공장을 운영해왔다.

전 목사는 평소 중국에서 정기적으로 수입한 뜨락또르(트랙터)를 라선시 인민들에게 기증하기도 했으며, 자신의 공장에 근무하는 북측 근로자들에게 대우도 매우 잘해주어 라선시에서 신망이 높았다. 그러나 라선시 당국으로부터 거주권을 받지 못한 전 목사는 중국 훈춘에 셋집을 얻어 생활하며, 한 달에 한두 차례 정도 라선시를 왕래하며 사업을 운영해왔는데 이는 북 당국이 미국 국적의 신분을 지닌 전 목사의 장기 체류를 부담스러워하여 승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인해 평소 전 목사가 라선시를 방문하면 체류하는 기간이 그리 길지 않았으며 대부분 중국에서 자신의 업무를 봤다.

또한 전 목사가 라선시에서 트랙터 공장을 차리며 북측 기업과 계약을 맺을 때 북측은 이윤의 30%를 기증할 것을 요청해 명시하기도 했다. 그 후 중국 산동성과 천진시 등지에서 18마력에서 최고 90마력짜리 트랙터를 한 달에 100여대 가량을 라선시로 반입했으며 이때마다 전 목사는 북측과의 약속대로 트랙터 중에서 30%는 북측에 기증했고, 나머지 70%는 판매를 했으며 트랙터를 정비하거나 수리를 해주는 사업도 병행해왔다. 이 트랙터 공장은 평소 북측 노동자 50여명을 고용했는데 그들에게 급여와 대우도 잘해주어 매달 50kg의 식량을 무상으로 나눠주거나 계절별로 옷을 사주기도 했다. 또한 1인당 월급을 인민폐로 120원을 지급하는 등 다른 기업들 보다 대우가 남달라 라선시 간부들 자녀들이 많이 근무했다고 한다.

그러나 전 목사는 선교전략 차원에서 트랙터 공장을 운영했던 것이며 그 이면에는 선교회의 방침과 전략에 의해 움직였던 것이며 이로 인해 2010년 11월 전격 체포된 것이다. 그가 체포되자 북측은 처음에는 그의 혐의를 밝히지 않은 채 기소할 방침이라고만 밝혔으나 곧 이어 “미국인 전용수가 조선에 들어와 반공화국 범죄행위를 감행해 지난해 11월 체포됐으며 해당 기관의 조사를 받았다”고 공개했다. 조사 과정에서 심한 구타를 당하는 등 강도 높은 조사를 받기까지 했다. 북 당국은 “조사 결과 전용수가 공화국을 반대하는 엄중한 범죄행위를 감행하였다는 것이 밝혀졌으며… (중략) … 본인도 자기의 범죄행위에 대해 솔직히 인정했다”고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전 목사의 체포와 동시에 중국 조선족 동포 두 명도 체포되었는데 이들 중 한 명은 거의 3년 동안 전 목사와 함께 동거동락하며 함께 일했던 조선족 동포였다. 이들도 라선시로 입국하자 전 목사와의 관련성과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집중 조사를 받았으며 체포되어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구타를 당했다고 한다. 북 당국은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하자 두 명을 다시 중국으로 추방했다. 당시 이들의 증언에 의하면 억류중인 전 목사도 심한 구타를 당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상태였다고 전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나선뜨락또르공장’은 잠정 휴업 상태에 들어갔으며 공장은 문을 닫았다.

그러나 조사하는 과정에서 보위부가 밝혀낸 것은 ‘모퉁이돌 선교회’가 추구하는 지하교회 활동에 대한 혐의점이었다. 전 목사가 소속한 선교단체는 국내외에서 가장 자극적이고 노골적인 대북 선교활동을 하는 곳으로 유명하며 특히 입체적인 지하교회 운동과 북한말로 번역된 성경책 반입사업에 주력하는 단체로 소문난 곳이다. 특히 이 단체는 자신들의 선교활동을 외부에 홍보하고 국내외 교회들로부터 재정 후원을 받기위해 컬러판으로 매월 정기 간행물을 발간하고 있었다. 이 잡지는 우편물이나 인편으로 전 세계 안가는 곳이 없을 정도로 널리 퍼져있는 상태에 있는데 보위부에서는 잡지를 통해 이 단체가 북한 영토 내에 이미 점조직으로 넓게 퍼져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집중 취조했던 것이다.

북 당국이 전용수 목사 억류사건에 대해 얼마나 예민하게 생각했는가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카터는 북측 지도부에 전용수 목사의 석방을 정중히 요청했으나 단칼에 거절당했다. 이에 대해 당시 카터 대통령은 자신의 재단에서 운영하는 ‘카터센터’ 사이트에 방북 보고서를 올리면서 북측에 의해 차갑게 거절당한 사실을 아래와 같이 밝혔다.

“나는 평양을 방문한 첫날 인도적 차원에서 ‘에디 전(전용수 목사)’을 석방해 달라는 서면요청서를 박의춘 외무상에게 전달했으나 다음 날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만나는 자리에서 ‘당신의 요청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라고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그러나 라선시 보위부에서는 트랙터 공장 운영 외에 이미 전 목사의 은밀한 지하교회 활동과 성경 반입 활동 전략에 대해 이미 경고한 바 있으나 이를 무시하고 지속적인 활동을 벌이다가 결국 체포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리고 조사과정에서 자신들이 파악한 실태보다 의외로 넓게 확산돼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강도 높은 조사를 벌였던 것이다.

한편 전 목사가 체포되자 그의 가족들과 소속한 선교단체에서는 카터 전 대통령과 미 의회 관계자들에게도 구명을 요청했으며 당시 오렌지 카운티 지역의 공화당 연방 하원의원으로 활동하는 친한파 의원 에드 로이스(현 하원 외교위원장)에게 도움을 약속받기도 했다. 그 후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조사를 마치고 억류 상태에 있던 전 목사는 북 당국으로부터 가족과 전화통화를 허용 받는 등 완화된 분위기에서 억류생활을 보냈으며 미국의 요청에 따라 전 목사를 석방하기 위한 스웨덴 외교관들은 전 목사를 무려 8차례 면담했으며 계속해서 다각도로 노력한 결과 2011년 4월 27일 미국의 로버트 킹 북한인권특사가 직접 방북해 북 지도부에 유감을 표시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하는 교섭을 벌인 결과 이튿날인 4월 28일 억류된 지 6개월 만에 전격 석방됐다.

이 사건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보수적인 선교단체가 추구하는 ‘민족 복음화’와 ‘예수 민족화’라는 극단적인 신앙관과 ‘평양에서 예루살렘까지’라는 캐치프레이즈는 그릇된 선교개념에서 비롯됐다. 이런 식의 방법은 통일을 이뤄야 할 우리 민족 전체 공동체에게 유익하지 못하다. 대한민국은 개신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천주교, 불교, 유교를 비롯해 다양한 종교들이 공존하는 사회이며 통일의 주체는 다양한 종교를 믿는 모든 이들이 해당된다. 통일지향적인 관점에서 볼 때 타종교도 함께 공유하고 동참하는 원칙이 있어야 하며 제국주의적 선교나 외재적 접근방법이 아닌 내재적 관점에서의 북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 2011년 5월 28일, 미국 시민권자인 전용수 목사가 석방되어 대북 인권특사 로버트 킹(왼쪽)과 함께 평양을 떠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 ‘모퉁이돌 선교회’소속의 전용수(에디 전) 선교사의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1. ‘예수전도단(YWAM)’ 소속 배준호(裴埈皓) 목사 사건

2012년 11월 ‘종교활동을 통한 정부전복’ 혐의로 라선시 보위부에 체포된 케네스 배(Kenneth Bae) 선교사의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자. 그는 2013년 4월 국가전복음모죄로 노동교화형(징역) 15년형을 선고받고 수형생활을 하다가 2년만인 2014년 11월 9일 석방되었는데 이는 한국 전쟁 이후 미국인으로서는 가장 최장기간인 735일간의 억류기록이다. 이 사건을 표피적으로 볼 때 단동에서 여행사를 운영하던 배 선교사가 관광목적의 외국인들을 인솔해 라선시에 입국했다가 체포된 것으로만 알려졌다.

그의 아버지는 남한의 유명한 프로야구팀 한화 이글스(빙그레 이글스)의 초대감독이자 mbc청룡팀을 이끈 배성서 감독이다. 배 감독은 평북 영변이 고향인 실향민이었기 때문에 평소 부친의 영향을 받은 배 선교사는 성장과정에서 북한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비전을 지니게 되었다. 특히 배 감독은 영남대학교 야구감독 시절 스파르타식 훈련으로 유명해 이현세의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의 실제 배경이 된 인물로 유명세를 탔던 인물이다. 1968년 8월 1일 한국에서 태어난 배 선교사는 당시 홍정길 목사가 개척한 남서울은혜교회 중등부에서 신앙생활을 하다 1986년도 18세의 나이로 미국에 이민을 떠났다. 그 후 오레곤 주립대학과 샌프란시스코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커버넌트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 석사를 마치고 미국 장로교(PCA)에서 강도사 직분을 받고 남침례교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2005년 하와이 코나 열방대학 DTS를 통해 중국에 전도여행을 하던 중 북한선교에 대한 소명을 받아 2006년 로렌 커닝햄 목사를 통해 중국 대련으로 파송을 받게 된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그는 2006년 미국의 ‘예수전도단(Youth With a Mission 이하 YWAM)’이라는 선교 단체에서 중국으로 파견한 선교사 신분이었다. 예수전도단에서 운영하는 국제적인 선교프로그램인 ‘제자훈련학교(Disciple Training Schools)’를 중국에서 운영하기 위해 파견된 실무자였던 것이다. 해당 프로그램은 일반 사람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는데 필요한 선교 기술을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학교로 보면 된다.

또한 배 목사는 2008년에는 전략상 ‘단둥 완방 여행 컨설팅’이라는 외국인 투자기업을 단둥시에 개설했고, 2011년 10월에는 ‘사람, 문화, 자연을 사랑하며’ 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네이션스 투어 (Nations Tour)’라는 여행사를 설립했는데 이 회사는 나진선봉만을 전문으로 여행하는 관광여행사로 특성화했다. 중국과 북한을 가르는 압록강이 내려다보이는 지역에 사무실을 차린 배 목사는 자신의 여행사를 통해 방북할 때마다 선교 활동을 위한 사업을 진행했다. 2010년부터 공식적으로 북한 투어를 시작한 그는 당시 외국인들이 드나들며 24만 명이 거주하는 나진선봉지역을 자신의 선교사역지로 구별하며 열정을 부은 것이다.

그는 라선시에서 공식적으로 영어도 가르치고, 장마당 출입도 했으며 산에 올라가는 것도 허락 받았고, 아이들과 어울려 운동하는 것도 허락을 받을 정도로 북 당국의 신임을 얻었다. 그러나 배 목사가 억류되기 한 해 전인 2011년 12월 미국의 어느 한인교회에서 행한 55분가량의 강연을 보면 그가 어떤 대북 선교관을 지니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예수께서 내가 북한을 잇는 ‘경로(channel)’가 되길 원하신다. 올해 북한에 들어가는 단기 선교단에 몇 차례 참여할 것이다. 나는 이미 중국에 문화교류 회사를 운영 중이다. 북한 주민들을 가르치거나 먹이고 보살필 외국인들을 그동안 많이 확보했다. 많은 이들이 북한에 들어가고 싶어 한다. 어느 동료 선교사를 통해 북한에서의 선교활동에 관해 처음 소개받았으며 여행사 일을 통해 내가 할 일을 탐색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오고갈 수 있다면 벽이 훨씬 더 빨리 무너질 거라 생각했다. 지난해부터 나진과 선봉지역을 통해 관광객 차원에서 외국인 입북이 가능하다는 말을 들었다.”

또한 그가 2011년 북한에 들어가기 전 남긴 서한을 보면 YWAM과 연계해 중국 땅에 기독교 대학인 ‘열방대학’을 창립하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서한에는 “우리는 평양에서 예루살렘까지 복음을 전파할 준비가 돼 있다. 북한 선교활동을 위한 작업을 모두 한 곳에서 처리할 수 있는 새 캠프를 개설할 예정이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으며 문서의 마지막에는 중국 내 YWAM 책임자로서 배 목사가 직접 서명하기도 했다. 이후 배 목사는 “서방세계와 북한의 다리 역할을 하겠다”고 다짐하고 23번에 걸쳐 투어를 하던 중 억류사태의 발단이 된 18번째 입국을 하기 위해 검문검색을 하는 과정에서 컴퓨터 외장하드가 발견된 것이다.

외장하드에는 그동안 미국 등에서 만든 동영상들과 지난 6년간 발송한 선교편지, 선교활동 영상물들이 들어 있었고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고아(꽃제비)를 촬영한 것 등이 다수 들어 있었다. 이런 자료들은 충분히 북 당국을 자극할 만한 내용들이었다. 결국 이 사건은 북 정보 당국으로 넘겨져 하드에 담겨진 자료들이 불온한 것이라고 판단한 북 당국이 집중 조사를 벌이기 위해 그가 입국 시 체포했고 그 과정에서 실제 여행사 대표가 아니라 선교사라는 신분이 밝혀지면서 심문이 더 확대되었고 다양한 포커스로 취조가 이뤄졌던 것이다.

결국 여러 혐의가 발견되면서 기소를 당했는데 가장 결정적인 혐의는 ‘여리고 작전’이었다. 여리고 작전은 개신교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프로그램으로서 구약성경 ‘여호수아서 6장’에 나오는 여리고성을 무너뜨리는 내용을 삶에 적용한 것이다. 여리고성 같은 난공불락의 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기도하면서 정성을 보이면 한 순간에 성이 무너진다는 상징적인 행사인데 배 목사는 이 여리고작전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대학생들을 라선시에 입국시킨 혐의를 받은 것이다. 북측에서는 오해를 살만한 행위였던 것이다.

결국 그의 죄목은 형법 제60조(국가전복 음모죄)에 따라 반공화국 적대범죄 행위 혐의가 확증되어 15년 노동교화형을 선고받고 복역하기 시작했다. 당시 북측이 주장한 배 목사의 혐의내용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배준호는 지난해 11월 3일 모략 선전물을 가지고 나선시로 입국하다가 현행범으로 체포, 기소됐다. 2010년 12월부터 2012년 3월까지 반공화국적인 종교활동으로 우리 제도를 붕괴시킨다는 소위 ‘예리코(여리고)작전’을 직접 계획하고 그 실현을 위해 학생 250여명을 관광 목적으로 나선시에 들이 밀었다. 배준호는 또한 모략선전의 신빙성을 부여하기 위해 ‘디에크의 밀착취재, 북한을 가다’, ‘15억 중국, 그리고 지구상 마지막 폐쇄국 북한’을 비롯한 여러 편의 반공화국 동영상을 수집, 제작해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면서 공화국 정권 붕괴에 나서도록 적극 부추겼다. 배준호는 국제예수전도단의 선교사로 지난 6년 동안 중국에 모략 거점을 세우고, 공화국 인민과 중국인,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반공화국 강의’로 우리 정부를 붕괴시키려고 시도했다. 재판심리 과정에서 배준호는 자기의 범죄사실에 대하여 전부 인정했으며, 그의 범죄는 증거물들과 증인들의 증언에 의하여 객관적으로 명백히 입증되었다. 그의 범죄는 사형 또는 무기노동교화형에 해당하는 엄중한 범죄이지만 본인이 자기 범죄를 솔직하게 고백하고 인정한 것을 고려하여 15년 노동교화형을 선고한다.”

15년을 선고받고 외국인 특별교화소에서 수형생활을 했던 배 목사는 훗날 석방된 후 자신이 유일한 죄수였고, 30명의 간수들과 함께 지냈다고 증언했다. 1주일 중 6일 동안 콩 심기를 하거나 농사를 짓고 혹은 땅을 파는 노동을 했는데 3개월이 지난 후 몸무게가 27kg이 빠지며 영양실조로 병원에 실려 가게 됐다는 것이다. 당시 필자는 방북시 평양국제친선병원에 근무하는 배 목사의 담당 주치의인 서미옥 의사와 간호사를 서너 번 만난 적이 있었으며 그들을 통해 배 목사의 근황과 건강상태에 대해 파악할 수 있었다. 국가행사 기간에는 외국에서 방문한 해외동포들을 위해 호텔에 위생실을 설치하는데 이때 이들이 필자가 투숙한 호텔을 담당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북한의 노동교화형은 노동을 통해 자신의 죄를 뉘우치며 근면하고 성실한 사회인으로 변화받기 위해 교양을 받는 곳이다. 살인, 강도, 절도, 강간 등 일반 형사범과 사기, 횡령 등 경제사범 가운데 형량 2년 이상의 판결을 받은 중범죄자들에게만 노동교화형이 선고된다. 배 목사가 억류된 후 한국과 미국등 서방세계에서는 그를 위한 석방 노력을 다각도로 기울였으며 교회신자들과 목회자들 그리고 그의 부모 형제를 비롯한 가족, 친지들의 기도와 노력들이 있었으며 17만 명의 서명운동 그리고 교화소로 전달된 450 여 통의 편지가 그에게 희망을 주었다고 한다. 드디어 2년 째 되던 2014년 11월 어느 날 20명이 넘는 사람들이 교화소를 찾아와서 그를 데리고 가면서 석방이 됐고 마침내 미국 워싱턴주 루이스-맥코드 미군 기지에 무사히 도착해 가족들과 상봉했다.

▲ 수감된 케네스 배 목사가 외부인 접견을 위해 이동하는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 필자가 평양을 방문해 만났을 때 촬영한 케네스 배 담당 주치의 김명옥과 담당 간호사의 모습. 이들은 평양국제친선병원 소속이며 이 병원에 입원한 배 목사를 정기적으로 치료했다. 국가행사 기간에 해외에서 방문한 동포들을 치료하기 위해 호텔에 마련된 의무실에 파견 나오기도 한다.[사진제공 – 최재영]

▲ 케네스 배 선교사가 노동교화소 내부에서 일하기 위해 밭에서 일하는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 케네스 배 선교사가 사용하는 교화소 내부 모습(2013. 7. 3). [사진제공 – 최재영]

진정한 북한선교는 실천과 행함이다

올바른 선교는 선교 당사국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그 이해를 통해 그 민족에 대한 선교 정책이 수반되어야 한다. 선교는 사고(consideration)의 대상이기보다 ‘실천과 행함(Acting & Doing)’이다. 나를 비움으로써 상대를 채우고, 내가 주림으로 상대가 배부름이 되고, 내가 주는 것으로 상대가 풍성해지는 삶 자체가 선교이다. 그러기 때문에 북한선교에서 가장 우선시해야 할 것은 북한 인민들에 대한 문화와 상황 이해를 통한 정서의 교류와 소통이다. 70년간 단절된 대화를 다시 이어가기 위한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상대에게 무한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아낌없이 주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현재 일반 인민들의 기독교에 대한 인식은 아직까지도 부정적이며 기독교를 비롯한 일반 종교에 대해서는 미신처럼 인식하고 있다. 특히 미국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기독교라는 종교에 대해서는 아직도 반감을 지니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북지원 사업을 가장해 점령군식 선교를 목적으로 라선시를 상대하는 것은 북에 대한 기독교의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심어줄 뿐 아니라 기독교의 입지를 약화시키는 행위이다. 지금이라도 한국교회와 해외 한인교회들은 종교적 욕망과 목표를 잠시 내려놓고 라선시 경제특구를 활성화시키려는 노력에 주력하고 북한 당국을 안심시켜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서로 적대적 관계에 있는 북한과 미국이 화해와 협력을 하는 관계가 되도록 메신저 역할을 해야 한다. 그동안 전쟁을 경험한 남한의 올드 세대의 목회자들은 아직도 공산주의는 무신론이며 반종교적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며 ‘공산주의는 악마’라는 공식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원칙적, 체험적 반공주의를 극복하고 넘어서야만 통일의 길목에 진입할 수 있다.

북한은 악의 세력이므로 도와줘서도 안 되고 대화 자체도 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보다 북한을 동반자의 입장에서 어려운 부분을 인도적으로 돕고 경제 활성화를 지원하는 것이 조국통일과 한반도 평화에 도움이 된다. 조국통일은 북한선교의 목적이 아니라 하더라도 훗날 그 자체를 통해 북 인민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기회를 갖게 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선교적 과제로 인식해야 하지 않을까? (계속)

출처 : 통일뉴스(http://www.tongilnews.com)

오바마식 한반도 정택의 재탕은 평화를 위협한다 Tim Shorrock 210129

오바마식 한반도 정택의 재탕은 평화를 위협한다. – TIM SHORROCK
자유토론판

2021-01-29 14:43:30

지난 11월 말 조 바이든 당선자는 자신의 측근이자 조언자인 ‘안토니 블링켄과 ‘아브릴 하이네스를 미국의 외교정책의 수장 및 정보기관의 책임자로 지명하였다.

이들은 새 대통령이 공언한 “미국의 동맹국들과 관계를 복원하는 동시에, 현안에 주저하지 말고 세계를 이끌어 간다”의 지침에 기반하여 정책적 구상을 준비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블링켄과 하이네스가 예의 다자적 방식으로 현안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문제가 돌출하고 잠재적으로 위협이 될 수 있는 지역이 존재한다 : 바로 한반도이다.

블링켄과 하이네스는 오바마 정권 시절, 한국의 보수적인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와 긴밀한 협의를 진행하면서 한반도를 1910-1945년 동안 식민지로 지배했던 일본을 포함하는 한미일 삼국의 실제적(de
facto)군사동맹을 형성하려는 전략을 추진하여 왔다.

실제로, 오바마 시절의 국가안보팀은 북한을 불법적인 깡패국가로 간주하면서 협상의 파트너로 간주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해 왔다. “당시 우리 대부분은 북한의 핵추진 전략에 대한 가장 실효적이고 장기적인 해결은 북한을 붕괴시켜서 한국으로 흡수 합병시키는 것으로 믿고 있었다”고 오바마 정부의 한반도정책을 설계한 것으로 알려진 제프리 바이더가 2012에 출간한 회고록에 적고 있다.

상기의 입장이 여전히 바이든의 지명자들의 핵심견해로 남아 있다. “북한에 대하여 최신의 상황을 합리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강경파들이 당선자 주위를 감싸고 있다”고 문재인 대통령의 측근 인사가 미국의 대선이 끝난 직후 나에게 우려를 전달 한바있다.

오바마 정권 시절에 이미 블링켄은 국무부 부장관으로 승진한 경력이 있고, 하이네스 역시 국가안보실의 고위직 법률자문역에서 CIA부국장으로 발탁된 바 있다. 이들은 당시 북한의 핵개발과 미사일 프로그램을 중단시키는 정책을 입안하면서 군사적 압박과 사이버 공격 그리고 경제적 제재를 결합시킨방식을 제안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한때 하이네스는 CIA와 북한 정보기관 간의 비밀요원으로 평양을 방문했었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이 보도한 적이 있다.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오바마 정권시절의 대북전략에는 두 가지 치명적인 문제점을 갖고 있었다.

첫 째는 블링켄과 하이네스가 당시 극우적인 정권으로 평가되는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와 긴밀한 협의
하에서 전략을 수립하였는데, 두 사람의 전직 대통령들은 불명예스럽게 부패라는 죄목으로 모두 교도소에 수감 중에 있으며, 1997-2008년 간 노태우와 김대중 대통령에 의해 추진되어온 ‘햇볕정책’이라는
포용방식을 거부해 왔다. 이들은 이명박과 예외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면서 오바마에게 강경정책을 취하도록 종용하였으며 이런 방향으로 추진해온 것에 만족하고 있었다.

이런 식의 정책전환은 2013년 서울의 전쟁기념관에서 행한 오바마의 연설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당시 그는 호전적인 내용을 담아내면서 수백 만의 인명을 앗아간 전쟁을 실제적인 승리였다고 흘러간 수구파의 주장을 부활시켰다.

오바마의 과거회귀형 접근은 역효과를 일으켰다. 이명박과 박근혜가 집권하고 있던 시절에 남북 간에
위험한 군사적 긴장을 유발하였고, 한국전쟁의 정전이래 남북한의 관계가 최악의 수준으로 후퇴하게
되었다. .

박근혜씨가 탄핵되고 노무현 대통령의 비서실장 출신인 문재인씨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문의 대선 캠페인 기간 동안 나는 광주에 머물고 있었는데, 그는 전직 대통령들의 햇볕정책을 되살려 내겠다고 약속하였으며 이명박과 박근혜 그리고 이들 뒤에 있던 미국의 협력자들이 취한 대결적 자세를 거부한다고 발언하는 것을 직접 들었다.

둘째로, 이명박 그리고 박근혜 정부와 협력관계를 형성하면서 블링켄과 하이네스는 한미일 삼국의 실제적 군사적 동맹을 추진하는 실무책임자들이었다. 당시는 오바마와 외교 분야의 핵심측근들은 중동에서 발을 빼고 아시아로 회귀하던 시절이었으며, 바로 블링켄 자신이 이러한 전환전략의 핵심인물이었다.

당시 연방상원 외교위장직을 맡고 있던 바이든의 측근으로 활약했던 프랑크 자누치에 따르면, 블링켄은 한국과 일본의 책임자들과 긴밀한 협의를 진행하면서 북한에 대항하는 삼국협력체제를 추진하는 일을 돕고 있었다. 현재 워싱턴에 있는 맨스필드 센터의 이사장 직을 맡고 있는 자누치는 일본-타임즈와 인터뷰에서 당시 블링켄은 삼국관계를 형성하는데 장애가 되는 서울과 동경 간의 견해 차이를 좁히고자 최우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고 밝혔다.

그의 노력은 당시에는 성공적이었지만 효과는 단기에 그쳤다. 2015년에 오바마와 블링켄이 직접 개입하여 박근혜와 일본의 아베 수상 간에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있었던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합의문에 서명을 유도함으로써 오랫동안 논쟁이 되어온 현안을 잠정적으로 종결시켰다.

당시의 상황에 대하여, <워싱턴-포스트>는 양국의 합의서명을 통하여 서울과 동경 간의 동맹이 더욱 공고해지면서 굴기하는 중국의 영향력을 억제하고 북한의 도발을 견제할 수 있게 되었다고 보도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가끔 망각하는 사실이 있는데, 오바마 시절에는 전쟁이 발발하면 북한의 김씨 정권을
전복하는 것이 합동군사작전의 목표이자 당시 미국정책의 핵심이었다는 점이다. 블링켄은 상기의 (위안부)합의를 미국에게 커다란 성과라고 여기었다. “동맹이자 친구인 두 나라가 원하느냐 여부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전략적 성과입니다”라고 그는 <워싱턴-포스트>와 인터뷰에서 밝혔습니다.

그러나 한국 내에서는 위안부 합의에 대한 비난이 광범하게 전개되었는데, 희생된 당사자들이 용기를 내어 당시 일본이 저지른 죄상을 고발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상기의 합의 과정에서 이들과 상의조차 하지않았다.

곧이어 대통령에 취임한 문재인은 이러한 합의에 대하여 “희생당사자와 시민들의 의견이 배제된 정치적 합의”라고 거부하면서 아베에게 재협상을 요구하였다, 결국 삼국의 군사동맹이라는 오바마(블링켄에 의해 추진된)의 희망은 실패로 돌아갔고, 일본과 한국 간의 갈등은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더욱 심각해졌다.

이에 더하여,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의 핵심사항이자 불길한 내용인 ‘북한의 정권 교체’라는 목표가 서울당국에 의해서 거부당했다.

우리는 가끔 망각하는 사실이 있는데, 오바마 시절에는 전쟁이 발발하면 북한의 김씨 정권을 전복하는 것을 목표로 삼은 합동군사 계획이 당시 미국정책의 핵심이었다는 점이다. 하이네스는 2017년 브루킹스 연구소가 주최한 미국의 대북전략 회의 기조연설에서 이를 매우 분명하게 밝혔다. 그녀는 북한이 핵무장 국가가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강고한 제제를 진행하여야 하며 미국의 압력에는 김씨 정권의 붕괴를 대비한 광범한 위기관리 계획을 함께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계획안에 대하여 하이네스는 다음과 같이 재강조하였다 “단순히 한국정부뿐만 아니라, 미국의
파트너로서 중국과 일본도 (북한의)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예상하여야 하며, 잘못된 판단으로 의도하지 않은 도발행위가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비상계획을 준비하여야 한다” 여기서 비상계획이라는 것은 당연히 군사적 개입을 말하며, 한미연합사령부가 중심적 역할을 맡는 것을 의미한다. 2015년에 미군과 한국군의 장성들은 “OPLAN-5015” 작전계획에 서명하였는데, 이는 북한의 도발이 있을 시, 주요 군사시설을 타격할 뿐만 아니라 북한 지도부을 제거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1970년에 작성된 “OPLAN-5027”를 수정한 것이다 (최근 발간된 저서 ‘분노Rage’에서 <워싱턴-포스트> 기자였던 밥 우드워드는 펜타곤이 “OPLAN-5027”를 재검토하면서 북한 정권의 전복을 연구하였다고 밝히면서, 최악의 경우에는 80개의 핵무기를 사용하는 것도 검토하였다고 주장했다).

더구나 브루킹스 회의에서 언급한 하이네스의 제안은 한미 양국의 계획을 훨씬 넘어선 것이다. 미국
정보기관의 핵심인사가 한국을 식민지로 지배하였던 일본으로 하여금 한반도에서 군사적 역할을 하도록 고려했다는 것은 매우 충격적인 사실이다.

어찌되었던 간에 오바마 시절 작성된 비상계획은 어설프기도 하며 동시에 매우 위험한 것이었다. 2016년에 실시한 한미군사합동 훈련에는 김정은을 포함한 북한지도자의 제거작전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이에 대하여 북한은 격렬한 적대감을 표시하였다. .

상기의 진행과정은 김정은에게 리비아 방식의 국가전복이 북한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공포감을
야기하면서, 2017년 전쟁의 억지력으로써 핵무장을 완성하도록 그의 결심을 굳히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이에 더하여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김정은과 역사적인 만남을 통하여 북한 정권의 전복이라는 미국의 전략을 분명한 어조로 거절하였으며, 미국에 의한 북한의 일방적 폭격에 대해서도 경고를 보냈다

이제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앞으로 진행될 인사청문회에서 블링켄과 하이네스가 지신들의 견해를 바꾸었는지 여부를 예의주시하여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바이든의 당선이 확정되기 이전에 블링켄은 오바마 시절에 수립한 일본중심 다자주의로 회귀를 암시한 바 있다. “우리는 동맹인 일본과 한국과 협력하여 중국에 압력을 가하여 북한이 협상테이블에 나오도록 경제적 압박을 행사하도록 해야 한다”고 CBS 뉴스에서 전직 CIA 부국장인 마이크 모렐에게말한 적이 있다. “오바마-바이든 말기에 열정적으로 추진하였듯이 북한의 경제적 수입과 이의 접근을 다양한 방식으로 차단해야만 한다”고 덧붙이기도 하였다.

이는 매우 강경하면서도 일본을 포함하는 다자적 방식을 선호하는 것으로 해석되는데, 이점이 바로
문대통령과 한국의 진보인사들이 정말로 회피하고 싶은 사항이다. 미국인들은 한국과 미래지향적인

관계개선을 희망하고 북한과는 핵위기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길 간절히 바라지만, 이를 위해서는 블랑켄과 하이네스가 과거의 지신들이 벌린 실수를 인정해야만 한다.

한국은 독자적인 주권국가로서 여러 차례 폭력적 사건들을 겪은 나라이기에, 이제 전쟁이 지난 7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미국의 지지와 존경 그리고 평화를 얻을 자격이 충분한 동맹이다.

Tim Shorrock, 워싱턴에 거주하는 탐사전문 언론인으로 어린시절 일본과 한국에서 자랐다. 그는
“고용된 스파이 외주정보 활동의 비밀세계 Spies for Hire: The Secret World of Outsourced Intelligence” (2008)”의 저자이며 지난 38년간 미합중국의 대외정책에 대한 수많은 저술을 남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