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곡성 – 인권 변호사 조영래 180131

곡성 – 인권 변호사 조영래
년도별/퍼온글

2018-01-31 11:58:05

http://blog.naver.com/hyung9624/221183821172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hyung9624&logNo=221183821172

영화 곡성인가???

한국 영화에 대한 실망감으로 한국 영화를 잘 안 보려고 노력한다.

특히 유명세를 떨치는 영화들은…

명바기 순시리그네 이후로는 거의 모든 것이 조작?으로 보여서…

또 그 유명한 블랙리스트로 인하여서 모든 지식인, 예술인, 영화인들은 권력의 시녀로 전락해 있어 보인다.

모든 시스템이 공산 사회주의 화 그리고 자격증화해 있어서 모든 자금을 정부로 부터 받기 때문이다.

이 자유민주주의 사회라는 개한민국은 무스그 협회 무스그 협회 해서 그 협회에 가입되어 잇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한다.

작게는 아파트도 무슨 회장을 뽑아서 그 갑질이란 하늘을 찌른다…. 이게 뭔 자유 민주주의 국가라는 거인지??? 궁민학교도 안다닌거인지??? ㅜㅜㅜ

말이 공공 기관이지 표면상 공공기관은 당연히 권력자의 한 손으로 핸들이 가능하다.

어떤 시스템이든지 사이비나 한 개인의 권력으로 모든 콘트롤이 가능해 졌다.

우민들은 뭐가 우짜 돌아가는지 모르고 우짜던지 한푼이라도 더 뜯어 내려고? 안달이다.

영화 제작도 마찬가지 이리라…

자유경제 시장은 몰락한지 벌써 오래고 ‘진흥 발전 기금’리라는 명목하에 모든걸 공공 기관에서 그 비용을 지출한다.

그러니 그 비용 지출 기관에 잘못 뵈면 궁물도 없다.

유명한 영화감독도 자살을 시도 한적이 있다.

멍청한? 궁민들은 그 이유를 모르고 오늘도 뭔가 자기 이익과 주장을 위해 대통령 관저의 게시판에 청원을 올리고 있다.

불이 나면 사용해서는 절대 안되는 유독성 건축, 보온 자재로 인해서 불에 타 죽기전에 질식해서 죽는데,

이런 대형 사고가 나도 건축 시스템은 절대로 바뀌지 않고…

오늘도 멍청한 국민들은 건축주나 당당 시청장이나 소방관들의 잘못과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한다.

세월호 같이 잘못된 엄청난 사고와 정말 아이들이 사먹는 사탕 사고 같이 아주 작은 사고에까지 그 유형을 같이 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궁민들은 원인이나 다른 사고엔 관심 없고 자기가 사고를 당하면 세상이 망한 것 처럼 울어 된다…

하여간, 대 히트를 친 밀정에 관한 영화도 수상하지 그런 유의 영화들이? 조작되어 보이는(ㅋㅋ 내눈에??) 흥행률도 약간 사기 같아서 보지 않으려 하는데….

오늘 우연히 어린시절을 보낸 고향 인천에 관한 검색에 부천이 뜨면서 80년대 부천경찰서 권모양 성고문 사건의 조영래 변호사가 떴다.

촛불이라는 거대한 괴물?이 결국 불가능할 것 같던 그네와 순시리를 몰아 냈지만 그동안 스러져간 민주투사나 희생자들은 잊혀가고 있는 것 같은데…

그 위대한 이름 조영래…

사실 사인은 담배를 너무피워서 걸린 폐암이지만 누가 그를 그렇게 담배 꼴초로 만들었는가???

군사독재라고 나는 단언한다.

하여간, 넘 아까운 사람이다.

전문을 카피하려 했지만 공권과 밀접해 보이는 네이버에 잇어서 자주 안쓰다 보니 패스워드가 기억나지 않는다.

다음도 정부 사찰이 가능해지고 조작의 앞편에 있어 보여서 더 이상 믿기는 힘들지많은…

곡성 #인권 #권인숙 #조영래 #민주 #밀정 #부천성고문

픽션 이야기 911 – 6. 악한세대 180202

  1. 악한 세대
    년도별/픽션 이야기 911

2018-02-02 10:19:37

  1. 악한 세대

적폐 청산한다고 난리 이다.

사실 적폐를 척결하겠다는 발표도 없었고 그리 하겠다는 계획도 있어보이지 않는다.

그냥 사회 구석 구석이 부정과 부패, 부조리들로 서로 얽혀 있어서 뭘 하나 하려 해도 이게 걸리고 저게 절리니 자연 걸치적 거리는 것은 당연하다.

치우는 자는 적폐라 하고 치움을 받는 자들은 탄압이라고 한다.

새롭게 하기 위해 또 자기 편들을 만드는게 새로운 작당들이 또 수없이 생겨서 이제는 그 원본이 무엇인지 알 수없게 되어 버린다.

검은 그림자들이 노리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성경에는 ‘도모하지 말라’라고도 하고 ‘분당하지 말라’ 하였지만

스스로 악에 무리와 같이 서지 않기 위해서 소위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사람들은 또 새로운 단체들을 만들어 왔다.

내가 소속된 단체는 무엇일까?? 전능자가 보시기에 합당한 무리들 일까???

우리의 리더는 누구일까???

하늘의 아들 만을 쫓아 가야한다고 하지만,

우리 스스로 하나 되기 위해, 우리 스스로 세운 인간적 리더는 과연 전능자가 보기에 합당한 자일까???

언젠가 합당한 리더라고 생각한 사람을 만났을때 나는 꿈을 꾼적이 있다.

꿈에 전능자가 말하기를 완벽하지 않으면 따르지 말라는 것이었다.

꿈 속에서 나는 생각 하기를 ‘아 이사람을 완벽한데? 라고 생각 했는데 전능자는 아니라고 말한다.’

나는 꿈에서 깨어서도 ‘흠 그럴리가 없는데??? 이 리더는 완벽할 것 같은데??’라고 생각 했었다.

우리가 새로운 리더를 만났을때…

우리의 태도는 과연 어떤 것일까??

어찌 해야만 하는 것일까??

김형복 홀트 양자회 총재를 기리며 180125

김형복 홀트 양자회 총재를 기리며 – 1/25/2018.
오레곤

2018-02-03 06:00:16

김형복 장로님이 지난 1월 25일 87세로 소천하셨다.

본인은 유언이었는지 가족의 소원으로 조촐하게 장례를 치뤘다 한다.

김형복 장로는 내가 이곳 시애틀로 이사하기 전 까지 한 15년 정도 돕던 오레곤 사회관을 도와 주시던 분이었다.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오레곤 사회관은 동네 유지들의 도움을 많이 받지 못했다.

이유 중에 하나가 관장이 감리교 목사인데 아마도 자기네 감리교단의 이익을 도모한다고 생각해서 그런것 같기도 하고…

해서 원래 기독교 사회관이었는데 ‘기독교’를 빼 버렸다.

하지만 여전히 한인회등등 관심을 가져 주지 않았다.

관장은 목사 특유의 뚝심이 있어서 인지 타엽도 없고 그냥 묵묵히 할 일을 해 나갔다.

나는 초기에 자원봉사자로 시작해서 돈을 멏푼내는 이사를 하게 되고 그것도 할 사람이 없어서 이사장을 하라는 것인데 나는 이를 끝까지 받아 들이지 않았다. 이유는 나같은 인지도도 낮은 사람이 하면 사회관을 더욱 우습게 알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부이사장으로 몇년을 소일?했다.

컴퓨터 클래스도 하고 1주에 두번 노인 급식하는 일이 제일 큰일이고 나머지는 관장과 가끔있는 총무가 노인들 뒷일을 바주는 일이다.

그동안 많은 목사들이 거쳐가고 사기?치다 도망간 사람들도 있고 총무들도 영주권을 받기 위해 온 사람들도 있지만 성공한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능력있는 젊은이들이 많았는데 그 들을 끝내 잡지 못했다는 것이다.

어찌꺼나 결코 짧지 않은 세월동안 한일은 많은데 한인들의 관심 밖에 있어야했다.

사회는 날로 교묘해져서 순시리 스러운 재단들이 생기고 뭔가를 도모하는 자들에 의해 영혼을 팔아 먹고 있는데…

사회관은 날로날로 멀어져 갔다.

관장목사는 전자공장에서 일하는 사모의 돈벌이로 겨우 살아가고 몇번인가 사회관을 닫겠다고 선언했지만 마지 못해 유지해 갔다.

에리자베스 풔인가 뭔가 하는 유명한 정치인이 관심을 갖고 강연회를 했는데 한인회 인사들은 아무도 참석하지 아니했다.

동창인 장태한 박사를 강사로 초청했을때도 아무도 오지 아니하였다. 답답한 장박사가 주상원의원을 지낸 임용근씨에게 직접 연락을 취해서 임용근씨가 당장달려오고…

한 해는 미주택공사에서 무료로 대금을 대주는 노인주거빌딩을 지을 자격을 주었는데 한인들의 비협조로 좌절되고 말았다.

중국타운에는 이 주택공사에서 지어준 10여층 짜리 근사한 노인주거 상가 빌딩이 자리잡고 있다.

한인사회에서는 시애틀 남쪽에 간병인단체로 유명한 한미여성회에서 주관하여 지은 빌딩이 있다.

하여간, 내가 김형복장로를 만난것은 사회관 이사로 참석하셔서 처음 만나게 되었다.

그때도 포트랜드에서 2시간 이상 거리에 사셔서 오기가 힘들고 이미 연로하셔서 그렇게 자주 만날 수 는 없었다.

김형복장로를 만났을 때 놀란것은…

  1. 홀트양자회를 만든 것이 장로님이였다는 것이었고
  2. 홀트여사는 이미 돌아 가셨지만 양자회는 아직도 살아서 아동복지를 위해 많은 일을 하고 있는데 그 규모가 엄청난 것이었는데 그런 단체의 총재가 너무 겸손하고 순수한 인품이었다.

사회의 많은 유명인사들이 자신을의 이득혹은 고집?철학?을 위해서 사회관을 돕지 아니 했지만 김형복장로는 그저 순수하게 노인들과 사회에 작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이름을 빌려준 아주 순수한 분이엇다고 밖에 할말이 없다.

그 인품이 그립다.

마태복음 10: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유진 #오레곤 #홀트 #양자회 #아동복지회 #김형복총재

시 영안실 관람기 -송명희 180203

시 – 영안실 관람기 —-송명희
년도별/예술문학비평

2018-02-03 11:38:58

우리? 오마니가 돌아가시기 까지 한번도 집안 장례를 치뤄 본적이 없다.

해방직후 1946년 1월 26일? 만주에서 울 부모가 어린 딸 3을 데리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 남하했기 때문에 친척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부모 두분과 누이 둘 그리고 큰 장조카 까지 장례를 치뤘다.

장조카는 부모가 있었으니 내손으로 한것은 없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참석했을 뿐이다.

4째 누이도 조카들이 제법 다 커서 자기들이 잘 준비를 했다.

하지만, 5째 막내 누이는 아이들이 어려서 내가 장지 부터 모든 것을 준비해야 했다.

시인은 시를 쓴 것인지, 수필을 쓴 건지? 짧은 단상을 쓴것인지 문학의 무뢰한인 나는 알 수 가 없다.

제목을 보고 어디 관람을 가서 다큐형식의 기록 보고서?를 썼나 했다.

하지만, 단축된 어휘들이 장례식장에서 일어나는 엄청남 사고들의 왕래와 사건들이 왔다 가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부모님이 쌓놓은 재산도 없고 그렇다고 형제들이 돈을 내서 장례를 치뤄야 하는 것은 아니였기 때문에 큰 어려움음 없었다.

현명하신 오마니가 상조회에 가입해 놓았고 그 회비들을 내가 부었지만은 우리 부부는 그것을 부담으로 여기지 아니 하였고 주님의 사랑으로 사신 분 들이여서 봉사하던 교회의 교인들이 장지를 싸게 내 놓거나 도와 주었다.

그래도 아무 미세한 갈등이 보이기도 했다.

돈많은 사람들의 재산 싸움을 보았지만 사실 이해를 못하는 것은 아니다.

가장 친했던 죽마고우의 집안도 정말 이해 못할 정도로 싸웠다.

잘사는 자식도 그 권한이 있고 못사는 자식도 한 푼이라도 더 갖기 위해 어떤 것도 포기하지 않는다.

그런 단상?들…

사정은 전혀 알 수 없으나 시인은 시적 단어들을 사용하여 또 우리들 삶의 한 단편을 그리고 있다.

이거 정말 멋진시 노벨 문학상 줘야 하는데…

이거 우찌 된거야 한국 문학계는 도대체 제대로 돌아 가고 있는겨 우짠겨???

허기가 명바기 그네 순시리가 사회를 다 주물럭 거려서 지식인들은 권력의 시녀 십장시 역활만 하느라 문학의 가치는 읎어 진겨??? 우쨘겨??? 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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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안실 관람기 …송명희

그녀의 상복은 색이 없었다
과거의 불효를 후다닥 덮은 눈물의 농도는 가늠하기 어려웠다.

산 자를 요리하는 취기의 예리한 눈을 피하려
공연한 사람들이 자꾸 음해된다. 때때로 살벌한 고요
차가운 소주는 뜨거운 속물들과 한통속이 된다.

시신을 방안에 두고 화장 후 서로 모시겠다는 자식들
사람들은 효녀라고도 하고, 혹자는 매장 비용을 아끼려 한다고도 했다
얹찮은 기색이 상주들 얼굴에 역력하다.

선명한 해명도 소용없다
가끔은 통념에 넉넉한 비양심이 공격당하지만
울음과 웃음을 넘나드는 부모의 죽음은
대체로 기억상실의 난파선이다.

산 것들의 지루한 허튼소리에
낯 뜨거운 관 뚜껑이 쿵, 닫히고
시간의 지배에서 벗어난 죽음이 드러났다. 뭉개졌다
영안실 밖 태양이 일그러지며 어깃장을 놓는다.

180113 Snoquera Falls & Mt Rainier

180113 Snoquera Falls -Mt Rainier

시애틀 근교 명소들을 돌아보자!!

2018-02-18 15:30:21


올해는 날씨가 더워서 눈산행을 한번도 하지 못했다.

다리 관절도 안좋고 허리도 안 좋으니 등산로가 부드러워?야 하는데 사실 그런 길들이 많지 않다.

좋은 동네가 있는 이사과의 등산를 빼면 자갈길과 마찬가지 이다.

오르는 길 보다 내려오는 길에 암석 투성이면 정말 다리 허리가 고통스러울 정도로 이다.

하여간, 그래서 작년에 생애 처음으로 한 눈산행들이 너무 기분도 좋고 성취감도 있고 만족수러웠다.

근데, 올해는 와이트 크리스마스를 제외하면 눈이 내리지 않는다.

해서 와이프와 생각한 것이 눈을 찾아 가기로 한 것이다.

2시간이면 해발이 백두산의 2배에 가까운 4천5백미터 정도의 레이니어 만년설산이 있다.

에베르트를 처음 등정한 고 고상돈이 전사?한 알래스카의 맥캔리 산 다음으로 높은 산이다.

미서북부 시애틀의 영산이라고 할 수 있다.

시애틀 남부, 또 한인들이 많이 사는 페드럴웨이, 어번 타코마 어디에서 든지 정말 우뚝하고 클리어하게 그 자태를 뽐낸다.

래이니어 산이 높고 크다 보니 그 산에는 추레일러 등산로가 엄청 많다.

겨울에도 엄청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 거대한 산에 우리가 아는 곳이 하나도 없다는 것…

하여간, 정보 담당 와이프가 인터넷으로 찾은 등산로는 언제 날 좋은 봄철에 한번 찾아 갔던 크리스탈 마운틴에 있는 등산로 이다.

크리스탈 마운틴은 영산 레이니어 산에 붙은 산으로 스키장이 엄청 유명하다.

드디어 눈을 밟는구나!!!

흥분된 마음으로 거의 2시간을 미국의 시골길을 달린다.

마운틴 레이니어는 해발 2000미터 정도에 동과 서에 전망대가 있다.

동은 썬라이스라하고 서쪽 전망대는 파라다이스라고 하는데

서쪽 파라다이스는 타코마에 가까워서 한인들이 애용한다.

이 지역으로 이사를 한 후 많이 가게 되었다.

손님이 오면 첫번째로 가게 되는 곳이기도 하다.

동쪽 길이 시골길이고 한 30분이 더 걸리는지 몇번 갔지만 날씨 관계로 전망대를 아직까지 한번도 방문해 보지 못했다.

작년 늦가을인지 초겨울인지도 교회에서 갔는데 입구에서 눈이 너무 많아 그냥 돌아 와야했다.

눈산행에 맛을 들인 우리 부부는 이제 만년 설산 을 개척하기 위해 길을 떠나는데…

에고…

크리스탈 마운틴에 도착하니 등산로 추레일헤드가 바로 스키장의 파킹장과 같은곳?이었다.

앞을 보니 좋은 날씨에 산을 내려오는 스키어들의 모습이 너무 화사하게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너무 많은 사람들 때문에 파킹장소가 없을 뿐만 아니라 몇마일 이나 나가야 파킹을 할수 있을 정도 였다.

스키시즌에 오기에는 합당치 않은 곳이다.

포기 하고 발길을돌리는데…

여기 까지 온것이 아깝기도하고…

이 큰 산에 등산로가 엄청많을 텐데 안탑깝기만 하다…

정도담당 와이프 탓을 하면서 투덜 거리고 온 길을 돌아 나오는데…

뭔 폭포 싸인이 보인다.

길을 꺽어 들어 가니 입구에서 바로 어마어마한 폭포가 쏫아져내리고 있다.

사실 그 웅장함은  길 입구에서 더 잘 드러나 있는데 아차 그 광경을 사진으로 남기지 못했다.

추렉 거리는 왕복 3마일 정도.

예천군의 자랑 박기양 로목사 180222

예천군의 자랑 박기양 로목사
침례교역사- pic

2018-02-22 10:30:36

예천의 자랑(3724) : 박기동(2)-박기문-박기서-박기송-박기양-박기종-박기철-박기호(附 예천방문 1,143)


박기동 : 재경예천대창중.고등학교 동문회cafe/ 출향인 박기동 씨 네 번째 시집 어머니와 콩나물/ 4년전, 2007년 8월 18일/ 박기동 씨 네 번째 시집 어머니와 콩나물 펴내 1995년 ‘대구문학’ 시 부문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이래 이 지역에서 꾸준히 활동해 온 시인 박기동(예천읍 출생·예천중 21회·경북도청) 씨가 세 번째…/ cafe.daum.net/seouldaechong(daum 2011)

박기동 : 박주엽(하리면 출생) 시인 시집 출판기념회/ 4년전, 2007년 1월 19일/ …없는 진솔함 가득한 서정성이 그 깊이를 함께 보여주는 수작”이라고 평했다. 어릴 적 친구인 박기동(예천읍 출신) 시인은 “자신이 감동하지 않는 글은 남도 감동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 바란다…/ cafe.daum.net/seouldaechong(daum 2011)

박기동 : 예천신문cafe/ 아버지의 연필(시)/ 작년, 2010년 4월 1일/ 잠시 숨을 다듬고 그들과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겠다. 장성혜, 정현옥, 서채영, 김옥전, 박기동, 서동인, 김은경, 노운미 등등 우리 공부방 시인들에게 따뜻한 저녁 한 끼 대접하련다. 내게는…/ cafe.daum.net/ycnews365(daum 2011)


박기문(서울 中區에 醴泉 쉼터 開放해 : 出鄕人 박기문 氏가 同門 先, 後輩間 모임의 場所로 利用될 쉼터 마련) [記事] : 재경 출향인 박기문(64) 씨가 동문 선·후배 간 모임의 장소로 이용될 ‘예천쉼터’를 마련해 화제가 되고 있다. 박씨는 평생 동안 공직생활을 해오다가 지난 2009년 퇴직한 뒤 자신의 숙원인 재경 군민들이면 누구나 만날 수 있는 만남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이번에 사비를 들여 개소한 것이다. 2011년 10월 15일 서울 중구 저동 1가 프린스빌딩 303호에서 출향 선배, 후배 등 동문이 모여 간단한 현판식을 가졌다. 박씨는 “예천쉼터에 많은 재경 군민들이 찾아와 고향의 온정을 나누고 동문 선, 후배간의 모임장소로도 활용되었으면 좋겠다.”며 이용을 당부했다. 박씨는 예천읍 출생으로 서울시청에서 근무한 뒤 마포구청에서 정년퇴임을 맞이했다. 퇴직 후 개인 사업으로 홈쇼핑 업체, 광고기획사, 에이치이엔텍 부사장을 역임하였으며 재경 군민회, 예천읍민회, 예천중, 예천동부초등 사무국장 역임, 재경 예천군민회 인명록을 편집하는 등 재경 모임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醴泉뉴스 2011년 10월 26일)


박기서(朴箕緖) : 구분: 한국근현대인물자료/ 분류: 인물 > 한국근현대인물자료/ 제공: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한국근현대인물자료/ 이름 박기서 ( 朴箕緖 )/ 민족구분 한국인/ 본관지 1) 潘南朴氏/ 나이 1) 43세(1949년 현재)/ 출신지 1) 서울시 출신/ 현직업 1) 경찰관/ 학력 1) 서울 中東中學校 卒業/ 경력 및 활동 1) 解放後 慶尙北道 浦項警察署, 醴泉警察署, 安東警察署長 歷任, 1946年 第19區警察署長에 就任하여 1949년 현재에 이름/ 종교 1) 유교/ 참고문헌 민국인사(대한민국인사록), 60//


박기송(朴基宋) : 1834(순조 34)-?, 용궁현 출신, 자는 성근(聖根), 본관은 밀양, 유학(幼學) 원덕(元德)의 아들, 기권(基權)의 동생, 기일(基一)의 형이다. 부모 슬하(具慶下)에서 유학(幼學)으로서 1864년(고종 1) 증광 생원시에 2등 14위로 합격하였다.(司馬榜目)

박기송 : 생원진사시에 밀양박씨에서 756명의 합격자를 냈다/ 2009.03.13/ ; – – 1838 밀양(密陽) 식년시(式年試) 3등(三等) 62위/ 박기송(朴基宋) – – 1834 밀양(密陽) 증광시(增廣試) 2등(二等) 14위/ 박홍식…/ //blog.daum.net/pjh2071/ 密城朴氏 全國靑年會(daum 2010)


박기양 : 용궁면 사람, 17세에 전도인으로 목회에 발을 들여놓은 뒤 만주, 러시아 선교에 큰 공을 세운 침례교단 초대 목사이다. 일제시대에 신사참배 반대로 3년 간 옥고를 치루었고, 예천군 박씨 집성촌에서 쫓겨나 용궁면으로 옮겨 살았다. 그의 영향으로 손자 중 정근 등 4명이 목사가 되었다. 79년 침례교 소천교회 목사였다.(國民日報 1999.11.10)

박기양 : 14. 박기양 로목사, 주택 개발, 그리고 이천수 전도사/ 2009.05.16 | Daum 블로그/ 이사를 가고 나서, 잠시 우리 침례교의 거장이신 박기양 로목사님께서 오신 적이 있다. 박기양 로목사님은 부산영안침례교회의 박정근 목사의 조부이시다. 박기양 로목사님은 우리 초기 사역자들 중에서도 으뜸되시는…/ blog.daum.net/dbyok/ 김대벽(daum 2012)

박기양 : 50년대 침례교인들/ 2011.08.05 | Daum 카페/ 그 옆은 조부 박기양 목사님. 말이 별로 없으시던 노신사 박기양 목사님… 목사님 오른쪽도 워싱톤 침례교회를 세우시고 미남침례교 국내선교부 디렉터로 수고하신 김현칠 목사님 같기도 하다. 또 많은 분들이 숨어 있다. …/ cafe.daum.net/gigu9125/ 대전 지구촌 교회(daum 2012)

박기양 : 침례교 믿음의 사람들 16/ 웹문서/ 하나님의 나라로 가신 박기양 목사는 우리에게 목회자의 올바른 삶의 모습을 보여준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차남 은호 목사와 손자 중에는 정의, 정응, 정북, 정근 목사가 있다. / 자료출처 <한국침례교인물사> 고영대 기자…/ yonsei.or.kr(daum 2012)

박기양 : 한국침례교인물사/ 158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세운 |박기양 목사 168 충청지역 전도대의 기수 |이덕여 목사 178 한국의 페스탈로치 |한기춘 목사 186 침례교 중흥을 이뤄 낸 |존 애버내티 선교사 196 울릉도 복음의 선구자 |김석규 목사 202 …/ obea.co.kr(daum 2012)

박기양 : 한 사람의 위력-이정범 목사님 설교 중에서/ 2008.08.23 | Daum 카페/ …것입니다. 그런데 울릉도를 침례교가 완전히 장악을 하고 선점할 수가 있었던 것은 이 펜윅 선교사가 남한에 10명의 특출한 지도자를 감로로 세웠는데 – 당시에는 목사라는 말을 쓰기 전입니다 – 그 중에 박기양이라는 감로가…/ cafe.daum.net/phbbc/1jJI/ 포항성서침례교회(daum 2012)

박기양 : 침례교 역사/ 2009.07.31 | Daum 블로그/ 둘러싼 교회파동 제2대 감목으로 이종덕 목사가 임명된 것에 대한 신명균… 하였다. 제12회 대화회는 1917년 간도 종성동에서 소집하였다. 만주와 시베리아 선교활동은 큰 업적 있고 특히 삼인 전도기(신성균,박기양,노재천)…/ blog.daum.net(daum 2012)

박기양 : 믿음의아들 김충기 목사 :: 그의 생애와 사역/ 웹문서/ 부임 10. 18(음력) 박인애 사모와 결혼 (박기양목사 주례) 1960.6. 계룡산 금잔디밭 부흥성회에서 성령을 체험함 1962. 김충기 전도사 함열침례교회 부임 1964. 12. 김충기 전도사 목사안수(함열침례교회) 1966. 함열 침례…/ http://www.kjbc.or.kr(daum 2012)

박기양 : 제목없음/ 한국컴퓨터선교회 보리떡: 0 작성일: 1994-02-07/ 빛을 남긴 사람들 (박기양) [1894-1979 침례교 목사 경북 예천군 예천읍 청복동 출생] 1. 전도자가 되어 전도대를 조직 전도사업에 종사 박기양 목사는 경북 예천군 예천읍 청복동에서 박규섭…/ kcm.kr(daum 2012)

박기양 : 침례교사 기록과 의문점들/ 2011.10.07 | Daum 카페/ 프로리다 아들 집으로 이주 후 소천 5. 서울 첫 침례교회 충무로교회의 공식 첫 목회자.- 안대벽 목사님댁에서 부모님, 삼촌등 8인으로 시작된… 나요한 선교사가 필리핀에서 다시 입국하여 찍은 사진: 나선교사와 박기양 목…/ cafe.daum.net/smbc1946/ 서울침례교회 60년사 편찬위원회(daum 2012)

박기양 : 한국침례교회의 연표/ 웹문서/ 교회, 몽고에 개척 전도소) 1942.6 32명 교단 지도자 원산 감옥에 투옥 감목: 이종근 목사 목사: 전치규, 김영관, 김용해, 노재천, 박기양, 신성균, 이덕상, 장석천, 백남조, 문규석, 방사현, 박성도, 김재형 감로: 김주언…/ newlifechurch.kr(daum 2012)

박기양 : 한국 침례교 약사/ 2009.05.11 | Daum 티스토리/ 노재천, 박기양, 신성균, 이덕상, 장석천, 백남조, 문규석, 방사현, 박성도, 김재형 ; 감로 : 김주언, 이덕여, 이상필, 김만근… 1944 년 2 월 13 일 3 대 감목 전치규 목사 함흥 감옥에서 고문으로 순교 1944…/ mission-work.tistory.com/129 소망의 바다(daum 2012)

박기양 : 제5장 선교의 자유와 초기 선교활동 (1885~1906) (2)/ 2010.10.20 | 네이버 블로그/ 일반학교에 보내지 말라고 하는 전천년설적 종말론을 가르치기도 했다. 침례교회는 초기부터 선교에 열정적인 교회였다. 1906년에 최초로 4명의 선교사를 간도로 파송하였고 1917년에는 신명균 목사를 길림, 박기양 목사를 …/ blog.naver.com/jbjoon63/ 물길손길(daum 2012)

박기양 : 제7장 3.1운동과 기독교(10)/ 2010.12.30 | 네이버 블로그/ 〈달편지〉에서 자녀들을 세속적인 일반 학교에 보내지 말라는 언급을 하기도 했다. 펜윅의 달편지 침례교회는 선교활동에 적극적이었다. 1906 4명의 한국인을 간도에 파송하였다. 1917 신명균 목사를 길림으로, 박기양…/ blog.naver.com/jbjoon63/ 물길손길(daum 2012)

박기양 : 사역 소개(연혁)/ 2009.06.27 | Daum 블로그/ 결혼 (박기양목사 주례) 1960.6. 계룡산 금잔디밭 부흥성회에서 성령을… 금곡침례교회 (최종민 전도사) 개척예배 9.16 경북 영덕군 영덕 침례교회(노상완 목사) 개척예배 10.3 전교인 체육대회(국군 상무체육부대) 3…/ blog.daum.net/limbible/ limbible(daum 2012)

박기양 : 연세중앙교회 //yonsei.or.kr/ 2009.05.20 | 웹문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값진 것인… 침례교 믿음의 사람들 16 2009-11-28 (Hit: 1098) 박기양 목사 –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세운 하나님의 일꾼 만주 일대에 그의 발길이 안 닿은 곳이 없다는 박기양 목사. 경북 땅에서 만주 …/ 21th.yonsei.or.kr(daum 2012)


박기종 : 예천의 금석문 1 | 간행년:2003 저자:예천문화원 발행처:예천문화원 / 白庵 密陽朴公(起宗) 墓碣銘/ …B202_0111.jpg백암 밀양박공(기종) 묘갈명공의 이름은 기종(起宗)이요, 자(字)는 대운(代雲)이며 …/ 예천 내용이 수록된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넷 유교관련도서이다.//


박기철(박기철 醴泉靑年會議所 會長 : 韓國靑年會議所 慶北地區 內務副會長 選出돼) [記事] : 박기철 예천청년회의소 회장이 2009년 9월 18일 (사)한국청년회의소 경북지구 제100차 임시총회에서 2010년도 내무부회장에 선출됐다. 박기철 회장은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고 사회문제에 역동적이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청년회의소를 만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며 “경북지구 안에서 예천을 알리고 새로운 도청시대의 문을 여는 일꾼이 되겠다.”고 당선소감을 밝혔다. 박 회장은 지난 99년 예천청년회의소에 입회, 홍보활동분과위원장, 운영위원 ,내부부회장, 상임부회장 등 주요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지구회장 특별표창, 예천경찰서장 표창 ,예천교육장 표창, 예천군의회의장 표창 등 다수의 수상 경력이 있다. 현재 예천읍에서 풍농비료 예천지점을 운영하고 있으며, 가족으로는 부인 장성옥(36) 씨와의 사이에 2남을 두었다. 예천초등, 예천중, 문경종고, 경북전문대를 졸업했으며, 본관은 밀양이다.(醴泉新聞 2009년 09월 24일 14:30:32)

박기철 : 재경대창중.고등학교 동문회 cafe/ 민물고기잡이 체험행사 -군민,출향인,관광객 등 1만여명…/ 2009.08.04/ 군민과 관광객들에 깊은 감사를 드리고 아울러 행사를 준비하느라 수고하신 예천청년회의소 박기철 회장을 비롯한 회원들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고 환영했다. 김 군수는…/ cafe.daum.net/seouldaechong(daum 2012)

박기철 : 제87회 어린이날 기념 다양한 행사 열려/ 2009.05.06/ 위한 어린이날 기념행사가 열렸다. 예천군과 예천교육청이 주최하고 예천청년회의소(회장 박기철) 주관으로 열린 이번 행사에는 어린이, 학부모, 도우미 등 2,000여명이…/ cafe.daum.net/seouldaechong(daum 2012)

박기철 : 재경예천군민회 cafe/ 예천청년회의소-신임회장에 박기철씨 선출/ 2008.10.08/ 개최하여 2009년도 예천청년회의소 신임회장 및 회장단 감사 등을 선출했다. 이날 2009년도 회장 신임투표에는… 예천청년회의소를 이끌어갈 박기철(40. 풍농비료 대표…/ cafe.daum.net/woruddPcjsrns(daum 2012)

박기철 : 87동기회-박기철회원 청년회의소 회장 축하모임-12/18/ 2008.12.04/ cafe.daum.net/woruddPcjsrns(daum 2012)

박기철 : ‘2009 민물고기잡이 체험 1만여명 참가 성황/ (예천신문) 2009.08.14/ 체험행사가 지난 2일 예천읍 한천일원에서 열렸다. 예천군이 주최하고 예천청년회의소(회장 박기철)가 주관한 이날 행사에는 김수남 군수, 이한성 국회의원, 관내 각급 …/ cafe.daum.net/woruddPcjsrns(daum 2012)

박기철 : 예천초동문 1천여명 참석, 배구, 족구 등으로 화합 다져/ 2009.04.17/ 도의원, 모교 은사, 송석흠 재구미향우회장, 권영석 예천군새마을금고 이사장, 박기철 예천청년회의소 회장 등 각급 기관단체장과 회원 등 1천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cafe.daum.net/woruddPcjsrns(daum 2012)

박기철 : 예천청년회의소 차기회장 = 박기철(풍농마트 예천지점)…/ 2008.10.11/ 예천청년회의소 차기회장 박기철(풍농마트 예천지점) 씨 선출 예천신문/ 예천청년회의소… 차기회장단은 회장에 박기철(40·풍농마트 예천지점)…/ cafe.daum.net/yckun/EQbT/46… 예천군민회(daum 2012)

박기철 : 2008년도 예천청년회의소 회장단 출범/ 2007.12.12/ 나눴으며, 예천청년회의소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고 회원들의 결속을 다지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 ■모범공무… 회장:최원대 △직전회장:최순식 △상임부회장:박기철 △…/ cafe.daum.net/yckun/EQbT/37… 예천군민회(daum 2012)

박기철 : 예천청년회의소 회장단 이취임/ 2009.12.14/ 예천청년회의소 회장단 이취임 예천신문/ (사)한국청년회의소 예천청년회의소(회장 박기철) 창립 41주년 기념식·전역식 및 회장단·감사 이·취임식이…/ cafe.daum.net/yckun/EQTJ/92… 예천군민회(daum 2012)

박기철 : 예천군 주최, 예천청년회의소 주관/ ‘2009 민물고기잡이…/ 2009.08.15/ 체험행사가 지난 2일 예천읍 한천일원에서 열렸다. 예천군이 주최하고 예천청년회의소(회장 박기철)가 주관한 이날 행사에는 김수남 군수, 이한성 국회의원, 관내 각급…/ cafe.daum.net/yckun/EQT3/40… 예천군민회(daum 2012)

박기철 : 2009 가족사랑 예천군민 걷기대회, 2천여명 참가 = 함께…/ 2009.05.07/ 군의원, 정종복 농협군지부장, 정창모 노인지회장, 김기수 음식업군지부장, 박기철 예천청년회의소회장 등 각급 기관단체장이 참석해 지역민들과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cafe.daum.net/yckun/EQT3/38… 예천군민회(daum 2012)

박기철 : (사)신라오릉보존회 예천군지부 박씨 대종친회 정기총회/ 2009.02.27/ 남시우 군의원, 박중식 보문면장, 박시옥 예천농협장, 박수영 예천축협장, 박기철 예천청년회의소 회장, 박영서 재경예천중총동창회장을 비롯한 종친 8백여 명이 참석했다…/ cafe.daum.net/yckun/EQdv/53… 예천군민회(daum 2012)

박기철 : ‘제8회 재구예천군민회 가족체육대회 성황’/ 2009.05.03/ 윤동희 용궁농협장, 김일한 지보농협장, 김재기 풍양농협장, 12개 읍면장, 박기철 예천청년회의소 회장, 읍면 기관단체장 등 1백여 명이 참석해 축하했다. 진영철 이사의…/ cafe.daum.net/yckun/EQdv/55… 예천군민회(daum 2012)

박기철 : ‘제7회 예천초등 총동창회 체육대회 개최’ = 동문…/ 2009.04.17/ 도의원, 모교 은사, 송석흠 재구미향우회장, 권영석 예천군새마을금고 이사장, 박기철 예천청년회의소 회장 등 각급 기관단체장과 회원 등 1천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cafe.daum.net/yckun/9Qxg/87… 예천군민회(daum 2012)

박기철 : 예천JC(회장은 향석마을 최희노.. 2년후배) 회관건립…/ 2011.03.29/ 1968년 한국청년회의소 40번째 로칼로 등록된 예천청년회의소(JCI KOREA 예천)가 43년 숙원사업이던 회관… 특우회장, 권중섭.홍병선.박기성.박기철 회장 등 직전회장과…/ cafe.daum.net/yonggung34/Ad… 용궁중34회동창회(daum 2012)

박기철 : 예천 어린이날 사생대회 심사결과 발표/ 2009.05.16/ 어린이날 사생대회 심사결과 발표 예천신문/ 예천청년회의소(회장 박기철) 주최,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을’ 주제로 지난 5일 한천체육공원에서 열린…/ cafe.daum.net/yckun/9Cam/50… 예천군민회(daum 2012)

박기철 : 박기철 예천청년회의소 회장 한국청년회의소 경북지구 내무부회장 선출돼/ 2009년 09월 24일 (목) 14:29:44 예천신문/ 박기철 예천청년회의소 회장이 지난… 2010년도 내무부회장에 선출됐다. 박기철 회장은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에…/ http://www.ycnews.co.kr(daum 2012)

박기철 : 예천청년회의소 회장단 이취임/ 2009년 12월 10일 (목) 15:29:55 예천신문/ (사)한국청년회의소 예천청년회의소(회장 박기철) 창립 41주년 기념식·전역식 및 회장단·감사 이취임식이 지난 3일 예천읍 `예천웨딩의전당에서 열렸다. 이날…/ ycnews.co.kr(daum 2012)

박기철 : :: 사단법인 한국청년회의소 :: 예천청년회의소 썰매타기 체험 행사 개최/ 예천청년회의소(회장 박기철)가 지난 17~18일 24~25일 4일간 예천읍 한천에서 썰매타기 체험 행사를 가졌다. 이날 출향인 가족단위의 참여객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장년의 부부가…/ koreajc.or.kr(daum 2012)

박기철 : :: 사단법인 한국청년회의소 ::/ 지난 3월 12일 예천청년회의소에서는 사랑의 헌혈운동 행사를 열었다. 예천청년회의소 회장 박기철은 예천사랑운동 일환으로 2006년부터 현재까지 년 2회 헌혈 운동을 계속 추진하고 있으며 2006년 258매를 모아 예천군 관내…/ koreajc.or.kr(daum 2012)

박기철 : 예천청년회의소 박기철 2009년도 회장 대만 국제수리 JC 회장단 이…/ JCI-KOREA 예천 2009년도 회장당선자인 박기철 회장과 최희노 내무부회장, 김영상 사무국장, 권재인 수석차장 등은 지난 6일 형제 JC인 대만수리 JC 회장단 이취임식 행사에 참석, 행사를 축하했다. 정차모 기자…/ ycinews.co.kr(daum 2012)

박기철 : 오창근 민주평통 회장/ 오창근 민주평통 예천군협의회장은 2일 한천변에서 개최된 2009민물고기잡이 체험행사에 참석하여 예천청년회의소 박기철 회장을 비롯한 회원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행사 참석자들과 환담을 나누었다. 정차모 기자…/ ycinews.co.kr(daum 2012)

박기철 : 예천인터넷방송 – 예천청년회의소 2008년도 회장단 선출/ 예천청년회의소(회장최순식)는 2일 회원 54명이 참석한 가운데 임시총회를 가지고 2008년도 차기회장단을 선출했다. 2008년도 차기회장단은 회장에 최원대(코리아 제록스 대표), 상임부회장에 박기철, 내무부회장에…/ http://www.iyctv.com(daum 2012)

박기철 : 2009 예천군 청소년대축제 개최/ 13일 오후 3시 예천군문화회관에서 2009년 예천군청소년대축제를 개최한다. 이번 청소년대축제는 예천청년회의소(회장 박기철)가 예천군으로부터 위탁받아 개최하며, 관내 중ㆍ고등학생 7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댄스공연…/ eeum.kr(daum 2012)

박기철 : 사람들 21/ 의성군의회 의장은 8일 안계면 위천변에서 열린 ‘제3회 황토·의로운쌀 페스티벌’에 참석했다. 박기철 예천청년회의소장 프/로/필 박기철(40) 신임 예천청년회의소 회장은 “회원간의 화합과 내실을 다지고 40년이라는…/ idaegu.com(daum 2012)

박기철 : 예천인터넷방송 – 제87회 어린이날 기념 다양한 행사 열려 꿈과 희망을 심어주기 위한 어린이날 기념행사가 열렸다. 예천군과 예천교육청이 주최하고 예천청년회의소(회장 박기철) 주관으로 열린 이번 행사에는 어린이, 학부모, 도우미 등 2,000여명이 참가했으며 식전행사, 기념식…/ iyctv.com(daum 2012)

박기철 : 예천군, 13일 2009 예천군청소년대축제/ 2009.07.13 | 뉴시스 | 미디어다음/ 건전한 청소년 놀이 문화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실시한다. 이번 청소년대축제는 예천청년회의소(회장 박기철) 주관으로 관내 중·고등학생 7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댄스공연, 모범청소년과 교…// 2009 예천군 청소년대축제 개최/ 2009.07.13 | 예천인터넷방송(daum 2012)

박기철 : 제87회 어린이날 기념 다양한 행사 열려/ 2009.05.05 | 예천인터넷방송/ 어린이날 기념행사가 열렸다. 예천군과 예천교육청이 주최하고 예천청년회의소(회장 박기철) 주관으로 열린 이번 행사에는 어린이, 학부모, 도우미 등 2…(daum 2012)

박기철 : 민물고기잡이행사/ 2009.08.03/ 행사에는 군민과 출향인, 외지에서 예천을 방문한 관광객 등 1만여 명이 운집한 가운데 개최됐다. 예천청년회의소(회장 박기철) 주관으로 열린 민물고기잡이 체험행사는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을 맞아 어릴 적 추억을 되살리고…/ blog.daum.net/goidenbell/ goldenbell의 블로그(daum 2012)


박기호(박기호 齒醫學博士 慶熙大 專任敎授 任用) [記事] : 용문면 태생의 치의학 박사 박기호(38) 씨가 2011년 3월 1일자로 경희대학교 치과대학 전임교수 및 치과병원 교정과 특진교수로 임용된다. 박기호 박사는 예천초(75회), 예천중(39회), 대창고(38회)를 거쳐 경희대학교 치과대학을 졸업했다. 그동안 예천군보건소 공중보건의사, 경희대학교 치과대학병원 교정과 전공의 수료, 경희대학교 대학원 치의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경희대학교 치과대학병원 교정과 임상강사로 재직하고 있다. 부친은 지난 2009년 유명을 달리한 소설가이자 교사인 박치대(전 대창고 교사) 씨다.(醴泉新聞 2011년 02월 24일 (목) 09:44:22)

박기호 : 33세 박기호 교수 경희대 치대 전임교수/ 지난주, 2011년 3월 1일 (화)/ 박기호 교수 경희대 치대 전임교수로 임용 금당실 출신 33세 예천군 용문면 출신인 박기호 경희대학교 치과대학병원 교정과 임상강사가 2011년 3월 1일 자로 경희대 치대 전임 교수 및 치과병원 교정과 특진교수로 임용된다. 박 교수는…/ cafe.daum.net/Jongleenpa/ 함양박씨 치암공파 종친회(daum 2011)

박기호 : 용문면 태생 ‘박기호 치의학박사 경희대 전임교수 임용’/ 지난달, 2011년 2월 24일 (목)/ ‘박기호 치의학박사 경희대 전임교수 임용’ 2011년 02월 24일 (목) 09:44:22 예천신문 master@ycnews.co.kr/ 용문면 태생의 치의학 박사 박기호(38) 씨가 오는 3월 1일자로 경희대학교 치과대학 전임교수 및 치과병원 교정과…/ cafe.daum.net/yckun/ 예천군민회(daum 2011)

박기호 : 재경예천대창중.고등학교 동문회cafe/ ‘박기호 치의학박사 경희대 전임교수 임용’ (고 38회)/ 2주전, 2011년 3월 1일 (화)/ ‘박기호 치의학박사 경희대 전임교수 임용’ 2011년 02월 24일 (목) 09:44:22 예천신문 master@ycnews.co.kr/ 용문면 태생의 치의학 박사 박기호(38) 씨가 오는 3월 1일자로 경희대학교 치과대학 전임교수…/ cafe.daum.net/seouldaechong(daum 2011)

박기호 : 대창80년사:부록(21) 생활지도위-장학생(1)/ 작성 장병창/ 지난달, 2011년 2월 22일 (화)/ 송대장학생(공납금 반액 면제) : 황재영, 최윤식 1990년도 특대생(1학기 공납금 전액 면제) : 박기호 특대생(2학기 공납금 전액 면제) : 박기호, 권홍경, 배준식, 권태근 우대생(1학기 공납금 반액…/ cafe.daum.net/seouldaechong(daum 2011)

박기호 : 대창80년사:부록(10) 부장교사-대입자(1)/ 작성 장병창/ 지난달, 2011년 2월 11일 (금)/ …(무역), 이형수(산업), 권오병(농학), 권효상(영문), 이재홍(행정), 최종아(건축), 황용기(농학), 박기호(치의예), 정호영(기계), 이재영(기계공), 이상익(토목), 김교일(경제), 장동철(화공), 강상원(…/ cafe.daum.net/seouldaechong(daum 2011)

박기호 : 대창80년사:부록(4) 장학금지급현황/ 작성 장병창/ 지난달, 2011년 2월 5일 (토)/ , 1986 안병윤, 1987 안상길, 1988 장인식, 1989 이정삼, 1990 김정삼, 1992 권태근, 1993 박기호, 1994 송윤석, 1995 윤재경, 1996 박윤우, 1997 장봉조, 1998 장한욱, 2000 김성민 4) 재경 동문회장…/ cafe.daum.net/seouldaechong(daum 2011)

박기호 : 대창80년사:부록(2) 수상현황(1)/ 작성 장병창/ 지난달, 2011년 2월 3일 (목)/ , 1987 안상길, 1988 이태승, 1989 권기섭, 1990 김동현, 1991 박동우, 1992 배준식, 1993 박기호, 1994 송윤석, 1995 황종환 1996 이정식, 1997 정현욱, 1998 유재호, 1999 김유성, 2000 오규진 …/ cafe.daum.net/seouldaechong(daum 2011)

박기호(慶熙大學校 齒科大學 박기호 敎授(大昌高 38回) 慶熙醫學賞 受賞)/|◈同門 게시판/ 이국종 | 2012.11.02. 17:52/ 경희대학교 치과대학 박기호 교수(39)가 2012년 10월 5일 경희의료원 정보행정동에서 열린 경희의료원 개원 41주년 기념식에서 제28회 경희의학상 은상을 수상하였다. 경희의학상은 경희대학교 의약계열(의대, 치대, 한의대, 약대) 교수 가운데 논문연구 실적이 우수한 교수에게 수여하는 상이며 은상 수상자에게는 칠백만원의 상금이 주어진다. 박 교수는 최근 3년간 권위 있는 SCI 국제저널에 20여 편의 논문을 게재하였으며 Journal of Pineal Research에 실린 “Melatonin promotes osteoblastic differentiation through the BMP/ERK/Wnt signaling pathways” 논문으로 이번 경희의학상을 수상하였다.(재경대창중고등학교 홈페이지 2012.11.2)


@예천방문1,143

예천군 방문(高麗大 83同期 幸福나눔奉仕團, 活動 始作 : 醫療奉仕 等 才能 奉仕活動) [記事] : 나눔문화 확산을 위해 고려대학교 83동기회 행복나눔 83봉사단에서 예천군을 찾아와 오는(2014년) 8월 9일까지 지역민과 함께하는 봉사활동이 본격적인 발걸음을 시작했다. 행복나눔 83봉사단은 지난 달 12일부터 매주 토요일 청소년들에게 미니영화 만들기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지난 4일부터 본격적인 봉사활동을 위해 봉사단 27명과 고려대 재학생 20명이 아름다운 나눔 재능기부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행복나눔 봉사활동은 아동을 위한 신나는 라보파티, 청소년을 위한 진로 멘토와 직업탐구, 벽화그리기 등과 어르신들을 위한 의료봉사, 이미용 봉사, 도배사업 등 다양하게 마련해 봉사활동 프로그램을 추진할 예정이다. 특히, 다문화가구 비율이 높은 지역특성에 맞춰 5일 저녁 6시부터 다문화가구 15가정을 초청해 가족愛 발견을 위한 ‘다함께 차차차’라는 프로그램을 마련해 가족사진 찍기, 식사제공, 가족오락관을 열어 부부의 화합과 친밀감을 높이고 서로 소중한 가족임을 느끼는 시간을 가졌다. 6일에는 지보면 지보리 고추농가에서 일손돕기, 의료 취약지역인 감천면 유1리, 현내리 경로당을 찾아가 의료봉사 활동을 할 계획이며 5일부터 7일까지 초등학생을 위한 농구교실운영, 청소년들에게 새로운 체험 청소년 연극교실과 힙합교실을 운영하게 된다. 또한, 8일에는 예천읍사무소에서 전문 변호사 2명이 참여하는 법률 상담교실을 운영해 주민들이 실생활에서 부딪히는 법률문제에 대한 속 시원한 해결책을 자문 받을 수 있다. 한편, 봉사단은 매일 60여명이 2박 3일간 머물며 봉사활동을 한 후 8일 저녁 7시 청소년수련관에서 그 동안의 나눔 봉사활동에 대한 발표회를 가지며 분야별 자체 평가회를 실시해 부족한 점은 보완하고 2015년 봉사활동의 계획을 세우면서 나눔 봉사단으로 거듭날 계획이다.(醴泉뉴스 2014년 08월 06일)

필유일목사 소천 90세 2017년 4월 23일

필유일목사 소천 90세 2017년 4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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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06 10:25:58

연합교회가 다 쓰러져가는 것을 보고 가서 풀도 갂아주고 하다가 개인사정으로 달라스, 텍사스로 떠나면서 갖고 있던 전공책들을 목사님께 떠 맡기고 떠난것이 1986년 도 쯤인가???

교회가 문을 닫고 어찌 지내시는가 하는 생각으로 30년이 지난 셈이네???

어떤 서울침례교회분이 찾아와 주셔서 자연스럽게 소천 소식이 인터넷선상에 떠 있음을 알게 된다.

딱 일년이 되었군…

조그만 더 사모하는 마음이 깊었다면 생전에 인사라도 더 나누웠을 덴데…

남은 분이 처조카 한분이라 하니 그 천사같이 착한 사모님은 벌써 소천을 한 모양이다….

그리운 분들이… 세상은 점점 더 패악해져 가는 데 하늘 나라로 가신다…..

워싱톤 DC에 한태경, 안병국등등이 가셨고,,,한국에 우리 침례교단의 영원한 총무 김갑수목사님도 가시고…

김승학목사님은 아직 생존해 계시려나???

이동원목사의 지구촌교회, 워싱톤 제일침례교회를 세우신 김현칠목사님도 가셨을 것 갔고..

김용구씨는 1936년생쯤 되니 생존해 계실것 같기도 하고.. 그 형님 김용두?? 목사님은???

문대연, 김광수 목사님등오 가셨을것 같고…

동아기독교의 원조? 김광택음악 목사님도 나이가 많으신데…

뉴욕 이창송 원로 목사님도 연로하시고…

몇주전에는 빌리 그레이엄 목사도 소천 하시고…

우짜꺼나 다 잊고 하늘 나라에 가서 기쁜 마음으로 만나는 날이 오겠다…

사실, 필유일 목사님은 장로교단 출신이지만 뭔 연고로 해서 우리 침례교단의 큰 기둥이었던 서울침례교회에 전도사를 역임하였다.

그후 아마도 1960년대가 되기전 미국으로 유학을 갔고 미 동부 수도인 워싱톤디시 근터 메릴랜드주 발티모어에 첫교회를 담임하면서 그 지역의 크신 일들을 하셨다.

<지역신문 2017.4.25>

볼티모어지역 최초의 한인교회인 볼티모어 한인연합교회의 초대 담임목사를 역임한 필유일 목사(사진)가 23일(일) 오후 6시 40분경 뇌출혈로 별세했다. 향년 90세.

고인의 고별예배는 25일(화)오후 7시 30분 제섭 소재 오웰 퓨너럴 홈(Howell Funeral Home)에서, 하관예배는 26일(수) 오후 2시 메리엇츠빌 소재 크레스트로운 묘지(Crestlawn Cemetery)에서 열린다.

유족으로는 현재 처조카인 은숙 Vallone씨가 있다.

필유일 목사는 함경남도 장진 출신으로 1962년 필라델피아의 이스턴 침례신학대를 졸업하고 1967년 볼티모어연합교회로 부임해 1994년까지 27년간 봉직 후 원로목사로 은퇴했다.

필유일 목사는 메릴랜드주 클락스빌 소재 현 자택에서 10여 년간 거주해 왔으며 최근에는 콜롬비아에 위치한 노인복지센터인 하모니 홀에서 지내오다 발을 헛디뎌 넘어지는 바람에 부상을 입어 치료를 받아왔다.

문의 (410)900-9910 임지혜
▲고별예배 장소 10220 Guilford Rd., Jessup, MD 20794
▲하관예배 장소 2150 Mount View Rd.,Marriottsville, MD 211104

미국의 수도 워싱톤 디씨의 3 한인 침례교회들 180310

미국의 수도 워싱톤 디씨의 3 한인 침례교회들…
침례교역사- pic

2018-03-10 06:47:27

우리 침례교단은 미국 남침례교단과의 깊은 관계 때문에 미국물을 많이 먹었다.

해서 대형교회 강남중앙침례교회 김충기 목사님이 있기 전까지는 거의 모든 총회장님들이 미국으로 이주 하였다.

1980년대 초 메릴랜드의 볼티모아의 외곽도시 그렌버니의 아주 작은 침례교회 베들레헴에서는 늙은 목사와 힘쎈 의사가 쌈을 하고 모두 물러가고 우리식구와 이대를 나온 배전도사와 다리를 절던 이 자매등이 남아 있었다.

그 때 서울 종로침례교회 전도사를 했던 유종구목사가 오기 전 까지

워싱톤 봉사센타 한태경목사님, 남침례교 한인 디렉터 김광수 목사님들이 돌아 가면서 땜빵을 하고 있었는데…

울 오마니는 한국 10대 대형교회의 하나인 강남침례교회 김충기 목사님에게 미국에 오라고 했다.

당연히 안 오지…ㅎㅎ

하지만, 그 때 까지만 해도 미국이라는 천국? 같은 나라에 안 오겠다는 것이 조금 이해가 안 돼었다. ㅎㅎ

그건 당연히 시대적 착오 이였던 것만이 아니라 우리 수준이 너무 낮아서 윗세상?에 대해 전혀 아는 바 없는 무지의 소치였다….

남들은 어떻게 사는지 전혀 모르는…ㅋㅋ

하여간, 결국 김충기 목사님도 서부 워싱톤주 어디에 생활의 터전을 이미 다 마련해 놓고 있기는 했지만…

김충기 목사님은 우리 침례교단에서 처음으로 미국이주를 거부?한 총회장이었다 할것이다.

침례교단은 열악한 환경에 소수약자의 입장이었기 때문에 사실 먹고 살고 생존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여서 돈많은 미 남침례교단의 선교부는 커다란 도움이자 돈줄이었다.

선교사들과의 깊은 관계는 미국이주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사실 어릴적 동화대회등 교단 모임에 가면 목사님 행색이나 수준들이 조금 뒤 떨어져 보이기도 했다. ㅎㅎ

하지만, 나는 우리 침례교단의 선배님들의 이런 못습들이 넘 자랑스럽다.

일설에? 초기 선교사들은 담당지역을 나누웠는데, 언더우드등 장로교, 감리교단 선교사들은 조정, 양반들과 손을 잡고 교육기관등 학교와 교회들을 많이 세웠지만,

우리침례교단은 가장 외진곳 충청북도, 경상북도, 울릉도 그리고 함경북도와 만주, 시베리아까지가 그 담당이엇다.

우리 외사촌들이 남아있는 연길 용정용신촌(당시 석정향) 교회에서 1932년 9월 15일 공산도당들에 의해 목사님과 감로님들이 탈피 순교의 순간있기 그 훨씬 전에도 맨몸으로 시베리아까지 간 전도단들이 사할린의 얼음바다에 배가 전복되어 순교하는 일들도 일찍이 있었다.

부산 영안침례교회 박정근 목사의 조부 되시는 예천의 박기양 로목사, 노재천, 신성균 목사님들은 만주 벌판을 걸어서 전도하던 정말 대단한 분들이었다.

교단이 작아서 한국교계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일들이 한반도의 외지고 버려진 산꼴짝에서 침례교인들의 손에 의해 일어 나고 있었다는 것이 우리 침례교단의 원조 동아기독교의 자랑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침례교인것이 매우 대단히 자랑스럽다.

약간 덜 배우고 순수해 보이는 …ㅎㅎ

우리 침례교단의 거장이신 예천의 박기양 노목사님은 거의 평생 교단회의에는 참석하시지 아니 하였다. 아니 그 이름 조차 올리지 아니 하셨다.

초기 함경도 원산 본부를 지키던 펜위익 공부(카나다인 침례교 첫선교사 조상이 영국 공작이였다고 해서 인지 옛어른들은 그를 공부라 불렀다)의 유산 관리인 3인중 하나이며 서울침례교회를 처음 시작한 안대벽목사도 로스엔젤레스로 이주 하여 대한침례교회를 세우시고 박경배목사님이 후임으로, 그리고 충청도 안희묵목사를 그 후임으로 초청했으나 종국에는 안희묵목사를 받아들이지 못함으로 교회는 문을 닫았다.

조효훈 목사는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했다. 1958년 침례교단 분렬시 선교사 젊은측에 있었던 것 같기는 한데 동아기독교 출신인지는 정확하게 생각나지 않는다. 한번 찾아볼 일이다.

그리고 많은 교단의 브레인들은 미국의 수도 워싱톤 디씨에 유학등으로 정착하게 되는데,

한태경, 김광택형제, 김용구, 필유일, 김승학, 안병국, 신석태등등이다.

이들은 왜인지는 알수 없으나 워싱톤에서도 최고 좋은 동네 베데스다, 포토맥에서 바로 벗어난 락빌이라는 동네에 정착했다.

베데스다는 미 육군병원이 있을 뿐만 아니라 지금은 몰라고 3-40년전에는 전 미국에서 학군이 가장 좋은 동네이기도 했다.

이는 워싱톤 디시의 서북에 해당하는 동네로 당시 락빌의 와이트 몰은 뉴욕 밑으로는 가장 좋고 비싼 백화점이었다.

그 밑 워싱톤의 남서쪽 버지니아에도 한인들이 많이 살았지만 이는 나중에 더욱 번창하게 된것 같다.

하여간 이미 5-60년대 정착한 이들은

김광택집사 형제는 볼티모어 매릴랜드주립대 교수로,

연길 한태경목사님은 워싱톤한인봉사센터(실버스프링)을 운영하고 1980도 쯤 연길어머니를 모시고 왔다.

김용구 집사님은 치공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그의 치공소는 제일 비싸다는 와이트몰 빌딍에 있었고 나중에 온 신석태집사도 치공을 하고 있었고 1981년인가 그 부친되시는 신정호 목사님이 소천 하셨다.

그 후 바로 신석태 서울 침신 교수도 하던 집사님은 목사가 되어 1982-3년 경 일본 동경한인교회 선교사로 나갔다가

이후 미남침례교 디렉터로 있던 김현칠목사가 세우고 김호식박사(ㅋㅋ 또 달라스 텍사스의 원호식박사라고 쓴다)가 초기 학장으로 틀을 세운 워싱톤침례신학교 학장으로 왔다.

필유일목사님은 볼티모어 첫교회로 알려진 연합교회를 담임을하고 있었고..

안병국목사님은 워싱톤 한인침례 교회에 1960년도 쯤 한국에서 초청되어 와서 물러나 있었는데

80년대 초 쯤 침례교단 총회를 준비하면서 더나아가 이것이 세계선교자대회를 조직되고 다시 초교파적으로 세계 선교대회로 발전하여 유명세?를 탓고 한동안 거의 10년?? 세계선교자대회라는 것이 유행해서 해마다 그 대회를 치뤘다.

그리고 그 지역에

워싱톤 한인제일침례교회, 몽고메리한인침례교회, 워싱톤한인침례교회 3교회가 있었는데 아마도 일찍 시작도 했지만 여건상 다른 교단 교회 보다 훨씬 큰 교회로 한인 이민자들의 정신적 기둥역활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당시는 소풍, 수련회, 부흥회등 모임이 많아서 사람들도 많이 만났지만 내막도 많이 알았는데 이제는 세월이 너무 많이 지난것 같다.

각교회를 찬찬히 생각해 보기로 하고…

워싱톤교회에는 김원기목사가 젊은 나이에 있었고 90년도 쯤에는 서울대 이상훈 목사가 있었던 것 같다.

실버스프링 워싱톤한인 제일침례교회에는 김현칠목사가 떠난 후

이동원 목사가 오고 90년도 초 지구촌교회로 이름을 바꾼다.

이때 우연히 중공에서 용정 용신촌교회 육자교회?를 담임하고 있던 사촌 김중헌목사와 고모가 오셔서 방문 중이었는데

머리 좋은 이동원 목사는 우리 사촌이 침례교 3대 감목 김영관목사 후손임을 바로 알아보았다.

이날 저녁 예배 시간에 이동원 목사가 처음으로 교회 개명을 언급하며 교인들 의견을 물었는데 방문자인 나는 시건방지게 나서서 불가하다고 우겼다 ㅋㅋ

하여간, 미국 한인 역사에 이 3 침례교회는 커다란 존족을 남겼다 할 것이다.

워싱톤 한인 침례교회 – 창립 김창순박사와 심선식 박사 180310

  1. 워싱톤 한인 침례교회 – 창립 김창순박사와 심선식 박사
    침례교역사- pic

2018-03-10 16:06:45

우리 침례교단의 첫 이주 교회들 중에 당연히 첫교회 부터 쓰려하다 보니 여기 창립예배를 본 분들의 글이 있다.

잊어 가는 중에 이제 생각나는 것은 거의 20대 정도의 젊은 목사였던 김원기목사가 80년대 중반에 교회명을 ‘휄로쉽 교회’로 명칭을 바꾼것이 생각난다.

아닌가? ㅎㅎ 아마도 무슨일로 교회를 떠나서 ‘휄로쉽 교회’라는 다른 교회를 설립한것이 맞는 이야기이다. 그 다음에 이상훈목사등이 계속 있었으니….하여간

의사이신 것으로 보여지는 신선식이라는 분이 1957년 우연히 마켓에서 김창순박사를 만나 워싱톤한인침례교회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는 귀한 이야기가 있다.

다른 기록에는 김창순 박사가 1956년에 처음 예배를 드렸다고도 한다.

나의 삶 나의 신앙 / 12 심선식 ( 밴쿠버 한인 연합교회 )

와싱톤 한인 침례교회 창설회원과 첫 세례교인

세례는 요단강에서 예수님이 세례요한으로 부터 받으신 성례전으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예식” 이다.
인간이 자기의 죄을 회개하고 물로 정결하게 씻고, 성령 (하나님의 영)을 받고 새롭게 거듭나는 축복이다.
죄가 없으신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 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며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예수님이 본을 보이신 것 같이 세례를 받음으로 시작되는 예식의 본을 보이신 것이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고 요단강에서 나오실
때에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는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라는 하느님의 음성이었으며, 성령이 비둘기 같이 예수님의 머리 위에 내리셨다고 성경은 말씀한다.

나는 미국생활 첫 해는 뉴저지 주 주청소재지인 트렌톤(Trenton, N.J.)의 한 병원의 인턴으로 근무했다.
미국생활에 익숙해가며 병원의 당직의사로 근무하는데 분주했다. 문화와 풍습이 다른 나라에 와서 많은 것을 보며, 느끼며 배우게 되었다. 참으로 평화롭고, 아름답고, 모든 것이 풍부함에 놀랬다. 사람들이 참으로 친절했다. 인심이 좋았다. 우리나라 속담에 ” 쌀뒤주에서 인심난다” 드니 미국사람들은 풍요롭게 살아서 그런가 했는데 알고 보니 정신문명, 도덕문명이 물질문명과 겸비 되어 있어서인 것을 알 수 있었다.

히랍(그리스)에서 온 의사가 영어를 못하여 되돌려 보냄을 받을 난처한 형편에 처했었다. 내가 자원하여 그를 도와 그의 일을 분담하며 그의 환자진찰 면담을 같이하며 도와줘서 2-3개월 후 그가 되돌려 보냄을 면하게 된 일도 있어서 보람을 느꼈다.

터-키(Turkey)에서 온 부부 의사들은 동방교회교인이었고, 이란에서 온 의사는 이슬람교 신자였다. 그들은 하루에 세 번씩 자기 고향인가 어딘가를 향하여 꿇어 앉아 절하며 기도한다는 것을 듣고 나는 감탄했다. 신앙이 깊어지면 저렇구나 싶었다.
나는 햇내기 기독교인으로 기도하는 열성이 없이 지냈다.

한 일본계 미국인이 독일계 미국여인과 결혼 하여 살았는데 그 부부를 우연히 사귀게 되었다. 그 부인은 “바하이 교” 교인이었는데 참으로 자연스럽게 나를 대해주고 각종 친절을 베풀어 주고, 자기 집에도 초청해줬는데, 자기 차로 나를 데리러오고, 데려다 주곤 했다. 그녀의 호의와 친절에 감동되었다. 신앙이 깊고 성숙하면 그렇게 좋구나 싶었다.

내가 6개월 거기서 근무한 후에 내 아내가 그 시내 다른 병원에 인턴으로 취직이 되어 왔다. 위에서 말한 바하이 교인 독일계 미국여인은 내 아내를 “기순아 기순아”하며 무척 사랑해주었다. 자기 남편의 공업사무실이 있는 건물의 2층에 살림방을 하나 내주며 우리 부부가 주말이면 병원에서 나와서 거기서 살라고 까지 해 주었다.

병원에서 1년 근무하면서 의사들과 간호사들과 친해졌고, 전화교환대에서 일하는 아줌마들과, 식당에서 일하는 아줌마 아저씨들과 친해지고 정이 들었다. 그리스마스의 경축이 요란하고 파티도 요란한 것을 따라 다니며 보면서 참으로 크리스챤들은 평화롭고 사랑하며 희망 차게 사는구나 싶었다. 말 보다는 행동으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 다음 해인 1957년에 와싱톤 (미국 수도)으로 옮아가서 정형외과 전문의 훈련을 받게 되었다. 하루는 한국 식료품상엘 둘려서 김치를 사러 갔다가 김창순박사라는 분을 만났다. 생전 처음 보는 분이다. 내가 여기 모 병원에 취직이 되어 왔다니까 반가워하며 어느 교회에 나가느냐고 물었다. 아직 정하지 못했다니까, 그는 여기 이승만 박사가 옛날에 다니던 교회, 미국의 소리 방송을 한국말로 하는 황재경 목사님이 담임하는 큰 교회가 있는데 거기는 교인이 참 많다고 했다. 그래서, 새로운 교회가 필요하여 자기가 미국 남침례교단의 지원 하에 와싱톤 한인 침례교회를 창설하려고 하니 자기와 같이 일하자고 했다.

나는 기독교인이기는 하지만 세례도 아직 받지 않은 햇내기 기독교인이라고 했더니 그것은 상관없다는 것이었다. 하나님이 도와주실 거라고 했다. 이리하여 주일(일요일)이면 그가 시작하려는 교회가 있는 륏덴하우스가에 있는 교회엘 다니며 같이 섬기게 되었다. 교인은 몇사람 안되었고 뉴욕에 유학와 계시던 강원용목사님이 주말 마다 내려와 설교하셨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그분은 다니엘서를 많이 인용하여 설교하신 것이다. 다니엘선지자의 신실한 신앙을 본받으라고 하셨다. 그러던 중, 한국서 고아원 선교를 하시던 안병국 목사님을 전임목사님으로 모셔오게 되었다. 비행장에 나가 환영하며 인사하니 활짝 웃으시며 옛 친구를 만나는 모습이었고 첫 인상이 좋았다. 교회는 활기를 내는 신생 교회가 되었다. 제직회도 구성되고 나는 집사로 일하게 되었다. 친교 봉사도 잘 하며 음식도 해서 나눠먹으며 교인간의 우애가 자라났다. 그 교회에서 결혼하는 젊은이들도 생겼다. 점점 보람을 느끼게 되었다. 주일이 되기를 기다리게 되었다.

우리 부부는 세례교인이 되고자 목사님과 상의했더니 새로 생긴 작은 교회인지라 세례(침례)성수탱크가 없어서 다른 교회에 가서 세례를 받도록 교섭이 되었다. 시외에 나가면 베데스다란 곳에 베데스다침례교회가 있었는데 거기엘 가서 우리 부부는 고무 옷을 입고 세례성수탱크에 들어가 요단강에 들어간 심정으로 거기서 아취벌드 목사님이 침례세례를 주셨다. 1958년 10월 17일었다. 죄를 회개하고 물로 씻고 정결한 거듭난 마음에 성령을 선물로 받은 새 사람이 된 마음이었다. 그렇게 되어 우리 부부가 와싱톤 한인 침례교회의 창설교인으로 첫 세례교인이 되었다.

성경에 나오는 베데스다는 옐루살렘에 병이 낫는 못이 라는 곳이 있었는데 가끔 천사가 나타나 못물을 동하게 했고 병자가 누군든지 먼저 동한 물에 들어가면 병이 낫곤 했던 곳이다. 한 38년 불구자였든 사람은 그 못에 먼저 들어가질 못하여 병을 고치지를 못했는데 예수님이 “네가 났기를 원하느냐” 물으시고 “일어나 걸어가라”하시고 그 병자를 고쳐 주신 곳이다. 베데스다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나도 30년 묵은 병을 고침 받은 은혜의 느낌이었다.

우리 부부는 그 와싱통 한인 침례교회에 4년간 섬기면서 믿음과 소망과 사랑 안에서 신앙생활을 즐겼다. 교인은 점점 늘어났고 100명 정도 모였다. 나는 1961년에 캐나다 밴쿠버의 대학과 대학병원에 취직이 되어 그 교회를 떠나게 되었는데 교인들과 헤어지는 것이 참으로 섭섭했다. 35년 후에 내가 그 교회를 다시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교인이 수백 명이 되어 있었고, 교회당과 교육관도 붉은 벽돌 건물로 크게 짓고, 주차장도 아주 넓었다. 예배에 참석하고 창설교인이자 첫 세례 교인이라며 내가 자신을 소개 했더니 더욱 반기며 기념품도 주어서 받아가지고 돌아 왔다.

나는 하나님께서 나 같은 보잘것없는 사람에게 믿음을 주시고, 예수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창설하시는데 쓰시고, 세례를 주시고, 돌보아 주시는 사랑에 감사 감격하며 보람을 느끼며 살게 되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