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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투사 전홍섭과 김새협 pic2
2019-03-24 10:32:39
일제 감시 대상 5,600 독립의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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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도별/예술문학비평
2019-04-23 05:08:25
제15회 을숙도 사생대회 개최 안내
제15회「을숙도사생대회」참가안내
청소년의 달을 맞아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환경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고자 제15회『을숙도사생대회』를 개최하오니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행 사 개 요
○ 일 시 : 2019. 5. 18.(토) 10:00 ∼ 14:00
○ 장 소 : 을숙도조각공원 일원 ▷ 우천 불구 행사 진행
○ 참가대상 : 부산·경남교육청 관할 유치원생, 초등학생
○ 참가부문 : 유치부, 초등부Ⅰ(1∼3학년), 초등부Ⅱ(4∼6학년)
○ 참 가 비 : 무료
○ 준 비 물 : 도시락, 물, 화구(크레파스화, 파스텔화 수채화 등 자유 재료) 등
※ 화지는 당일 현장배부
○ 주최/주관 : (사)환경미술협회 부산지회
○후 원 : 사하구, 한국수자원공사(부산권지사), 부산미술협회
참가신청 및 접수
○ 신청기간 : 2019. 4. 22.(월) ∼ 5. 17.(금) 09:00∼18:00
○ 신청방법 : 사하구홈페이지(문화관광-문화예술행사-을숙도사생대회) 신청
▷ 학교 단체접수 또는 개인별 신청
※ 인터넷 주소 : http://www.saha.go.kr/tour/paint
○ 문 의
– 사)환경미술협회부산지회 사무국 ▷ 051- 262-6562 (폰: 010-4842-6422)
– 사하구청 문화관광과 ▷ 051-220-4062, 051-220-4067
시 상
○ 시상내역 : 3개부문(유치부, 초등2개부) 수상
– 부문별 대상(부산광역시장상), 최우수상(사하구청장상, 부산광역시 교육감상, 부산시의장상 )
우수상(사하구청장), 특별상, 특선, 입선(시상인원은 참가인원에 따라 변경)
– 지도자 상은 본 사생대회 참여하는 학생들을 지도하신 선생님들 중 선발 함
○ 결과발표 : 행사당일 심사 후 현장게시 및 사하구홈페이지 게재
※ 상장은 해당학교 및 유치원으로 우송·전달시상
기 타 사 항
○ 응모된 작품 및 수상작은 반환하지 않음
※ 수상작 전시 : 2019. 6. 1.(토) ∼ 2018. 6. 12.(수) ▷ 갤러리 을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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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도별/예술문학비평
2019-04-23 05: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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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도별/예술문학비평
2019-05-17 06:01:59
김미영 초대展/ 반영의 이면-숨겨진 존재를 보다展
김미영 개인전에 초대합니다!
연초록 물감 뚝뚝! 헤푸게 풀어놓은 5월,
아카시아 향기 살포시 그 위를 거닐고
하이얀 찔레꽃 그리움이 유년의 추억을 불러옵니다.
이즈음, 남산의 둘레길엔 온통 꽃날이지요.
이 꽃날에 아름다운 남산에서 개인전을 합니다.
숨죽였던 오월이 기지개 펴듯 나도 오월인양
봄꽃들 옆에 살짝 내 이야기를 풀어놓아 봅니다.
아직 여리디 여린 작품이지만 정성을 담아 준비한
저의 개인전에 정중히 초대합니다.
오셔서 많은 격려와 응원 부탁드립니다.
2019. 5. 13
김미영 드림.
김미영 초대展
KIM MI YOUNG
반영의 이면-숨겨진 존재를 보다展
반영의 이면-love1_Mixed media_120X170cm_2019
남산갤러리
2019. 5. 22(수) ▶ 2019. 5. 28(화)
Opening 2019. 5. 22(수) PM 5.
운영시간 | 평일 am9. – pm6 , 주말 am9 – pm5. (2019. 5. 28 am11까지 운영)
서울 용산구 소월로 109 구(후암동, 남산도서관) | T.02-754-7338
반영의 이면-Variation4_ Mixed media on wood pannel_60x120cm_2018
반영의 이면 속, 초인을 향한 여정
김성호(미술평론가, Kim, Sung-Ho)
김미영의 개인전이 제시하는 ‘반영의 이면 – 숨겨진 존재를 보다’라는 주제는 오늘의 사회 속에서 당면한 이러한 예술가의 ‘존재론적 고민’을 모자람 없이 담고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I. 반영의 이면을 성찰하는 인간 존재론
인간 군상이 등장하고 있는 작가 김미영의 작품에는 표면적으로 주체와 타자의 관계를 되묻는 ‘사회적 인간학’에 대한 관심이 앞서고 있지만, 그 근저에는 거울에 반영되는 ‘이미지로서의 시뮬라크르(보이는 주체)’와 자신의 ‘본질적 자아(보는 주체)’의 문제를 되묻고 있는 한 주체의 ‘인간 존재론’에 대한 관심이 깊숙이 자리한다. 그리고 이러한 성찰의 그릇에는 세상 속에서 예술가로 살아가는 자신의 예술가적 위상에 대한 고민이 한데 겹쳐져 담겨 있다. 그녀의 작업에서 인간 존재론를 성찰하게 만드는 매체는 무엇보다 이미지를 반영하는 거울이다. 특히 〈반영의 이면〉 시리즈의 다수를 차지하는 ‘흑경(黑鏡)’이라는 특수 거울이나 그 효과를 나타내는 ‘검은색 아크릴 미러(black acrylic mirror)’는 이러한 인간 존재론을 심층적으로 성찰하게 이끄는 매체이자, 메타포가 된다.
작가 김미영은 〈반영의 이면〉 시리즈에서 흑경, 혹은 검은 아크릴 미러를 전면에 배치하거나 여러 모양으로 절단하여 회화와 뒤섞고 다른 오브제와 함께 배치하면서 변주를 감행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반영의 이면〉 시리즈명을 줄표(-)로 이어 부제를 작명하면서 그 변주의 의미를 인간의 양면성 차원에서 탐구한다.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문제의식도 작품 도처에 나타난다. 17세기 바로크인들이 교훈으로 삼았던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는 언명, 즉 인간은 누구나 ‘타자의 죽음을 통해서 간접 체험할 수밖에 없는 죽음을 언젠가는 대면할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라는 진리를 그녀는 기꺼이 껴안는다. 두렵지만 받아들여야 할 미래적 운명! 회화, 오브제, 흑경이 혼재된 김미영의 작업에는 이러한 ‘죽음을 예감하는 파편과 같은 왜곡된 인간 군상’의 이미지들이 자리한다.
반영의 이면-Variation5_ Mixed media on wood pannel_60x120cm_2019
II. 반영의 이면 속 인간의 욕망
김미영이 제시하는 ‘반영의 이면’은 퐁티가 언급하는 ‘거울 현상’이자, 라캉(J. Lacan)이 언급하는 ‘거울 단계’와 연동된다. 즉 주체의 ‘봄’과 타자의 ‘응시’가 교차하는 시각장으로서의 ‘거울 현상’ 속에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되묻는 존재에 대한 성찰이면서 동시에 유아가 나르시시즘적인 ‘상상계(l’imaginaire)’로부터 이성적 언어가 작동하는 ‘상징계(le symbolique)’로넘어서면서 비로소 인간 주체성을 획득하는 ‘거울 단계’ 속 자아 성찰과 유사한 것이다. 그녀는 ‘거울 반영의 이면’ 속에서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 질문한다. 즉 ‘보이는 것’의 이면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묻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첫 번째로 거울을 통해서 비로소 스스로를 볼 수 있는 ‘봄’의 주체인 작가 김미명 자신이며, 두 번째로 보이는 현상 너머에서 잠재하고 있는 무엇이다. 그것은 환상이나 허구가 아니라 현실화되지 않을 뿐인 실재의 무엇이다. 라캉이 그 힘을 욕망으로 보고 있듯이, 김미영 또한 그것을 욕망과 관계하는 것으로 살핀다. 그것은 ‘인간 욕망의 양면성’이다. 선/악, 순종/반항, 희망/절망이 맞물린 인간의 욕망은 대개 진실을 은폐하고 거짓을 내세운다. 페르소나(persona)라는 ‘외적 인격’의 가면을 쓰고 욕망의 양면성을 숨기는 것이다.
회화와 오브제가, 자르기와 덧붙이기가, 재현, 추상, 표현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그녀의 작업은 현대인의 다양한 욕망과 더불어 그것의 미끄러짐이 야기한 파괴 충동 그리고 우울한 자폐적 징후에 대한 작가적 연민과 애정이 한데 녹아 있다. 즉 그것은 인간의 욕망이 야기한 절망으로부터 희망을 도모하는 치유에 대한 의지인 셈이다. 때로는 침잠의 화면을 때로는 혼돈의 풍경을 선보이는 그녀의 작업에는 이러한 전환에의 의지로 가득하다.
반영의 이면-Variation2_ Mixed media on wood pannel_120x240cm_2018
Ⅲ. 초인의 여정
고통 속에서 춤을 추는 이는 누구인가? 그 누구란 그녀가 언급하듯이 ‘신의 성품을 닮은 거룩한 사람’이자. 부정으로부터 긍정의 삶을 이끄는 사람이다. 그것은 마치 니체(F. W. Nietzsche)가 언급하는 ‘초인(Übermensch)’과 같은 존재로 투영된다.
그녀는 세상 속에서 기독교인으로, 예술가로 일견 상반된 삶을 병행하면서 ‘이상적인 주체적 인간’의 모델을 니체의 ‘초인’에서 모색한다. 초인은 신을 대신하는 모든 가치의 창조자로서, 기독교의 강압적 윤리를 배척하고, 자율적 윤리인 군주의 도덕을 찬미하는 사람이다. 불멸의 영혼 대신에 영겁회귀를 꿈꾸고 선과 참 대신에 생과 예술의 근원에 잠재하는 ‘힘에 대한 의지’를 실천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즉 그녀가 언급하고 있듯이, “주체적 의지로 살아가는 사람, 허무에 결연히 맞서는 사람, 비극적 운명도 받아들이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으로 좀 더 강한 인간과 좀 더 강한 자유정신의 소유자”를 말한다.
작가 김미영에게 이 ‘초인’ 또한 하나의 메타포이다. 그것은, 오늘날 21세기를 불완전성이나 제한을 극복한 이상적이고 초극적(超克的)인 인간인 ‘초인(의 여정)’을 지향하며 살고자 하는 작가의 희망이자, 오늘도 늘 새롭고도 정열적인 예술가로서의 삶을 지속하려는 결단인 것이다. 욕망이 야기한 실패와 좌절 그리고 음울한 병적 징후로 신음하는 오늘날 현대인의 상황 속에서도 트라우마, 소외, 고난, 고통으로부터 탈주하기 위해서 ‘춤을 추는 사람’의 모습을 지속적으로 그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반추하면서 말이다.
(반영의 이면 속, 초인을 향한 여정 /부분발췌)
반영의 이면-Self-portrait2_ mixed media on wood pannel_120x120cm_2018
본인 작품은 보이는 형상 뒤에 숨겨진-존재에 대한 탐구이다. <반영의 이면>시리즈는 작품에서는 거울 오브제를 부착하여 거울이라는 매개를 통해 인간 이면에 숨겨진 양면성과 유한성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그 속에서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실존적 딜레마, 인간의 실체를 만나게 된다.
작품에 나타나는 파편 같은, 온전치 못한 형태의 이미지들은 이미 세상에서 상처받고 아픔을 겪은 상실된 불완전한 존재이며 다양한 군상들이다. 상실된 존재는 스스로 치유하며 총체성을 되찾으려는 존재이자, 미래지향적 우주의 생명력을 지닌 희망의 존재이기도 하다. 이것은 유한적 시간 속에 있는 유한적 존재를 암시한다. 아무도 거부할 수 없는 죽음 그것은 인간의 슬픔이자 희망이다. 맞닥뜨리기 어려운 현실들은 인간에게 상실감을 준다. 그러나 모순되게도 희망은 때로 깊은 상실 속에서 더 강하다. 군상들은 현실을 뚫고 희망의 미래를 찾아간다. 파편적 부유하는 군상들은 개체마다의 욕망이 끊임없는 갈등 사이를 오가며 탈 경계를 꿈꾼다. 이렇게 인간은 욕망의 존재이고 상실의 존재이고 희망의 존재이다. 작품 속에 나타나는 존재들은 비록 고통의 삶일지라도 긍정적 미래를 찾아 나아가고자 애쓰는 인간의 아우성이며 활기찬 삶의 변주이다.
(김미영 작가 노트/부분발췌)
반영의 이면-The people_ Mixed media on wood pannel_60x40x10cm_2019(부분사진)
■ 김미영 | KIM MI YOUNG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졸업(회화전공석사)
개인전 | 7회 (서울, 일본 등)
단체전 | 2003~2019현재까지 150여회
(사)한국수채화협회 정기전(2008~현재) | 리쥼회 정기전(2010~현재) | 2006 캐나다 – 한국 현대작가 초대전 (캐나다 토론토) | 2007 타쉬겐트 국제 비엔날레전 (우주베키스탄국립미술관) | 2009 한국미술-LA국제전 그외 국내외 초대전 다수
수상 | 한국수채화협회공모전(대상) | 신미술대전(최우수상) | 목우회공모대전(입상)4회 | 한성백제미술대전(특선) | 제1회관념미학어워드 수상 | 서초구청장 표창 그 외 다수
기타경력 | SAAF2011(Sightly Amazing Art Festival)전시총기획 | 단독큐레이터 SIAF2009(SIGHTLY INTERNATIONAL ART FESTIVAL 2009) 일본/전시기획 큐레이터 | 대한민국신미술대전 심사위원역임 | 행주미술대전 심사위원역임 그 외 다수
현재 | 사)한국수채화협회 | 리쥼회 | 대한민국신미술대전초대작가 | k.SAAF단독 큐레이터 | 수채화강사 | 문화예술교육강사 | 김미영art연구소운영
Education | MA from Hongik University
Solo Exhibition | 7 Solo Exhibitions including one in Japan
group exhibitions | 150 group exhibitions (Canada & 2006 Korea Contemporary Fine Art Exhibition, 2009 Tashkent International Biennale, 2009 Korea Art – LA International Exhibition etc)
Awards | The 26th Korea Watercolor Association contest / awarded a prize The Grand Prix | Korea New Arts contest Exhibition / awarded a Excellent Prize | Korea Mokwoohoe Art Association contest /Received a prize 4th | 1th GNMH(Gwannyummihak)Award /awarded. And other many contest.
Former | SAAF2011(Sightly Amazing Art Festival2011) Independence curator | A judges of Korea New Arts Festival. A judges Haengju Fine Arts Grand Contest.
Present | Korea Watercolor Association Member | Korea New Art Festival Invited Artist. Independence curator
년도별/예술문학비평
2019-06-03 10:12:55
심갑섭 시인(서북미문인협회 이사장)
다시 청춘
높은 산 깊은 골에 눈이 쌓인다
죽은 듯이 견디는 수밖에
섣불리 일어 섰다간 얼어죽기 십상이다
고드름 우는 심사 모르는 바 아니지만
참고 기다리면 동장군도 지칠 때가 온다
나른한 햇살이 양지바른 언덕에 앉으니
흙 속의 씨앗이 자궁을 열고
푸르름이 기지개를 켠다
잠잠하던 산과 들이
일순간 들불처럼 밝아온다
기나긴 산고 끝에 강이 불룩한 몸을 풀면
드러누운 풀잎도 허리를 편다.
세상은 혁명을 꿈꾸기 시작하고
개미떼가 움직이자 대지가 들썩인다
다시 청춘이다
년도별/예술문학비평
2019-10-14 07:32:51
오묘한 시이다.우리 성경에는 ‘눈먼 장님이 인도한다’라는 표현??? 이 있는데…그런 뜻일까???
송명희 시인(워싱턴주 기독문인협회 회장)
눈 없는 사람
혹시 죽어본 적 있나요유감입니다, 아, 미안해요난 내 앞의 길을 믿지 않거든요매일 시간을 태운 배는 떠나가고 멀어지고다시 빈 배에 죽은 자의 시간을 싣고 옵니다난 지금 잠시만 살고 있어요기나긴 날이 계속되거나기나긴 밤이 계속되어도 별일 아니에요달이 구름에서 나온 날은두 눈 없는 비가 한없이 내리거든요눈먼 사람이 등불 들고 나를 인도해서달을 타고 강도 함께 건넜습니다고통을 모르면 고통이 아니듯누구나 벼랑에 서 있는데 모를 뿐내 등 뒤도 못 보고영원한 긴 잠의 시간도 못 보고그냥
<해 설>
일찌기 일리노이대학의 한 화가는 현대인을 ‘No Exit’(출구 없는 존재)로 그려 전시했다.
현대인은 사회 제도나 시대상황에 갇혀 있으나 의식을 못하거나 출구를 찾을 능력을 상실한 존재로 그려보였다.
이 작품 속에서도 작가는 삶이 곧 죽음인 현대인, 죽음을 의식 못하고 고통을 의식 못하는 불구의 현대인을 회화화한다.
작가는 일상에서 죽음을 의식하고 등 뒤의 벼랑을 보는 깨어있는 자, 즉 눈을 뜬 자가 될 것을 시적 모티프로 구축한다.
결론적으로 이 작품은 죽음의식을 통한 삶의 진정한 의미를 추구하여야 함을
설파하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담고 있어 주목된다.
김영호 시인(숭실대 명예교수)
송명희 시 화장 지운 꽃들만 보인다.
년도별/예술문학비평
2019-10-22 09:23:05
오묘한 시.
세상에 없는 계절을 만들자고 제의한다.
좋은 세상을 우리 서로 함께 만들자는 뜻일까????
하지만, 언제나 처럼…
기득권을 가졌거나 권력을 가진자들…
혹은 자신을 선생으로 착각하는 자들은…
대화의 시작을 상대방에 대한 정의로 시작한다.
내가 갈수 없는 이유는 분명한데…요즘 말로 펙트???
그 원인은 상대방이 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니면 상대방도 나와 꼭 같은 이유로 … 어쨌든 내가 갈수 없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서로를 알기전에 상대방의 이유…
또는 타인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것은…
많은 경우 다단계 사이비들이거나…
무뢰한들이 상대방또는 ‘정의’를 낮추기 위해 ‘불의’ 또는 ‘잘못’으로 하향조정하는 경우에게서 많이 찾아볼수 있다.
화장 지운 꽃들만 보인다 ..송명희
내가 당신에게
갈 수 없는 이유는
당신이 내게
올 수 없는 이유다
우리, 세상에 없는 계절을 만들자
어느 햇살 좋은 날
당신이 잎사귀에 쓴
편지 한 장 날리면
손이 닿지 않는 나뭇가지가
옆구리를 자꾸 들춰 본다
첩첩산중 내 속이 속내를 감춰도
꿰뚫어 보는 당신의
깊은 지성이 뼈저리게 그립다
바람은 잔잔하고
달빛이 넘치는데
나만의 신은 보이지 않고
화장 지운 꽃들만 발아래 뒹굴고
신년시 괭이 선술집 그녀 …송명희
년도별/예술문학비평
2020-01-04 09:06:52
선술집!!! 시인은 선술집에 많이 가 보았을까???
전쟁후 부산에 모여든 화가들과 시인들과 그리고 철학신사들?이 인생의 목적을 찾아헤메던 광복동 거리를 걸어다녔을까???
시인들이 앉았다는 벽돌의자에 의미를 찾고
또 우리 젊은이들은 무엇을 찾겠다고 그 흔적을 찾아 헤메었던 것일까???
ㅋㅋ 시인은 기독교문인이라서 술?시는 쓰면 안됄것 같지만
거침없이 써내려간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이해할수 없다는 것이다.
무뢰한 들에게는 그 아름다운 어휘들의 나열에도 불구하고 뭔 뜻인지 알수 없다.
뼈는 왜 없어 졌는지???
그 마지막 남은 수염은 무엇을 뜻하는지???
위대한 시인에게 감춰진 의도가 있는 것인지????
우리에게
시화전을 할때 그려넣던 삽화의 기억만 흐미하게 남아 있다.
언제나 어두운 골목길
흐미한 보안등 밑에
찌그러진 나무상에 긴나무의자에 팔을 괘고 붉은 얼굴을 한 내모습의
삽화만이 남아 있다.
희망찬 새해에 또 우리는 무엇을 결심해야하는 것 일까???
——————————————————————————————————
[신년시] 괭이 선술집 그녀 …송명희
1
괭이 선술집은 벼랑 끝에 달을 매달아 두었다.
치렁치렁 얽힌 칡 줄기로 꼬아 만든 입간판은
달동네 주막의 얼굴이다
구석진 자리 찢어진 의자에 걸터앉아
자글자글한 얼굴에 그림 그리는 주모 고양이
길손에게 거는 시답잖은 말발로 노랑노랑한 졸음을 쫓고
빤쯔에 헝겊나부레기를 누덕누덕 기어 만든 속주머니
손님들이 찔러준 손때묻은 종이를 꼬깃꼬깃 주무른다
만만하게 보여야 주머니가 바쁘다, 오! 만만!
오호, 그래서 주인 양이는 부들부들 부드럽다
뼈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돈 안 되는 줏대를 헐값에 홀랑 넘긴
아! 보푸라기보다 가벼운 그녀, 너무 가벼운 그대, 우리
여러분, 새해에는 하나 남은 그들의 마지막 수염만은
절대 뽑지 마시기를
자유토론판
2020-01-28 14:52:23
우연히 정기용씨의 민주화운동에 관한 기사를 보다가
미국 수도 워싱톤 디씨에 정착한 우리 조선 침례교 원조 동아기독교의 후손? 혹은 선조이신 김광택 메릴랜드 주립대 교수 동생 김광훈 박사가 눈에 들어온다.
1975년경 미국에서 김대중선생의 옥중감금으로 인해 민주노선이 침체될때
2 파로 갈라지게 되엇는데,
하나는 ‘선통일 후민주’ 이고
다른 하나는 ‘선민주 후 통일’이었다는 것이다.
이때 우리 한국의 침례교 첫 선교사이신 펜위익 공부를 모셨던
안대벽목사의 부인 이순도 여사의 여동생의 2 아들들인 김광택집사(박사, 음악목사)의 동생 김광훈 메릴랜드 주립대 교수 가 ‘선통일 후민주’를 주장하는 쪽이어서 단체를 결성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1935년경 펜위익 공부가 돌아갈때 예닐곱쯤 된 김광택형제에게 약간의 유산까지 남기신 분이다.
형 김광택박사는 정치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아주 늦게 유명한 성악가 케서린 김과 결혼해서 81년경 아주 어린 딸이 있었다.
이때가 1975년 경이고 우리가 81년도 쯤 볼티모아로 이주 왔는데,
그때 기억나는 것은 자형 CJ 정진구이사가 그사람 빨갱이라고 부모님께 접촉하지 말라고 하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나는 김광훈박사가 북조선에서 유학생을 데려다가 공부시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김광택집사 부인 형수 가 이야기 해 줬는지 아니면 당시는 큰 비밀이 아니었든지 혹은 한국신문등에서 기사났을것같다…. 간에.
역사는 꺼꾸로 흐르고 있나???..
그런데 안탑깝게 그리고 몇년 후에 김광훈박사는 이른나이에 돌아가셨다.
백인 부인사이에 자녀가 없었고 수염을 엄청길렀었다.
국립부산수산대학 해양환경학과 교수 원종훈교수의 죽음이나, 수제자 이배정조교의 죽음…
그리고 이제보면 왜또 김광훈박사도 일찍 돌아 갔는지…
그 외에 일찍 돌아간분들이 넘 많은것 같다….
▶ 정기용의 민주화운동 비망록9

신상옥 감독과 배우 최은희가 북한에서 김일성의 후계자 김정일과 만나고 있다. 장공 김재준 목사(왼쪽)와 필자, 이근팔 씨(오른쪽). 한민신보에 실린 민병권 장관과 김형욱 관련 기사(왼쪽부터).
-김재준 박사와 김대중
내가 만난 인물 중 큰 감화를 준 이는 장공(長空) 김재준(金在俊, 1901년~1987년) 박사다. 젊은 시절 간도 용정에서 교편을 잡고 강원룡 목사와 안병무를 길렀던 그는 한국 예수교 장로회를 창설해 기독교계의 새 지평을 연 신학자이자 목회자이다. 한국신학대학 학장도 지내셨다.
다소 눌변이지만 고매한 인격과 해박한 지식으로 박정희 독재정권의 탄압에 맞서 한민통을 잘 이끌어온 분으로 평가한다.
장공을 생각하니 그의 사위 이상철 목사와 송정률, 전규홍 박사, 문익환 목사의 아버지 문재린 옹, 임창영 전 유엔 대사, 김상돈 전 서울시장 등도 잊을 수 없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인연도 매우 깊고 특이하다. 그는 어느 정치인에게서도 엿볼 수 없는 정치 감각과 순발력을 지닌 천부적 정치인으로 회고된다. 물론 험난한 정치역정에 흠도 있었지만 불가피한 측면으로 해석된다.
열한 살 때 처음으로 운동화를 신어봤다고 고백한 적이 있는 그는 필자의 부탁이라면 한 번도 거절한 적이 없고 속이야기를 소상히 하소연하곤 했다.
그의 첫 부인 차용애의 동생인 막내처남 차인식은 나와 중동고 동기동창이다. 이희호 여사의 막내 동생인 이성호 씨와는 모두가 아시다시피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함께 지낸 사이다.
서울에서도 DJ는 장남 홍일을 자주 내게 보내 만나게 했고, 대통령이 되자마자 당시 대변인이던 박지원 씨를 통해 네 번이나 연락을 해오기도 했다.
-민주진영의 분화
장공이 의장을 맡았지만 한민통은 김대중이란 구심점의 기나긴 공백으로 활동이 점차 지지부진해졌다. 이 무렵 한민통으로 결합됐던 민주화 세력의 노선은 분화된다. ‘선(先) 통일 후(後) 민주론’을 주장한 분들은 독자적인 조직 구축에 나섰다.
그 중 하나가 75년 10월 결성된 재미민주한국촉진회(일명 민촉)이다. 김광서 박사(의사)가 의장, 김광훈 교수, 김정현 여사(안용구 피바디대 교수 부인)가 부의장, 신대식 목사 등이 주축이었다.
또 하나의 단체는 77년의 ‘민주사회건설협의회’(일명 민건)이다. 워싱턴의 로광욱 박사와 뉴욕의 임창영 전 유엔대사, LA의 선우학원 박사 등이 중심인물로 장성남 씨가 의장을 맡았다. 두 단체는 북한과의 교류 및 연대를 중시하고 남한의 민주화보다 조국통일이 우선 필요하다는 노선이었다.
-통일운동가 로광욱 박사
선 통일론의 핵심인물은 고 로광욱(盧光郁) 박사다. 1922년 평남 남포 생인 그는 해외통일 운동의 선구자라 해도 손색이 없는 분이다. 그는 민족의 남북통일의 당위성을 설파하고 이론적 기저를 제공하며 기치를 세웠다. 워싱턴한인회 노진환 회장이 삼선개헌 지지성명을 내고 탄핵되자 후임 한인회장에 선출되기도 했다.
그의 부친 로정일 씨는 목사로 연세대 교목을 지냈으며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 요인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대 치대 전신인 경성치과전문학교를 나와 뉴욕대 치과대학원을 졸업한 로 박사는 메릴랜드에서 개업했다. 부인은 피아니스트인 이효숙 씨로 그 언니가 이화여대 교수이며 여성학계의 선구자인 이효재다. 선우학원 박사와 함께 로 박사는 한반도 중립화론을 주창한 김용중의 수양아들이기도 하다.
-문명자와 로 박사 부인의 싸움
로 박사와 얽힌 잊지 못할 장면이 떠오른다. 하루는 노 박사에게서 자기 집에서 저녁이나 함께 하자는 연락이 왔다. 메릴랜드 댁으로 가보니 작곡가 윤이상 씨 내외, 이응노 화백, 유럽에서 활동하던 이영빈 목사, 그리고 미국의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피아니스트 한동일씨가 와 있었다. 세계적인 음악가와 화가, 그리고 피아노의 거장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이다.
이런저런 대화가 오가다 한동일의 피아노 반주에 로 박사가 노래를 불렀다. 로 박사는 치과의 이전에 성악가이자 평론가, 작곡가로 독창회도 열고 빼어난 가곡도 만든 음악가였다.
그때 언론인 문명자씨가 나타났다. 잠시 후 문간방 쪽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고성이 오가며 시끄러워졌다. 문 씨와 로 박사의 부인 간 격렬한 언쟁과 몸싸움이 일어난 것이다. 그 뒤 로 박사는 나에게 그날 기상천외한 해프닝이 일어난 사연을 입단속을 당부하며 들려주었다.
“내가 북한에 가면 대남총책인 김중린이나 고위 관리들이 마중 나오곤 했어. 그런데 지난번 방문엔 순안비행장에 아무도 영접을 나오지 않더구만. 사전에 연락을 해두었는데 이상한 일이 벌어진 거야. 3시간이나 지나서야 말단 직원이 나와 우리 일행을 데려갔어. 불 같이 화가 났지. 나중에 알고 보니 문명자가 북한 측에다 로광욱, 선우학원이 미국 CIA 소속이라고 거짓을 일렀다는 거야.”
그 후 문명자씨가 김일성과 함께 찍은 사진이 보도된 것을 보고서야 로 박사 댁에서의 해프닝이 이해가 됐다.
-김형욱 “날 못 건드려”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에 관해서도 몇 줄 남겨놓아야 한다. 김형욱이 미국에 온 지 얼마 안돼서 갑자기 나를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뉴저지에 체류하던 그를 내셔널 공항(현 로널드 레이건 내셔널 공항) 카페테리아에서 만났다. 중정 서울분실장을 지낸 백태하와 동서라는 김 모와 함께였다.
“내가 미 하원 청문회에 가서 박정희 독재를 고발하려고 하는데 당신이 좀 도와주시오.”
그의 요청에 나는 “우선 진정성 있게 행동하고 교포사회의 민심부터 수습하라. 당신은 여야 어느 쪽으로 붙어도 원성을 사게 돼 있다”고 따끔하게 충고를 해주었다.
“내 신변은 걱정하지 않는다. 박정희의 모든 만행은 내가 녹음하여 뉴욕 체이스 맨해튼 은행에 수록해 놓았다. 나를 건드리면 즉각 모든 비밀이 자동적으로 폭로되게끔 돼 있으니까 절대 나를 못 건드린다.” 그는 매우 거만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하루는 김형욱이 내 집으로 전화를 걸어왔다. “박정희가 민병권(무임소장관)을 내게 보낸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지?” 그런 내용이었다.

1990년대 초반에 한 자리에 모인 워싱턴한인회장들. 앞줄 왼쪽부터 최제창, 서준택, 로광욱, 김응창, 뒷줄 왼쪽부터 고응표, 박규훈, 강철은, 신필영, 오석봉, 정세권.
“두말 할 나위가 있겠나. 유신헌법 철폐하고 구속당한 학생들과 정치인들을 모두 석방하라. 그리고 민정(民政)으로 돌아가라는 요구를 해야 한다.”
나는 진지하게 충고를 해주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박정희는 민병권에게 정성껏 만든 고급 한과를 들려 보내며 김형욱을 회유하려 했다. “김 부장, 모든 것을 잊고 고국에 돌아와 함께 일해 봅시다.”
김형욱은 민병권을 통해 자신의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처 신영옥과 장남의 여권을 연장해줄 것, 서울 돈암동의 자기 소유의 건물을 건드리지 말 것 등이었다. 자신의 치졸함을 여지없이 드러낸 것이다. 그 후 나는 김형욱과 심한 직설적 언쟁을 주고받고서 관계를 끊어버렸다.
-김형욱 실종의 수수께끼
김형욱은 망명 초기만 해도 사진기자가 빨간 양말을 신은 것을 트집 잡을 정도로 철저한 반공이었다. 그런데 그가 실종될 1979년 무렵에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군 출신 몇 명이 북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수시로 북한을 드나들었는데 김형욱과 이들의 관계가 깊어졌다는 풍문이었다. 그런데 그가 실종되기 얼마 전 느닷없이 한민신보에 전면광고를 의뢰해왔다. 그 내용을 보면 그의 사상이 180도 변했는지를 실감할 수 있을 정도였다.
김형욱의 파리에서의 실종을 놓고 한국 정보원들에 납치돼 청와대 지하실에서 박정희가 직접 총살을 했다느니, 불란서의 어느 닭장 분쇄기에서 그라인더로 갈려 없애졌다느니, 그럴듯한 추리들이 나돌았다.
그러나 그의 단세포적인 성품과 지적 수준으로 볼 때 어느 기관에서든지 쉽게 처단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북한과 접촉했던 인사들이 그를 집요하게 세뇌시켰으며 쉽게 전향되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이를 눈치 챈 한국이나 미국 측이 최장시간 정보부장을 지낸 그가 지녔을 수많은 비밀들이 공개되는 것을 우려해 처단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의 밀사를 가장하여 북한으로 돌아서려는 그를 유인한 다음 없애버렸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싶다.
-신상옥 감독과 최은희
신상옥 영화감독이 미국에 체류할 때다. 나를 만난 그는 대뜸 영화 제작을 제안했다. 제목은 ‘김대중 납치사건’과 ‘박동선 뇌물사건’이었다. 히트작이 될 것이라고 호언했다. 박정희 정권에 대한 그의 불만은 대단했다.
문제는 영화제작 자금 조달인데 그는 두 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하나는 정치인 김상현을 통해 김형욱의 투자를 유인하는 것인데 지금도 그 이유는 모르겠다. 둘째는 자신이 만든 영화 36편의 필름을 홍콩에 갖다 두었는데 이걸 미국에서 상영하면 제작비 걱정은 안 해도 된다는 것이다.
신 감독은 워싱턴에 오면 미국 공보원에 근무한 주동걸 씨 집에 머물렀다. 주 씨와는 함경도 북청 동향으로 어릴 적부터 친구라 했다. 하루는 주 씨 집에서 신 감독과 밤늦게 술을 마시고 취해 잠이 들었다. 도중에 깨어보니 그는 잠도 안 자고 깊이 담배를 빨며 고민하는 눈치였다. “무슨 고민이 있으세요?” “곧 알게 될 거야.”
그는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얼마 후 전 부인인 배우 최은희 납북사건이 발생했다. 그 보도를 보며 난 신 감독이 최은희의 납북을 예상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뉴저지에서 신 감독의 전화가 왔다. 홍콩에 가서 최은희의 납북 수사에 협조한 후 불란서 칸 영화제에 참석하고 돌아오겠다는 것이다.
“감독님은 지금 영주권 신청 중입니다. 나가면 재입국이 쉽지 않을 텐데… 그리고 가족(배우 오수미와 1녀)이 하와이에 있지 않습니까?”
“그래도 내가 25년이나 함께 살던 여자인데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잖나.”
칸 영화제에 참석했던 신 감독에게서 엽서 한 장이 날아왔다. 미국으로 돌아오려 했지만 각 영사관마다 비자를 안 내줘 어렵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민주혁명당 창립
반정부 분위기는 고조돼 갔지만 민주진영 내부는 평화스럽지만은 않았다. 질투와 사꾸라 모략이 성행하고 진짜 반독재 운동을 하는지를 알 수 없는 카멜레온 같은 인사들이 출몰했고, 경력과 학력, 고향 등을 버릇처럼 속이며 살아가는 자도 많았다.
그런 가운데도 뜻있는 한인 지도자들은 조국의 앞날을 걱정하면서 한미동맹의 손상을 우려했다. 1976년 워싱턴한인회 고응표 회장은 미국 독립 200주년 기념행사 준비위원장으로 안홍균 씨를 선임하고 성대한 축하행사를 갖기로 했다. 안 위원장은 위스콘신 대에서 유학한 인물로 워싱턴지역 초대 한인유학생 회장을 지냈으며 훗날 코리아 게이트 때 미 의회에서 활약하기도 했다.
반독재 운동 분위기는 시간이 갈수록 산만해졌다. 1977년경 나는 서울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이창재(미네소타), 박찬웅, 전충림, 정철기, 김원동(이상 토론토), 정일성, 송숭락, 송석중(디트로이트, 미시건), 주우정(버지니아), 고려대 총학생회장 출신의 김유진(뉴욕), 안봉근(볼티모어), 김응태, 최창훈(워싱턴) 등과 함께 워싱턴에서 ‘민주혁명당’ 출범식을 열었다. 민주진영의 세대교체를 상징하는 단체였다.
알링턴의 한민신보 사무실에 본부를 두고 모국의 민주회복과 독재 종식을 목표로 활동했으며 국내외의 비상한 관심을 받았다. 내가 서울에 갔을 때 5개 수사관들이 질문해온 것도 대부분 민주혁명당의 내막이었으며 이창재 초대 대표가 방북했을 때도 북측에서 민주혁명당에 대해 집중적으로 캐물어왔다고 술회했다.
1970년대는 혁명의 시대였다. 그것은 중세봉건의 질곡에서 인간의 삶을 찾아가는 과정,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로 향하는 민주혁명의 도정이었다. 나는 그 역사의 층위 위에서 내 혼신을 다하고자 했다. 그것은 조국을 사랑하는 자, 살아있는 자의 의무였다. <끝>
나의 비망록이 부득이한 사정으로 예정했던 분량을 다 채우지 못하고 중단하게 돼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 박정희 서거시 대사관 조문, 북한의 회유 공작, 광주항쟁 당시 백악관 앞 89일 시위 등 훗날 여건이 허락되면 못다 한 이야기들을 전해줄 기회가 올 것이라 믿는다. 마지막이 될 이번 호에는 굵직했던 사건들을 단문으로나마 남길 수밖에 없음을 독자 제위들께서 혜량해 주실 것을 바라마지 않는다. <필자 571-326-6609>

1930년대 원산 침례교 본부 성경학습원.
침례교 첫선교사 펜위윅 공부의 부인이 인도하던 성경학습원.
왼쪽 3번째가 안대벽목사 부인 이순도여사 동생인 김광택, 광훈 박사 어머니.
4번째 울 오마니,
7번째가 이화여전 이순도여사,
가운데 작은꼬마들이 김광택, 김광훈 형제.
#김재준 #장공 #침례교 #볼티모어 #김광훈 #민주노선 #워싱톤 디씨
년도별/픽션 이야기 911
2020-02-25 16:30:59
근 1년 가까이 준비했던 바울사도의 전도여행의 발자취를 따르기로 했던 선교여행은 출발 하루 직전 취소되고,
준비된 많은 교회들은 온라인 예배를 드리고
우리같이 준비가 안된 작은교회들은 그냥 죽기 살기로 모여서 약간 축소된 예배를 드린다.
만찬만 준비가 아니되었을 뿐, 만찬 못지 않은 다과를 차려 놓고 교제를 나눈다.
참석하지 못했거나 일찍 간사람들도 잇지만
평소와 거의 다름이 없다.
보통은 전과 같이 악수를 하고
더러는 엘보만 부딪치며 농담반 인사를 나눈다.
총 확진자 만명에 육박하고 최고 900명에 달하던 일일 확진자는 200명대로 떨어진 3월 10일 현재
..
년도별/픽션 이야기 911
2020-02-26 12:30:48
2월 26일

2월 27일

3월 5일 목요일
3월 20일 금요일
며칠전부터 내블로그 뿐만 아니라 카페에도 관객?이 팍줄었다!!!
뭔일인가 했더니 이번 전염병사건으로 신분이 들어난 사이비들이 자신의 꼬리를 자르기위해 증거섬멸을 시작햇단다. ㅋㅋㅋ
10여년동안 마구덜을 관객으로 살아왔는데 이자 뭔 재미로 살거나???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