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 워싱톤 DC 지구촌 교회(워싱톤 제일한인침례교회) 180311

  1. 수도 워싱톤 DC 지구촌 교회(워싱톤 제일한인침례교회)
    침례교역사- pic

2018-03-11 13:26:40

다음도 정부 사찰이 가능해지고 카톡도 사들이고…

정권도 바꼈지만 뭔 농간인지 인터넷상의 모든 인포메이션들이 다 없어져 버렸다.

이제 더 이상 독재자들의 악행들은 인터넷에서 찾기 힘들고 인간검색?이라는 부분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친일군사독재자들은 자신의 아이들 학교 갈 때 쯤에는 입학시험 다 없에고

지들이 간음 할 때쯤에는 간통죄라는 걸 없에고…

첩질하기에는 너무 늙을 때 쯤에는 ‘미투’로 모두를 발가벗긴다.

궁민덜은 죽을동 살동 살고 잇다.

하여간, 기억이 아스라히 사라져 갈 쯤 되니 급한 마음에 기억들을 살려보지만 인터넷에 옛 기록과 주소록 조차도 찾기 힘들다.

미 수도 워싱톤DC 지역의 3대 침례교회에 대해 쓰려고 하지만 그 기록을 찾기 쉽지 않다.

한국 침례교단의 젊은 브레인이던 김광택, 한태경, 김용구, 김승학, 안병국, 필유일, 조효훈목사등은 1957-8년경 교단의 분렬의 중심에 있었다.

기존 동아기독교의 명맥을 유지하려는 안대벽목사부부를 중심으로한 포항파와 1950년 한국동란 직전에 들어온 미 남침례교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한 대전파 인데,

1953년경 설립된 대전 침례교신학교와 인천 시은고등공민학교, 그리고 인천의 고아원 성애원을 근거로 선교사들 편인 젊은 브레인들은 대전에서 총회를 개최하고 기존 안대벽목사를 중심으로 한 노인네?들은 포항에서 총회를 하였다 하여 그 명칭이 주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면 선교사의 든든한? 빽이 있는 젊은 피들은 필연적으로 미국으로 유학 또는 진출하게 된다.

우리 부모님들은 첫 남침례교 선교사 나요한(John Abernathy) 사가 부친을 인천 성애원 원장으로 임명할 정도로 선교사와 친했지만, 우리는 포항파에 속해 있었다.

또한 젊은 브레인들은 반대 대전파의 주축들 이엇지만 한국동란 당시 우리 집에 피신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 그 집이 충무로? 아니면 회현동?? 서울수복후 상이군인들이 점거하여 되 찾지는 못했지만…ㅋㅋ

하여간, 한국의 조그마한 교단 이었던 침례교단의 인재들은 김광택박사같은 경우에는 당시 이화여전 출신의 안대벽목사 부인 이순도 여사와 영국 침례교 선교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가했고 김용구 집사도 뭔 젊은 이들의 국제 대회에 참가 하기도 했다. 아마도 아주 어린 갓 20대의 나이들 이었을 것이다.

1963년경 교단의 영원한 총무 김용해 목사가 쓴 침례교단 역사 책을 보면 당시 총회나 회의 때 마다 이들이 유학가서 불참했다거나 소식이 없다라는 기록들이 남아있다. ㅎㅎ

하여간, 이들이 유학이든 또는 합법이든 불법이든 미국으로 이주 하게 되는데

안대벽, 박경배목사는 엘에이에 김장배, 이창송목사는 뉴욕에 그리고 훨씬 먼저 이주한 젊은 브레인들은 주로 미국의 서울 워싱톤 DC 지역에 정책을 했다.

조효훈 목사는 센프란시스코에 정착하여 목사님 교회는 서울대 출신들이 주축이 된 ‘제자훈련’의 본산지라 할수 있다.

한태경목사는 워싱톤 한인봉사센터(Silver Spring, MD)를 설립운영했고 김광택박사형제는 볼티모어의 메릴랜드 주립대학교수로 그리고 김용구, 신석태집사는 치공소로 성공했으며 김승학 목사는 Rockville 몽고메리 한인 침례교회를, 안병국목사는 1960년경 미주 최초의 한인 침례교회인 워싱톤 한인침례교회(1956년 창립, Silver Spring, MD) 초청으로 부임했고, 김현칠목사가 창립한 지구촌교회인 워싱톤 제일한인침례교회에는 이동원 목사가 1983년 8월 27일 2대 목사로 취임해 오게 되엇다.

그 찬란했던 규모와 역사를 뒤로 하고 락빌 몽고메리 한인 침례교회는 2018년 3월 현재 2015년경 교회분렬로 어려움을 겪다가 요즘 급성장하는 스페니쉬 교회와 전격 합동했는데 지역 한인회장의 공이였다고 하는 소식이 마지막인것 같다.

이 대형교회를 담임 발전 시킨 분이 김승학목사님인데 이제는 가물거르는 기억에 목사님이 사모님이 먼저 소천하고 새 장가를 드셨는데 믿지않는 분이였다는 이야기도 있었던것 같고 실 사정은 자세히 알 수 없었지만 아직 은퇴를 하지 아니해도 될 나이였는데 교회를 그냥 사직한것으로 기억된다. 여러가지 권력욕심?이 없었던 목사님이 모든 것을 내려놓은 것일 수도 잇지만…

한국동란당시 침례교단은 거룩성을 유지 하기 위하여 이산 가족이나 상처한 목회자의 재혼을 금지 시켰던 적이 잇다.

오래전 이긴 하지만 이런 일들로 목사님은 교회를 사직 했을 수도 잇다.

하여간 재혼해서 지역을 떠났는지 어디서 재미있게? 사시는지 그 동안 소식을 듣지 못했는데 이 락빌 몽고메리 한인침례교회와 김승학목사님에 대해 서는 3편에 더 쓰기로 하고…

오늘 지구촌교회 즉 워싱톤 제일한인침례교회에 대해서는 많은 인포메이션이 더 이상 없지만,

교회 사이트에 연역이 있어 남긴다.

  1. 11.10.본 교회는 미 침례교회 교단 본부의 성원과 창립 교인들의
    간절한 기도로 김현칠목사를 모시고 켄싱턴 침례교회에서
    성인 101명과 어린이 35명, 총 136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일한인 침례교회 에서 창립 예배 드림
  2. 11.9. 현재 위치에 있는 교회 건물을 구입하고 워싱턴 한인교회
    역사에 최초 자체 건물을 소유하고 입당
  3. 11.9. 새 성전을 완공하고 헌당예배와 창립 6주년 기념예배와
    안수식 거행
  4. 8.2. 처음으로 지구촌 장학회를 설립함 (공용빈장학회)
  5. 1.23. 김현칠 목사부부를 남침례교단 국내 선교부 켈리포니아 선교
    책임자로 파송

이 때 김현칠 목사님은 스스로 체험이 없었다고 고백했다는 말을 듣고 놀라움과 그 솔찍함에 경탄하기도 했지만…

미국의 7대통령의 법률자문위원이었다는 고한실 박사의 기록에 보면 1970년 김현칠목사님께 침례도 받고 잊혀져 가는 한국말을 배우기 위해 제일침례교회를 다니기 시작한지 1년만에 교회에 A씨와 쌈이 나서 목사님과 같이 나와서 장로교로 갔다가 안식일 교인이 되었다고 했다.

일제와 전쟁 후 미국에서 모두 최연소로 법률시험?에 합격한 기록을 갖고 계신 석학이지만 잘못 쓰신것 같다.

1980년 쯤을 잘 못 쓰신것 같은데 1980년도도 아니고 그 이후 일것이다.

하여간, 1981년도에 와서 김현칠 목사님이 떠난 것도 그리고 이동원 목사가 온것도 그리고 김만풍목사와 공동목회로 이름을 남기고 한국으로 간것도…

이동원 목사 부임 초기인가 한국의부흥사 최이식목사를 초청해서 부흥회를 한적도 있고 그 때만 해도 최이식목사가 늘씬했다.

신약을 하루에 한번씩 읽었다던 군대시절의 청년은 아니였지만…

최근 베뢰아 김기동목사의 글에는 그들이 그의 추종자 였다는데… 우리교단의 최고 부흥사 오관석목사도 자신을 인정한다고…

이를 내 쫗은 사람이 김충기목사님인것 같은데 세습문제로 물러나기는 했지만 그래도 김충기목사님이 뚝심이 있었던 것 같다.

신약을 하루에 한번씩 읽었던 성령충만한 젊은이 최이식은 무엇을 바라고 무슨 부흥의 비법을 얻기 위해 베뢰아 학원?에 등록했던 것일까??

그 비법들이 신약에서는 찾지 못했단 말인가???

지나온 이야기를 쓰다가 이야기들은 비상한다.

하여간, 이 모든 이야기들이 신약에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에 다 나온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들이다.

안 믿는 사람들은 믿거나 말거나…

몇몇 석학들, 정말로 범상치 않은 인간들이 거의 확실하게 자신들의 믿음을 피력하고 자신들이 맞다고 확고하게 말하지만 이 모든 신념에는 예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법칙이 빠졌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것 같다.

마태복음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1. 워싱톤 DC 한인침례교회들
    2018-03-11 16:06:49

미국의 서울 워싱톤DC 지역의 3대 한인 침례교회

  1. 워싱톤 한인침례교회 (1956년)
  2. 워싱톤 제일한인침례교회 (지구촌교회)
  3. 락빌 몽고메리한인침례교회

를 쓰다가 이 지역 장로 교회 원로목사님의 1960년대 이야기 가 잇어서 올린다.

지역 4대 교회가 1960년대 말로 세워진것을 보면 한국 침례교인들이 얼마나 일찌 미국에 진출했는지 알수 있다. ㅎㅎ

ㅎㅎ 1958년 한국 침례교단의 분렬 때에도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한 젊음 브레인들의 수장이었던 한태경목사님(워싱톤 한인봉사쎈타 설립운영)은 미국에서도 해결사로 나서신다.

1980년도 직후…


2009년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면서 본지는 워싱턴 지역의 한인교회들이 초창기 한인교회들의 역사를 돌아보면서 새로운 미래를 열어나갈 수 있도록 김택용 목사의 글을 연재한다. 김택용 목사는 1976-77년 제2대 워싱턴지역 한인교회협의회 회장을 역임한 워싱턴교계의 살아있는 증인이다. 김택용 목사는 현재 워싱턴한인장로교회 원로목사이며 워싱턴 신학교 학장을 맡고 있다.

김 목사는 워싱턴한인사회의 시작과 발전-역사 이전의 한인교회, 초창기 한인교회 12교회, 초창기 교회 통합 운동과 초기 교회 연합사업 등에 대해서 집필했다.

4)네 번째로 수립된 교회-워싱톤 한인연합장로교회

워싱턴 지역에서 네 번째로 세워진 교회는 워싱턴 한인연합교회이다. 이 교회는 1969년 11월 2일에 16th Street, NW, Washington, DC 선상에 있는 미국인 제6교회당에서 설립되었다. 처음 시작 할 때의 참석인원은 장년 36명과 아동 13명이었다. 이 교회는 담임 목사 없이 김응창 장로를 비롯하여 이춘삼, 강종철, 이응환, 최창욱, 정학수, 김성덕, 김순복, 김수희, 최경남씨 등 평신도들이 중심이 되어 시작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초기에는 주일마다 주위의 여러 목사들을 초청하여 설교를 하도록 하였다. 강사로 초청된 설교자들은 설의돈, 김기복, 김선도, 김택용, 김승학, 한태경, 한제호, 박관빈, 김인수, 윤영봉, 김병서, 신성국, 김현칠, 김유식 목사 등이었다.

1970년 8월 2일에 정용철목사가 초대담임목사로 초빙을 받아 부임하였다. 한국에서 기독교장로회에 소속되어 있던 정목사는 에큐메니컬 정신에 입각하여 목회를 하였으며 1974년 9월에 미국연합장로교(현재의 Presbyterian Church, USA) 교단 수도 노회에 가입하였다. 예배장소는 정 목사의 재임 후반기부터 Bethesda, MD 소재 Trinity Presbyterian Church와 공동 사용하는 형식으로 공유하기 시작하였다.(정용철 목사가 15년간의 시무를 마감하고 1984년에 정년 은퇴를 하였다. 현재의 담임 목사는 안현준 목사)

5)다섯 번째 교회-베데스다 한인침례교회

베데스다 한인침례교회는 1969년 워싱턴 한인침례교회의 협동 목사로 있던 한태경목사가 동 교회 협동목사직을 사면하고 새로 교회를 개척함으로 시작되었다. 한국에서 새로 이주 해온 침례회 교인들을 중심으로 교회가 설립됐으며 위의 두 장로 교회들처럼 침례교회도 양립이 된 것이었다. 이 때 워싱턴 한인침례교회 측에서는 모든 교회가 다 하나로 합하는 일은 어렵다고 할지라도 같은 침례교회만은 둘이 양립하는 것보다는 하나로 통합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여러 교인들이 후원하는 가운데 합동추진위원회를 구성하였다. 마침, 한태경 목사가 1971년부터 필라델피아의 Crozer 신학교에서 학업을 계속하기 위하여 담임 목사직을 사면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합동 운동은 힘을 얻게 되어 1971년 8월 8일을 기하여 베데스다 한인침례교회와 워싱턴 한인침례교회는 무조건 합동하게 되었다. 베데스다 한인침례교회는 상대적으로 교세가 약하였고 담임 목사도 공석 중에 있었음으로 워싱턴 한인침례교회에 흡수 통합이 된 셈이다. 이렇게 해서 다섯 번째의 한인교회는 워싱턴 한인침례교회의 일부가 된 것이다.

6)여섯 번째 교회-버지니아 한인침례교회

버지니아한인침례교회는 1972년 4월 2일 부활절을 기하여 Arlington, VA 소재 Westover Baptist Church의 Chapel 에서 첫 예배를 드림으로 시작되었다. 창립 예배에는 박관빈 목사의 인도 하에 장년 12명과 유년 18명이 회집 하였다. 이 교회는 Washington, DC 지역을 벗어나 버지니아 주 교외에 설립된 최초의 한인교회가 되었다. 그리고 교회 초창기에는 초교파 교회를 지향하면서 교회 이름을 버지니아한인교회(Virginia Korean Community Church)라고 명명했다. 그러나 기치를 분명히 하기 위하여 1976년에 남침례회 회원교회로 가입하고 버지니아침례교회로 개칭하였다. (1987년 현재의 자체건물을 구입하여 정착하였다. 1992년 4월 박관빈 목사가 원로목사로 추대 되어 은퇴하였다. 현재의 담임 목사는 양승원 목사)

워싱톤 침례신학대학 180314


워싱톤 침례신학대학 -워싱톤 DC

침례교역사- pic

2018-03-14 10:32:09

230315) 40여년전 조그마한 신학원으로 시작한 우리 남침례교 워싱톤신학대학이 미국의 정식 4년제 버지니아 워싱톤대학교와 신학대학원으로 바뀌면서 성장했는데…

몇년전 뭔 동양전문대 학장인지 뭔지 하는 이가 이 대학나왔다고 사기를 쳐서 뭔가에 궁금해 하는 궁민들이 몰려서 단 하루에 1,000이 넘게 쳐들어?? 와서 난리가 났는데…

다음 블로그가 사라지면서 그 댓글들과 기록들은 다 없어져 버렸다.

자랑스러운 우리 미남침례교와 한국침례교의 이름을 도용한 사이비들이 넘 많아서 우리의 정통성을 증거하고 있다.

전 부인이 구원파인가 뭔가하던 유명인 JYP도 뭔 성경공부세미나?를 서울침례교회에서 한다고 해서 깜짝놀라 찾아보니 우리 서울침례교회가 아닌 어디 경기도 다른 도시에 이런 똑같은 이름으로 세워진 교회에서 한다는 것 이었다.

개검들로 인해서 법이 없는 나라에서 1946년에 세워진 서울침례교회 이름을 도시만 틀리다고 똑같이 사용한다는게 얼마나 미개한 나라인지 증명하고 있다.

거기에다가 소위 공인이라고 한다는 유명 연예인이 그걸 사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이다.

그나저나 굳이 스스로의 이름을 갖지 않고 유명 교회의 이름을 도용하는 것은 뭔 마인드일까?? 스스로 사이비라고 인정하겟다는 것인가?? 참으로 궁금한 마인들이다….

<원글>

워싱톤신학대학을 10여년간 이끌어 오늘을 있게한 김호식박사 이름을 자꾸 달라스 장로교회 원호식박사와 혼동해서 찾다보니…

벌써 6대 총장을 맞아 대학이름은 버지니아의 워싱톤 대학으로 개명을 하고 정규대학으로 성장한 모양이다.

미국에는 당연히 신학대학이라는 것이 없어서 신학대학원은 뭔 유명한 미국인의 이름를 딷다.

그리고 82년도 조직 설립을 위해 일하셨다는 분이 김현철로 되어 있는데 이는 아마도 워싱톤지역 첫 교회인 워싱톤침례교회 김현칠 목사님인것 같다.

오마니가 초기에 볼티모어 박목사님 차를 얻어타고 다니면서 공부를 하셨는데 졸업은 하셨는지?? 하셨다면 어디 졸업사진이라도 있을텐데???

85년도 경이면 70.. ㅎㅎ 70의 나이에 신학대학을 다녔으니… ㅎㅎ 정말 그 정렬이 대단하시다. 세월을 잘 만났거나 자식 복이라도 있으셨다면 뭔 여성장관은 하나 하셨을 텐데…

아바이도 70에 운전을 배우시고 오마니 돌아가시기 까지 그 운전수 노릇을 무사히 하셨으니 하나님의 큰 축복이시다. ㅎㅎ

보고싶은 부모님!!!

<워싱톤 침례신학대학 연역>

1982년 9월 교회 사역을 위한 평신도 사역자들과 목회자들의 연장 교육을 위해 개교, 김현칠 목사

님을 이를 위한 착수, 조직과 설립을 위해 일하도록 임명.

1982년 9월 Dr. Roy Godwin이 워싱턴 D.C Wisconsin 침례교회에서 처음 문을 연 본 학교에 초대

학장으로 임명

1984년 김호식 박사가 두번째 학장으로 임명되었다.

1984년 5월 Falls Church에 있는 Columbia 침례교회로 이전.

1984년 주정부 고등교육부로부터 교육원과 비영리 단체의 인준.

버지니아 고등 교육국은 본교가 다음의 학위를 수여 할 수 있도록 인준 준학사(A.D),종교 학사

(Th.B), 기독교 교욱석사(M.R.E), 목회학 석사(M.Div) 그리고 목회학 박사(D.Min).

1993년 3월, 미국 이민국(INS)으로부터 해외 학생들에게 I-20를 발행 인가 취득 .

1997년 5월, 김동완 박사가 제3대 학장으로 취임하였고, 학교 건물 자금을 위하여 ESL Program을

신설.

2000년 5월 워싱톤 침례대학교의 조직 개편에 따라 이원희 박사가 학장 서리로 임명.

2002년 5월 이 종욱 박사가 제4대 학장으로 취임하였고, Annandale에 건물을 구입함에 따라 학교

를 이전

2004년 2월 본교의 이름을 워싱턴 침례대학교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따라서 학교 대표의 명칭을 학

장에서 총장으로 바뀜

2004년 6월 본교는 ATS에 준회원 학교로 가입.

2006년 7월 신석태 박사가 제5대 총장으로 취임

2007년 1월 워싱턴 침례대학교 Divinity School이 ATS 정규 회원 후보 학교 자격을 취득함.

2009년 8월 장 만석 박사가 제6대 총장으로 취임

워싱톤 DC #워싱톤 침례신학대학

시 봄이 휘이익 -송명희 180325

시 봄이 휘이익 – 송명희
년도별/예술문학비평

2018-03-25 11:30:40

시 봄이 휘이익 송명희

날 선 높바람이
지이익 지익 벽을 긋던 지난겨울
나뭇잎도 하얗게 질려 말라버리고
우리 손안에는 뜬구름만 가득했다

어느덧 찾아온 봄의 정령
설렁설렁 농땡이 치던 추위가
삐거덕거리며 뒷걸음친다
눅눅한 햇볕 사이로 봄의 소리 참 곱다

짠물에 젖은 머리카락 꾸덕꾸덕한
머킬티오 바닷가 자잘한 모래 위로
삶이 시작된 날과 떠난 날이 새겨진 돌들이
봄빛을 등에 지고 물가로 스륵스륵 미끄러진다

바다와 하나가 되려는 것일까
붉게 달궈진 석양 아래 둥글게 굽어져 샛섬이 돼버린
고집 센 노인의 헛기침 소리가
파도소리에 몽골 몽골 묻혀버리고

스카짓 밸리의 너른 들판에 푸릇푸릇 아귀찬 푸성귀 한 판이 펼쳐지면
눈동자만 반짝이는 아낙들이 몸을 반으로 접고
땀 흘려 봄을 캔다
여름이 휘이익 오기 전에

사이비의 정체 180404

  1. 사이비의 정체
    년도별/픽션 이야기 911

2018-04-04 13:48:11

악한 세력들은 우리 주변에 아주 가까이 와 있다.

그들은 누구인가?

성서는 말한다.

신의 이름으로도 온다고…

진리가 여기있다 저기 있다 할 것이라고…

사이비들의 특징은 무엇인가???

첫째는 선한 영을 갖고 있지 않다.

그들은 선한 모습을 하려고 노력한다.

예수의 마음을 푼은 자들 처럼 자신들이 예수의 마음을 품었다고 강조한다. …

무엇보다도 제일 먼저…

두번째는 이중성을 들어낸다.

상황에 따라 대처하는 태도가 틀리다. 예수님같이 남들을 섬기지 만은 언제든 예외가 있다.

예수만 말해야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딴 이야기라고 생각되면 하품을 하거나 한숨을 쉰다든가 괜심없다는 무례를 섬슴치 않고 행한다.

섬길 수 없는 이유도 많다.

믿는 자들이 섬기지 못할 사람들은 어디에 가서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예수의 이름으로 거부 당하거나 쫓겨나야 하는 영혼들 만든다???

세번째는 어떤 특정 부분에 있어서 강력하다.

이단들은 특징중에 하나 어떤 것은 꼭 해야만 하고 어떤 것은 꼭 해서는 안된다.

예전 김경주 목사도 동성부부 가정에서 자란 아동에 관한 소설이

베스트 셀러 넘버 1이 되엇을 때

‘동성연애’라는 타픽으로 쓰여졋다는 것만으로도

설교시간에 흥분해서 그런 책들이 넘버 1이라고 비란을 해 댔다.

많은 재난 속에서 굳건하게 일어난 사람들이

‘우리는 해낼수 있다!’

‘우리는 스스로 일어설수 있다’라고

외치는 것을 신의 아들의 이름이 빠졌다는 이유로 마귀로 몰기도 한다.

‘우리는 해 낼수 있다’ 앞에는 ‘예수의 도음으로’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일까 모르는 것일까???

설사 몰랐다고 해도 그것을 신의 이름으로 까지 비난할 일은 아닐것이다….

이제는 사이비들을 구분하기 아주 어려운 시대에 놓여있다.

존경하던 많은 지도자들이 사이비들과 유사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들이 변질한 것일까?

아니면 원래 사이비 였을까???

최목사는 전도자 시절 가장 존경하는 주님의 일꾼중에 하나엿다.

그가 우리 청소년기에 머리를 빡빡깍은 군인 전도사였는데,

하루에 한번 씩 신약전서를 읽는다고 했다.

우리의 믿음의 우상?이었다.

80년대 언제쯤인가, 지금은 지구촌교회로 이름을 바꾼 워싱톤 제일침례교회에 처음 부임해온 이동원 목사는 그를 불러서 부흥회를 했다.

그 때만해도 보기는 괜찮았다.

군인 전도사 시절 만큼 샤프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2000년대인가, 다 쓰러져가는 포트랜드교회에 왔을 때는 …

늙은 돼지가 되어서 돌아왔다.

부흥회인데 뭔 몇억씩 주님의 은혜로 헌금을 했다는 소리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살찐 돼지는 계속 찬송을 해 댔다.

내가 좋아하는 부흥사 특유의 쇠소리로 중반을 넘어서는 수시로 찬송을 불러댔다.

나의 우상이었던 부흥사가 성령충만?하여 찬양을 자꾸 해대니…

참으로 은혜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그 찬양이 밑도 끝도 없이 자꾸 반복되니…

아 이양반이 찬양 사랑이 대단한가 보다 라고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나는 잘몰랐지만,

원래 음악에 대한 정렬이 있어서 그 열정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열정으로 변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사실 설교이든 찬양이든 하나님의 임재하심으로 집회를 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을 것이다.

부흥회는 몇 곡의 부흥사 자신의 찬양으로 끝났다.

좀 신경질이 났던것도 같다… ㅎㅎ 실망감 때문에…

세월이 엄청 흘러서..

15년은 더 되었을 것도 같다.

소시적 즐기던 이단과의 논쟁은 졸업하고,,,

사이비 종교에 대한 관심을 끊은지 오래된 어느 날…

베뢰아라는 교회 교주가 음란문제로 언론에 올라왔다.

별 괸심을 갖지 아니 하였는데,

우연히 그의 변론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오래전 이단사이비로 교단에서 왕따 당하던 시절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우리 교단의 넘버원 부흥사 오관석목사를 운운 하는 것이었다.

오목사는 우리 교단의 기라성 같은 부흥사들 중에서도 최고의 전설이었다.

사실 나는 너무 어려서 그의 설교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 그가 자기를 넘 좋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베레아 교실의 제자 중에는 최목사가 있었다.

조금 충격적이었다.

신약전서를 하루에 한번씩 읽어 성령충만 했을 것 같은 목회자는 왜 그런 성경공부 학원을 찾아간 것일까?

그가 배우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하루 한번 만나는 예수님으로 부족했던 것일까???

그리고 많은 경우 무책임 할 수 있다.

약간 죄악스러운 것을 어느 때는 아무일도 아닌냥 또는 모두다 그렇게 하는것 처럼, 또는 했던 것 처럼 말하거나 행동한다.

마치 당연한 것 처럼…

그리고 예 아니오를 분명하게 말하지 않는다…..

11-1 영혼이 통하지 않는다.

비이성적인 사고는 소통, 판단, 결정 등에 문제를 일으킨다. 이와 관련해 ‘허프포스트’가 소통과 바른 판단을 방해하는 생각의 오류 7가지를 소개했다.

  1. 이분법적 사고를 한다

흰색 아니면 검은색, 양자택일의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양단간에 내린 결정은 위험한 측면이 있다.

옳고 그르다는 이분법은 다양한 생각의 가능성을 제한한다. 흰색과 검은색 사이에 회색이 있다는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1. 상대방에게 낙인을 찍는다

하나의 단일 사건을 계기로 특정한 친구나 동료를 멍청이로 낙인찍는다면 이는 자신에게도 불이익이다. 상대방의 장점을 인지하기 못하거나 무시하게 되기 때문에 좋은 인맥이 될 수도 있는 인연을 잃게 된다.

  1. 지나치게 일반화한다

하나의 특정 사례를 보편적인 것으로 단정 짓는 일반화도 흔히 저지르는 생각의 오류다. 하나의 경험을 전체인 것 마냥 일반화하게 되면 다양한 도전을 시도하기도 전에 포기하게 된다.

대인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특정 직업을 가진 사람의 무례한 행동을 보고, 해당 집단의 사람들을 모두 무례한 사람으로 보게 되면 다양한 사람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된다.

  1. 긍정적인 상황을 걸러낸다

9가지의 좋은 일이 생기고, 한 가지의 나쁜 일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나쁜 일에만 신경을 곤두세우는 사람이 있다. 나쁜 일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나치게 부정적인 측면만 보다보면 균형적인 시각이 깨져 상황 판단이 흐려질 수 있다.

  1. 상대의 마음을 읽으려 한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짐작할 수 있다는 판단은 착각일 경우가 많다. 특히 “저 사람은 날 우습게 알겠지”와 같은 의기소침한 생각은 자신감을 저하시키는 원인이 되므로 속단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1. 최악의 상황을 상상한다

자신이 실제로 겪고 있는 상황보다 더욱 나쁜 상황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사람들이 있다. 가령 이번 달에 목표로 한 재정적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면 “난 파산하게 될 거야”라거나 “은퇴 후에 남는 돈이 없겠지”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다보면 자신의 다양한 잠재적 가능성을 제한하게 된다.

  1. 모든 상황을 자신과 연관시킨다

세상의 주인공이자 중심은 언제나 자기 자신이다. 하지만 모든 상황을 자신과 연관시키는 것은 현실 감각이 떨어지는 행동이다.

가령 친구가 오랫동안 연락이 없을 때 “나한테 화난 일이 있는 게 분명해”와 같이 모든 상황을 자신과 연관 지어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태도가 필요하다.

한국 최초 침례교회 남현자 사모 180411

한국 최초 침례교회 – 강경침례교회 남현자 사모
침례교역사- pic

2018-04-11 11:18:21

추석을 앞두고 영글어 가는 가을풍경은 우리들 마음의 영원한 그리움의 그림이다. 그러한 행복한 풍경화 속에서 갑자기 48시간의 제한부 전쟁선포에 나라 전채가 검은 구름에 쌓여 “이땅을 전쟁 위기에서 구하소서” 교회마다 기도소리 하늘을 향하여 울려 퍼졌고 목함지뢰와 포격 도발로 야기된 남북간 대치로 긴장감이 흘렀을 때, 주님의 뜻은 어디에, 여러 가지로 번민 속에 평화를 위해 기도하던 남한 성도들의 기도에 응답을 주심에 감사드린다.
여름의 꽃 7월에서 9월까지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배롱나무는 3개월동안 꽃이 피고 지고를 반복하여 오랫동안 피기 때문에 “백일홍”이라고도 부른다.

나무껍질을 손으로 긁으면 잎이 움직이기 때문에 “간지럼나무”라고도 부른다. 이 꽃이 많은 곳은 논산과 강경 근처이기 때문에 침신대가 목동에 있을 때 교정 안에서도 여름이면 분홍색 백일홍 배롱나무를 잊을 수가 없다. 교정의 푸른 나무들과 푸른 잔디의 배경으로 그리움의 꽃이기도 하였다.
새로 시작되는, 필리핀의료선교회 컨퍼런스 참석을 위해 오랜만에 고향의 땅을 밟게 되었다. 길가에 피어있는 배롱나무꽃이 핀 숙소는 논산교회 근처 갑동호수가의 아름다운 전경으로 모두 행복한 미소가 흘렀다. 이튿날 선교역사의 발자취를 따라 강경으로 향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침례교회” 이 제목은 논산시 강경읍에서 만든 기독교성지 순례코스다.
기독교 성지 순례코스를 중심으로 본 강경지역 역사문화 탐방코스로 “우리나라최초의 강경침례교회” “최초의 사립 만동학교와 최초 유치원 설립제일 감리교회” “최초 신사참배를 거부한 성결교회” “한국 현존의 한옥 북옥감리교회” “6.25전쟁 66명 순교현장 병촌성결교회” 5교회를 성지순례코스로 2005년 논산시 강경읍 소도시 가꾸기 사업으로 복원해 놓았다고 하였다.

강경교회의 연혁에서 1896년 2월에 파울링 내외분 아만다 가데린 선교사가 인천에서 배를 타고 오가며 포목장사를 하던 지병석씨를 1895년에 전도하여 서울에서 침례를 주고 겨울철 금강의 결빙이 풀려 뱃길이 열리자 강경으로 내려와 1896년 2월 9일 주일에 강경 북옥동 136번지 지병석성도의 자택에서 강경침례교회를 세우고 파울링 선교사 부부와 아만다 가데린 양과 지병석성도와부인 천성녀 성도 다섯 분이 예배를 드림으로 한국침례교회의 첫 교회로 설립이 되었다고 기록되었다.

1897년에 파울링 선교사가 지병석성도집 바로 옆 137번지에 교회를 신축 하였는데 그 시절에는 남자와 여자 좌석이 분리되어 예배를 보았다고한다.
1906년 10월 6일에 최초의 침례교단 발족 대화회총회가 있었고 1943~1945년 8월까지 일본인들이 신사당 건축으로 교회를 강제 철거하여 폐교하고 토지를 몰수(4732평)했다. 해방이 되어 1945년 10월9일 홍교동 114번지 일본인들의 사찰을 매입하여 교회당으로 사용하였다.
펜윅 선교사는 3대 담임목사님으로 현 기독교한국침례회총회의 출발점을 만들어 주었고 1935년 12월8일 26세에 한국에 선교사로 오시어 45년 동안 한국기독교회의 초석을 놓아 주시고 일생을 헌신하시었다고 기록되어있다.

펜윅선교사 후임으로 조국광복 후 이종덕 목사님께서 강경교회 4대 담임목사로 취임하시어 6.25동란에 순교하셨다. 이런 시(詩)가 있다. “금강에서” 미루나무 줄지어 선 강가/밤마다 달맞이꽃/가득 피어 있는 내 고향/나루터에는 뱃사공 아저씨/배 떠난다 부르는 소리/겨울이면 강물이 꽁꽁 얼어/얼음 사이로 노저어 갔고/여름이면 홍수져 배가 떠내려가는/갈대숲 둔덕에 앉아 시를 적었다/어느해 이른 봄날/고향에 가니 모두 떠난 빈 자리에/나루터는 보이지 않고/차량들이 줄지어 콘크리트 다리를/넘나들고 있었다. 나의 고향 강경과 세도의 금강을 이야기한 글이다.

이번 성지순례의 길에서 오랜만에 다시 찾은 소녀시절의 꿈 많은 풍광 속에 언제나 그리워하던 강경산(江景山) 옥녀봉의 그 옛 동산의 느티나무를 볼수 있음에 감개무량하였다. 그 옥녀봉 공원에 최초의 침례교회가 있었다는 것도 놀라운 사실이었다. 부여군 세도면의 사람들은 이십리 길을 걸어서 금강 나룻터에 와서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서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매일 통학해야했다.

여유가 있는 가정은 다행히 여학생은 학교 안에 기숙사가 있어서 숙식을 하면서 공부할 수가 있었다. 기숙사가 아니면 강경에 하숙하거나 자취를 하기도 하였다. 기숙사에는 200명이란 인원이 제한되어서 부여나 서천 한산 양화 금강 건너 있는 면소재지의 여학생들은 기숙사를 선호하였다. 하나님의 은혜로 기숙사에서 6년동안 생활하면서 토요일에 고향집으로 가지 않을 때는 강경침례교회에 출석하였다. 토요일에는 학생회를 출석하였다. 그때 여학생회장은 2년 선배인 인기 연기자 강부자 언니였었다.

교회당이 절을 변경 시켰기 때문에 기와지붕이 절모양 이어서 교회당 모양세 치고는 잊혀 지지 않는다. 1971년 11대 유흥태 목사님때 지금의 교회 터로 이전되었다고 기록되었다. 여중때는 내 옆자리에 연혁으로 보니 7대 김장배 목사님 따님 김계자 친구가 있었고 지금은 미국에 살고 있다.
여고시절에는 같은 반으로 8대 윤덕훈 목사님의 딸 윤정자가 있었다. 친구도 간호사가 되어 미국에 살고 있다. 그러고 보니 한국침례교의 최초 교회에 출석하였다는 것이 자랑스럽게 느껴진다. 우리 세도침례교회는 칠산침례교회에 다니시던 김만근 장로님께서 개척하신교회이다.

그 장로님은 어릴 때 우리는 심방오시면 “하나님이 오신다”고 할 정도로 신앙심이 모든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셨다. 신학시절에 그 어른의 아버님이 김희서 순교자이라는 것을 구전으로 들었다.
아침 저녘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고 있다. 가을이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 계절의 변화를 막을 수 없는 것처럼 주님의 섭리를 거슬려 나갈 수는 없다. 우리는 하나 된 한국교회의 기도로 ‘평화’의 응답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언제까지의 잠정적인 평화일까란 물음표가 붙는다. 그래도 우리 기독교인들이 할 수 있는 한 가지 그것은 ‘북한선교’이다. 복음의 빚 진자로써 복음증거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 우리 침례교 총회와 목회자들이 선교에 올인(AII IN)하시는 사역에 하나님의 사랑이 넘치는 아름다운 공동체의 행복한 동행이라 생각한다.

남현자 사모 /목산문학회 전 회장

고침) 1935년은 펜공부가 돌아가신 해이다. 펜공부는 1889에 내한했고 1893년 고든 박사에게 신학공부와 선교보고차 미국 보스턴의 클라랜돈가 침례교회의 집회로 이교회의 씽 집사가 자신의 딸 엘라를 기념한 「엘라 씽 기념선교회」가 조직되고 이선교회가 “파울링 선교사 부부와 아만다 가데린 양”를 조선 코리아에 파송하기로 결정한다.

혹 많은 사람들이 펜위익선교사와 파울링 선교사 선교팀을 서로 다른 별개의 조직?으로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파우링선교사팀은 펜위익선교사에 의해서 세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찌꺼나 새로 쓰여진 우리의 자랑 대전 침례신학 대학의 기원은 울 오마니가 졸업하시고 펜위익선교사 부인이 세운 원산성경학습원(사실은 여성들만 위한, 어떤분김성녀권사는 여성찬양팀이 있었다고 들었다고 간증.. 안대벽목사 부인 이순도여사가 리더) 과 이 강경침례교회 성경공부반을 그 기원으로 한다고 공식적으로 쓰여져있다, 아멘.

제14회 을숙도 사생대회 개최 안내 180519

제14회 을숙도 사생대회 개최 안내- 2014년5월 19일(월) 오전10시
년도별/예술문학비평

2018-04-22 11:58:33

제14회 을숙도 사생대회 개최 안내

제14회 을숙도 사생대회

일시 : 2014년5월 19일(월) 오전10시
장소 : 을숙도 문화회관 조각공원
대상 : 유치부. 초등1부. 초등2부
접수 : 4월28일 ~5월18일 까지

신청방법 : 사하구홈페이지(문화관광-문화예술행사-을숙도사생대회) 신청
▷ 학교 단체접수 또는 개인별 신청

※ 인터넷 주소 : http://www.saha.go.kr/tour/paint

시 지루한 당신을 위한 – 송명희 180430

시 지루한 당신을 위한 ————–송명희
년도별/예술문학비평

2018-04-30 08:12:39

탁월한 시제, 그리고 발상… 그리고 자유스러운 아이디어…

재미있는 시이다.

잠시 만난 시인은 충분히 그런 사고와 행동과 돌발적 발언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옛습에 억메여서, 아니 우리는 모두가 자유롭지 못해서 모든 것을 말하지 못했다.

어떤 이데오르기가 틀린 사람들이 왓을때 그들과 만났다는 이유만으로 빨갱이라고 비난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충분히 그럴수 있는 시인이라고 생각했다. 극히 실망했지만…

자유로울것 같은 사고 또 노벨상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되는 어귀… 놀라운 통찰력…

그런데 왜 우리는 갗혀 있는 것 일까??? 아니 우리는 무엇이 두려워 더 이상 대화를 나눌수 없는 것일까??

한탄할 그 무엇이 두려워 … 떠나는 것일까? 박인환??

우리는 서로의 영에 갖혀있는지도 모른다.

하여간, 재미있는 시이다.

지루한 당신을 위한 …송명희

주차금지 경고를 보고 들어갔다.

선택할 상황이 아니었다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이었거든
맘처럼 되는 세상일 하나도 없는 거
할 수 없지
이 말이 최선이었다.

선을 그어 구분해 놓은 공간
억지로 어기고 싶은 자 어디 있으랴만
가끔은 텅 빈 주차금지 구역을 보면
팻말을 옮겨 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아니, 더 세우고 싶기도 해

간혹 맘 좋은 관리를 만나면
조금의 뇌물로 편한 시간을 보낼 수도 있지
영원한 자기 구역이 존재할까
잠시 맡았다 놓아야 할 뿐이지
영원한 것인 양 착각하는 것이다.

누구라도 금지된 일을
지킬 수 없을 때가 있는 거야
서로의 입장이 바뀌는 것이지
그래서 영원한 건 없어
흥얼거리며 금지구역에 차를 세웠다.

지루한 일상을 벗어난 순간이었다

한국목회 1세대 – 홍정길목사 180613

한국목회 1세대 – 홍정길 목사

하나님이 원하시는교회-풀뿌리공동체

2018-06-13 05:46:41


한국목회 1세대

한국에서 가장 훌륭할것 같은 목사님.

그들은 잘 할려고 했는데 이러 저러한 이유로 잘 못했다고 고백한다.

예전 미국의 수도 워싱톤 제일침례교회를 시작하신 김현칠목사님도 교회를 잘 이끌다가 ‘체험이 없었다’라고 하며 이동원목사를 후임으로 하고 교단 디렉터로 옮겼다.

허기사, 그래도 몇십년을 피터지게 싸우고 교인들을 시험에 들게 하고도 잘못한게 하나도 없다고 하는 목회자들이 많으니 할 수 없는 일이다.

이 홍목사님도 결론으로 ‘예수를 잘 믿으라’이다.

어쩌면 예수님은 이 말을 하기 위해서 왔는데…

우리는 아직도 이말을 하고 있는가??

처음 제자들을 내 보냈을때 그들이 한 말 처럼???

하지만, 첫오순절 이후 제자들은 변했고 오늘에 이르렀다.

그런데, 우리 한국 교계는 아직도 이말만 거듭하고 있다.

그리고  생활전선에 나선 진보지도자을은 용납도 하지 않고 권력과 재물에 밀착해서 살고 있다.

그리고 사이비들의 수 많은 꽁수, 또 새로운 우상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

무슨 은사를 해야 하고, 무슨 신앙을 해야하고… 

수많은 신학 과외학원?들이 세워지고 난무하고 있다.

회개없이!!!????….

예수를 잘 믿기위해서???…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목자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목자처럼 행동한다….

홍정길
▲홍정길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홍정길 목사는 “목회한 지 50년이 넘었지만, 교회 개척해서 처음 3년을 빼곤 목회자로 불릴 수 없을 것 같다”며 “목회의 본질은 요한복음 10장에 나와 있듯 목자는 양을 알고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는 것인데, 3년이 지나 500가정이 되고 교인이 2,000명으로 불어나니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게 불가능해지더라”고 털어놓았다.

홍 목사는 “누가 양인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목자라 할 수 있겠나. 그러다 보니 어느새 목회는 사라지고 매니지먼트(management·관리)만 남게 됐다”며 “주님이 보시기에 나는 가짜 목사였던 것이다. 그래서 고민이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 한국교회가 가장 잊고 있는 것’에 대해선 “무엇보다 목회의 본질을 찾지 못하고 있다. 우리 1세대는 교인들이 교회로 몰려드는 시기였다. 하지만 지식과 경험이 없다 보니 미국의 대형교회를 벤치마킹할 수밖에 없었다”며 “문제는 그 과정에서 날로 커지는 자신의 교회를 어떻게 하면 잘 유지·관리하느냐에 모든 시선이 고정돼 버린 것이다. 교회는 목사와 교인이 인격 대 인격으로 깊이 교류하는 현장이 바탕이 돼야 하는데, 이게 결여되니 인격이 없는 목회가 돼 버렸다”고 지적했다.

‘기독교의 본질’에 대해서는 “당연히 구원이지만, 한국교회 복음주의자들은 구원의 반쪽만 가르쳤다”며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을 십자가에서 희생시켜 인간에게 새 생명을 준 게 구원의 본질이다. 또한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났으면 그에 걸맞게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성경도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구원받은 친백성이 되라고 가르치는데, 한국교회는 후자를 잊어버렸다”며 “우리 말은 생명·삶·생활이 각각 다른 단어지만 영어는 ‘life’ 하나다. 그런데 우리는 이걸 나눠서 새 생명을 얻은 걸로 딱 끝나버리고 삶으로 연결하는 건 애써 외면했다. 그러면서 아주 이기적인 기독교인의 삶이 돼 버렸다. 물질·건강 축복받고, 자식들 잘 되고…. 복음의 본질은 사라지고 자기 위안의 종교만 남은 셈”이라고 비판했다.

‘교회의 대형화·세속화 논란’에 대한 질의에는 “대부분의 대형교회 예배는 연출이 돼 버렸다. 목사도 좋은 엔터테이너가 돼야 성공했다고 인정받는다. 교인들은 어떤가. 일주일에 한 번 교회 나가는 걸로 면피만 하려 하진 않은지, 일상의 삶에서 십자가를 지고 가려는 노력 없이 십자가를 의지해 먹으려고만 하진 않은지 곰곰이 되새겨볼 때”라며 “한국교회는 실천의 종교였다. 3·1 운동도 교회가 주도하지 않았나. 당시 기독교인은 1.4%에 불과했지만, 감옥에서 숨진 사람 중엔 3분의 2나 됐다. 기꺼이 십자가를 등에 졌던 그때의 초심은 지금 어디로 갔는가”라고 반문했다.

‘젊은 층의 교회 외면’에 관해선 “근본 원인은 어른들에게 있었다. 엄마 아빠가 교회 장로·권사·집사인데, 말로는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다면서 실천이 뒤따르지 않으니 자녀들이 교회에 나갈 마음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요즘 젊은이들이 얼마나 영리한데, 윗세대의 말에 그냥 속아 넘어가겠나. 한국교회의 우민화가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또 “교회마다 성경공부에 공을 들인다. 제자훈련이라고도 하는데, 이게 큰 모순을 낳았다”며 “목사들은 제자훈련 프로그램으로 네트워크를 만들기 시작했다. 공부하려면 교회에 계속 나와야 하니, 이 프로그램을 통한 네트워킹으로 교인들을 교회에 묶어두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문제는 거기서 머물렀다는 점이다. 성경공부는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게 아니라 삶이 바뀌도록 하는 게 목적이 돼야 하는데, 목사가 먼저 본이 되는 삶의 모습을 보이지 못하니 스승이 없는 제자훈련이 돼 버렸다”며 “한국교회도 제2의 종교개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 중 하나”라고도 했다.

교회 세습 논란에는 “하나님의 법을 따르는 사람이 자기 교단의 법을 따르지 않는 것은 근본적으로 모순”이라며 “가장 안타까운 건 아들에게 평생의 멍에를 물려줬다는 점이다. 이전에 세습했던 2세 목사들도 요즘 많이 힘들어하더라. 그 멍에를 왜 물려주나. 자기가 이룩해 놓은 게 너무 크고 좋아서 남에게 줄 수 없다는 생각은 세상적인 욕심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부활절의 의미’에 대해선 “부활절 앞엔 반드시 고난주간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죽음이 있었기에 부활도 가능했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부활의 영광만 강조했지 부활 전의 고난은 소홀히 해 왔다”며 “죽음 없는 부활은 실체가 없는 빈껍데기에 불과하다. 먼저 희생하고 먼저 낮아지는 일상의 삶을 통해 고난을 감내해 나갈 때 부활도 의미가 있는 법”이라고 제언했다.

이를 위해서는 ”자아 성찰의 능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요즘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기 전에 30분간 어제의 삶을 하나씩 되새겨본다. 내가 말로 상처를 준 적은 없는지, 그릇된 행동을 하진 않았는지, 세상의 유혹에 넘어진 적은 없는지. 회개하다 보면 끝이 없다”며 “회개는 곧 자아 성찰이다.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마지막으로 후배 목회자들에게 “이전 세대를 흉내만 내려 하지 말고 넘어서길 바란다. 그게 진정한 선배 대접”이라며 “대형교회 목사들의 성공 사례를 그대로 답습하면 기존 사고의 노예만 될 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수를 잘 믿어야 한다. 너무 당연한 말 같지만, 자기가 쌓아놓은 것과 눈에 보이는 세상의 경험을 신뢰하지 예수를 신뢰하지 않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고 전했다.

2018년

2018년
년도별/년도별

2018-08-01 06:48:28

Jan

July 1

  1. Joy 1 yr at Adobe

Test

180731 화 로마서 13 ‘사랑 완성’

우리는 구원을 받았고

매일 의 삶을 통해서 가져야할 ‘하나님의 자녀’ 이자 ‘예수님이 제자’ 로서의 태도도 12장을 통해서 알게 되었 습니다.

그러면 세상 에서의 기본적 태도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물질적 이고 세속적 인 세상을 적대시 하고

거룩하고 고고하게 하기만 하면 될까요?

우리 바울 형님은

  1. 위 에 있는 권세 들에게 굴복 하라고 권면 하십니다. – 공세 와 국세 받을자 에게 바치고 두려워 할 자를 두려워 하고 존경 할자를 존경 하라. 7절.
  2. 사랑 으로 ‘율법 의 완성’ 을 이루라 –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 에게든 아무 빚도 지지 말라. 8절
  3. 어둠 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 을 입자. – 깰 때 가 벌써 되었고 낮이 가까워 왔으니..11, 12 절.
  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 로 옷 입고 정욕 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 하지 말라. 14 절.

Aug 1.